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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관 전시] 리처드 해밀턴 : 연속적 강박

작은천국 2017. 11. 13. 18:06

[현대미술관 전시] 리처드 해밀턴 : 연속적 강박



한국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리처드 해밀턴의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2018년 1월 21일(일)까지 열리고 있다.


지난 2011년에 타계한 리처드 해밀턴은

우리에겐 앤디 워홀로 유명한 <팝아트>라는 장르를 처음 시도한 사람이지만

국내에서는 그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리처드 해밀턴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곧 떠날 가을이 아름답게 머물고 있는 국립 현대미술관 과천관으로 떠나 보자.



+ 리처드 해밀턴 : 연속적 강박 전시 안내 전시시간 2017.11.03~2018.1.21 전시장소 현대미술관 과천관 제1전시실 관람시간 화~금, 일 10:00~17:00 토 10:00~21:00(야간 개장 17:00~21:00 기획전시 무료관람)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10:00~21:00 휴무일 매주 월요일 입장료 2,000원 대학생, 만 24세이하와 만 65세 이상은 무료 가는 방법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에서 셔틀버스(무료) 이용



오랜만에 현대미술관 과천관 나들이.

현대미술관이 아름다운 계절, 현대미술관 과천관에는 가을이 곱게 내려 앉았다.

그렇게 미술관을 많이 다녔어도 미술관 단풍이 맞춤맞게 드는 시기와는

유독 인연이 없었는데 <리처드 해밀턴> 전시 더분에 아름다운 가을을 누린다.





한국에 동시대 미술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번에 선택한 작가는 리처드 해밀턴이다.


이번 전시는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라고 해도 좋을 리처드 해밀턴이

아시아에서 처음 갖는 개인전으로 2017~18년 한영 상호교류의 를 맞이해 기획된 아주 특별한 전시다.


리처드 해밀턴 전시 개막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을 비롯해

객원 큐레이터인 제임스 링우드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는데 전시와 관련해 인삿말이 있었다.


그중 영국문화원장은 젊은 시절 브라질 상파울로 비엔날레 전시에서

리처드 해밀턴을 처음으로 만났던 시절을 회상하며 여러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신진 작가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거장이 되기까지 작가와 함께한 전시 작업에 대한 경험은

그가 얼마나 작가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서, 표정에서 묻어났다.

많은 작품을 한 장소에서 보기 힘든 기회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인삿말을 마무리했다.


동시대를 함께 보낸 작가는 이미 고인이 됐지만

그와 함께 작가의 작업에 참여했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작품들을

머나먼 타국에서 만나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했다.






국립 현대미술관 과천관 갤러리1에서 볼수 있는 <리처드 해밀턴> 전시

리처드 해밀턴은 우리에게 앤디 워홀로 친숙해진 

현대 예술의 '팝아트' 장르를 개척한 예술가로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이다.

2011년 타계이후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개최되는 리처드 해밀턴의 개인전이라 기대가 컸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니 총망라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란 짐작과 달리

 '연속적 강박'이란 붙인 전시 제목은 살짝 의아스럽기도 했었다.


리처드 해밀턴하면 바로 떠오르는 꼴라주 작품도 있기에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될지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1전시실을 들어서는 순간

 전시 제목을 왜 연속적 강박으로 지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회고전 성격의 개인전을

이런 방식으로 보여줄 수 도 있구나 싶어 허를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1960년 대  '팝아트'라는  완전히 새로운 현대 미술사조가 자리잡기까지

그가 시도한 숱한 예술적 고민들이 이 전시에 총망라된 느낌은 저릿했다.


하나에 대해 집요하리만치 집착과도 같은 다양한 시도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작가의 끈질긴 집요함이 재해석을 통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이미지는

리처드 해밀턴이 현대예술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수 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였다. 



+ <리처드 해밀천 : 연속적 강박> 전은 한 작가의 궤적을 살피는 데 있어 특별한 유형의 전시다. 그것은 이번 전시가 리처드 해밀턴의 충제적인 작업에 대한 서사적이며 전형적인 회고전의 형식을 띄기보다는 1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60년의 시간에 대한 일종의 클로즈업과 같이 작가의 특정 작품군 또는 연작을 중심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가정용 전자제품에서 꽃, 그리고 팝스타와 정치범까지 작품의 소재와 주제는 매우 광범위하지만 여기에 선별된 연작들은 작가가 강박에 가깝게 천착해 온 주제에 대한 반복과 재해석이라는 방식으로 고안된 '복합적인 장치'를 통해 해밀턴 작업의 거듭되는 특징들을 볼 수 있게 한다.  - 전시물에서 발췌-



리처드 해밀턴 전시는  자화상, 그녀, 토스트, 스윈징 런던, 꽃그림. 시민, 일곱개의 방으로 구성된

총 7개의 작업을 볼 수 있는데 짐작하듯 연대별로 작품을 분류한 것은 아니었다.

7개의 작업 모두 눈여겨 볼만했지만 그중 의미있었던 작업 몇 가지만 소개한다.


자화상(Self-portrait)

네 개의 단일 이미지를 사용해 1980년 대 초 폴라로이드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후 아클릴 컬러를 칠한 시리즈 작업.

작가는 10년 후 이 작업을 디지털로 변환한 다음 확대하여 인화해 캔버스에 마운트를 하고

레이어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확장해 나가는데 이는 해밀턴의 유사한 연작의 전형적인 한 형태가 된 작업이다.



스윈징 런던(Swingeing London>

1967년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던 가수 믹 재거와 화상인 로버트 프레이저가

불법 약물 소지죄로 법원으로 호송되는 사건을 보도한 사진을 토대로 제작된 연작이다.

한 장면을 두고 페인팅, 드로잉, 동판화, 실크스크린 등 다양한 장업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을 보는 내내 작가는 왜 이 장면에 유독 집착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핫한 가수에게 일어난 가장 센세이션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

소위 특종이라고 불리는 그 사진 한 장은 과연 그 사건이 가진 사실 '전체'를 담고 있을까. 

어쩌면 작가도 이와 같은 점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짐작을 하게 한다.

그런 작가의 고민은 이 장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고 있다.

작품을 따라가다 보니 왠지 그 날의 사건을 다시 찾아 꺼내보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미학적인 의미를 넘어 서고 있는 작품들.

작품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회적인 메세지는 무거우면서도 유쾌했다.

리처드 해밀턴의 대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이 이번 전시 포스트에 선정된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꽃 그림(Flower-pieces)

 

꽃을 표현하는 고전적인 방식이 아닌  기존의 방식을 비트는 다양한 작업들.

정물화에서 당연시 되는 꽃과 과일 대신 화장실 휴지를 놓는다거나

연관성 없는 그림을 뜬금없이 그려 놓은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미지를 판화 형식을 빌어 극단으로 조작(?)하는 작업들이었다.


한참 사진 공부를 할 때 보이는 걸 그대로 기록하는 사진에 찍힌 이미지가

본 것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실험했던 적이 있었다.


제주에서 물에 비친 동백꽃을 찍은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채도를 0과  100으로,  하일라이트를 0과  100으로,


색조를 극과 극으로 만들어 보기도 하고,

꽃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색이 아닌 상상할 수 없는 색으로도 

 변환시켜 보기도 하는 등 수십, 수백 번의 작업을 해봤었다.


그런 작업을 하다보면 실제 내가 본 이미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이렇게 하면 이런 이미지가 나올 꺼야'라고 상상했지만

실제로 해보면 상상하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와 늘 나를 당황시키던 작업들.



작가도 꽃을 두고 다양한 판화 작업을 하는 동안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상상하고 기대하고 놀라는 과정의 연속이었으리라.

물론 작가는 나와 같은 혼라스러움을 실험 대상으로 꽃그림을 작업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그때의 혼라스러움이 고스란히 떠올라서 찌릿하면서도 한편으로 짜릿했다.






시민(The citizen)


이 작품은 해밀턴이 '암흑기'로 알려진 1970년대 중반 북아일랜드 분쟁 중

특히 심각한 국면에 응답해 제작한 작품이라는데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뜬금없이 영화 '시민 케인'이 생각났다. 


시대적 배경도, 정치적인 배경도 공통점 하나 없는데  시민케인에 닿은 이유가 뭘까?

이미지만 보면 오히려 '예수'의 형상과도 닮았는 데 말이다.

그것 때문에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서였는데 여전히 모르겠다.







토스터(Toaster)


해밀턴의 판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중 하나다.

해밀턴이 1963년 패서니디나의 뒤샹 회고전에 초대받았던 경험은

그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었고 영국에 돌아와 다양한 작품을 통해 선보이게 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토스터라는 작품이다.

 라인홀트 바이스가 디자인한 브라운의 가정용품인 토스터를 통해

뒤샹의 레디메이드 창안, 팝 아트의 일상품 심취 등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된 작품 중 나에게도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크롬 도금된 강철판과 반사성 알루미늄을 붙여 만들어진 또 하나의 프레임은

거울 역할을 하며 외부의 공간을 안으로 끌어들이는데 그 자체로 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무엇보다 작품을 보는 관객들에게 작품과 프레임을 통해 만들어 내는 공간을 충분히 즐기도록 만든

토스트는 그야말로 대박 아이템이었다.


이 작품에 현대 예술을 뒤흔 뒤샹의 레디 메이드가 녹아 있다는 것을 모르면 어떤가.

하나의 작품에 이미지가 같은 것이 하나도 없고

공간 속에 누가 들어오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이 이렇게 즐거운데.





올 한해 현대미술관에는 좋은 전시가 많았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놓친 전시가 많았지만

리처드 해밀턴 전시 하나 만으로도 그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