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kking/산티아고 가는 길

[JTBC 나의 외사친] 심상정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다.

작은천국 2017. 11. 29. 17:20

[나의 외사친] 심상정,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다.


최근 JTBC 나의 외사친에서

심상정 의원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다.'가 방송 중이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랑스와 스페인 접경지대의 길.

프랑스 남부의 국경 마을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지는 800km의 여정.

배낭 하나만 짊어진 채 삶이 던진 질문과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길.

그래서 순례길을 걷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인생의 버킷리스트.

- JTBC 나의 외사친, 심상정 의원 편 -




우와 - 대박!!!!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심상정 의원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알베르게에서

자기 나이와 같은 모니카 수녀와 일주일을 보내게 된 것.


예고만으로도 심장이 울렁거렸고 본방송일까지

일주일이 참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우리의 심블리~

산티아고 가는 길에 등장한 것만으로 블링블링~


내가 이 길을 걸을 때 영화 'The Way'가 촬영 중이었는데

아쉽게도 나와는 하루 혹은 이틀 차이로

이미 촬영을 마쳤거나 촬영이 예고됐거나 한 상황이어서

한 번도 영화팀을 만난 적은 없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순례 중에 영화 주인공이었던 마틴 쉰을 만났다는 둥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둥, 심지어는 촬영현장에 엑스트라로 출연했다는 둥

화젯거리가 됐고 우리에겐 또 하나의 추억으로 영원히 남았다.


아마, 심블리가 머물렀던 시기에 심블리를 만났던 사람들 역시

나처럼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게 될 것이다. 

▲ JTBC 나의 외사친 캡쳐 



이제 너무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 없는 산티아고 순례길.

2009년 내가 걸었을 때도 한국 사람들이 50% 이상이었는데

요즘은 알베르게 전체가 한국인으로 가득할 정도라고 하니

'산티아고 가는 길' 순례는 이젠 유행이 된 듯하다.  

▲ JTBC 나의 외사친 캡쳐 



산티아고를 다녀왔다고 하면 정말 대단하다고 나에게 찬사를 보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싶기도 했다.


그때는 산티아고를 가야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기에

 그 길이 얼마나 멀고 긴 길인지

걸어보지 않고 지도만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그 길이 지구 끝까지 간다고 해도 나는 꼭 그 길을 걸어야 했을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나에겐 800km라는 거리는 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 산티아고 가는 길 이동경로 (구글지도) 



800km라는 숫자로는 안 와닿지만 대략 부산에서 신의주까지라고 하면

엄청나게 먼길을 걸었다는 게 엄청난 일이구나 싶긴 했다.  


그렇다고 해도 피부로 그리 와 닿지는 않았다.

분명히 내 두 발로 걸었던 길인데도 말이다. 


▲ 800km는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걷는 거리 



그러다 작년에 서울 둘레길을 걸으며 그때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 실감을 했다.

 물 한 병, 간식 약간, 수건 등 짐을 최소화한 배낭을 메고 두 달 반 만에 서울 둘레길을 완주했다.

고작 일주일에 한 번, 길면 20여 km, 짧으면 15km 정도인데도

길을 걷는 다는 건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14~15kg의 배낭을 메고 하루도 쉬지 않고 약 35일을 걸어야 했던 800km의 무게감.

비로소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인지 뒤늦게 새삼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리곤, 다시금 기억을 떠올렸다.

그 길을 걸을 때 너무 힘들어 두 번은 안 걷고 싶다고

매일 아침 몸서리 치던 순간을 말이다.


▲ 서울둘레길 6코스, 다이어트엔 걷기가 최고다! 



그런 나 대신 내 배낭은 지금 다섯 번째 순례길 중이다. 

2009년에 순례길에서 만나 순례길을 함께 걸었던 보성 언니가

지난달 산티아고로 다시 떠났고 내 배낭도 함께 순례길에 올랐다.

▲ 다섯 번째 산티아고를 걷고 있는 내 배낭(@박보성)



그동안 서너 차례 다른 사람에게 배낭을 빌려줄 때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이번에 언니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시 걷는다고 했을 때는

갑자기 길에 서고 싶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언니는 매일 우리의 추억이 가득한 알베르게, 길, 풍경 사진을 보내오기 시작했고

때마침 심블리의 산티아고 가는 길  방송 덕분에 본의 아니게 요즘 다시 그때 생각을 더듬고 있다.  


▲ JTBC 나의 외사친 캡쳐 


▲ 초록색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계절에 걸었던 나의 산티아고 가는 길



심블리가 머물게 되는 까리온은 순례자들에게는 결전의 도시 같은 곳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생장~부르고스, 부르고스~레온, 레온~산티아고 이렇게 크게 세 구간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는 메세타라고 해서 순례자들이 가장 힘들게 느끼는 구간이다.


 카리온은 대략 걷기 시작한지 약 15일 전후면 도착하는 도시로

대도시인 부르고스에서 대략 이틀 정도 걸어야 도착하는 곳이다.


약 200km에 달하는 메세타는 순례자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시험에 들게 할 정도로

악명이 높은 길로 대부분 순례자들은 이 구간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바닥을 보게 된다.


그런 메세타 구간의 초입에 위치한 카리온은 산티아고 가는 길에 있는 모든 마을들이 그렇긴 하지만

특히 순례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마을 중 한 곳이다.


 카리온에서부터 다음 마을인 칼사디리아 데 라 쿠에자(Calzadila de la Cueza)까지

약 18km 동안 마을이 하나도 없는 구간이니 누구라도 예외없이 시작하면 무조건 18km를 걸어 가야한다.

그러니 대부분 순례자들은 카리온에서 휴식을 취하며

하루치 음식과 간식을 준비해야 하고 마음을 다잡는 곳이기도 하다.


▲ JTBC 나의 외사친 캡쳐 



 무엇보다 카리온 정도에 이르면 자신의 마음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생장에서 시작해 부르고스까지 대략 이 주일의 시간이 걸리는데 

부르고스를 지나면서부터는 육체적인 고통이 점점 더해지기 시작한다.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순례길에 올랐던 사람들조차 몸이 힘드니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든 길을 걷는가?'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고 그런 시간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의 심블리는 그 길을 걷지 않고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이 길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 JTBC 나의 외사친 캡쳐 



나 역시 심블리가 머물고 있는 산타 마리아 알베르게에서 묵었다.

▲ JTBC 나의 외사친 캡쳐 



내가 머물렀을 때는 환영식도 없었고 음악 시간도 없었다.

쉬지 않고 사진을 찍었던 초반과 달리 부르고스를 지나면서부터는

꼭 찍어야 하는 것 아니면 사진을 찍지 않기도 했거니와

 큰 특징도 에피소드도 없는 알베르게는 아예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내 경우에는 방송과 달리 산타마리아 알베르게는

특별할 것도, 특별한 일도 없었기에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알베르게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 JTBC 나의 외사친 캡쳐 



심블리가 스쳐 보냈던 이 카페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그날 적었던 일기장에는 산티아고 순례길 중 제일 맛없는 메뉴델디아(순례자 정식)를 먹었다고 적고 있다.


▲ JTBC 나의 외사친 캡쳐 



방송을 보는 내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그중 하나는 길을 걷고 있을 때도 생각했지만

'정말 내가 여유가 없었다'는 걸 새삼스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 카리온에 도착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큰 마을인 카리온이었지만

심블리처럼 동네를 돌아볼 생각은 1도 못 했다. 


특히 그 날 오전에 걷다가 히피를 만났는데 사진을 찍는 우릴 보더니 비난했다.

'I am peregrano you are tourist(나는 순례자지만 너희는 관광객이다)'라고.


그날 산티아고 기억   <지치고 힘들어도 가야만 한다.> http://blog.daum.net/chnagk/11263581


산티아고 순례길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 (산티아고 가는 길 다큐멘터리)  http://blog.daum.net/chnagk/11264400



길을 걸으면 걸을 수록  '나는 지금 여기서 왜 이렇게 힘든 고행길을 자처해서 걷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들리기 시작했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이 걷는 사람들도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들 비슷한 고민이었지 싶다. 


 그 순간에 만났던 히피로 인해 직면해야 할 순간을 회피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고

그건 나 자신을 온전히 마주할 용기가 없음을 알게 됐다. 

 

이후 다소 느슨해진 마음이 팽팽히 잡아 당겨졌고

오로지  '걷기', '나 자신' 외에는 관심을 둘 수가 없었다. 


이날 히피를 만나고 난 뒤 순례길을 잠시 벗어나

빌바오 구겐하임(BILBAO GUGGENHEIM)  미술관을 갔다온 것처럼

다시 순례길을 잠시 벗어나 오비에도(Oviedo)를 가려던 했던 계획은 완전히 접었다.


비로소 완벽한 순례자가 된 시점이라고 하겠다. 

그러니 그 길에서 여유 따위가 있을리 만무했다.


▲ 순레길에서 만난 히피. 



그랬던 마을 카리온.

나에겐 고작 사진 두 어장이 전부인 카리온이다.


▲ 나의 카리온



드론이 구석구석 훓어주니 내가 저 길을 따라 저렇게 걸었구나 싶어

카리온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 JTBC 나의 외사친 캡쳐 



가끔 알베르게에서는 카리온에서처럼 나눔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는데

내 경우에는 두어 번이 있었다. 한 번은 오리손에서 또 한 번은 에우나테다.


두 번 다 순례길의 완전 초반이었기에 낯을 가리거나 하는 성격은 아님에도

자기소개와 길을 걷는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길을 걷는 분명한 목적이 있긴 하지만 그 힘든 일을 자처한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마주하기도 힘든 시간인데

그 상처를 누군가에게 내보인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순례길을 선택한 건, 그냥 여행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는 시간과 마주하고 있다고나 할까.



▲ JTBC 나의 외사친 캡쳐 



왜 이 길을 걷고 있느냐는 질문에

추상적인 답변 혹은 횡성수설하는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어떤 거창한 말의 성찬이 아니어도

목소리에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

그 떨림에 전해오는 큰 울림.  


순례길 초반에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전혀 느끼지 못했던 떨림이 있었다.

카리온에 이르기까지 약 15여 일의 시간이 바꾸어 놓은 무엇.


그들은 서로 다른 이유를 말하고 있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순례길은 그런 길이다. 


인생의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그렇게 조금씩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서로의 상처를 온 마음으로 보듬는다. 


 순례길에서 지친 마음과 몸에 대한 위로에

언어의 온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음악으로, 기도로, 축복으로,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선물받고자 했던 간절함까지 더해져

순례길에서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방식은 정말 다양했다.



▲ JTBC 나의 외사친 캡쳐 



서로 다른 이유로 길 위에 서지만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지고 걸어가야 하는 산티아고 가는 길.

그 길은 그래서 자신의 인생길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 JTBC 나의 외사친 캡쳐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고 난 후 

많은 이들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말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했고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산티아고를 다시 걸으라면 솔직히 

너무 힘들어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길을 걷는 내내 정말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두 번은 걷고 싶지 않다고 노래를 불렀더랬다.


이번이 두 번째인 보성 언니도 첫날 걷고 난 뒤 나에게

"야! 두 번 올 곳은 아니다."며 다다다다. 


그럼요~ 


▲ 희미한 산티아고 대성당의 풍경은 내가 정말 만나고 싶었던 풍경이다. 

이 풍경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던 걸 기억하고 이번 순례길에 일부러 찍어 보내준 사진(@박보성)



10년이 되어감에도 산티아고를 걸었던 10월과 11월이면

어김없이 페이스북엔 산티아고에서 만났던 이들이 추억을 공유한다. 

그들의 시간에도, 내 시간에도 여전히 우린 함께 하고 있다.


내가 그렇듯, 그들도 역시

 그 길에서 다시 만나는 즐거운 상상을 이야기하곤 한다.  


▲ 언젠가 순례길에서 이들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힘들다고 하면서도 왠지 한 번은 더 가게 될 것 같은 묘한 느낌. 

다시 산티아고를 걸어야 한다면 죽기 살기로 길을 걸어야 하는 절박함이 아닌

할랑할랑 놀멍 쉬멍 걷는 가벼운 여행자의 마음으로 그 길에 다시 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열심히 살아야 겠다.

▲  족히 무게 13kg에 달하던 나의 배낭.


아직은 남들이 걷는 순례길로 만족할란다. 



심블리 편이 왜 가장 늦게 편성되는지 궁금했었는데

12월 내내 편성되어 재미 + 감동까지 다 잡게 될 '나의 외사친'이다.


다소 쳐지는 기분이 드는 12월.

덕분에 산티아고를 걷던 기억으로

충만한 12월을 보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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