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nkook's Diary/Ordinary Daily Life

[2017년 12월 소소일기] 2017년 안녕, 안녕, 안녕

작은천국 2017. 12. 31. 14:02

[2017년 12월 소소일기] 2017년 안녕, 안녕, 안녕



타이완 작업으로 그 어느 해 보다 바쁘게 지냈던 2017년.


거의 열 달의 긴 작업으로 한 달에 하루 혹은 이틀 정도밖에 쉬지 못했는데

책상에 앉아 있는 신체의 고단함과 머리의 피로감을 여행으로 달랬더랬다. 

여행의 피로는 여행으로 푼다는 걸 실감했다고나 할까. 


잠시의 짬을 허락한 시간은 책상을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세상 밖의 공기는 달디 달았고 다시 책상에 앉을 힘을 만들어 주었다.


너무 바빠 기록조차 하지 못했던 2017년을 되돌아 본다. 



【1월그리팅맨에 가슴이 찡했던 연강 나룻길


2017년이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걸었던 연강나룻길. 연천군 군남홍수조절지에서 옥녀봉까지 왕복 7.5km를 걷게 되는 연강나룻길은 임진강 상류의 비경을 굽이 볼 수 있는 코스다. 정상인 옥녀봉까지 산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니 천천히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에도 좋고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이 일대의 경치도 경치였지만 북한에서 흘러내려 오는 임진강 쪽빛 물색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곳마다 전망대를 세워놨는데 알고 보니 조선 시대 산수에도 많이 등장하는 풍경이 이곳이었다. 춥기는 커녕 봄 같은 날씨는 포근했고 땀을 있는 데로 흘리며 옥류봉에 도착했다. 가는 길마다 표지판이 잘 되어 있었지만 옥류봉 정상에 서 있는 그리팅 맨이 길잡이가 되어주니 굳이 표지판을 보지 않고도 그리팅맨을 향해 걸으면 되는 길이었다. 드디어 옥류봉 정상에 도착했다. 멀리서 손톱만 하게 보이던 그리팅 맨이었건만 앞에 서고 보니 그리팅 맨은 무려 10.8m의 어마어마한 높이였다. 세계 유수의 도시들을 여행할 때 가끔 만나고 했던 그리팅맨에 큰 감흥은 없었는데 옥류봉의 그리팅맨은 좀 달랐다. 육안으로도 보이는 북한땅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 있는 그리팅맨에 울컥해진 건 남과 북을 이어주는 임진강과 달리 여전히 끊어진 채로 아슬아슬한 위기상황을 겪고 있는 한반도라는 게 새삼스러웠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작품이 미완성이라고 했다. 옥녀봉에 세운 그리팅맨은 북한에서도 육안으로 보일 정도라고 하는데 북한에도 남쪽으로 향해 인사하는 그리팅맨을 세워 남과 북이 마주 보고 인사할 때 완성이 된다고 한다. 그때가 오면 옥류봉에서 북한에 있는 그리팅맨이 있는 곳까지 걸어보리라. 희미하게 육안으로 북한이 보이지만 38선을 접하고 있는 곳과 달리 한없이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던 연강나룻길. 그래서 더 짠했던 하루였다.


▲ 왜 때문에 연강나룻길을 걷게 된거지?


▲ 북쪽을 향해 인사를 올리고 안부를 묻는 그리팅맨




【2월한탄강 얼음 트레킹


세밑 한파가 가장 춥다고 했던가. 12월보다 음력으로 12월에 해당하는 2월이 가장 춥다고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추워야 제맛인 것이 있으니 바로 한탄강 얼음 트레킹이다. 한탄강은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는 12월을 지나 1월 말경이 돼야 얼음 트레킹이 가능할 정도로 꽁꽁 언다. 한탄강은 우리나라 지질 연구에도 중요한 곳이라 몇 번 가보긴 했는데 담당자분들은 한탄강을 제대로 느끼려면 한겨울 한탄강 얼음 트레킹을 해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호기심이 차올랐지만 체질적으로 추위를 워낙 많이 타는 탓에 겨울에는 신체의 모든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니 웬만하면 집에서 나가지를 않기에 그좋다는 겨울 삿포로도 가 볼 엄두를 못 낸다. 그렇게 한탄강 얼음이 얼었나 궁금해하기를 몇 년. 작년에는 한탄강 얼음이 얼 정도의 한파가 적어 1월 말 경 한탄강 얼음 축제기간에는 얼음이 덜 얼어 전구간을 트레킹을 하지 못한다고 했기에 좀 더 기다렸다가 2월 초에 찾았던 한탄강 얼음 트레킹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추위가 가시지 않는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빙판을 걷는 즐거움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큰 즐거움이었고 어린시절로 돌아간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한탄강 얼음 트레킹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트레킹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철원 군부대 인근 통닭집에서 팔던 군대리아였다는 건 비밀이다. 군대리아가 그렇게 맛있는 줄은. 군대리아 먹으러 꼭 한 번 더 가고 싶다.


▲ 엄동설한의 고드름이란 이런 것.


▲ 얼음 위를 걷는 각양각색의 복장


▲ 사람의 뒷모습이 처연해 보이기 시작하니 이거 원-




【4월촛불로 만든 대선


3월을 타이완에서 보내고 돌아와서 4월 한 달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4월에 첫 두 개의 원고를 완성해야 했고 5월에는 다시 타이완 취재를 앞두고 있었기에 원고 쓰랴 취재 준비하랴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3월 탄핵이 결정되고 난 뒤 전국은 5월 장미대선으로 들썩이고 있었지만 내 코가 석 자라 유세현장을 가 본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무혈시민혁명이었던 촛불 시민혁명은 그렇게 민주주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했고 우리는 그렇게 겨울이 아닌 장미꽃 피는 5월 장미대선을 맞이했다. 2012년 12월에 있었던 19대 대선 때는 kbs 시민 취재기자로 대선 현장을 발로 뛰며 대선주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었는데 20대 대선은 그 아쉬움을 팟캐스트나 유튜브로 접할 뿐이었다. 그나마 사전투표를 할 수 있음을 위안으로 삼고 있었다. 5월 초 출국을 앞둔 4월 30일. 마침 신촌 젊음의 거리에서 서울 마지막 유세가 잡혔고 홍대 근처 도서관에서 원고를 쓰고 있었기에 짬을 내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0대 선거 유세현장에 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200일. 바뀐 건 사람 한 명뿐이란 걸 실감하고 있지만  앞으로 남은 4년. 그 한 사람이 바꾸어 놓을 대한민국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 대통령을 '우리 이니-' 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시대에 살게 될 줄이야.



【5월】내 인생 최고의 공연, 콜드 플레이(cold play) 그리고 조용필 님


약 한 달 정도 타이완 취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콜드플레이 공연. 공연 예매할 때만 해도 공연을 망설이게 될 줄 생각도 못했다. 타이완 취재 갔다 온 것 정리하랴 본격적으로 원고 작성 햐랴 24시간 일 모드였기에 공연을 보러 가는 게 사치란 생각이 들 정도여서 공연을 망설였다. 공연 당일까지도 갈팡질팡하다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공연 시작 20분이나 넘겨 도착한 올림픽 주경기장. 이곳에서 내 생에 죽기 전에 공연을 볼 수나 있을까 했던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의 공연을 보기도 했었다. 그랬기에 세계적인 가수라고 해도 콜드플레이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그랬는데 폴 매카트니의 공연을 보면서도 느끼못했던 무언가가 가슴을, 머리를 강타했다. 조용필이란 가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워낙 대형공연 위주의 조용필 님 공연인지라 다른 가수들의 공연에 대한 궁금증은 크게 없었다. 그렇게 약 20년이 넘는 동안 조용필이란 가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개인적으로는 공연이 정체되고 있다는 느낌을 끊임없이 받고 있던 지난 몇 년이었다. 항상 최고의 무대라는 생각에는 변함없지만 그럼에도 뭔가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 콜드 플레이의 공연 안에 모든 해답이 들어 있었다. 내가 조용필 님 공연을 처음 봤던 20여 년전 그날에 느꼈던 신선한 문화충격이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덩그러니 혼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제 한창인 40대 가수와 전성기를 넘기고도 전성기인 60대 가수가 가진 물리적인 숫자의 차이는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쩌지 못한다는 서글픔이었고 세계적인 젊은 감각은 부러움이었다. 2018년 50주년을 맞이하는 조용필 님이 5월이면 이곳에서 50주년 첫 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최고의 무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과 부담감이 그 어느 해보다 큰 50주년이지만 그는 또 한 번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최고의 무대를 선사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 무대에 나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 


▲ 올림픽 경기장에 내려 앉은 미리내


▲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무대연출


▲ 공연에서 자일로 밴드란 무대로 빨려들게 하는 수리수리 마수리~ 




【3월, 6월, 8월】 도서관 창밖은 햇살이 좋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도서관답게 온 사방이 뚫린 창밖으로는 이런 풍경이 보인다. 고시생 같았던 생활이지만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창밖으로 구름 피어나는 하늘 덕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난히 하늘 사진을 많이 찍었던 2017년. 처음에는 아무 곳에서나 찍다가 어느 순간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기록처럼 남은 2017년의 하늘. 다시 만날 수 없는 시간은 그렇게 하늘과 구름으로 남았다. 창밖엔 햇살이 좋아~ 


▲ 창밖엔 햇살이 좋아~ 맑은 미소 진 널 생각한다. 난 기쁨에 겨워 널 만나면 좋아 좋아 ♬ 흥얼 흥얼~(조용필 19집, 널 만나면) 



【7월】폭염에 등산이라니! 소백산 연화봉


타이완의 5월은 기온이 30도를 웃돈다. 그러니 나에게 2017년의 여름은 5월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난히 길었던 여름이지만 시원한 도서관에서 보내는 덕분에 견딜 만 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지치기는 매 한가지. 그렇게 지쳐 가던 여름 소백산을 오르던 날은 전국적인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한참 산을 오르고 있는데 폭염주의보 알림이 요란하게 울린다. 가만히 있어도 숨도 쉬기 힘든 폭염에 등산이냐고 했지만 지대가 높고 나무가 많아 도심의 기온보다 기본 5도 이상 기온이 낮기에 폭염엔 오히려 산에 가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소백산에 가본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백두대간을 종주하자며 노래를 부르던 친오빠는 결국 백두대간에 속해있는 연화봉으로 길을 잡았고 그렇게 폭염이 있던 날 연화봉을 만났다. 정상으로 오를수록 발아래 펼쳐지는 능선의 봉우리들은 아름다웠고 정상인 연화봉에 도착했을 때는 맑았던 날씨와 달리 안개가 몰려와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다. 늘 비박을 꿈꾸어보지만 같이 할 사람이 없어 비박은 여전히 희망 사항으로 남아 있는데 연화봉을 오르다 만난 대피소 겸 산장에서 하룻밤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북 가시광선에 노안으로 시달린 눈이 모처럼 산소공급으로 반짝반짝했던 소백산의 여름이다.


▲  폭염주의보가 시끄럽게 울리지만 산 속에서 폭염 따윈 1도 몰라 -


▲ 안개자욱한 연화봉 하산길을 배경삼아 지금 막 올라오는 것 같은 연출 샷은 애교!   




【9월】① 파주 감악산 출렁다리가 전부는 아니야. 


전국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라는 감악산 출렁다리. 산 정상에 출렁 다리가 있는 산을 몇 군데 가보기도 했는데 산 초입에 출렁다리가 있는 감악산은 그래서 더 인기였다. 출렁다리까지 미어터지던 등산객들은 출렁다리를 건너 점심을 먹고 다들 돌아가는 분위기였고 감악산까지 등산하는 사람은 반의반도 안됐다. 통상 '악'이 들어간 산은 편하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닌데 감악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출렁다리를 지나면 본격적인 등산이 이어지는데 가파르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감악산 정상이 675m니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정말 '악' 소리가 절로 나는 산이었다. 소백산을 갔을 때보다 더 땀을 많이 흘렸을 만큼 감악산은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이미 가져온 물은 다 먹어치웠고 여전히 더운 날씨라 상할까 봐 막걸리는 아예 가지고 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다른 산 정상에서는 보지 못했던 포장마차가 있었고 시원한 잔 막걸리를 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캬~ 땀을 흠뻑 흘린 뒤 마시는 막걸리에 사이다 맛이 난다는 걸 아는 나란 여자-. 그렇게 낮술 한 잔 걸치고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아버지께 전화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새참으로 막걸리를 마시고 나면 '캬-' 하던 그 맛을 이제 알겠어요." 아버지는 그저 허허허 웃으면서 집에 오면 막걸리나 한 사발 하잔다. 몸은 녹초가 됐지만 몸 안의 독소가 땀으로 다 빠지고 나니 더없이 상쾌했던 감악산. 그러나, 아이고야 두 번은 못가겠다야.


▲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감악산 출렁다리. 정상에 올라봐야 참맛을 안다.



▲  정상에서 마시는 막걸리는 사이다맛이 나요-




9월】② 운 좋았던 청와대 관람


9월 중순까지 원고를 끝내려고 무리를 했는데 결국 원고는 내가 예상했던 시간에 끝내지 못했다. 원고 끝날 날을 기다리며 이를 악물고 참고 있던 모든 긴장감은 더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그러다 청와대 관람이 인기라는 뉴스를 보게 됐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 당선돼자마자 청와대 관람을 가봐야겠다 생각을 했지만 6개월 치 예약은 이미 끝났던 상태였기에 기대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접속을 했는데 웬걸 취소된 자리 1석이 남아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운 좋게 청와대 관람 신청이 성사됐다.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계실 청와대 관람을 했었던 적이 있어 청와대에 관한 궁금증이나 관람 동선 등은 이미 알고 있어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그냥 한번 가보고 싶었을 뿐. 그런데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반 관람객은 채 20명이 안 되는데 수학여행으로 청와대 관람을 온 중학생 100여 명이 함께 하게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청와대에 관한 설명도 이전보다 설명도 매우 간단하게 진행됐다. 변하지 않은 건 잘생긴 경호원들의 여전한 친절이었다. 다들 가족단위 혹은 친구단위인데 혼자서 다니고 있어 기념 사진을 못 찍는 것 같아 보였는지 기념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여기가 좋다 저기가 좋다고 한다. 이전과 어떻게 다르냐고 슬쩍 물었더니 청와대 관람이 거의 없었고 어르신들에 한정됐었는데 지금은 보시다시피 전 세대에 걸쳐 관람 인원이 폭증하고 있는 걸 보면 알지 않느냐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되묻는다. 전에는 개방하지 않았던 칠궁까지 관람하고 나서는 길. 사랑채에 들러 한반도 전체 지도가 그려진 탁상시계를 기념으로 샀다. 느긋하게 청와대 근처에서 칼국수 한 그릇 하고 싶었으나 마음이 바빠 도서관으로 바로 출근하자마자 원고 스케줄 조절하고 묵묵히 원고 작업 다시 시작. 막바지 원고의 긴장감은 청와대 방문으로 해결-


▲ 수학여행 단체관람객 때문에 혼이 나갔던 청와대 관람-


▲ 청와대 관람객만 방문을 허락하는 칠궁




【10월】사람을 피해 다녔던 제주 여행


막상 원고 작업이 끝나고 나니 진이 빠져서 꼼짝도 하기 싫었다. 통상 며칠씩 일상을 떠났다 오기도 했었지만 이번만큼은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딜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그랬는데 동생이 갑자기 추석 연휴에 제주를 가고 싶다고 했다. 이미 황금연휴라 비행기고 숙소고 예약이 힘든 상황인데 연휴를 며칠 앞두고 제주라니 싶었다. 거절하려는 순간 '나는 제주를 10년 동안 한 번도 못 가봤다.'고 말하는 동생에게 난 9월에도 일 때문에 제주를 갔다왔고 해마다 두어 번씩 제주를 가니 안 가고 싶다는 말이 도저히 안 나왔다. 설마 이미 매진인 비행기 표가 구해지겠나 싶어 비행기 표를 구하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어딜 움직일 때 일정을 짜고 예약을 하는 건 직장에선 힘들기에 전부 내 몫이었다. 그랬던 동생이 달라졌다. 한동안 정신없이 굴더니 연휴 일주일을 앞두고 비행기표를 구했다는 것이 아닌가. 연휴에 푹 쉬겠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날벼락이었다. 일단 제주를 간다 해도 연휴니 북적대는 사람들로 붐빌 제주를 생각하니 골치가 아팠다. 결국 제주를 가긴 하되 될 수 있는 대로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내 의견을 받아들여 성묘 갔다 온 다음 날 4박 5일 일정으로 제주로 향했다. 사려니숲길을 제외하면 일반 사람들이 안 가는 제주로 돌아다녔고 인기 있는 관광지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을 피하니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던 제주여행이었다. 다만, 9월 말까지 원고 쓰느라 열달 내내 무리했던 몸은 결국 제주여행에서 탈이 났다. 연휴 기간에 제주에서 문이 열린 병원과 약국을 찾아다니느라 애를 먹었고 서울로 돌아와서 거의 일주일을 몸져누워 있어야 했다. 그래도 아프다고 하면서도 잘 돌아다녔던 제주 여행은 갔다 오길 잘 한 것 같다.


▲  산도 가고 바다도 갔는데 어째 바다 사진이 더 많냐


▲  머리 자른 기념으로다 -



【11월절정의 가을, 오대산 선재길


일 년 내내  타이완 관광청 일 때문에 다른 일을 하나도 못 했던 2017년. 10월과 11월에 밀렸던 일을 하느라 이곳저곳 갈 곳이 너무 많았다. 그중 하루는 정말 가보고 싶었던 오대산 선재길을 다녀왔다. 오대산은 여러 번 갔었고 월정사 앞에 있는 천년의 숲길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언제나 거기까지였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이어지는 선재길은 우리나라에서도 아름다운 길로 손에 꼽히는데 가을이면 여행 칼럼에 언제나 소개될 만큼 멋진 길이다. 그 길이 내내 궁금했지만 도통 기회가 닿지 않았다. 간혹 시간이 되면 이미 절정의 가을을 지난 다음이라 늘 아쉬웠다. 올해는 설악산과 한라산을 가보고 싶어 계획을 잡았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안 맞았고 기회는 오대산 선재길에 닿았다. 단풍이 한창인 월정사는 다른 계절에 비해 몇 배는 아름다웠고 스님들이 수행 삼아 걸었던 선재길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좋았다. 처음 출발할 때와 달리 중간 즈음 점심을 먹고 나니 부슬부슬 비가 왔지만 그 덕분에 산티아고를 걷던 생각이 나서 더 좋았던 선재길이었다. 선재길이 가장 붐비는 시기라 엄청난 사람들이 길을 걷고 있었고 선재길에 취해 너무 시간을 지체한 탓에 사람이 많아 버스를 타기 힘들어 상원사를 코앞에 두고 가보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몇 년을 기다린 선재길에서 절정의 가을을 만난 즐거움은 두고두고 잊지 않으리.


▲ 그리 좋다는 가을 풍경의 선재길은 비가 와도 좋았다.




【12월】첫 눈 맞이 하늘공원


하늘공원 억새 축제가 시작되면 동네는 물 만난 고기가 된다. 그래서인지 하늘공원 축제 때는 하늘 공원을 아예 안 간다. 굳이 내 발걸음 보태지 않아도 이미 너무 많은 사람으로 붐비기 때문이다. 공원이 많은 동네인지라 굳이 힘들게 다른 곳으로 단풍 구경을 가지 않아도 동네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늦가을이 돼 억새풀이 잘려나가기 전 하늘공원을 올랐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너무 바빠 하늘공원을 두어 번 밖에 오지 못했다 싶으니 새삼스러웠다. 도서관 가는 길이 유일한 산책이었으니 어디 하늘공원뿐이랴. 그렇게 늦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찾아왔다.


▲ 늦가을의 하늘공원



이상하게 올해는 첫눈하고 번번이 인연이 없었다. 새벽에 눈이 내려 일어나면 눈이 와 있기도 했고, 눈이 오는 날은 서울에 없기도 했기에 기상청 공식 첫 눈을 기록하고 난 뒤에도 눈이 오길 수차례건만 난 첫눈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눈이 오길 학수고대한 눈이 아침부터 내렸다. 흥분 모드로 집을 나섰다가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카메라를 떨어뜨려서 고장- ㅠㅠ. 결국 카메라 대신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담았다. 요즘은 스마트 폰 성능이 워낙 좋아 스냅은 굳이 카메라가 필요 없긴 하다. 매봉산에서 실컷 놀다 보니 어느새 눈이 그쳐 집으로 되돌아갈까 하다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 불광천



가을과 달리 텅 빈 하늘공원은 눈이 오니 운치가 있었다. 잠시 머물려고 했던 하늘공원은 날이 따뜻해 공원 구석구석을 모처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같은 곳인데도 눈이 오면 모든 곳이 새롭고 새로운 세상으로 탈바꿈을 시키는 눈의 매력. 추운 겨울은 너무 싫은데 겨울을 기다리는 건 오직 눈이 있기 때문이다. 눈이 오면 현실적인 문제로 싫긴 하지만 경상도 태생이 갖는 눈에 대한 환상은 나이가 들어가도 여전하다. 27년 동안 눈을 본 기억은 딱 두 번이 전부라고 하면 다들 1,000% 이해 모드.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몇 번의 눈을 더 만날 수 있겠다. 나뭇잎 떨어진 앙상한 가지는 추워 보여도 제 안에서 꽃눈을 키우며 꽃 피울 준비를 하느라 분주할 것이다. 춥지만 이 겨울이 필요한 이유다. 여름동안 입맛도 밥맛도 없어 살이 너무 빠져 걱정을 했는데 겨울 되니 빠졌던 살보다 더 쪄 있으니 이젠 살 찐걸 걱정해야 하는 아이러니. 추위를 버티기 위해 에너지를 소모하는 겨울이 실은 가장 다이어트가 잘 된다지. 늘어나는 건 뱃살뿐이니 따뜻한 곳에 웅크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춥더라도 여미고 나가 몸을 움직여 봐야겠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간다.


▲  눈 온 날 하늘공원


▲  이런건 언제 만들어놨대?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 詩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 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 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패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을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턱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2018년에는...


 귀를 뚫지 못했던 말도 

세월과 함께 가슴으로 스며들고

내가 먹는 한 끼가 좀 더 지혜로워지고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길.


한 해 수고하신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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