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nkook's Diary/Ordinary Daily Life

[2015년 6월 소소일기] 타이완 강의, 부산 그리고 메르스

작은천국 2015. 6. 23. 06:30

[2015년 6월 소소일기] 타이완 강의, 부산 그리고 메르스

 

 

 

지난 주에 '자유 여행객을 위한 타이완 여행 강연회'가 있어 부산을 다녀왔다. 

타이완 관광청에서 주최하는 강연회는 5월 서울, 6월 부산

이렇게 2차례 이미 4월에 스케쥴이 확정이 되었다.

 

그때만 해도 6월 부산 강의때 부산 여행도 좀 하고 부모님댁도 다녀올 예정이었다.

허나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메르스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늘 울산에서 하차했던 몸이 기억하는 KTX.

울산에서 1시간 조금 더 가야하는 부산.

 

1년 넘게 책상에 앉아 있던 습관은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여전히 목 통증을 동반한다.

그나마 다행은 이제는 2시간여 정도는 견딜 수 있게 되었지만

모처럼 부산까지 장거리 여행은 목 통증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부산역 도착하니 대합실에 타이완 관광 안내판이 엄청 크게~

꽃보다 할배로 대박터진 타이완은 수도인 타이베이 뿐 아니라

이란, 타이중, 타이난 등등 타이완 곳곳의 다른 도시들까지 여행이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타이완의 매력이 우리 나라사람들에게 덜 알려지기도 했고

타이완이 직접 가보면 기대이상의 만족감을 주는 도시라는 점도

타이완이 한 번의 여행에서 끝이 아니라 자꾸 찾게 만드는 나라인 듯하다.

 

서울역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한산해도 너무 한산한 부산역.

평일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한산함이 절로 느껴졌다.

 

부산에서도 메르스 감염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곳곳을 다닌 통에

서울에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다닐 정도로

시민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대합실을 나서는 순간,

부산오뎅과 승기찹쌀씨앗호떡의 매장이 바로 입구에!

 

비로소 부산에 도착한 걸 실감한다.

 

 

부산을 한번도 가보지 못한 서울친구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산은 바다를 끼고 있으니 부산역에 나가면 바로 바다가 보이겠다. "

 

부산친구들에게 이런 서울친구의 이야기를 전했다.

 

"문디 가스나 미쳤나? 부산이 어디 코따까리 만한 줄 아나?

우리 집에서도 해운대갈라면 1시간 가야한다.

그라고..서울 가시나들 참 희안하네..

 바다가 뭐 별 꺼가. 와그래 바다를 못 봐서 환장하노 "

 

이번에 부산에 출장을 간다고 했더니 서울의 지인들이 이렇게 말했다.

"기분도 계속 축 쳐진듯 한데 부산가면 바닷바람 좀 쐬고 와"

 

사실, 바다도 좋아라 하지만 요즘은 바다보다는 '산' 이 좋아진 여자다.

바닷바람이 전혀 감흥이 없다. 차라리 '산'에 가고 싶다고!!!

 

지인들의 부러움과 달리 애초부터 바다는 계획에 없었지만  

쨍쨍한 서울과 달리 하루종일 우중충한 부산 날씨는

아예 바다생각을 안드로메다로 날려주셨다. 

 

 

일본 여행의 고수인 지인이 일본 책과 관련해 자신의 오랫동안 모았던 자료들을

아낌없이 공유해주었기에 관련자료도 돌려주고 감사인사도 할겸 B를 만났다.

 

 내가 밥을 사도 시원찮을마당에 '손님'이라고 B가 번개같이 달려나가 계산을~

 

B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벌써 5년 전.

B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사투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부산' 출신인줄 몰랐던 B.

부산 남자를 만나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 그녀는 부산아지매였다. ^^

 

밥 한끼는 5년의 세월을 거슬러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시간을 허물었다.  

무려 5년 만에 만난 B였지만 어제 본 사람처럼 낯설지 않은건,

인터넷 공간을 통해 그녀의 삶을 만나고 있다는 것도 무시하지 못하리라.

 

늦은 점심을 먹고 강의 장소인 중앙역에 도착했다.

중앙역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해내고 있는 곳이다.  

강의 시간까지 약 2시간 정도 남아 중앙동 일대를 설렁설렁 걸어다녔다.

 

이 일대는 국제시장과 남포동, 자갈치시장, 용두산 공원 등등이 위치하고 있어 

 하루 혹은 반나절 관광이 가능한 곳이다.  

 

물론 이곳은 아주 옛날에 이미 다 다녀봤던 곳이라 새삼스러운 곳은 아니었지만 

그때와 달리 이곳은 40계단 문화관광 테마거리로 조성되어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또한  40계단 문화관도 만들어져 있는데

문화관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몰려든 피난민들이

힘든 시절을 살아냈던 애환을 볼 수 있어 새삼스러웠다. 

 

40계단 문화관과 접하고 있는 부산의 인쇄골목.

서울 충무로의 그곳에 비해 소박한 골목은

한눈에 보아도 예전보다 많이 쇠퇴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골목을 걷는 동안 어디에선가 덜덜덜거리며 

 윤전기가 돌아가는 소리에서는 산뜻한 기계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고 있어 반가웠다.

 

인쇄골목과 연결되어 있는 언덕쪽으로는 좁은 골목이 구비구비 이어진다. 

일제 강점기때 적산가옥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피란민시절의 골목과 집들이 그대로 남아 시간이 멈춘 곳 같았다.

거리갤러리 미술제를 통해 낡은 골목에는 설치미술을 비롯해 벽화가 그려진 것이 몇 해전.

 

 주민들외에 찾지 않았을 남루한 골목이 미술을 통해 새단장 후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으리라.

 

드문드문 외국인도 보이고 관광객들도 많지는 않지만 메르스 사태에 평일임에도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빛 바래고 낡은 것은 그 빛바램과 낡음때문에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자본으로는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당장의 경제논리에 밀려 사라지는 많은 것들이 꿋꿋이 세월을 견뎌주길 바랄 뿐^^

 

시간이 좀 더 많았다면 인근의 근대박물관도 가보고 싶었고 오랫만에 보수동 헌책방에서 책도 좀 사려고 했으나

그러기엔 시간이 넉넉지 않아 1시간 정도만 둘러보고 강의가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강의 공지가 나가고 하루 만에 강의가 마감될 만큼 타이완의 인기는 여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강의 다음 날 타이완여행을 떠난 사람도 강의에 참석할 정도였다.

더불어 부산분들의 적극적인 태도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강의를 끝내고 분수쇼 작렬하는 부산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강의 시간 후 질문이 생각보다 길어지는 탓에 예정된 시간을 넘겨 기차 시간에 빠듯하게

도착한지라 헐레벌떡 기차타러 가기도 바빴다.  

 

기차에 앉고 보니 그제서야 생각난 배즙!

 

B는 강의 마치고 당 떨어질 듯하니 기차안에서 먹으라며 낮에 배즙을 챙겨줬었다.

그녀의 타고난 세심함은 늘 감동하게 된다.

 

처음 강의를 했을 때는 2시간 내내 혼자 이야기를 하고 나면 진이 다 빠졌는데

올해 들어 한 달에 한 번 여행 혹은 사진으로 강의를 계속 하고 있는데 

이젠 그것도 점점 익숙해지는 듯 하다.

 

배즙을 쫄쪽 빨고 있으니 피로가 일시에 눈 녹듯~

 

부산은 하루 종일 흐리기만 할 뿐 비는 오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 서울역에 도착하니 억수같이 비가 내린다.

오랜 가뭄으로 타들어 가는 농심을 조금이라도 적셔주기를 ~

 

그리고 어제 생각지도 않았던 택배가 왔다.

 

아직 허니버터칩을 못 먹어봤다는 내 말을 잊지 않고

B는 한국과 일본의 허니버터칩, 내 취향을 저격한 심슨 물통(심지어 직구!)과

숙면에 도움이 되라고 편백 베개까지..... 

 

아.. 무한 감동이다. 

 

짧게 다녀온 부산여행에

해운대를 가지 않았어도, 광안리를 가지 않았어도

 그 어느 때보다 오랫동안 부산을 기분좋게 기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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