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nkook's Diary/Ordinary Daily Life

[2017년 1월 소소일기] 별일 없이 산다.

작은천국 2017. 1. 31. 21:49

[2017년 1월 소소일기] 별일 없이 산다.

 

 

저녁 5시만 되면 어둑어둑 했는데

같은 시간에 바라본 하늘은 어둠 대신 주홍빛이다.

음력 절기상 겨울의 한가운데 머물고 있지만

양력 절기는 입춘으로 봄맞이 준비를 시작했음이니

계절은 어느새 봄으로 옮아가고 있다.  

 

2017년이 시작되고 어영부영 한 달이 훌쩍-

 

분명 시간은 똑같이 흐를진대 유독

한해를 마감하는 12월과 새로 시작하는 1월만

 빨리 흐르는 것만 같은 묘한 기분.  

 

별일 없이 오늘도 소중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 독감과 감기 사이. 

 

올해 겨울은 유독 시간이 빨리 흐르는 느낌이다.

유행에 그리 민감한 편이 아닌데도

지난 12월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감기에 걸렸다.

 

가을 내내 엄청 몸을 혹사하긴 해도 감당을 못하겠다 싶을 정도는 아니었고

컨디션도 내내 괜찮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도 괜찮다.

 

어느 날 몸이 으슬으슬-

징조가 좋지 않아 곧장 병원을 다녀왔는데도 약도 주사도 모두 무용지물.

그렇게 하루 만에 온몸은 헤비급 권투선수에게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리고

머리는 열이 펄펄.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A형 독감은 아닌 것 같다는데 증상은 A형 독감과 동일.

오죽하면 새벽에 119를 부르고 싶었던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렇게 며칠 계속 병원을 다녔으나 약 기운이 있을 때뿐이었고

감기는 도통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평소 다니던 한의원으로 옮겨 매일 침 맞고 한약 먹고 몸져 누운 지 보름 정도 지났을까

 약을 먹지 않고도 움직일 정도의 컨디션을 되찾고 나니 어느새 12월 말. 

연말까지 겹치니 허무감은 2배로 밀려왔다.

 

 

올해는 공연을 몇 번 보지 못했기에

서울 공연을 온전히 느껴보겠다고 2번의 공연을 예매했음에도

공연장에 앉아서도 오한에, 미열에, 기침까지 더해주니 

 공연 내내 그저 영화관 관람 모드.

공연을 보긴 봤나 싶을 정도로 가물가물.

 

 

게다가 가족들이 이연복 셰프의 요리를 한 번 먹어 보고 싶다고 간절히 원했기에

하늘에 별 따기라는 이연복 셰프의 목란을 11월 중순에 어렵게 예약했다.

 

직접 방문해야 겨우 예약할 수 있는 목란이기에

'그렇게까지 해서 밥 한 끼를 먹어야 하나'는 나와 달리 

동생이 간절히 원해 소원 하나 들어주는 셈 치고 힘들게 예약에 성공했다.

예약 당일 지겹도록 기다리는 시간 동안

 운 좋게도 이연복 셰프도 만날 수 있었다.

 

드디어 한 달 뒤 12월 중순 손꼽아(?) 기다린 목란 방문.

감기가 너무 심해 죽 정도의 가벼운 음식 외에 거의 먹지 못하고 있던 탓에 중국 음식은 나에게 무리.

고생해서 예약했던 게 억울했고 혼자 집에서 몸져누워 있는 게 싫어서

 꾸역꾸역 따라나섰지만 맛난 음식은 모두 그림의 떡.

그렇게 허무하게 12월이 지나갔다.

 

★ 움트는 봄.

 

계절 바뀌는 건 식물들이 먼저 안다.

작년 히야신스 화분을 샀었는데 꽃이 지고 난 뒤

생각날 때 물 두어 번 준 게 전부인 알뿌리 화초 히야신스.

 

해 바뀌고 이것 정리를 하다 문득 생각나서

한구석으로 밀어 놓은 화분이 생각나 확인해 보니

옴마야 - 이렇게 꽃대가 올라오는 게 아닌가.

 

손길도, 눈길도, 마음도 쓰지 못했는데도

꽃을 피워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잘 자라던 두어 개의 식물들이 수명을 다했고 화분이 내내 비어 있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더는 화초를 늘리지 않겠다 생각했지만 천리향 꽃냄새에 이끌려 결국 천리향을 들여왔다.

꽃망울이 있을 때 분갈이를 하면 좋지 않다고 했지만

분이 작은 것이 신경이 쓰여 분갈이하고 물을 주고 나서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요즘 날씨에 꽃이 피기까지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했으나

남향의 집이라 따뜻해서 그런지 열흘 만에 꽃이 만개.

 

은은하고 은은한 천리향 덕분에 이른 봄이 찾아왔다.  

고작 꽃이 피었을 뿐인데 집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올해는 여러 가지 채소를 심어볼 요량이다.

 

작년에 방울토마토를 키워보니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고

겨울에는 파 키우기에 도전했다.

 

혼자 먹기에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파가 그리 빨리 자라는지 몰랐다.

 

결국은 몽땅 잘라서 파김치를 담그고 나서야 숨을 좀 돌리나 했더니

열흘 정도 되니 원상복구.

 

파. 너란 녀석은 정말.. ㅎㅎㅎ

 

많이 먹지 않는 파 대신 부추를, 상추 등 샐러드용으로 몇 가지, 방울토마토....등을

계획 중인데 아마도 5월 중순쯤에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겠다.

 

식구들만 있다면 고추도, 오이도, 가지도 키우고 싶은데 좀 아쉬울 뿐.

 

 

 

★ 미니멀 라이프

 

되도록 꼭 필요한 물건만 사고 지내려고 노력하지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계속 짐이 늘어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혹은 해가 바뀌거나 할 경우

내가 쓰지 않는 물건을 정리한다.

작년에만 세 번, 해 바뀌고 한 번.

아마 올해도 몇 번을 더 갈 것이다.

 

갈 때마다 두 박스 이상씩은 가지고 가는데

왜 집의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건지 미스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놓지 못하는 건 이다.

필요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긴 하지만 갖고 싶은 책들이 있는지라

작년까지는 책을 별로 읽지 않았음에도 책은 꾸준히 구매했다.


그러니 올해는 의무적으로 책을 읽기로 단단히 결심.

자기 전 펼치는 책은 수면제인지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전에는 무조건 의무적으로 책을 읽고 있다.

 

자료를 읽어야 하거나 글을 쓸 때는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는데

책 읽는 건 일과 달라서 집중력이 흩어지기 일쑤.

삼십 분 앉아 있기가 힘들다.

 

내가 이렇게 주의력이 산만한 사람이었다니.

 

최근에는 연애 시집을 세 권이나 샀다.

최근 몇 년동안 시집도, 감성이 있는 글도 읽고 싶지 않았다.

 

겨울 가면 얼음이 녹듯이

딱딱했던 마음에도 봄이 찾아오나 보다. 

 

 

★ 또 다시 새해

 

 

어렸을 때는 동지, 양력설, 음력설까지 한 해 만에 세 살의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닌가 싶어

세상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난 떡국을 안 먹겠다."고 했다가 주는 대로 먹으라고 엄마한테 혼이 나기도.

 

생일날 미역국을 안 먹으면 서운하듯

신년에도 설에도 떡국을 안 먹으면 왠지 서운하다.

 

감기 기운이 말끔하지 않고 입맛이 없어 신년에는 매생이 떡국을 끓여 먹었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설날에 엄마가 끓여주는 떡국이 가장 맛있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엄마의 떡국은 마약 같다.  

 

우리 집은 술을 많이 먹지는 않지만 술을 즐기는 편이다.  

울산에도 특별한 막걸리 도가가 있으니 바로 복순도가다.

 

몇 해 전 핵안보정상회의에서 건배주로 이용되면서 알려진 복순도가.

복순도가에서 생산되는 손 막걸리는 천연 탄산이 가득해 샴페인 같은 막걸리로

뚜껑을 열면 효모가 살아 있어 톡톡톡 튀는 소리가 술맛을 절로 돋군다.

 

이번 설에는 복순도가를 가 볼 생각이었는데 KTX 울산역에 설 특산품으로

복순도가 막걸리가 판매되고 있어 바로 구매.

 

 

설 음식을 하면서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기분 좋을 만큼 술을 곁들이는데

복순도가 막걸리는 인기 만점. 

오빠는 처가갈 때 일부러 복순도가 들러서 막걸리 사 갈 정도였으니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있으면 무조건 복순도가 막걸리로 갈 듯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이야기 보따리가 풀린다.

80세의 아버지와 50세 오빠의 주제는 늘 군대.

설, 추석 해마다 두 번의 명절에는 어김없이 나오는 군대 이야기. 

참 신기한 것은 그렇게 군대 얘기를 나누는데도 매번 다른 이야기라는 것.

올해 오빠는 PX병 이야기를,  아버지는 군대에서 토끼 잡던 얘기를 털었고

아버지가 기선제압을 했다.

 

그나마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안 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명절에는 차례를 끝내고 가족들과 하루나 이틀 정도 근교로 여행을 다녀온다.

물론 올해도 여행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연휴 직전 동생의 수술로 인해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며 보냈다.

정말 간단한 수술인데 명절 연휴에 입원을 하다보니 6일이나 병원에서 보냈다. 

병원 왔다 갔다 하느라 별로 하는 것 없는데도 입 안이 헐 정도로 몸이 피곤.

 

역시 건강이 최고다.

 

명절에 입원해 있으니 설날 당일에는 병원 원장이 직접 모든 병실을 돌며

환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연하장과 간단한 세면도구를 선물로 주셨다.

와- 요즘 병원 서비스 정말 갑이다.

(근데 이 병원만 이런 것인지는)

 

 

 

★ 선택과 집중

 

작년에는 몸이 좀 바쁜 한 해였다.

일은 일대로 하면서 관심 있는 분야를 배우기 위해 동분서주한 시간이었다.

 

처음엔 하나였다가 둘, 셋, 넷, 다섯으로 어느 순간 훅 늘어나면서

일주일 내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늘 그렇듯 목적을 가지고 뭔가를 배우기보다  

그때그때 관심가는 데로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보니

'그걸 왜 배우냐'고 물어도 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각각 연관이 없는 배움이었던 모든 것은

결국 '나'라는 사람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알게 하는 공부였다.

참 신기하게도 뭘 배워도 한결같음은 내 정체성이리라.

 

배움이 배운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 것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건 배우는 시간보다 몇 배는 더 걸리고

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올해는 새로운 것을 배우기에 시간을 투자하기보다 그간 배운 것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보리라 다짐한다.

 

다시 한번 공부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경에 대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던 차

서울시에서 시민조경 아카데미가 있어 강의를 들었다.

12주 동안 매주 조경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더 알고 싶은 부분이 많아서 아쉬웠다.

 

 

한석봉보다 한석봉 어머니가 더 체질에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던 캘리그라피

자신만의 글씨체를 만들기 위해 2시간 내내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써야

고작 한 문장 쓸 수 있는 캘리그라피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돼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나마 3가지의 글씨체를 만든 것에 만족하며.

 

다행은 지난여름 일러스트를 배웠기에 이 글씨를 일러스트로 불러들여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의외의 수확이다.

내친김에 인디자인에도 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적용할 기회가 없긴 하다.

 일본에서 사온 가라스 펜을 쓸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마음껏 활용.

 

이런 볼품 없는 실력으로 전시회까지 하다니.

그야말로 다 된 밥에 밥숟가락만 꽂았다.

 

내친김에 드로잉 수업으로 확장.

 

5번의 수업이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했고 모든 준비물을 다 준비된 상태로

시간만 있으면 된다는 페북 홍보에 혹해 득달같이 신청.

 

젠탱클, 일러스트, 인물화 , 정물화,  풍경화 총 5번의 수업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수채화가 적성에 맞지 않아 유화를 몇 년간 그렸었는데

혹시나 해서 수채화 색연필을 사두고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색연필 역시 이번에 마음껏 사용했다.

 

5번의 수업이 끝나고 나니 정말로 그림을 부담감 없이 그릴 수 있을 정도는 됐다.

그림이 좋은 점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 잡생각은 사라지고 무엇보다 시간이 정말 잘 간다.  

아직 그림 그린다 할 실력은 못되니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실력 증진을 위해 열심히 그려볼 생각이다.

 

반은 재미 삼아, 반은 필요에 의해서 시작한 중국어도 이제 겨우 초초초급은 벗어났다.

하지만 아직 실전에 사용하기에는 언감생심.

 

당장 필요하긴 하지만 조바심내지 않고 매일 매일 조금씩 그렇게 가다보면

언젠가 말문 트이는 날이 오겠지.

 

 

꾸준히 배우고 있던 작곡은 선생님 사정으로 당분간 공부를 못하게 돼서

그 시간 동안은 기타를 배우기로 했다.

 

같은 악보인데 오선지에 익숙해서 그런지 기타 코드와는 호환이 잘 안된다. 

클래식 코드와 실용음악 코드가 같은데 이해하기에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내가 꽤 총명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걸로. 

 

이제 3개월에 접어든 기타지만 게으른 학생은 마음만 앞서고

내가 이러려고 기타를 배웠나 날마다 자괴감에 좌절하는 중.

 

그래도 언젠가 기타로 곡 한 곡은 써볼테다.

 

 

 

★ 너무 흔해서 놓치기 쉬운 오늘

 

2017년이 시작되면서 날씨가 너무 춥지 않고

 특별히 외출할 일이 없는 날은 어김없이 도서관으로 향한다.

가끔은 이른 저녁을 먹고 도서관으로 산책하러 가기도 한다. 

 책을 읽고, 원고를 쓰고, 자료 조사를 하고, 공부하고, 그림을 그린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저녁 10시,

주섬주섬 사람들이 가방을 챙기며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그제야 고개를 든다.  

 하루를 뿌듯하게 보낸 기분이 드는 그 시간이 가장 좋다.

 

도서관에서 많은 작업이 이루어 지다보니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 노트북에 키스킨을 씌웠다.

 

이 노트북으로 오사카, 교토 2권을 책을 썼고 그 외 수많은 원고를 썼는데

키스킨이 노트북의 열기에 이렇게 늘어져 버렸다.

 

나보다 니가 더 열일했구나.

새로운 키스킨으로 바꿨으니 앞으로도 열심히 아자!

 

 

서울 둘레길 걷기가 끝나고 너무 바빠서 운동과는 담을 쌓았고

감기로 인해 겨우내 꼼짝도 하지 못했다.

 

햇살 나른한 오후 2시, 다시 산책이 시작됐다.

모자, 장갑, 마스크까지 중무장하고 걷다 보면  영하 10도의 날씨도 견딜만하다.

겨울에는 이불 안이 가장 위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걷다 보니 모든 날이 그냥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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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전시 제목이었던

 '너무 흔해서 놓치기 쉬운 오늘'의

적당한 무게감이 좋다.

 

오늘도 별일 없이

일상을 살아내는 중.

 

2017년 1월에 쓰는 소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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