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nkook's Diary/Ordinary Daily Life

[2015년 6월 소소일기] 5월, 장미와 어린왕자

작은천국 2015. 6. 1. 12:13

[2016년 6월 소소일기] 5월, 장미와 어린왕자

 

 

정확하게 2015년의 반으로 향하고 있는 요즘 

눈치없이 이어지는 한낮의 불볕더위는

어느새 여름으로 데려다 놓은 듯 하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은 온통 장미가 한창이었다.

 

 

넝쿨 장미가 필 때는 어릴적 고향집의 넝쿨 장미가 늘 생각난다.

화단에서부터 지붕까지 아치형의 구조물을 따라 줄장미가 가지를 뻗어나가며

지붕까지 뒤덮던 그 장미가 말이다.

 

그럴때 집 대문을 열어놓으면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죄다 참새 방앗간 들러듯 들어와서 꽃구경을 하셨다.

 

아버지는 그 장미꽃 아래 평상을 만들어 주셨고

장미꽃이 필때면 장미꽃을 하늘삼아 온 식구들이 평상에 둘러앉아

끼니때마다 밥을 먹었고 그곳은 안방이나 진배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상암 곳곳에도 이맘때는 넝쿨장미가 지천으로 피어난다.

 

이 넝쿨장미를 보면 어린 시절과 함께 늘 '어린왕자'를 생각하게된다.

하나 밖에 없는 장미와 문제가 생겨서 지구로 온 그 어린왕자를 말이다.

 

날씨가 더워지니 공원에는 사람들이 벌써부터 천막을 치기 시작한다.

 

 

평화의 공원 구석까지 사람들이 잘 안 찾는 공간이 있었다.

정말 한적하고 한가로워 도심에 살면서도 시골같은 정취를 가진 곳이었다.

적어도 몇 년전까지는.

 

그런데 어느새 이곳까지 텐트족들이 밀고 들어왔다.

한 여름이 되면 발딛을 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텐트가 들어찬다.

 

어쩌면 그늘이 없는 한강보다 나무가 많아 그늘을 만들어주는 이곳이 더 인기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거의 없는 오전시간을 이용해 한동안은 이곳으로 산책을 다녔더랬다.

물론 재작년의 일이다.

녹음이 더 짙어지기 전에 넝쿨 장미가 핀 길을 걸어 공원으로 갔다.

그늘을 만들어주는 큰 나무아래 자리를 잡았다.

 

일전 북한산 원효봉 등산을 갔을 때 미니 의자를 하나 샀다.

바로 이럴려고...

 

그리고 내가 앉을 돗자리와 읽을 책 몇 권도 함께.

 

아직은 공원이 조용한 편이어서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소리도 들린다.

 

오랫만에 어린왕자를 꺼내 들었다.

1990년에 구매한 문고판인 어린왕자는 이젠 헤져서 너덜너덜해졌다.

그 많은 손을 많이 탄 책이기도 할테다.

 

어린왕자는 읽을 때마다 늘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문고판으로 읽기도 쉬운 책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라 쉬 책장이 넘어가는 책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리고 읽을 때마다 같은 문구에서 멈춰 서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문구에서 멈추게 된다.

 

 

 

'길들임'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면

지금 다시보니 '관계를 맺는다'는 것, 그것은 '참을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고.

 

여전시 네 시에 온다면 세 시부터 서서히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기다림의 한 시간 동안 곱게 단장하는 마음에 가 닿았다.

 

어린 왕자에서 늘 감동받는 한 문장은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항상 이 문장에서 멈추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밑에 문장으로 가 닿았다.

 

"내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그 시간이다. "  

 

그리고 언제나 클라이막스를 지났다고 생각해 대충 넘겼던 마지막 페이지.

 

<어린왕자>는 마음의 눈, 영혼으로 눈으로 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보석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어린들은 절대 보지 못한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말이다. 

 

오늘 다시 만난 어린왕자는 또 새로웠다.

자신이 '길들인' 장미가 장미를 위해 쏟은 '시간'때문에

 5,000송이 장미 보다도 더욱 특별한 하나의 '장미' 였다.

그리고 오늘 밤도 누군가는  밤하늘에 빛나는 5억개의 별을 보며

'관계'를 맺은 어린왕자를 추억할 것이다.

 

한때는 어린왕자가 너무 외로워 하루에도 해가 48번이나 지는 것을 봤다는 걸

격하게 공감하던 그때,

소행성 B612호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 생각을 하면 늘 조금은 슬펐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신의 고독이 있음이고

그 고독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어쩌면 어린왕자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는 자신이 시간을 쏟은 아주 특별한 장미도 있지 않은가.

 

덩달아 늘 슬픔이 차오르던 어린왕자였지만

한뼘 가벼워진 듯하다.

 

마음에 바람이 분다.

파도처럼 그림자가 일렁였다.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하는 6월이다.

 

5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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