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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청첩장]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작은천국 2016. 9. 30. 07:00

[책 청첩장]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이 책은 우리의 결혼 선언을 대신할 것입니다."

 

 

이 책을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계절에 나에게로 왔다.

박연준 장석주 에세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지난주부터  나는 서울에 없어야 했다.

몇 달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 성사단계에서 틀어지고 나니 그날을 위해

모든 스케줄을 조정해가며 시간을 비운 것이 무용지물이 됐다.

 

허탈한 마음에 도서관 서가대를 기웃거리다 우연히 제목에 꽂혔다.

장자와 노자를 300번 이상을 읽었다는 장석주 시인의 책.

 

『그 많은 느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자신이 해석하고 있는 장자의 사상을 배경으로 쓰인 시인의 산문집은 예사롭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다른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에세이나 산문집은 거의 쳐다보지 않았다.

원래가 한 작가만 파는 스타일도 아니고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두서없는 책을 읽는 스타일은

많은 독서량도 아니거니와 책 제목은 그렇다 치더라도 작가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장석주'라는 세 글자는 책을 몇 장 넘기지 않아 바로 각인됐고

그건 순전히 장자때문이었다.

 

여러 가지로 지치거나 마음이 힘들 때 늘 장자의 글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기에

이 사람이 쓴 다른 책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책은 꼬리를 물었고 공저인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가 나에게로 왔다.

두께에 비해 다소 가벼운 무게 재질도 좋았고 무엇보다 두툼한 책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어릴 적 교과서를 받으면 달력을 찢어서 책 표지를 씌웠었는데

딱 그 느낌이 든 책이라니!

 

 

표지를 펼치면 시드니 산책코스가 그려진 지도를 만나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공공도서관의 책은 표지를 펼칠 수 없도록 봉인이 되어 있었다.

 

공저인 줄 알았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니 다소 황당했다.

이름 때문에 남자인 줄 알았던 박연준 작가는 여자였다.  

 

게다가 책의 첫 머리말에 이렇게 적고 있다.

 

" 이 책은 우리의 결혼 선언을 대신할 것입니다."

 

'뭐야. 무슨 책이 이래' 다소 황당한 마음으로 책을 휘리릭 넘겨보니 

정확히 반을 갈라 높은 책의 앞부분은 박연준 작가가, 뒷부분은 장석주 작가가 집필했다.

 

작가 프로필을 살펴보니, 그들의 작업에 관한 이야기 외는 별다른 정보가 없어서

딱히 사생활이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면서도 도대체 왜 이런 책이 나온 건가 궁금증을 참지 못해 검색해 본 결과,  

두 사람은 엄청난 나이 차를 극복하고 오랜 연애 끝에 시드니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결혼을 했고, 이 책이 그 청첩장을 대신한다고 적고 있었다.

 

거참, 책 콘셉트치곤 독특해도 너무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첩장답게 여자는 홍색을, 남자는 청색을 선택했고

이 책은 그 둘을 청실홍실로 엮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박연준 시인의 글은 독특한 감성이 있었고, 미시적이고, 은유적면서도 직접적이고

장석주 시인은 거시적이고 직설적이면서도 간접적이었다.  

 

박연준 시인의 글은 감성적인데 제목은 딱딱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 비해 직접적인 느낌을 받았던 장석주 시인의 경우 글과 달리 제목에서는 행간에 많은 공간을 넣고 있었다.

장석주 시인의 다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장자의 기운일 수도 있겠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박연준 시인은 시드니에서 느끼는 사실적인 소소한 감정을 풀어 놓고 있다면

장석주 시인은 소소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는 한두 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박연준 시인에게 가면 한 페이지 분량이다.

 

이러니 장석주 시인의 행간의 의미를 박연준 시인을 통해 느낀다고 해야 할까.

문제는 장석주 시인의 이야기가 뒤에 나오다 보니

 이미 읽은 박연준 시인의 책을 다시 돌아가서 보게 하는 묘한 책이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각자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이야기는 전혀 달랐던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오! 수정』처럼 말이다.

 

 여자는 남자가 오페라 하우스에 뮤지컬을 보러 가서 졸았다고 쓰고 있지만

 

그 남자가 졸았다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뮤지컬의 내용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은 그들의 시드니 생활을 풀어 놓는 것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공통점을 보이지는 않는다. 

 

대신 그들이 주목하고 있는 대상은 다를지언정 

상당 부분 많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

 

처음 본 생소한 단어 '소요자' 

 

박연준 시인의 글에 등장하고 있는 소요자가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지만 읽는 흐름이 끊길 것 같아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장석주 시인의 글에서 풀이를 발견하고 나니 현상학적인 교집합이 너무 적다고 생각했던 것이 좀 머쓱해졌다.

 

이들이 시드니에서 1년을 보내면서 일어난 일상의 잔잔한 에피소드들은,

혹은 같은 교차점에 머무는 소재가 있느냐 없느냐는 이 책에서 그리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걷기'에 있다.

처음엔 자세히 보지 않았는데 작은 표시로 '걸어본다 07 시드니'라고 적힌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박연준 시인의 걷기

 

박연준 시인이 소소한 일상과 JJ를 더러 언급하고 있는 것과 달리

장석주 시인은 P의 언급은 드물고 많은 부분 걷기에 대해 할애하고 있다.

 

 

 

거의 마지막 부분 장석주 시인이 적은 문장에서 절로 무릎이 탁!

 

시드니를 걸으면서 맛있는 빵인 양 뜯어먹었다.

 

 

약 십년 전 시드니를 다녀왔다.

조용필 님의 호주 공연이 있었기에

여행보다는 '공연을 보기 위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차에서 내리라면 내리고 타라면 타는 공연 목적의 패키지여행이니

 그저 TV 화면에서 본 시드니를 갔다 왔다는 정도일 뿐 큰 감흥은 없다.

하지만 보지도 못했던 블루 마운틴만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블루 마운틴에 갔을 때 안개가 너무 심해서

본 건 오직 안개였을 뿐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돌아왔는데도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희한하게 포르투갈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내가 시드니를 따라 걷는 게 아니라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포르투와 리스본을 걷는 것 같았다.

 

 '날마다 발바닥이 열감으로 더워지고 발목이 시큰거리도록 걷는다.

이 걷기엔 어떤 도착점도 없다. 여기를 저기로 잇는 길들은 경유지이며 경유지를 거쳐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산책자는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제 과업을 마친다.'

 

장석주 시인이 적고 있는 것처럼 포르투갈에서 나 역시 그랬다. 

 

관광지를 찾아간 것도 아니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간 것도 아니요,

유명하다는 맛집을 찾아간 것도 아니었다.

 

출발할 때 도착지점이 있었던 800km의 스페인의 산티아고와 달리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나자마자 포르투갈로 넘어오니

더는 내가 죽기 살기로 걸어가야 할 곳이 없었음에도 

나는 날마다 발바닥이 뜨끈뜨끈해지도록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때때로 멈춰 섰고 죽기 살기로 걸어야 했던 산티아고와는 또 다른 걷기가 거기 있음을 알았다. 

그렇게 멈춰선 그곳엔  한참동안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리스본 테주 강에서 바라 본 일몰

 

 

 

 

오후 8시가 되어도 환했던 날은 쉬 어두워졌고 저녁 6시가 되기도 전에 벌써 캄캄하다.

어둠의 시간은 2시간이나 앞당겨졌고 반소매에 드러난 팔뚝엔 써늘함이 와 닿는다. 

 

무얼 하기에도, 무얼 하지 않기에도 모호한 시간 오후 4시.

할 일 없이 심심한 시간을 보내는 며칠 동안 어김없이 그들을 따라 시드니를 걸었다.

 

그렇게 시드니를 걷다 보면 늘 마지막엔 한 가지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사랑이 뭘까.

  과연 사랑이 뭘까.  

 

 

책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그의 나쁜 점을 열 개 이상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한다.

좋은 이유는 말할 수 없고,

나쁜 점은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는데도

그 사람이 좋은 것.

비논리적이고 납득할 수 없는 사태'

 

 

과연,,,,

 

9월의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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