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nkook's Diary/Ordinary Daily Life

[2017년 6월 소소일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작은천국 2017. 6. 30. 21:01

[2017년 6월 소소일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하루 12시간이 넘게 컴퓨터 모니터와 자료만 보면서 

한창 원고 쓰다가 문득, '왜 이러고 사나?' 싶었다. 

그것도 잠시 숨 돌릴 틈 없이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원고 작업.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왔고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세상에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참 많다는 것만 확인할 뿐.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는 스스로에게 길을 물으며 

일을 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는 일로 푸는 방법을 기특하게도 스스로 터득 중이고  

6월 한 달이 하루밖에 안 된 것처럼 후다닥 지나가는 사이 

시간은 어느새 일 년의 반이나 지났지만  

아직 반이나 남았으니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아무래도 집에서는 집중력이 길지 않은 편이라 대부분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낸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기에 날짜도, 요일도, 시간의 개념이 사라진 지 꽤 오래전이다. 

그저 눈 뜨면 밥 먹고 도서관으로 출근해 도서관 문 닫는 시간이 돼야 집으로 돌아온다. 


세 권의 책을 집필 할때도 도서관이 쉬는 날에는 무조건 쉬는 게 원칙이었는데 

그런 원칙이 무너진 건 벌써 오래전. 


워낙 긴 시간 작업을 해야 하는 관계로 카페를 좋아하지 않기에 

집 근처에 공공도서관이 많으니 좋다. 


하지만 이 행복도 멀지 않았다. 

지금도 거의 10시 전이면 도서관에 도착하는데 

애들 방학 시작되면 무조건 9시 전에 도서관에 오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자리 전쟁만 생각하면 벌써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어쩌랴. 


거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다 보니 직원들과 출퇴근은 다반사. 

도서관 관장님을 비롯해 직원들에 자원봉사하시는 분까지 알게 됐다. 

그 중 한 여직원은 박카스에 사탕에 음료수에 볼 때마다 소소한 간식거리를 건넨다. 


공공 도서관이 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데 늘 챙겨 주는 간식이 고마워

내 책 한 권을 선물했더니 내가 미안할 정도로 고마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며칠 후 도서관에 내 책을 구매해 놓는 센스까지. 


사실 다른 도서관에는 내 책이 출판되자마자 도서관 서가대에 내 책이 꽂혀 있는게 엄청 신기했었다. 

첫 책을 내고 광화문 교보문고 매대에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보고 완전히 흥분했던 것이 벌써 몇 년 전.


지금 연재하고 있는 <타이완관광청 기고글>은 총 18편으로 구성될 예정인데 

대략 A4지 70매 정도니 책 한 권의 분량이다. 

원고 하나에 들어가는 스폿들은 모두 하나의 아이템으로 구성해도 될 만큼

많은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데 지금 원고에는 정말 기본적인 내용만 적는데도 상당한 분량이다. 


이 내용이 그대로 <타이완 관광청> 홈페이지에 영구 게재될 예정이다. 

지금은 이제 9편의 원고만 끝난 상황이라 아직은 그럴 여유가 없지만 

그대로만 남겨두기에는 취재 내용과 에피소드들이 많아 어떤 식으로든 다시 정리해볼 생각이다. 


지금 쓰고 있는 원고만으로도 빠듯한데 타이완 수정 6쇄 작업이 있어서 더 정신이 없었다. 

올해 초 타이완에 공항철도가 생기면서 버스정류장 등 정보들이 많이 바뀌었고

새로운 정보를 추가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개정판과 달리 수정판은 페이지나 디자인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므로  

기존에 있는 정보 중 상당 부분 들어내고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넣느라 

20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써야 했다. 


이 책의 콘셉트 상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쉽다면 맛집인데 백과사전식의 정보책이 아니니 

독자들이 그 부분을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 

그래도 다들 이 책 들고 편하게 여행 다녀오셨다 좋은 말씀 해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원고도 쓰지만 꾸준히 여행 관련 강의도 하고 있다.

예전에는 가끔 사진 강의도 했었다. 


마냥 일로만 생각했던 강의가 

예전과 달리 지금은 마냥 일만은 아니다. 

일하면서도 일에서 탈출하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여행' 이라는 주제를 두고 완전히 성격이 다른 두 개의 강의는 

하나는 40대 후반의 은퇴자나 은퇴를 앞둔 사람들을 대상으로 

또 하나는 타이완 여행을 앞 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로 성격이 전혀 다른 강의다. 


똑같은 것을 두고 외향성과 내향성의 차이라고나 할까. 


나의 여행이 아무리 좋았다고 한들 내가 그 여행지를 많이 안다고 한들 

내가 본 전부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한 도시에서 일상을 사는 사람들과  그곳에서 아무리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들

 여행자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저 조금 더 많이, 오래, 깊이 있게 머물렀던 시간에 대한 경험을 공유할 뿐. 


 여행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는 와중에 이지아 작가님으로부터 걸려온 다급한 전화 한 통. 

매주 목요일에 생방송으로 약 8분간 여행코너 소개가 있는데 원래 맡았던 

작가분이 2주간 여행을 간다며 대타로 좀 맡아 달라고 했다. 


상황이 상황이었지만 쉬어가는 타임으로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생방송에 임했다. 

아주 가끔 라디오에 출연했던 것들은 모두 녹음이었는데 그것과 달리 생방송이라니 엄청 떨렸다. 

내 앞 코너에 교통상황 진행하는 리포터의 숨 가쁜 정보 전달에 긴장감은 배로 뛰었지만

막상 내 차례가 되니 담담하게 시간도 나름은 잘 맞추고 눈 깜짝할 사이 방송 끝!


치명적인 사투리의 매력으로 인해 라디오 DJ를 꿈만 꾼 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늘 라디오를 끼고 사는 나. 


늘 가능한 꿈만 꾸는 것은 아니기에 라디오 DJ도 한 번쯤...

하하. 김칫국이다. 


너무 갑갑하거나 원고가 안 써 질때는 쉬어가기 위해 책을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거나 좋아하는 장르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저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 스타일이라 

무라카미 하루키가 눈에 들어 왔다. 


여건 상 한 번에 다 읽을 수 없었기에 대여섯 번에 걸쳐 나눠 읽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책을 덮어 놓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책을 펼쳐도 희안하게도 앞의 내용을  복기하지 않아도 됐다.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처리를 읽어 내야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몇 일씩 나눠서 읽는 책인데도 모든 것은 선명했다. 


무엇보다 소설의 끝이 해피엔딩이서 좋았다. 



이쯤 되면 건강관리가 문제다. 


지난 3월과 5월을 타이완에서 보냈고 취재 내내 카메라, 삼각대, 각종 필요한 짐을 메고 

 매일 15km 이상을 걸어야 했다. 산티아고를 다시 걷는 듯한 착각을 했을 정도로 고된 일정이었다. 

그런 강행군을 잘 버틸 수 있었던 건 산티아고에서 보낸 시간 덕분인 건 두말하면 잔소리. 

몸이 기억하는 인체의 신비는 그저 놀라울 따름.


그래도 피로가 누적되니 방전된 체력이 회복도 잘 안 되고 잘 안 걸리던 감기몸살도 자주 걸리고 해서   

 5월 취재 끝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해독프로그램에 들어갔다. 


약 2주간의 해독 프로그램은 1일 1식에 체질에 맞는 음식, 물 대신 한약을 먹는 것으로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데도 피가 맑아지고 살이 빠지는 효과가 있다. 


대부분은 다이어트를 위해서 해독(디톡스)을 하지만 작년에 디톡스를 해보니 

그간 병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증상들이 말끔히 사라지는 효과를 봤었다. 


이번에는 몸무게를 줄일 것이 아니라서 식사량도 그대로 유지했음에도 

몸무게가 꽤 줄었는데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인지 가벼워진 느낌을 전혀 못느끼고 있다. 


하지만 몸은 여행 가기 전 원래 컨디션으로 완전 회복을 했고 

온 종일 집중하면 다음 날은 뻗어 있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12시간 강행군에도 

숙면을 취하고 나면 큰 무리는 없다. 


디톡스를 하면 늘 느끼는 것은 단지 절제하는 것은 음식뿐인데 

생활도, 마음도 모두 절제하는 습관이 절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과잉의 시대. 


삶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올해는 해외로 나가는 일이 잦다 보니 작물을 심는 시기를 모두 놓쳤다. 

작년에 씨를 뿌려서 상추를 키워 먹었는데 마침 꽃집에서 상추 모종을 팔고 있어서 심었다. 

심을 때까지는 좋았는데 해만 보면 시들시들하고 해를 보지 않으면 잎이 힘이없고 

농부인 아버지에게 아무리 코치를 받아도 영 대책이 없다. 


아버지 얘기로는 상추를 좀 더 일찍 심었어야 했는데 

날이 갑자기 더워지니 어린 모종이 뜨거운 해를 견디지 못한 것이라고. 


상추는 한 번 뜯어 먹었지만 계속 먹기는 힘들 것 같다. 


상추와 함께 씨를 뿌린 부추도 싹이 나지 않았다. ㅠㅠㅠ

아버지 말씀으로는 날이 더우니 부추는 가을에나 다시 씨를 뿌려야 한다고. 


작년에는 4월부터 토마토와 상추를 키워서 먹었기에 

올해는 좀 더 많은 작물을 심어볼 생각이었는데 내 욕심이었나 보다. 



화초들이 너무 잘 자라서 4월에 전체 분갈이를 다시 했다. 

다른 화초들은 괜찮은데 세 개의 화분으로 나눈 산세베리아가 물 조절을 잘 못 해 뿌리가 썩는 등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다행히 날씨가 더워지는 여름으로 접어드니 화분 세 개마다 전부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작년까지 모든 순에서 산세베리아 꽃이 피었기에 올해는 산세베리아에 꽃이 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해 아침마다 들여보고 있다. 


3월 타이완에 있을 때 꽃이 피기 시작한 난도, 나팔꽃을 닮은 꽃도 3개월이 넘도록 여전히 꽃을 보여주고 있고 

작년 겨울 우체국에서 얻어온 손톱만 한 선인장도 잘 자라서 두 번째 순이 올라왔다. 


웬만큼 바쁜 것들은 정리가 되어 가고 있으니 

7월부터는 나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별로 한 것 없이 시간만 빨리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 안에서도 꽤 많은 일이 있었다. 


네모 같은 시간 안에 또 네모 같은 시간을 사는 요즘.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그 누구도 말을 해주지는 않지만 그러면 어떠랴.


 감사하고 고마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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