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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여행] 춘포역,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간이역

작은천국 2017. 10. 31. 18:56

[익산여행] 춘포역,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간이역


익산을 여행하는 사람 대부분은 백제 문화유산인

왕궁리 유적지와 미륵사지를 먼저 찾지만

그들과 달리 익산에서 나의 첫 일정은 춘포역이었다.


웬만큼 기차에 관심이 있지 않다면 춘포역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이유를 짐작하기 힘들겠다.

익산에서 춘포역을 가장 먼저 찾은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차역이기 때문이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백 살 넘은 기차역 춘포(春浦)역 

그곳은 언제나 따뜻한 봄나루였다. 



서울에서 약 1시간 10여 분, 익산역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춘포역은 익산역에서 약 8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익산역은 KTX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불과 1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서울에서도 웬만한 곳으로 이동은 지하철로 1시간 정도는 예상해야 하는데

그 시간에 익산역에 도착한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기차에 올라타 잠을 청하기도 짧은 시간 어느새 익산역 도착을 알린다.



익산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전라도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예외 없이 익산역을 거쳐 갔다.

익산역은 서울에서 목포를 잇는 호남선, 서울에서 여수를 잇는 전라선,

군산과 장항을 잇는 장항선이 모두 정차하는 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장항선의 경우 익산역이 종점이다. 



이런 익산역의 역사는 무려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2년 호남선, 군산선이 개통되면서 1915년 1월 1일 이리역으로 출발한 익산역은

 1977년 11월 11일 이리역 폭발사고를 겪었고

1995년 이리시와 익산역이 통합되면서 익산역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익산역은 지난 2014년 선상 역사가 완공되면서 현대식 건물로 탈바꿈해

오랜 세월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곳은 백 년 전에도 기차가 다니던 역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전라도 철도 교통 요충지, 익산역>


<2014년 완공된 익산역의 외관>


<익산역사>


<익산역을 정차하는 열차의 출도착을 알리는 전광판도 모두 디지털로 교체됐다.>



<익산역사 안에서 만난 익산역의 발자취>


< 전라선과 호남선의 열차가 모두 지나가는 익산역은 복합열차를 분리하거나 합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참고로 경부선의 경우 동대구역에서 복합열차를 분리하거나 합체한다. >


<연결기가 고장날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때문에 코레일 직원이 꼼꼼하게 살피며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복합열차는 중간의 분기역에서 두 개의 열차로 분리해 다른 노선을 달리기 때문에 반드시 지정된 호차에 승차해야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간이역,  춘포역(폐역)



 일제강점기였던 1914년에 지어진 춘포역은 익산역에서 약 8km 떨어져 있다.

 춘포역은 익산역과 삼례역 사이에 있는 기차역으로

기차로는 한 정거장이지만 타는 사람이 줄어들어 지난 2014년 폐역이 됐다.

시골 간이역하면 '낭만' 혹은 '추억'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지만

황금들판이 익어가는 길을 달려 폐역이 된 춘포역을 찾아가는 길은 마냥 가벼운 걸음은 아니었다.



익산역을 출발한 지 20여 분만에 춘포역에 도착했다. 

 춘포역이 있는 곳은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고 

곳곳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흔적이 생각보다 많이 남은 곳이었다. 

지금 춘포역이 있는 지역은 만경항을 젖줄을 삼은 엄청난 곡창지대였고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익산은 보릿고개라는 말을 몰랐을 만큼 풍요로운 지역이었다.

그런 곡창지대에 세운 춘포역의 역할은 '쌀 수탈'이 주요 목적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역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춘포역은 익산역보다 두 달 앞선 1914년 11월 17일에 영업을 시작했다.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익산역과 달리 춘포역은 1914년 지어진 건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역사적, 철도사적, 건축사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10호에 지정됐다.


<춘포역을 안내하는 간판>


<길의 끝에 춘포역이 있다.>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과 운명을 같이한 역전식당과 역전다방>



춘포역이 있는 골목 어귀.

이제 폐역이 된 기차역과 운명을 같이한 역전식당과 역전다방이

이곳이 한때나마 역으로 향하던 길이었다는 걸 가리킨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길을 얼마 걷지 않아 들판에 덩그러니 서 있는 춘포역이 눈에 들어온다.


한때 춘포역에서 익산으로, 군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이 일대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는데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까마귀 떼를 방불케 했다고 한다.

유일한 교통수단이 기차였던 때와 달리 교통이 발달하고 자가용이 발달하면서

배치 간이역에서 무배치간이역으로 명맥을 이어오다 결국 폐역이 된 춘포역의 운명.

역 앞에 심어 놓은 향나무가 춘포역의 간판을 가릴 만큼 계속 자라는데 춘포역의 시간은 멈췄다.


<향나무에 가린 춘포역>



<춘포역에 가깝게 다가가야 비로소 간판이 제대로 보인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제210호에 지정된 춘포역>



<춘포역사 입구의 설치물>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춘포역 인근>


<춘포역 위로 고가철로에 기차가 달리고 있다.> 


봄이 드나드는 물가, 춘포(春浦)



1914년에 지어져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역사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춘포역은 

원래는 대장역(大場驛)이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이 일대 넓은 평야가 '대장촌'으로 불렸기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후 일제 잔재 청산을 하며 일본식 이름이 남아 있는 대장 대신 원래 이름이었던 춘포역을 되찾은 것.


춘포역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평소에 간이역에 대한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지난여름, 철도문화전에서 들었던 이화여대 건축과 임석재 교수 강의의 영향이 컸다.


임석재 교수에 따르면 춘포역은 '간이역의 표준모델이 된 역'으로

전국 각지에 간이역을 지을 때 우리나라의 최초고의 간이역인 춘포역을

모델로 해 지역에 맞게 조금씩 발전해갔다고 한다.

임석재 교수는 춘포역은 건축사적으로 여러 가지를 주목해야 하지만

특히 차양을 주목해야 하는데 춘포역의 차양은 한국적 건축미가  더해진 것으로 극찬하고 있다.

이후 수많은 간이역에 차양이 등장하지만 춘포역만큼 예쁜 차양은 없다고 한다.


굳이 임석재 교수님의 건축학적 눈을 빌리지 않더라도

일본식 건축양식이긴 하지만 춘포역은 그리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다만 KTX가 운행되면서 춘포역에 남아 있던 선로들은 모두 걷어냈고

역 앞에는 철로 고가가 생겨 다소 답답한 느낌이 드는데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정면에서 볼 때와 철로에서 볼 때 확연히 다른 춘포역>  


<고가철로가 생기면서 기존의 선로는 철거됐다.> 



<쌀을 저정하던 창고> 



<한국적 건축인 수평비례와 달리 수직비례를 사용하는 일본 건축양식>



<임석재 교수가 춘포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극찬한 춘포역의 차양

크고 작은 두 개의 문이 어울리는 장면은 가족 사이의 관계를 의인화한 것으로 한국적 정서인 '정(情)'이 묻어나는 전형적인 한국적 건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간이역은 낭만의 장소이기 전에 수탈의 역사를 가진 장소다.

이런 장소들은 한때 치욕스러운 역사로 없애야 할 곳으로도 목소리를 높였지만 

근대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곡창지대에 세워 쌀 수탈이 목적이었던 춘포역 역시  

아픈 역사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다.

일제강점기 간이역들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이유다.


이제 기차가 다니지 않지만  춘포역의 시간은 그대로 멈춤이 아니다.

보통의 역이 폐역이 되면 방치되는 것과 달리 춘포역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기억하는 장소이자

지역민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고

사람들은 다시 춘포역을 찾기 시작했다.


춘포역의 지난 백 년의 시간을 지나 새로 이어갈 춘포역의 시간.

시골의 낡은 간이역은 봄나루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춘포역사 내부의 모습>





<곳곳에는 춘포역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있다.> 




<코레일에서 34년간 근무했던 최중호 씨는 춘포역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춘포역 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다. 

그의 노트에는 춘포역에 관한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데 설명하다가 틀리지 않기 위해서란다.> 




<춘포문화학교를 비롯해 춘포역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