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Country/Portugal

파두(Fado)가 불러온 포르투갈의 기억

작은천국 2016. 12. 5. 06:30

파두(Fado)가 불러온 포르투갈의 기억

 

 

몸도 마음도 하릴없이 바쁜 요즘.

서점을 언제 갔는지 기억도 희미해진 지난 금요일.

을지로에서 일이 끝난 걸 핑계로 운동 삼아 광화문까지 걸었고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 지나간다고 교보문고에 들렀다.

 

여행코너에서 몇 가지 책을 훑어보던 중

어느 작가의 에세이에서 눈에 띈 파두(Fado)의 에피소드에 피식 웃음이 났다.

자신의 파두 이야기에 그곳은 파주에 있냐는 응답이 돌아왔었다는 에피소드를 적고 있었다.

 

순간,

자욱한 담배 연기에 질식할 것 같아 숨쉬기조차 어려워

노래를 듣는 것인지 담배 연기를 맡는 것인지

 정신이 몽롱해져 다른 세상에 가 있는 것 같았던 리스본에서 보았던 파두다.

 적어도 나에겐 담배 연기와 동의어로 여겨지는

파두의 기억이 어제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시간도 흐를 만큼 흘렀고 이젠 그곳의 추억도 희미해졌는데

기억이란 놈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미끼를 물었고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순식간에 끄달려 나왔다. 

 

 

오래전에 다녀온 포르투갈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참 잊을 수 없는 여행지 중 한 곳이다.

어느 여행지가 기억에 남지 않는 곳이 있으랴마는 그중 포르투갈은 서두에 자리를 잡고 있다.

 

포르투갈은 명실공히 내게 첫 번째 배낭여행이자 '여행'의 맛을 알게 해준 도시다. 

물론 그전에 일본, 캄보디아, 필리핀, 싱가포르, 홍콩, 유럽  5개국 등

몇 개 나라를 여행하긴 했지만 대부분 패키지여행이었던지라

관광이었기에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첫 여행이 바로 포르투갈이다.

 

산티아고 도보 순례가 끝나고 비로소 시작된 여행이 바로 포르투갈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버스로 약 3시간 포르투갈에서 맞이한 첫 번째 도시

포르투는 머무는 내내 비가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12월 초겨울 비 내리는 포르투는 참 황량하고 쓸쓸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비 내리는 포르투 곳곳을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다져진 걷기가 멈춰지지 않은 것도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약 35일간의 순례가 끝나고 나니

 허무함이 너무 커서 그 허무를 감당하지 못해

비 오는 거리로 나를 내몬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포르투에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곳과 미술관 박물관을 모두 찾아다녔지만

지금 내 기억에 남은 건 오직 비 오던 포르투의 거리밖에 남아 있지 않다.

 

오죽하면 포르투에서 리스본행 기차를 타는 날 아침에 비로소 비가 그치고 해가 나니

비 오던 포르투의 모습만 기억하고 가는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기차 역에 짐을 맡겨놓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까지 최대한 멀리 해가 뜨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그러다 결국 간발의 차이로 기차를 놓치고 괜한 짓 했다며 어찌나 자책했던지.

 

비 내리던 포르투를 잊어버려도 포르투에서 잊지 못하는 단 하나. 

2인실을 함께 사용한 룸메이트다.

 

2인실 숙소였지만 늦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혼자 방을 쓰게 되나 좋아했는데

밤 10시가 다 된 시간에 그녀가 왔다.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방해할까 봐 그녀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고

행여나 조금이라도 큰 소리가 난다 싶으면 연신 '쏘리'를 연발했다.

 

난 괜찮다고 했고 결국 난 읽던 책을 덮었고 그렇게 그녀와 이야기가 시작됐다.

 

리스본에 살고 있고 서점에서 근무한다는 그녀는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퇴근을 하고 포르투로 온다고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 주말마다 포르투 대학에서 강의를 듣는다고 했다.

 

퇴근하자마자 리스본으로 달려왔고 그래서 그 시간에 숙소로 들어온 것.  

 

그녀는 방해해서 미안하다며 배가 고프다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

이미 저녁을 먹은 뒤였지만 그녀를 따라나섰고 그녀는 맥도날드로 향했다.

맥도날드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시락국(맛은 거의 육개장) 같은 수프가 있었다.

 

온종일 비가 와서 눅진한 몸에 뜨끈한 국물 한 숟가락에 곁들인 그녀의 이야기들.

그녀와 함께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나는 그녀가 공부하는 학교가 멀지 않으면 가보고 싶다고 했고

그녀는 흔쾌히 자신의 학교로 나를 안내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미래와 자신이 하는 공부에 대한 열정은

쌀쌀한 비 오는 밤에 훈기로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두 눈은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내가 해외여행을 하면 사진을 많이 찍기도 하지만

만난 사람들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양해를 구하고

기념 사진을 찍오 두는데 그건 그녀 때문에 생긴 버릇이자 습관이 됐다.

 

여행이 처음이었던 나는 차마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고

내 사진만 찍고 그녀 사진을  남기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았다.

 

 

내내 비가 왔던 포르투와 달리 리스보아는 어찌나 화창하던지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볼거리들이 몰려 있는 벨렝지구로 향했고 어마무시한 규모의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omimos)에 기가 질렸지만

그 보다 더 놀란 건 인도항로를 발견한 바스코 다 가마의 관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대항해 시대 포르투갈의 위상에 새삼스러워졌고 세계사 교과서 안으로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몇 해 전 개봉한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리스보아 곳곳이 배경이라

영화 내용도 좋았지만 리스보아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던 영화였다.

 

리스보아의 일몰은 내가 살면서 본 일몰 중 단연코 최고였다.

 

 

그곳에서 발견한 대한민국.

 

그곳에 깃든 푸른 밤은 주황색의 일몰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리스본에서는 일부로 많은 이들이 함께 사용하는 도미토리를 숙소로 정했는데

세계 각국에서 모이는 여행자들과 함께 어울리며 알파마 지구 투어는 덤이고 일정 비용을 받고 저녁을 제공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처음 해보는 배낭여행이니 남들 하는 건 다 해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청춘들은 유쾌했고 거침이 없었다.

 

내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청춘을 누리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이 부럽진 않았다.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보낸 내 청춘에 슬며시 건배를 건넸다.

 

그날 저녁, 요리사였던 그는 내게 저녁 식사가 끝나면 파두 공연을 보러 갈 건데 가겠느냐고 했다. 

 

파두 공연을 보고 싶다 생각은 했지만 '산티아고'만 생각하고 급하게 떠났던 여행은

포르투로 리스보아로 몸은 옮겨 다니고 있지만 정작

그곳에서 뭘 할지는 계획을 세우지 못했기에 파두 공연이 솔깃해진 건 당연지사. 

 

그렇게 해서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에 우리는 어두컴컴한 골목을 이리저리 걸어 파두 공연장에 도착했다.

포르투갈에서도 유명한 파두 가수는 모두 이곳을 거쳐 갔다고 했는데 공연장이라기보다는 선술집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유명한 곳이라고 했는데 혹시 모르겠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그녀가 이곳에서 노래했는지는.

 

 

영화 '목로주점'에 등장하는 딱 그런 분위기의 술집.

담배 연기가 너무 자욱해 사람이 실루엣으로 보이는 그런 술집.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가게 안의 불은 모두 꺼졌고 칠흑같은 어둠 속에 파두가 불린다.

 

기분이 묘했다.

노래를 듣고 있는 건지 담배 연기를 마시고 있는 건지 머릿속은 몽롱해졌다.

 

파두 가락이 흐느적거리면 흐느적거릴 수록 정신은 더 혼미해졌고

숨이 막힐 것 같은 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채 1시간이 되지 않아 겁도 없이 혼자 숙소로 걸어왔다. 

 

 

다음 날 구시가지인 알파마 지구로 투어로 나섰다.

외국인, 특히 여자 혼자서는 위험하니 절대로 혼자 다녀서는 안 된다는 알파마지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지라

그들과 함께 다니면서도 혹시나 싶어 내내 살짝 긴장 모드였던 알파마 투어.

 

골목 이곳 저곳을 걷다가 파두를 발견.

어제 왔었던 그 거리라는데 그곳은 아니라고 했던 것 같다.

영화에서나 보던 2차 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뒷골목 같았던 곳인데 달라도 너무 다른 낮과 밤.

 

어디선가 들리는 파두소리.

골목에서 포르투갈 기타와 클래식 기타의 반주에 맞춰 가녀린 그녀가 파두를 부르고 있었다.

 

분명 낮인데 칠흘같은 어젯밤으로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흐느끼며 가슴 밑바닥에서 쥐어짜듯 이어지는 질긴 노래 파두.

부두 노동자 뒷골목 인생을 담고 있다는 파두는 찬란한 슬픔을 품고 있었다.

 

리스보아 뒷골목에서 우리의 아리랑과 정서적으로 묘하게 닮은 파두는 그렇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일주일을 보낸 포르투갈인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포르투갈의 추억은 생각보다 질기다.

 

처음이라 모든 것이 신기했을 법도 한데

스페인 북부를 35일 걷고 나니 에너지가 가라앉아 있어

그저 억지로 이곳저곳 다녔다 기억하고 있던 포르투갈.

그게 전부는 아니었나 보다.

 

파두에 이끌려 나온 추억은 생각보다 힘이 세고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기억 속에 꿈틀거린다.  

 

포르투갈어로 파두(fado)는 '운명', '숙명'을 뜻한다고 하는데

또 어떤 파두가 나를 기다고 있을까 파두의 기억으로 파두를 붙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