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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호남선 종착역 목포역, 목포 근대문화 탐방

작은천국 2017. 6. 29. 16:57

[코레일] 호남선 종착역 목포역, 목포 근대문화탐방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의 마지막 종착역인 목포, 

경부선의 종착역인 부산역과 호남선의 종착역인 목포역은

같은 종착역임에도 이상하리만치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왜일까?  


그리고 그 이유는 목포 원도심을 얼마 걷지 않아 알게 됐다. 

발걸음이 절대 가볍지만은 않았던 목포여행. 


지금 만나러 갑니다. 

<유달산에서 바라본 목포 시내> 


한 달 내내 타이완에서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숨돌릴 시간도 없이 떠났던 목포여행은 다른 여행보다 좀 남다른 느낌이 들었다. 


호남선이 용산역뿐만 아니라 서울역에서 승차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벌써 바뀌었는데 

이제서야 서울역에서 타는 호남선 열차도 새로웠고 오랜만의 목포여행은 더욱 새로웠다. 


목포라는 도시는 '남행열차'도 그렇고 '목포의 눈물'도 그렇고 

멜로디가 신파조이건 아니건 이상하리만치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묘한 곳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고 생각해 보니, 목포는 처음이 아니다. 

대학 시절 땅끝마을 해남 여행 후 목포를 갔었는데 뭔가 일이 많았던 목포는 

먹고 본 것은 기억은 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왜 목포를 갔는지,  

목포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 버스를 탔는지, 기차를 탔는지 당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목포에 대한 옛날 기억이 뒤엉키면서 왓다 갔다 하는 사이 어느새 목포역에 도착했다. 


한 가지 확실히 달라진 것은 엄청 멀다고 생각했던 목포였건만 

 KTX를 타면 약 2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었다. 


부산 가는 거랑 똑같잖아.!!! 



우리나라 가장 서쪽에 있는 목포역(木浦驛, Mokpo Station) 


목포역은 호남선과 호남고속철도의 종점이자 대한민국의 가장 서쪽에 있는 역이다. 

목포역 플랫폼에는 호남선 종착역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종착역이기 때문에 선로는 목포역에서 끝이 나고 앞쪽이 막혀 있는 '두단식 승강장' 구조다. 


 목포역은 KTX가 개통되면서 역사를 증축하고 이런저런 손을 보면서 오래된 느낌은 들지 않지만 

목포~ 대전 간 호남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1913년에 영업을 시작했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호남선은 일제강점기에는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수탈하기 위해 서울로 실어 날랐고  

해방 이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무작정 상경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목포의 눈물과 설움이 켜켜이 쌓인 호남선엔 그래서 늘 비가 내렸는지도 모르겠다.



<목포역은 호남선의 종착역이다.


<목포역의 호남선 종착역 비석>


목포 역사를 벗어나니 바로 넓은 광장이 펼쳐진다. 


목포역이 오래된 만큼 역 앞 광장도 근 현대사 격변기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인데 

 1980년 5월 18일 민중항쟁 당시 목포역의 광장은 목포의 중심부로 '계엄령 철폐'를 외쳤던 역사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세월호가 목포 신항으로 거치되면서 또 하나의 역사의 현장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 격변기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목포역과 목포역 광장은 

첫 발걸음부터 예사롭지 않았지만 다소 무거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목포역 앞의 버스 정류장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습관적으로 그 도시의 디자인을 유심히 보게 되는데 

그게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다름 아닌 버스정류장과 가로등이다. 


대체로 그 지역의 특산품이나 도시의 특징이 드러나는 콘셉트로 만들어지는데 

목포역은 KTX 역을 상징하는 KTX 모형으로 만들어진 목포시 최초 디자인 버스정류장으로 심지어 버스표지판도 KTX 모형이었다. 


독특한 디자인의 KTX 버스 정류장 덕분에 기분은 상큼발랄해졌다.  


<KTX 모형으로 만들어진 목포역 디자인 버스정류장> 



목포하면 유달산이지! 


자.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목포에서 이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무조건 유달산이다. 

목포역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유달산은 목포 제1의 풍경으로 주저 없이 이름을 올린다. 

이처럼 목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달산은 228.3m로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의 시작점이자 종착지다


유달산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었기에

 기본적인 지식이나 정보는 1도 없었고 일부러 정보를 찾지도 않을 정도로 게으른 상태였다.


무엇보다 많은 역사가 녹아 있는 곳으로 목포 사람들이 왜 유달산을 목포 제일로 여기는지 

가 보기 전에는 어찌 알았으랴. 




유달산은 산이라고 하지만 산이 높지 않아 등산을 해야 하는 정도는 아니고 산책하듯 걸으면 충분했고 

유달산 둘레길이 잘 되어 있어 넉넉잡아 왕복 2시간이면 유달산 전체를 한 바퀴 돌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노적봉에서 출발해 오포대를 지나 유선각을 거쳐 달선각까지 올라갔다 오기로 했다. 





유달산 입구에 도착하면 바로 노적봉이다. 

노적봉(露積峰)은 60m의 바위의 봉우리로 충무공 이순신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충무공이 목포에 머물 때 적은 군세로 왜적과 싸움을 해야 했고 이 봉우리를 짚으로 덮어 

멀리서 봐도 군량미가 많이 쌓인 것처럼 보이도록 했고 왜군이 이를 보고 우리의 군사가 많은 것처럼 속여 

왜군이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한 곳으로 그런 연유로 이 봉우리는 노적봉으로 불리고 있다. 



유달산의 계단을 오르니 충무공 이순신의 동상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있는 자리에서 바라보면 정확하게 노적봉과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올라서면 이순신 장군은 여전히 늠름한 자세로 

목포 시내를 바라보며 서 모습은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야말로 진짜 진정한 승리라고 했던가. 

유달산에서 충무공 이순신은 그렇게 예고 없이 훅- 들어왔다. 




<노적봉과 목포시내를 바라보는 위치에 늠름하게 서 있는 충무공 이순신> 


흙길, 계단길이 적당히 번갈아 이어지며 신나게 걷는 길이다. 



이런 길에 연리지로 엮인 연인 소나무 한 그루 빠지면 섭섭하고 


목포역, 목포 여객선 터미널 등 몇 걸음 걷지 않아도 사방팔방으로 탁 트인 풍경은 목포 시내가 한눈에 들어 온다. 




<그리 높지 않은 유달산인데 한 걸음, 한 걸음 높아질 때마다 보이는 풍경은 저만큼씩 멀어지고.> 



목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노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이난영의 노래비도 유달산에서 만났다. 


노래비 앞에 가니 자동으로 '사공의 뱃노래 가~물 거~리면'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일제 강점기 노래 한 곡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위로받았을까 싶으면서도 

어쩌면 눈물 많은 목포가 된 것도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스친다. 


유달산에서 가장 눈여겨 본 것은 오포대((午砲臺)다.

오포대는 1909년 4월 목포 시민에게 정오를 알리기 위해 설치한 포로 포탄 없이 화약만 넣어 포를 쏘았다고 한다.

일제 말 태평양 전쟁을 위해 일본 정부가 공출해 가져가 버렸고 이후에는 싸이렌으로 대체했음에도 

목포 사람들은 여전히 '오포 분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 이 오포는 현충사 박물관에 전시된 전차총동을 복제한 모양으로 전시되고 있다. 


시계가 없던 시절 수십 년간 정오만 되면 포를 쏘는 소리를 듣고 자랐을 목포 시민들에게 

포 소리는 전장의 소리가 아닌 향수의 소리일 터. 


 홍콩 역시 오포가 남아 있고 정오마다 오포를 쏜다고 했다. 

오포가 있는 곳은 통상 관광객들이 움직이는 동선도 아니어서 

교통도 불편하고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관광객들은 일부러 그걸 보기 위해 그곳을 찾는단다. 

(물론 나도 그걸 보기 위해 가보고 싶어 했었다.) 


지금은 녹슨 채로 재현만 해놓은 오포를 그 시절처럼 쏘아 올린다면 

참 멋질 것 같다는 생각과 더불어 또 하나의 관광 자원이 될 수 있을 텐데 싶어 아쉬웠다. 





유달산을 오르면 경치 좋은 곳에 세워진 대학루, 유선각, 달선각 등은 

쉼터이자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는데 고도가 달라지니 같은 풍경이라도 조금씩 다르게 보였다. 





유선각에 서면 갓바위로 유명한 입암산, 영산강 하구, 삼학도, 내항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정면에 보이는 세 개의 섬, 삼학도. 


아름다운 다도해가 멋지게 펼쳐지는 목포는 항구다. 


목포 근대 문화 탐방,  목포 근대역사관 1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항구가 있던 도시들은 

도시마다 근대의 문화유산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서울과 가까운 인천의 개항장이 그렇고 

근대 문화유산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도시인 군산이 그렇다. 


인천과 군산은 취재 때문에 혹은 개인적으로도 여러 번 갔을 정도로 훤한 곳이니 

목포는 그 두 도시와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서 근대문화 탐방을 해보기로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유달산 바로 밑에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에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 목포근대역사관 관람료 개인(19~64) 2,000원 청소년(13~18) 1,000원 초등학생(7~12) 500원 관람시간 평일 09:00~18:00 . . 공휴일 09:00~18:00 휴관일 11, 매주 월요일 ※ 목포 근대역사관 1관 티켓으로 근대역사관 2관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목포 근대 역사관은 1900년대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양식의 건물로 목포 일본 영사관으로 사용됐다. 


이후 목포 이사청, 목포부청사, 목포시청, 목포 시립도서관, 목포 문화원 등으로 

사용되다가 현재 목포 근대 역사관으로 개관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좌우 대칭의 건물은 백 년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단단하고 

실내는 천장 장식, 벽난로, 거울 등 건축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찬찬히 읽다 보면 목포가 어떤 곳이었는지 알게 한다. 


참고로, 목포는 세종 때 목포진으로 출발해 1897년 고종에 의해 개항을 한 도시니 올해로 120년이 되는 곳이다. 

또 하나 이곳에서 목화가 많이 났다고 하는데 그래서 지명이 목포(木浦)인가 싶었는데 

그런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서해에서 육지로 들어가는 길목'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목포 근대역사관뒤뒷편에는 방공호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방공호는 일제 말기인 1944년에서 194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총 길이는 85m로

당시 유달산에 주둔하던 일본군 150 사단 사령부가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목포 근대역사관을 나서면 목포 평화의 상이 있는데 

다른 곳도 아닌 일본 영사관 바로 코 밑에 세워진 목포 평화의 상이 가지는 상징성을 말해 무엇하랴. 


지정학상으로 목포는 중요한 곳인데 한때 바로 국도 1, 2호선의 기점이었다. 


 전라남도 목포와 평안북도 신의주를 잇는 국도 1호선은 2013년 목포대교 개통으로 

충무동 고하도로 기점을 옮기면서 939.1km 미터에서 943.37km로 4.27km나 연장됐다. 

참고로 목포에서 부산을 연결하는 국도 2호선의 기점도 2001년에 신안군의 장산면 오음리로 변경됐는데 

이 역시 377.43km에서 475.08km로 97.65km로 연장됐다. 


지금은 국도 1, 2호선의 기점이 아니어서 기점 표지석은 철거됐고 

기념석만 남아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목포가 기점인 걸로. 




목포 근대 문화 탐방,  목포 근대역사관 2관 


목포 근대역사관을 나서면 근처에 목포 근대 역사관 2관이 있는데

이곳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었다. 



한국 농민에 대한 온갖 악랄한 방법을 동원해 수탈했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자세히 보면 건물 외부와 실내에 태양문양, 왼쪽 위에 벚꽃 문양 등 일본을 상징하는 문양 등이 새겨져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였던 곳답게 이곳은 일제 강점기 수난의 역사와 

1920년대 말 잊혀가는 목포의 옛 모습을 사진 자료로 전시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전시는 임산부는 관람을 삼가라는 안내 문구가 있을 정도였다. 


그곳의 사진들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을 악랄하게 괴롭혔던 모습과  

그에 굴하지 않고 치열한 독립운동을 했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 세기 전의 시간이 내가 겪은 역사의 현장인 것처럼 다가온다. 

카메라가 서울 종로의 한옥 한 채 값이었을 정도로 귀한 시절의 사진이 남긴 기록.  

실로 대단하지 않은가. 



목포역에서 출발해 유달산에 오른 후 목포 근대 역사관을 돌아보고 다시 목포역으로 돌아오는 길. 

목포역 바로 앞에 있는 곳으로 일제강점기 가장 번화했다던 역사 속의 오거리는 지금도 오거리였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온통 '오거리'라는 지명에 상호에 줄줄줄. 


풋- 오거리 좀 귀여운데. 


다소 슴슴하게 길을 걷다 가게 앞 사진에 눈길이 딱. 

얼마 전에 종영한 KBS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과 관계있는 집인 듯했다. 



잠깐 동안 목포의 근대문화를 만나면서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일제 강점기가 먼 얘기가 아니라 불과 7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는지 실감하면서도

 한편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역사를 제대로 정리할 때

비로소 우리 시대는 근대를 끝내고 현대로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목포역을 출발해 유달산을 올라 근대문화유산을 돌아보고 다시 목포역으로 걸어서 돌아올 때까지 

걷는 내내 개항지 근대문화가 남아 있는 도시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군산, 인천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목포였다. 


두 도시들이 근대문화유산을 관광자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과 달리 목포는 그런 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최근 목포시에서도 원도심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가까운 시일내에 좋은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원도심인 목원동 등을 좀 더 돌아보고 

전국 3대 빵집 중 하나라는 코롬빵제과점도 가보고 싶었는데 

반나절만 돌아보고 오려니 조금 아쉬움이 남는 목포 여행이었다. 


KTX 타면 금방 오는 곳이니 그때는 좀 더 깊숙이 돌아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