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nkook's Diary/Ordinary Daily Life

[2017년 11월 소소일기] 늦여름을 지나 가을에서 겨울로

작은천국 2017. 12. 1. 14:09

[2017년 11월 소소일기] 늦여름을 지나 가을에서 겨울로




1. 계절의 한 가운데서


막바지 늦여름에 다녀온 감악산.

지난달에 감악산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화들짝.



설악산 단풍 소식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다녀온 화담숲.

화담숲이 좋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으나 집에서 너무 멀어서 가 볼 엄두를 못냈다.


마침 강의 요청이 들어왔는데 강의 장소가 화담숲이라 금상첨화.

아직 단풍은 조금 이른 시기였지만 조금씩 단풍이 물들어 가는 것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시청 근처에서 취재가 있던 날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정동전망대를 올랐다.

날씨가 어찌나 좋든지 다음 일정은 모두 미뤘고 느긋하게 커피 한 잔 마시며 서울의 가을을 만끽했다.



오대산을 여러 차례 가긴 했지만 언제나 월정사 앞까지가 전부였다.

그나마 천년의 숲길은 걸어봤다는 것이 위안이긴 했지만

그리 좋다는 선재길을 걸어 보지 못한 아쉬움이 크게 있었다.


올해는 설악산과 한라산을 가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계속 일이 생기는 바람에 결국 설악산과 한라산의 단풍은 보지 못했다.

대신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오대산으로 향했다.


설악산과 한라산이 아니어도 선재길만으로도 충분했던 가을 단풍.

아침에 출발할 때 좋았던 날씨와 달리 점심을 먹고 나니 비가 왔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설악산의 단풍이 모두 지고 나니 이제 단풍은 내장산으로 내려왔다.

작년에 백양사에서 내장사로 가려고 했던 계획은 백양사 단풍에 취해

시간이 너무 늦어 버렸고 내장산 단풍은 만나지 못했다.


원래 내장산은 계획에 없던 가을 여행이었다.

단풍이 절정인 시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기차표 구하기도 힘든 내장산행이기에

생각도 않고 있었는데 일요일 저녁에 자려고 누웠다가 작년에 가 보지 못한

내장산을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고 운 좋게 월요일 새벽 출발 기차표를 예매했다.

자려고 누웠다 다음 날 여행이라니 싶어 실실 웃음이 났지만

내장산 단풍은정말 고왔고 즉흥적으로 지르길 잘했다며 스스로 칭찬할 정도.


내장산 단풍터널도 좋았지만 신선봉에서 바라본 내장산은 압권이었다.

산골짜기마다 붉은 단풍이 불을 지펴 놓은 것 같았던 내장산이다.



그 외 두 번의 제주, 경주, 익산, 수원, 부산을 비롯해 서울 근교 등

기록하지 않아서 기억도 못 하는 여정이 수두룩.


빠듯한 일정으로 바쁘게 다니다 보니 계절은

늦여름을 지나 가을에서 어느새 겨울이 됐다.


일상과 일이 구분되지 않아 때때로 힘들기도 하지만

계절의 한 가운데서 스치는 모든 것들에

날선 감각으로 늘 깨어 있어야 하는 이 일이 좋다.






2. 파랑새는 가까이에


가을이 되면 굳이 먼 곳을 다니지 않아도 집 주변은 온통 가을 가을하다.

창문 열면 온통 이런 풍경. 


무심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이 말랑말랑해질 수밖에 없는 가을풍경이다.

15분이면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도 가을 풍경에 사로잡혀 1시간이 걸리기 일쑤.


노랑 비가 내리는 날.


매일 매일 조금씩 가을이 차올랐다가 기울어 간다.



봄이 오면 가을까지는 매봉산은 나의 주요 산책로가 된다.

여름에는 아예 도시락을 싸 들고 가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글도 쓰고 온종일 산에서 보내기도 한다.

그런 매봉산을 올해는 거의 가지 못했다.  오랜 만에 매봉산 산책.

여름에 종종 드러누워 낮잠을 청하던 곳엔

 아뿔싸! 누가 벌써 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추석 전까지는 타이완 원고 때문에 고시생처럼 살다 보니 동네 산책할 여유가 아예 없었다.

모처럼 여유가 있던 날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매봉산을 지나 하늘 공원을 올랐다.


2002 월드컵 때는 나무들이 있어도 휑-하기만 했던 공원은

10년이 지나면서부터 확실히 풍성해지기 시작했고 이젠 무성하기까지 하다.

평화의 공원 빽빽한 숲 너머로 마주하는 여의도의 빌딩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외국 같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이만하면 서울도 참 좋은 곳이다.




가을이면 서울에서 최대의 인파가 몰리는 하늘공원.

공원도 몸살을 심하게 앓지 싶어 사람들이 최대로 붐비는

하늘공원 억새축제 때는 일부러 공원을 안 간다.


처음 이사오고 몇 년 동안은 일주일에 한 번 무조건 하늘공원을 올랐고

축제기간에는 매일 올라가다 시피한 하늘공원이건만

이미 누릴만큼 누린 자의 여유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가을이 좋다고 느끼겠지만 수시로 하늘공원을 올라본 나로썬

여름 태풍이 지난 다음과 눈 올 때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하늘공원의 일몰.

그러고 보니 올해는 노을공원도, 난지 한강공원도 한 번도 못 갔네.



노란 은행잎이 누구에겐 좋지만 누구에겐 큰 곤혹스러움이다.

아파트 곳곳에 은행잎을 담은 마대자루가 쌓이기 시작하면 곧 겨울이다. 



자고 일어나니 소복히 소금가루를 뿌려 놓았고

첫 눈이 와 있었지만 불행히도 눈이 내리는 걸 보지 못했다.

그러니 아직 나에겐 첫 눈이 온 건 아니다.


추운 건 죽도록 싫은데 눈만은  좋은 건 고향이 경상도라서 그렇다고 치자.

20대 후반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눈을 본 기억은 딱 두 번이 전부다.


눈만 오면 사람이 혼이 나간다.  ㅎㅎㅎ






3. 겨울 준비


입지 않는 옷들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면서 모처럼 책장도 정리했다.

몇 년에 한 번씩 책갈이를 하면서 더이상 보지 않아도 되는 책들은 기부도 하고 했는데

어느새 다시 책을 둘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빽빽해진 책꽂이와 이곳저곳에는 쌓아놓은 책들로 한 가득.


가장 버리지 못하는 것 중 하나인 책.

공공도서관이 많아서 가급적 책을 사지 말자고 하는데도 그게 잘 안 된다.

나에게서 떠나기 전에 써머리 삼아 한 번씩은 읽어보고 보내야 할 책들.

밀린 숙제 빨리 해치워야 할텐데.




올해 눈을 너무 혹사하다 보니 수시로 안과를 들락날락.

인간인 이상 생로병사 앞에 자유로울 순 없다.

불안감 엄습으로 인해 아파트에 시골장이 열릴 때 아로니아를 3kg 나 충동구매.

늘 그렇듯 처음에 조금 먹다가 그대로 방치.

한동안 잊고 있다보니 냉장고에서 곰팡이가 피었다.

안 그래도 눈이 침침한데 쭈그리고 앉아서 아로니아 꼭지 따고 앉아있으려니 개미지옥이 따로 없었다. 


결국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아 쨈을 만들려다 설탕 과다가 걱정되어

포도당에 절여 아침마다 주스 만드느라 지쳐가는 중.

일부는 지인들에게 나눔으로 해결.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안 된다는 만고의 진리.


그나저나 마음의 눈도 좀 맑아야 할텐데.



추운 겨울을 견뎌야 꽃눈이 달리는 개발선인장, 천리향, 부겐벨리아를 제외하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베란다에 있던 화분들이 모두 거실로 들어왔다.

올 초에 큰 화분들은 대형으로 분갈이하고 나니 감당이 안 돼서

고민하다 바퀴달린 물받침대를 샀다.

진즉에 살걸.


날은 추운데 산세베리아에도 새순이 올라오고 있고 

히아신스도 예년보다 빠르게 새싹이 나왔다.


 한 평짜리 식물원으로 변한 거실에서 겨울나기.



올 한해 계속 붙어있던 타이완 전도와도 안녕~



잠자는 시간을 빼곤 휴일도 없다시피 원고만 쓰면서 보낸 지난 몇 개월.

추석 즈음 타이완 원고가 끝나고 나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질 것 같았다.

 쉬고 있던 중국어 외에도 교정 교열 등 그동안 부족하다 싶은 몇 가지 강의를 신청했고

내친김에 케이무크 강의도 신청했다.



이런 나의 걱정과 달리 타이완 원고 외에도 밀렸던 원고들을 써야 했고

각종 기고, 강의, 보도사진 취재 요청. 각종 취재요청 등등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차라리 원고를 쓰고 있을 때는 도서관에 갇힌 생활이었는데

원고가 끝나고 나니 집에 있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정신없는 날들이었다.


게다가 공부 좀 하겠다고 

 신청해 놓은 강의들도 만만한 것들이 아니어서

원고 쓸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코피를 쏟을 지경이 됐다.

결국 시간이 촉박해 케이무크 강의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오죽하면 한 달에 한 번 남기는 일상의 기록인 소소일기 마저도 몇 달 동안 쓰지 못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에 쫓기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11월 중순.


원고도 끝났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바쁜 것인지 회의감이 들 즈음 알았다.

온 마음을 쏟았던 시간 뒤에 밀려올 허무함이 무의식적으로 좀 두려웠음을.


감정의 소모가 심했기에 모든 것에 다소 무덤덤해진 상황이 유쾌하지는 않다.

다시 채우기 위해 고요하고 차분해져야 할 시간.

다 퍼낸 우물이 상당히 깊다.


12월은 가급적 게으르게 보내고 싶은데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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