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kking/산티아고 가는 길

[산티아고/까미노] 산티아고 그 특별함으로 만나는 인연

작은천국 2012. 12. 3. 07:30

산티아고, 그 특별함으로 만나는 인연

산티아고 미국인 친구 조디(Jody) 한국오다.

 

 

 

산티아고, 까미노 데 산티아고, 까미노...

내 인생 최고의 여행지이자 죽기전에 언젠가 한 번은 더 가게 될 곳.

 

우리 모두는 2009년 10월 7일부터 약 한달 간 같은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길은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스페인 도보 여행지 '까미노 데 산티아고' 는

언어, 국적, 성별, 나이가 다르고 공통점이라고 어느 것 하나 찾을 수 없는

그래서  17살과 70살이 같은 정서로 언어의 경계없이

인간과 인간이, 그리고 그 어느 순간보다 자신을 완벽하게 만날 수 있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곳이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 혹은 한 때를 꼽으라고 하면 아무런 망설임없이

'산티아고'라고 말할 수 있는 곳,

 

마음속에 서로 다른 희망을 가지고 걸었던 산티아고 가는 길,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들었던 시간.

힘든 시간을 공유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동지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때의 추억이라 말하지만

결코 다른 여행지의 사람들과 같을 수 없는

산티아고의 특별함으로 맺어진 인연,

 

까미노라는 시간을 같이 보낸 추억은 특별했고

그 특별함이 만들어주는 추억은 영원하다.

 

 

부산에서 평양까지의 거리에 해당하는 산티아고 가는 길 800km,

배낭여행 한 번 해본적없고 트렁크 여행만 했던 나.

 

무려 한달간의 도보여행의 짐은 트렁크 여행이 그렇듯이

조금이라도 혹은 한번이라도 쓰겠다 싶은 것은 다 들고 왔고

도보여행에서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깨닫는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그걸 깨닫고도 무얼버리고 무얼 남겨야 하는지 답이 없어 가진 짐을 있는대로 침대에 짐을 널어놓고 나니

6.25 피난민 수준이라 나도 경악했지만 이걸 본 조디는 더 기겁을 하며 박장대소와 함께 나를 찍었고

그녀를 만났던 첫 날 나는 그녀의 사진을 찍었었다

 

그리고 우리는 나이가 똑 같다는 걸 알게되었고 산티아고 첫 날 우리는 만났고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로그로뇨의 알베르게에서 누군가의생일날 같이 와인파티를 하다가

조디가 느닷없이 손을 잡고 춤을 주자고 해서 관광버스 춤과 함께

국적도 모르는 춤을 둘이서 소녀가 된 것 마냥 깔깔 거리며 신나는 밤을 보내기도 했었다.

 

산티아고에서 만났던 인연과 헤어지면서 서로 고단함시간을 함께 보낸 동지애는 마음만 영원할 뿐.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이란 생각은 아예 접었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고  간간히 페이스 북을 통해 그녀의 생활을 보긴 했지만

그녀가 태국여행을 가면서 24시간 스탑오버로 한국을 들러가겠다고 했을때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막상 그녀가 온다는 금요일이되니 이상하게  전날부터 잠이 안올만큼 너무 설레였다.

그냥... 설레였다.

 

그리고 3년만에 다시 만난 그녀... 그녀의 유쾌함은 여전했다.

 

거지꼴로 산티아고에서 다녔던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지라

서로를 쳐다보며 뷰디풀을 외치며 물리적 시간의 거리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비행기 시간이 한 시간 연착되는 바람에 배꼽시계는 사정없이 울어대고

저녁 9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 그녀의 숙소와 가까운 명동에서 저녁을 먹는 것으로 만남을 시작했다.

 

 

싸이의 미국활동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조디로부터 싸이가 얼마나 대단한 인기를

미국에서 누리고 있는지 그녀를 통해 듣고 있자니 무척이나 신기했다.

유치원 꼬마들까지 말춤을 추고 온통 싸이 음악이 흘러나온다고 했다.

 

우리가 싸이의 소식을 신기해 하는 동안

한국도 처음, 한국 음식도 처음이라는 그녀는 한국에 대한 모든 것이 마냥 신기한 듯했다.

 

젓가락 문화도 그렇고, 모두가 함께 먹는 문화도 그렇고,

젓가락 하나로 모든 음식을 다 먹는 문화도 그렇고,

무엇보다 다양한 한국음식의 다양한 조리법에 가장 많이 놀란다.

 

젓가락질이 서툰 조디에게 결국 집게가 젓가락 역할을 대신해서^^

 

보성언니가 대학교때부터 단골로 다녔다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가무'의 클래식한 분위기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데 조디도 감탄사 연발이었다.  

 

비엔나 커피가 맛있는 집이라 비엔나 커피를 주문하고 케익이 함께 나오니

조디는 사진찍기 바쁘다.

 

조디가 선물로 가져온 시애틀의 냉장고 마그네틱

ㅋㅋ 내가 냉장고 마그네틱 모으는 줄 어찌알고 ^^

 

늘 안개가 낀다는 시애틀을 가 본 적은 없지만 시애틀에 살고 있는 조디 덕분에

시애틀이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산티아고를 다녀오고 첫 번째 전시에서 산티아고 사진으로 기념엽서를 만들었고

산티아고 친구들에게 전부 선물로 보냈었다.

조디도 이 엽서를 받았고 나에게 답장을 썼다고 하는데 결국 난 그 엽서는 받지 못했다.

 

조디는 이 엽서가 너무 마음에 들어 자신의 식탁 유리밑에 좍 깔아놓고 매일 보고 있다고 했다.

그나저나 왜 외국친구들이 우리집으로 보낸 우편물을 다 분실되는 걸까?

독일에서 데이비트 엄마가 보낸 선물도 난 받지 못했고

영국에서 레일리안이 보낸 편지도 받지 못했고

조디가 보낸 엽서도 받지 못했다. ㅠㅠ

 

산티아고 걷기가 끝나는 시기가 달랐고 빠듯한 일정으로 인해 산티아고에 오래 머물지 못했던 우리와 달리

그녀는  산티아고에서 다른 일행들(우리가 아는 사람이다) 과 아파트를 렌트해서 일주일이나 머물렀다고 했다.

오~~ 그렇게 멋진 일이.. 역시 다음에 갈때는 다른 일정없이 오로지 산티아고에 올인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웃긴건 아파트 렌트를 어떻게 했냐고 했더니 찌라시를 받았단다..

세상에 그렇게 기막힌 방법이.. 우린 왜 못 받을까라며 뒤늦은 아쉬움을 토했다..ㅎㅎ

 

그리고 피니스테레에도 히피 알베르게가 있다는 사실,,, 혹했다.

히피가 운영한다는 산볼 알베르게 못 간게 두고두고 후회로 남았는데

피니스테레에도 히피 알베르게가 있다고 하니 꼭 찾아봐야겠다.

 

우리의 산티아고 이야기는 쉴새없이 이어지면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산티아고 영화 The Way.

우리가 산티아고를 걷고 있을 때 촬영을 했던 지라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 영화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지 않았다.

조디 왈,,,영화가 너무 재미없었다며...

 

ㅎㅎ 나도 다른 사람에게 이 영화 메일로 받아서 본 지라 그 맘이 십분 이해되고 남았다.

 

그래서 나의 스마트폰에 담겨 있는 mbc 다큐 ' 세계를 걷는다 산티아고 가는 길 ' 을 잠시 보여줬다.

 

이 다큐에 대해 대략의 설명을 곁들이니 관심지수 200%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단 메일로 보내준다고는 했는데 워낙 파일이 커서 인터넷 속도가 느린 미국에서 다운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라

USB에 담아주던지 다른 방법을 연구해봐야 할 듯하다.

 

 

24시간의 스탑오버지만 입. 출국을 감안하면 한국에서 사용가능한 시간은 몇 시간 되지 않는 상황이니

12시간 비행, 시차로 인해 피곤한 그녀와 어딜 간다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다.

오전동안 충분히 쉬고 점심을 같이 먹는 걸로 하고 점심 나절 인사동에서 다시 만났다.

 

인사동 풍경은 온통 그녀에게 신기함의 투성이었다.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 간단히 인사동을 걸어 쌈지길로 들어갔다.

 

쌈지길에서 즉석 사진을 찍어 이메일을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

즉석에서 사진을 찍고 그녀의 남편에게 사진을 전송하고 있는 중이다.

 

자기보다 두 여자에게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유쾌한 농담과 함께 ^^

 

오랫만에 간 쌈지길 옥상에 이런 조형물에서 장난스러움 가득한 미소로 해맑게^^

 

산티아고 배낭을 그대로 메고 산티아고 뺏지도 달고 온 그녀^^

조디~~~ 페리그레노란 말에 다들 박장대소 ~~

 

인사동 여자만에서 점심 만찬,

이 엄청난 밥상앞에 그녀는 다시 눈이 휘둥그레지며 사진으로 남겼다.

 

완전 한국식이라 입에 맞을지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시애틀의 지리적 특성상 해산물을 좋아하는 그녀는

조기도, 굴젖도, 매생이전도 무엇보다 고등어 김치찜이 정말 맛있다며

남은 음식들도 하나, 하나 정성들여 맛을 보면서 감탄을 했다.

 

그러나 역시 젓가락 하나로 모든 음식을 먿는다는 것이 낯설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했다.

 

스페인에서 우리가 먹었던 여러 음식들과 비교하기도 하고

고등어 김치찜에 들어가는 무우와 총각김치의 무우가 재료가 같다는 설명에 놀라기도 했다.

 

총각김치의 이름을 떠올리고 총각 무우가 더 젊다는 유쾌한 농담과 더불어

식사시간 내내 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이런날 절대 빠져서 안되는 막걸리의 달콤함에 반하기도 하고

 

식사 후 차를 마시기 위해 인사동 골목을 걸으며 그녀는 연신 눈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사진 찍고 구경하다간 비행기를 놓칠 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을 해야할 만큼

그녀 눈에 비친 한국은 신기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페인에서 먹었던 카페 콘 레체와 가장 맛이 비슷한 카푸치노가 있는 인사동 카페로 자리를 이동했다.

역시 카푸치노 한 모금 마시자 마자 바로 오~~ 카페 콘 레체라며...

 

걷다가 피곤할 때 마시던 카페 콘 레체... 는 우리만 그리운 것이 아니었다.

행크 할아버지도 조디도 그리고 우리도 ...

스페인 산티아고가 그리운 건 카페 콘 레체도 한 몫하고 있는 듯하다.

 

조디가 한국에 온 다고 했을 때 오리손에서 찍었던 사진을 현상을 해 놓았기에

사진과 함께 '공원에 말을 걸다' 사진집

 

그리고 산티아고 두 번째 전시회때 리플렛과 함께 그때 만들었던 산티아고 기념뺏지를 선물했다.

 

같은 시기에 산티아고를 걸었기에 그녀들과 공유하고 있는 추억은이 어찌 나만의 특별한 추억일까?

 

그녀는 내가 그 시기에 걸었던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에우나테 알베르게에 머물렀다는 것과

혼자 빌바오를 갔다왔다는 것부터 사소한 것까지 나에 대한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아, 놀라웠다. 3년전의 기억은 이제 나도 가물가물한데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하다보니

 3년의 물리적 시간은 3시간 전의 일인것 마냥 너무도 생생했다.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는

3년의 시간이 지났다는 건 아무 문제가 아닐뿐더러 마치 어제 일처럼 모든 것이 너무 선명했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헤어진다는 것이 아쉬울 뿐..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

 

마지막으로 다 같이 기념사진을 남기고 그녀의 짧은 한국방문은 마무리 되었다.

 

그녀가 탄 공항철도가 무심히 떠났고 꾹 참고 있던 슬픔이 뒤늦게 밀려왔다.

헤어짐이 익숙해지지 않는 건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제가 되면 모든 헤어짐이 담담하고 쿨해질까?

 

조디와는 너무 초반에 만났기때문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틈이 별로 없었다.

 혼자만의 산더미 같은 인생무게를 짊어지고 있느라 걷기에도 바빳고

낯선 환경에 적응이 되기 전이라 무엇을 느끼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만난 그녀의 첫 질문은 '산티아고에서 느낀게 무엇이었나'

'산티아고가 끝나고 난 다음 인생의 변화가 생겼냐?'

'다시 산티아고를 갈 것인가?' 였다.

 

어쩜 이리 질문이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우리가 이야기 하던 것과 똑같을까?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느낀 정신적인 변화와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 놓았고 우리는 하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우리만치 그 길은 어김없이 누구에게나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으로 한 곳을 향하게 만들고 있었다.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단지 같은 방향으로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

시. 공간을 초월하고 나이, 언어, 국적을 초월해

같은 생각으로 자신에게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용기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산티아고 가는 길,

 

그 특별함을 함께 한 인연이 어찌 일반적인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같을 것인가?

 

굳이 한국을 경유할 이유가 전혀 없는 여행에서 한국을 찾은 조디,

시애틀 방문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겠다는 그녀..

 

산티아고 그 특별함으로 만나는 인연으로 인해 사람사는 정을 새삼스레 느껴본다.

 

같은 시기에 그 길을 걸었던 수 많은 사람들이 전부 인연일 수는 없다.

옷깃이 한 번 스치고, 두 번 스치는 것이 반복되어 만났던 인연들.

그들은 어떤식으로든 내가 그 시점에 만날 인연이었고

그들로 인해, 그들을 통해 '나'란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언젠가 이들을 다시 산티아고에서 만날 수 있기를 헛된 희망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