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nkook's Diary/Ordinary Daily Life

[2017년 7월 8월 소소일기] 하늘이 참 높구나

작은천국 2017. 8. 28. 08:00

[2017년 7월 8월 소소일기] 하늘이 참 높구나




어느새 높아진 하늘에 구름이 열일하는 요즘. 

짧은 여름은 지나가고 있다.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은 여름과 확연히 다르고 

해도 눈에 띄게 짧아지고 있다. 


지난 7월은 소소일기를 쓰지 못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도 없고 감정의 부침이 심했었다.

기운을 차리지 못해 헤롱헤롱했던 7월 그리고 8월을 견디며 나름대로의 일상을 살아가는 중. 


아직 너무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며. 




6월 한 달은 거의 쉼없이 12시간 강행군이었기에 몸 곳곳은 이상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일주일에 무조건 하나씩 써내야 하는 원고는 텍스트 분량도, 사진 분량도 적은 양이 아니라

쉬지 않고 일주일 내내 꼬박 할애를 해야 근근히 마감을 마출 수 있는 상황이었다. 


원고도 좋지만 일단 사람이 살고봐야하기에 7월은 일반 직장인들처럼 9 to 6를 지키리라 다짐했다.

이 프로젝트만 하고 끝날 인생도 아닌데 

무슨 영화를 보자고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않으면서 이러고 있나 자괴감이 몰려왔다.

지난 12월 타이완 프로젝트를 준비함과 동시에

도저히 시간적 여유가 없어 그만둔 요가를 7월과 동시에 요가를 다시 시작했다. 


그렇다고 일주일에 세 번씩, 고작 한 시간이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어 일주일에 세 번을 다 가본적은 없다.  

운동을 너무 안 해 몸이 다 굳은 상태지만 그래도 요가를 다시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여름에는 너무 더워 차는 엄두도 못냈는데 날씨가 조금씩 선선해 지면서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보이차도 마시기 시작했다. 


아침, 저녁으로 차를 마시는 잠깐의 시간동안 몸과 마음에도 찰나의 휴식이 찾아든다. 

커피를 마실 때는 그런 느낌은 없는데 보이차는 마실 동안 명상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니 참 신기한 차다. 

그 덕분에 일본 책 취재갔을 때 아주 좋은 건 아니지만 기념으로 금각사, 은각사가 새겨진 

다기세트를 구매했었는데 보이차 덕분에 다기세트도 몇 년만에 빛을 보고 있는 중이다. 


노푸 만 4년차. 

탈모 개선, 얼굴의 좁쌀 여드름, 두피개선, 머리카락 끝 갈라짐 등등 

노푸의 효과는 입이 마르고 닳도록 얘기해도 모자랄 정도로 내 삶에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다. 

하지만 단 하나의 단점이 있으니 머리 두피가 너무 천천히 마른다. 


머리를 자를 시간이 없어 그냥 방치를 하다보니 머리가 너무 길어 버렸고 

머리 감을 때 바닥에 닿는 것은 물론이고 평소에도 헤어드라이를 잘 사용하지 않는 성격 탓에 

이 더운 여름에 치렁치렁한 긴 머리는 정말 고달픔 그 자체였다. 


원고 쓰는 것만 생각하는 것도 진이 빠질 지경인데 

날도 더운데 머리 감고 말리고 화장까지

 성가셔도 그렇게 성가실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만 4년만에 머리를 잘랐다. 

타이완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도 같은 이유로 머리를 잘랐는데 

늘 긴머리를 고수한 나에게 지인들은 실연했냐, 심경의 변화가 있냐고 

물었지만 별 이유없다 그냥 귀찮았을 뿐. 


조금이라도 신경 써야하거나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다 줄이고 있는 이상황에서 

웬만하면 화장도 안 하고 맨얼굴로 다니고 싶지만

그러기엔 추레한 내 얼굴을 보면 안 그래도 우울한 이 상황이 더 우울해질까봐 

결국 머리카락 자르는 것으로 상황정리. 


7월 말에는 타이완 관광청 강의차 부산을 다녀왔다. 


그간 부산 강의는 몇 번 가본 적이 있지만 1박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사실 시간적 여유도 그리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때 아니면 성격상 휴가고 뭐고 

줄창 원고만 쓰고 있을 상황이라 큰 맘먹고 해운대 바로 앞 노브텔을 예약했다. 


몸이 너무 피곤한 상태니 처음에는 호텔놀이나 하면서 보낼 생각이었다.

막상 부산을 갈 날짜가 가까워져오니 피곤한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더 피곤해진 상황이 됐다. 

마침, 동생도 휴가를 내겠다고 했고 동생과 오랜만에 안 가본 부산을 열심히 다녔더랬다. 


수영을 못한다는 치명적인 함정에도 이런 허세 정도는 부려줘야 한다. 


부산 간김에 바로 서울을 올라오기에 앞서 고향집에도 들렀다. 

엄마는 저녁이나 먹자며 운전하라고 하더니 갑자기 포항으로 방향을 잡았다. 

TV에 포항 운하가 방송된 모양인데 이 운하를 한 번 가보고 싶으셨던 것. 

덕분에 생각지도 않게 포항 행- 포항 운하는 한번은 탈만 했다. 


동해안 최고의 어시장인 죽도어시장에서 물회와 회로 저녁을. 

이날 마침 KBS 다큐 3일 촬영팀이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방송의 매커니즘을 몰랐을 때는 

그냥 부럽기만 했을 텐데 얼마나 힘들게 촬영을 하는지 너무 잘 알기에 그냥 수고하시라는 말만 건넸다. 

다만, 미식가인 아버지의 입맛에 달인의 포항 물회는 그냥 그런 걸로-

하지만 매운탕만큼은 엄지척!


고향집에 갔다고 마냥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집에서도 밤이나 낮이나 일 모드.

이때가지만 해도 빈틈 1도 허락하지 않는 이 상황에 잘 적응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갑자기 멀쩡하던 노트북이 부팅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8시간 허리 한 번 펴지도 못하고 작업한 원고를 다 날리고 나니 

그때까지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던 체력, 정신력은 완전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야말로 멘붕.


12시간 넘게 작업하는 상황이 벌써 수 개월째. 

내 몸도 안 아픈데가 없어 어쩌다 하루 쉬는 날에는 안과, 내과, 외과, 한의원, 물리치료 등등 

병원 순례하면 하루가 다 가는 상황인데 12시간 넘게 풀 가동인 전자기계가 고장이 안 난다는게 더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이런 상황이 발생되는 건 아닌가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손에 완전히 익어 있는 노트북을 작업 중간에 바꾸게 되면 새로 적응하는데 

신경을 써야하고 시간이 걸리는데 그러자면 또 작업시간이 늘어나는 상황도 스트레스였기에 

타이완 작업이 끝날 때까지만 고장없이 무사히 버텨주기만을 그렇게 빌고 빌었건만

그녀석의 한계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나마 하드가 무사하다는 것만이 큰 위안일 뿐. 


그러나 상황은 노트북 하나 망가진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여태까지 정신적으로 겨우겨우 버텨내고 있던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냥 이 모든 상황이 다 미칠 것만 같았다. 


육체적 피로는 이미 내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뛰어 넘었고  

내가 가진 것 이상으로 무한정 쏟아 내고 있는 이 상황은 

 넘을 수 없는 벽을 안간힘을 다해 밀고 있는 막막한 기분이었다. 


책도, 전시도 언제나 쉬운 작업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뭐랄까 단순 설명이 안 되는 것이 많다. 

누가 도와줄 수도, 누구에게 도움을 처할 수도 없는 이 상황은 

그 어떤 것으로도 위안이 되지 않았고 

한없이 초라하고 작아지는 내 자신만 덩그러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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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비는 또 왜 이렇게 자주 오는건지. 


새로운 노트북을 구매하고 각종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기존 자료 백업하는 등등 대략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그냥 쉴수만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평소 궁금한 것들이 좀 있었는데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자료를 읽어야 했고 

공공 PC 신청해 원고에 필요한 자료들을 계속 찾아내고 업데이트를 하다보니 

일주일이 바쁘게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판에 박힌 도서관 생활이 시작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고도 슬슬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기에 

2주에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되는 상황이라는 것.

도서관이 오후 6시면 끝나는 주말에도 어김없이 카페로 자리를 옮겨

 밤 10시까지 작업해야 했지만 이제 주말 저녁은 잠시 짬을 내어 산책할 여유도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작년과 달리 여름이 빨리 물러간 덕분에 한결 작업이 수월하다. 

더운 건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체질적으로 에어컨도 좋아하지 않기에  

한여름 도서관 냉방에 적응하지 못해 편도선을 달고 살았고

설상가상으로 피곤이 누적된 내 몸은 냉방일 때와 냉방이 아닐 때

체온 조절기능에 이상이 생겨  두드러기 증상까지 생겨 정말 죽을 맛이었다. 

딱히 약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선선한 바람이 불기만을 기다릴 뿐. 


처서가 지나니 거짓말처럼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 지기 시작했고 

여름내내 축축 쳐졌던 몸 컨디션은 서서히 자리를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비가 오지 않는 날은 매일 이런 하늘이니 

도서관에서 화장실 오며 가며 잠깐 짬을 내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업. 



주말에만 운동삼아 고양이 세수하듯 산책타임. 



이런 상황이니 올 한 해는 모든 인간관계를 포기했다. 

그럴 시간적,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하거니와 그럴 시간이면 

밀린 청소에, 빨래에 무엇보다 절대적 휴식이 필요하다. 


이럴 때 가장 먼저 밥 먹는 시간을 줄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인들은 

밥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고 몇 번을 미루다가 내 상황을 배려해 상암으로 찾아와 주기도 했다. 


해외에서 지인이 왔는데도 어찌어찌 겨우겨우 짧은 시간 점심 한끼 먹고 보냈다. 

온 몸이 근육통에 시달리는 나를 위해 슬며시 내밀던 그녀의 선물은 다름아닌 백화유. 


고맙고 미안하고...  


매일 어김없이 아침이면 도서관 문 여는 시간에 출근하고 있다.

저녁은 기존 10시에서 8시 정도 퇴근 모드이니 그나마 상황은 조금 나아진 걸로. 


이렇게 하나에 올인한 시간이 끝나고 나면 

갑자기 할 일이 없어 허탈감과 허무감이 밀려오기 마련이다. 


이제 원고도 4개만 남은 상황이니 원고 끝난 뒤의 일상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 

9월 이후부터 개강하는 도서관 프로그램을 신청했고  

전시 관람 계획도 세우고 충전을 위한 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무엇보다 타이완 원고 외에 일절 다른 감정을 담을 시간도 여유도 없었는데 

원고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가고 있으니 나름 써보고 싶은 글들이 있어 

조금씩 여유날 때마다 정리 중이다. 


지난 타이완 여행 때 이란의 난양박물관에서 노트를 하나 사왔다.  

이 노트를 어떻게 활용할 지 고민이었는데 이 노트에만 쓰고 싶은 분야가 생겨서 따로 정리를 해볼 생각이다. 

또한 루강에서 가라스펜을 사왔는데 장식용으로만 두고 있었던 것도 

배웠던 캘리그라피 연습할 겸 이 노트에 함께 채워나갈 것이다. 


별 일이 없기도, 별 일이 너무 많기도 했던 지난 7월 8월. 

사람의 몸과 정신에 대해 내 몸으로 실험했던 여름이다. 

병원에서도 쉬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했던 몸상태는 

만성이 되니 적응을 한 것인지 쉬지 않는 상황인데도 

희한하게도 정상에 가까운 범주를 유지하고 있다. 


아마 한 달, 좀 무리를 해 빠르면 이십 일 정도면 

타이완 모든 원고가 마무리 될 것같다.

내 원고가 마무리 된다고 해서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역할은 끝이 난다. 

 힘에 부친 벽 하나 가까스로 넘은것이라 위로하자. 


너무 유난스럽게 보내는 2017년의 뜨거운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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