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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시민이 함께 한 3차 촛불집회 역사의 현장

작은천국 2016. 11. 14. 06:30

백만 시민이 함께 한 3차 촛불집회 역사의 현장

 

 

지난 11월 12일 전국 각지의 수많은 사람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26만이라는 공식발표였지만 시청에서부터 광화문을 걸어 내자동 로터리까지

이동하면서 본 사람들은 족히 백만은 훌쩍 넘겠구나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모였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큰 획을 그었던 1987년 6.10 민주 항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여든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들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2016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지극한 평범한 시민인

나 역시 그런 이유로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에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였기에

혹시라도 분위기가 과열되면 '백남기 농민 사망'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살짝 겁이 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건 모두 기우였다.

이미 경찰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람이 광장에 모였지만

평화 시위를 외치며 시민들은 차분했고 질서정연했으며

민주주의 축제의 장을 즐겼다.

 

 백만 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미미한 힘이지만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망하는 성숙한 시민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주말이었지만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 대충 바쁜 일을 끝낸 다음 오후 5시경 시청역에 도착했다.

대학로, 광화문광장, 청계천, 서울시청광장 등등 곳곳에서 좀 더 나은 미래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기에

시청역 일대 9번, 10번 출구 외에는 모든 출구는 통제됐다.

 

시청역 10번 출구로 나가니 맙소사 -

 

설마 이곳까지 이러고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는데 서소문로에도

 사람들로 가득 들어차 있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니 처음에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어느 해 타종을 보러 종각에 나갔다가 압사 사고가 일어났고 그때 현장 가까이에 있었다.

나 역시 사람들에 떠밀려 스스로 몸을 통제할 수 없었던 트라우마가 있기에

 스스로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피하게 된다.

 

문득 사람들에 떠밀려 숨을 쉬기 힘들었던 그 날의 공포가 밀려왔고

오늘만은 어떤 이유로도 사람들이 다치는 사건 사고가 없이 평화적인 집회가 되어야 함이 더욱 절실해졌다.

 

광장에 모인 대부분의 시민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시청 광장으로 가기 위해 서울 시립 미술관을 지나 대한문 쪽으로 가니 이쪽도 사람들로 막힌 상태   

 

 

 시청역 10번 출구로 되돌아가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한참 서울시청광장에서 노동자 대회가 열리던중이라 인파때문에 한 발짝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겨우겨우 대로변으로 따라 덕수궁을 향해 걸었다.  

 

 

조직적으로 참석한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평범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참석한 사람들도 그에 못지않았다.  

 

 풍자와 해학을 담은 피켓은 물론이고 아이디어 넘치는 것들이 많았는데 '그만두유'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국산 퇴진 콩이 함유된 '그만두유'는 무료 배포.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광장에는 하나 둘씩 백만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노동자 대회가 끝나고 참석한 각 단체는 남대문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고  

 

 공간이 생긴 틈을 타 광화문 광장으로 걸었다.

 

공영 방송에는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는 역사의 현장을

 온종일 오마이 TV가 생중계를 하는 중이다.

 

이번 집회에 참여한 수많은 중.고등학생들도 손에는 촛불과 피켓을 들고 행렬을 맞춰 걷고 있는 중.  

 

 

얼마나 걸었을까.

광화문 광장은 가지도 못했고 이순신 동상이 저 멀리 보이는 곳에 멈춰 섰고

앞에서 순서대로 앉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다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후 2시에 진행을 맡았던 방송인 김제동 씨가 7시가 조금 못된 시간 무대로 올라왔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이후 김미화 씨 등등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촛불문화제가 시작됐다.

 

 이미 경찰에서도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몰린 상황이었고

조직적 참가뿐 아니라 자발적 참가한 시민들이 많았기에 통제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 많은 인원을 관리할 수 있는 집행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 일측촉발의 상황이었지만

사람들은 차분히 줄을 맞추고 질서를 지키는 등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현장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전부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강한 연대의식을 느끼며 서로를 격려했고

새로운 민주주의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는 뿌듯함이 가득한 축제의 현장이었다. 

 

단상에서는 각계각층의 대표들이 올라와 자유발언, 노래, 자유발언, 노래 순으로 진행이 됐다.

중간중간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진행자의 구령에 맞춰 백만 촛불 파도타기도 여러 번 실시했다.

 

비디오 머그의 백만 촛불 파도타기는 현장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영상을 보면서 괜히 울컥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조금 빠져나가기도 했으나 빠져나간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으로 광장은 채워지고 있었다.

거의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촛불 행사였는데 끝나는 순간까지도 흐트러짐 없이 질서정연함을 이어갔다.

 

가장 백미는 마지막 순서였던 개념 가수인 이승환 씨의 공연.

백만 촛불의 현장은 이승환 씨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그의 노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을 떼창으로 부르면서

사람들은 심각하고 무거운 분노의 장이 아닌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이승환 씨의 공연이 거의 끝나갈 즈음

앞쪽의 상황이 궁금해서 다시 광화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광화문 일대에 모인 사람들의 풍경을 지미집 카메라가 담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 입구에 세워진 모니터가 있어 한참 뒤쪽에 앉았지만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모였기에 인터넷은 먹통이 됐지만

간혹 연결될 때마다 뉴스를 모니터 하고 있었기에 남대문을 지나 서울역까지

그리고 광화문 광장과 시청광장으로 이어지는 사이 도로까지 사람들이 모였다는 걸 알았지만

실지로 눈으로 보니 어마어마했다.

 

일찌감치 보았던 서소문로를 비롯해 율곡로, 세종대로, 새문안로, 청계로 등

모든 도로와 사잇길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드디어 도착한 광화문 광장에는 더 많은 사람으로 한가득 -  

 

 

광장에 앉은 사람 외에도 세종문화회관 대로변과 사잇길로 사람들로 꽉꽉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으니 화장실을 어떻게 하나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박원순 서울시장은 촛불집회가 이뤄지는 일대의 공공건물의 화장실을 모두 개방했고

곳곳에는 화장실과 대중교통을 안내를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돕고 있었다.

 

 

세종문화회관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가 경복궁 앞 상황이 궁금해 광화문 뒷길을 이용해 내자동 로터리로 향하던 중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스쳐 가는데  문재인 대표를 한 눈에 알아보는 눈썰미!!

 

오늘 집회 현장에는 친오빠네와 함께 참석했는데 오빠는 대선주자 1위 후보가 경호원도 없이

저렇게 자유롭게 다닐 수가 있는 것이냐고 반신반의했을 만큼

누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소탈함으로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물론 경호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경호원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는 게 맞겠다.

 

악수라도 청하고 싶었으나 용기를 내지 못하고 빠른 발걸음으로 따라가고 있었는데

경호원이 없다는 오빠의 말을 옆에서 들은 경호원은 미소 지으며

자신이 경호원이 맞다고 했고 사진 찍고 싶으면 찍어도 된다고 했다.

 

지난  대선 때 KBS 시민 기자로 대선 현장을 취재했던 적이 있었는데

후보자 연설 녹화 및 대선 토론 등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문 대표님을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때 분장하던 모습 등 아주 사적인 사진들도 가지고 있다.)

그때 보았던 소탈하고 수수하고 격이 없던 문재인 대표의 모습은 참 인간적이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때의 경험도 말씀드리고 몇 마디를 나누었다.

오빠네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기도 했고

이동 중이었기에 사진을 찍는 행운은 오직 우리에게만.

 

대략 손을 잡아 보면 느낌으로 알게 되는 게 있다. 

그 사람이 어떤 길을 걸어온 사람인지.

 

역시 생각했던대로 달님이었다.

 

달님의 보드랍고 따뜻한 온기는 참 오래도록 남았다. 

 

 

다시 길을 걸어 내자동 로터리에 도착하니 행사가 끝난 사람들이 속속 내자동 로터리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번 집회에 법원은 사상 유례없이 한 번도 허용된 적 없는 율곡로와 청와대 입구까지 행진을 허용했다.

경찰도 법원도 '민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고나 해야 할까.

백남기 농민의 사망으로 달라진 경찰의 태도도 씁쓸하다.   

 

 

 광화문, 경복궁, 인사동을 나오게 되면 내자동 로터리 근처에 있는 사직동 버스 정류장을 이용하기에

차가 다니지 않는 걸 알면서도 이쪽 상황이 궁금해 일부러 이곳까지 걸었다.

예상대로 청와대가 시작되는 내자동 로터리는 전부 차벽으로 가로막혔다.

 

 

차 벽은 사람이 전혀 지나다닐 수 없도록 딱 붙었다.

지나가던 시민이 안쪽 상황이 궁금해 들여다보고 지나간다.

 

오후부터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인근 시장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나오는 길.

버스 위에는 경찰들이 올라가며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하며 다소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됐다. 

 

 또 다른 쪽에는 시민들이 올라가 있고  이 상황을 보도하기 위해 기자들 역시

 버스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기사 송고를 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분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시민들은 '평화 시위'와 '내려와'를 외치며 합법적인 평화시위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

이미 집으로 가는 마지막 전철은 끝났지만 중간기점까지라도 움직이기 위해 경복궁역으로 들어가니

전경들에 의해 출구는 봉쇄된 상태였고 일부 시민들은 전경을 향해 항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또 다른 시민들은 전경이 무슨 죄냐며 이들도 마음은 우리와 같을 것이라며

때아닌 토론의 장이 펼쳐지며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끼리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었다.

 

도로가 완전히 차단돼 경찰들도 지하철로 이동하는 상황이었는데

지나가는 전경이 나와 부딪혔고 전경은 이내 "미안하다'고 했다.

"괜찮아요. 고생이 많으십니다."고 진심을 담아 답했다.

앳된 얼굴의 전경은 물기 어린 눈으로 슬픈 미소를 지으며 경찰 일행들과 서둘러 내 시야를 벗어났다.

 

실로 엄청난 사람이 모였지만 강제진압이 없다면 충분히 평화적으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이번 11월 12일의 민중 총궐기였다.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청와대를 향해 한목소리로 외쳤지만

이것으로 인해 시민이 원했던 방향으로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기에.

그러나 언제나 시작은 작은 촛불 하나다.

비록 작은 촛불 하나지만 그 하나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 믿는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상 또 한 번의 멋진 기록으로 남을 날에

백만 촛불 중 하나의 촛불을 들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그게 오늘을 사는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것을 했을 뿐이다.

 

또한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일상을 잘 살아내는 것 역시 촛불 하나 못지않다.

 

이번 집회에서 탄생한 김제동 씨의 또 하나의 어록처럼

"지난 3년 반 동안 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우리를 신경 써주지 않았음에도

 대한민국이 3년 반 동안 이어졌다는 건 이 땅의 주인이 시민 여러분이라는 게 증명된 것"처럼 말이다.

 

역사는 느리지만 조금씩 천천히 좋은 방향으로 진보하고 있는 것이리라.

 

소수의 숫자가 연행되긴 했지만 큰 사건 사고 없이 평화적으로 시위가 마무리 되어

더욱 의미가 깊었던 11월 12일의 3차 촛불 시위.

 

모두 애많이 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