☆ Cho Yong Pil/YPC history

조용필 40주년 프롤로그[ 팬클럽 위탄 ms 님의 글 옮김)

작은천국 2007. 11. 1. 11:08

 

 

조용필은 20주년 조선일보 정종현과의 대담에서 ‘훗날 육십쯤 되면 모든 뒷얘기들을 터놓고 얘기하는 자서전을 쓸 계획입니다’고 공언(公言)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해 세종공연 후 창간 2주년 ‘TV저널’ 특집인터뷰에선 ‘연예문화기자들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반드시 책을 쓰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후자인 경우는 실행여부를 떠나 옐로저널리즘의 횡포에 대한 염증을 드러나게 표현 한 것쯤으로 해석 될 수도 있겠지만, 자서전은 기대할 수 있는 조용필의 진심이 담긴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었다. 허나 며칠 전  40주년관련 인터뷰 내용 중 ‘책을 남기지 않는다.’하여 현재로서는 그 기대치는 공언(空言)으로 변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생긴다.

조용필의 업적은 조용필이 현존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을 때 더욱 드러날 것이고 이때는 혼란도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평단들과 기성 작가들까지 달려들어 흥미와 상술에 의존하는 작품들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이것이 난립할 뿐 뚜렷한 교본이 되지 못할 수 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 기준에서도 조용필의 40주년 음악인생에 대해 깊은 지식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현재 시점에서도, 70년대는 가려져 있는 상황이고, 80년대는 수많은 이력들에서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많다. 여기에 잘못된 지식과 소문도 더 해졌다. 90년대는 매체에서 벗어나 라이브공연 등으로 뮤지션의 길을 걸었지만 언론의 관심에선 비켜간 시기도 있었다.  그나마 2000년대는 인터넷의 발달과 팬클럽의 의해 조용필의 활동 대부분이 명확히 보존되고 있다.

작가들은 무섭다. 고작 ‘어린 시절 벤처스 등의 음악을 들으며 음악의 꿈을 지녔고, 70년대 밴드생활을 했다.’ 정보로도 조용필의 데뷔 이전 이야기를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 여기에 조용필에 대한 지식이 가감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작가들에겐 창작이 되고 문학으로 인정받는 소설이 되는 것이기에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다.

베스트셀러였던 김훈의 ‘남한산성’은 역사를 담고 있지만 분명한 소설이다. 작가 역시 책머리에 소설과 역사를 혼동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글의 힘은, 독자들에겐 몇 백 년 전의 남한산성의 모습을 어제 일처럼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임금은 그날 남한산성에 있었다.’ 한 줄의 당시 조선시대 사관의 기록으로 남한산성의 하루를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작가는 그 외,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추적하며 연구한 부분도 있었기에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조용필을 설명하거나 거론하는 부분에서 90년대 중반 이뤄진 강헌 대담이 평단들과 작가들에게 응용되고 있다.
80년대 90년대 ‘한국현대사’ 라는 제목으로 지난 과거를 하루하루 다루듯이 상세하게 다룬 대 분량의 강준만교수의 책에서도 조용필을 역사의 한 이면으로 기록되는 부분들이 있다. 여기에서도 ‘강헌대담’이 중요한 참고문헌으로 많은 부분에 적용되고 있다.

비단 한국현대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용필 직간접관련 글에 천편일률적인 내용으로 적용되는 ‘강헌대담’은 득과 실을 말하기 전에, 조용필이 뚜렷한 대담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하는 것이다.
조용필은 40년간의 음악인생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 색깔 영역에 대해 단 한 번도 명확히 표현한 적이 없다. 세계 뮤지션들을 들여다보아도 특이한 경우이다. 이러한 탓에 평단들도 조용필에 대한 지식이 확고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뮤지션뿐만 아니라 예체능 예술인 통틀어 방송에서 조용필만큼 다큐멘터리를 할애한 인물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항상 기획의도에 전혀 못 미치는 방송들로 기억된다. 이러한 것도 비난을 하기 전에 한정된 공간, 방송으로서의 콘셉트 등 방송의 환경을 고려할 때 조용필의 광대한 이력을 충분하게 표현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때그때 볼거리 정도로 제공되었을 것이다.

20주년에 이뤄진 조선일보 대담은 ‘스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솔직한 내면을 진솔하게 담고 있고,  경향신문 16부작에선 30주년을 맞아 직접 회고형식을 통해 소소한 이야기도 풀어가고 있다. 또한 한겨레21은 특집형식으로 할애하여 조용필 30주년에 접근한 흔적을 보여준다. 35주년 임진모 대담에선 음악인으로서 35주년을 짚어가는 정도로 보이나, 신현준과의 35주년 인터뷰에선 조금은 깊이 있게 들어간 부분도 있다.
40주년 시점에서도  특정 언론사 혹은 대상을 정하여 깊이 있는 대담이 한 번 더 이뤄져서, 조용필을 학습하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되고 평단에도 활용되는 소중한 자료가 만들어지길 학수고대한다.

뜬소문에 머물던 것들이나 부정확한 내용들이 질을 떠나 몇 십 년 뒤 향후에는 버젓이 지면을 통해 공론가들의 관심 위주의 글들로 등장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조용필 명성만큼이나 이런 유의 일은 극명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자료는 소중하다. 그리고 자료는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빛을 발휘하는 건 분명하다.
요즘의 신문들이 간혹 질이 떨어지고 기자들의 수준을 탓할지언정 신문은 훌륭한 자료이며 또한 명확히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저널리즘 기능이 있다는 것도 묵시할 수 없다.

필자가 볼 수 있는 ‘위대한 탄생’의 자료실에 공개된 신문자료들은 전체 한 번씩은 클릭을 해봤다. 2000대 이후의 자료만큼은 완벽한 것으로 믿기어 참 다행스럽고 든든함마저 느끼게 한다.

다만, 간접기사들이 메인이 되지못한 탓에 혹 자료실 공간을 차지하지 못할지라도 별도로 보관되어 있기를 기대한다.
90년대 주류음악에서 밀려난 뮤지션들이 동시기에 진정한 길을 걸어가는 선배, 즉 가왕 조용필의 역량에  대해 직간접으로 평단들과 달리 깊고 심도 있게 평가한 부분은 간과 할 수 없는 소중한 기록이 될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당시 뮤지션들의 소외되었던 부분을 조용필을 교본으로 하여 진정한 뮤지션을 표출하며 당시 주류대중문화에 대해 역설하는 부분으로도 보여 의미가 더해진다.

인터뷰 자체가 힘든 만큼 인터 뷰어들은 조용필이 인터뷰이가 아님에도 조용필을 거론하거나 끌어내는 경우는 허다하다. 어느 누군가 모든 매체를 대상으로 격일에 한번 이상 ‘조용필’ 이름 석 자 등장여부로 내기를 걸어온다면, 필자는 큰돈을 걸고라도 내기에 응하겠다. 다소 허황된 비유를 하는 것은 조용필은 현 생활에서 비켜가지 못할 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고 직간접적으로 매일같이 거론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조용필은 특정한 독보적인 스타 이전에 한국대중음악사에서도 조용필의 비중은 거대한 영역으로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80년도부터 99년도까지의 우리나라 모든 일간지(스포츠신문 포함) 조용필 관련기사 전체를 조금은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과 노하우를 트레이드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은 거드름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다.’)

또한 조용필 직간접관련 서적, 월간지 혹은 계간지에 간간히 등장하는 조용필 관련 글들 소중하고, 심지어 신춘문예를 비롯한 많은 문학소설에도 등장하는 부분들도 흥미를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팬클럽이 존재함으로서 만들어내는 자료는 소중할 뿐만 아니라 귀하고 귀한자료가 될 것이다.
비틀즈의 많은 역사에 대한 것들에서 팬들에 의해 증명되거나 확인된 사실도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예가 될 것이다.

요컨대 2007년 10월에 열린 조용필의 호주콘서트인 경우 국내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팬클럽이 머나먼 여정을 마다하고 동참함으로서 쉽게 묻힐 조용필의 이력 하나가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훗날 조용필의 역사를 추적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팬클럽회원들이 호주국제공항에서 ‘조용필 호주콘서트’를 증명하는 플랜카드를 들고 기념 촬영한 사진 한 장은 분명코 조용필 역사의 한 페이지에 오를 가치가 있다.  그 사진 한 장은 숭고함마저 느끼게 했다는 개인 감상도 감히 덧붙인다.

조용필에 대해 정말 모른다. 이것은 일반 대중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가수, 음악관계자, 혹은 종사자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줄 필요성이 있기에, 40주년 대담도 깊이 있게 한번쯤 이뤄지고 회고록에 대한 기대치를 버리고 싶지 않다.
아울러 어느 누군가는 조용필의 이력을 소중히 기록하고 있거나  전수 받는 사람이 있기를 기대한다.

조용필에 대한 추적, 학습, 연구, 평가 이러한 것들이 깊어지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서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조용필을 모른 체 장파리에 가면 무얼 찾겠는가?

앞으로 전개할 글들은 충분히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됨을 미리 고지하겠다.
조용필의 회고형식의 30주년 자료를 메인으로 전개하면서 필요에 따라 필자가 부각시킬 부분들이 느껴질 때 혹은 부연의 필요성을 느껴질 때 그 외의 자료들을 첨부하거나 느낌을 담겠다. 30주년 이후는 지닌 자료와 지식을 동원하여 전개해 나가겠다.

필자 나름대로 40주년을 말하는 글이 아닌 접근차원에서 정리 해보는 것쯤으로 여겨졌으면 하고, 필자의 턱없이 부족한 자료와 지식이  조용필의 40주년 업적이 전부인 것처럼 비춰지는 우가 되어선 안 될 일이다. 이번 시리즈를 끝으로  [조용필 40주년이 이뤄낸 위대한 40가지(부제)]를 구상하고 기획하는 과정으로 가기위한 준비를 하며 물러가겠다.

글출처 ; 팬클럽 위대한 탄생 ms 님이 쓰신 글 발췌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