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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여행] 금빛이 아니어도 좋다. 은각사(銀閣寺, 긴카쿠지)!

작은천국 2015. 2. 16. 06:30

[교토여행] 금빛이 아니어도 좋다. 은각사(銀閣寺, 긴카쿠지)!

 

 

 

금각사(金閣寺, 킨카쿠지)와 모든 것이 닮아 있는 은각사(銀閣寺, 긴카쿠지)!

 

은각사 역시 교토를 대표하는 선종사원으로 금각사와 많은 부분이 비슷하게 닮아있다.

하지만 자세히 알고보면 금각사와는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 곳이

바로 은각사이다.

 

지난 번 포스팅에서는 금각사를 둘러봤으니

오늘은 은각사를 둘러보자~

 

혹시 금각사가 궁금하다면 지난 번 포스팅을 꼬옥~ 읽어 보시길 ^^

 

  • 금빛 찬란한 금각사 그 치명적인 매력 속으로

(http://blog.daum.net/chnagk/11264850)

정식이름인 로쿠온지(鹿苑寺 대신

거울담은 연못한가운데 위치한 금각으로 인해

금각사(金閣寺, 킨카쿠지)로 불리고 있다.

무로마치 막부의 3대장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별저로 조성한 공간으로 3층 누각은

귀족주의 + 무가식 + 선종이 혼합된 양식으로 

초기 무로마치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은각사와 금각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은각으로 불리고 있는 관음전이다.

은각사로 불리고 있으니 은박의 건물일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보시다 시피 옥칠의 목조 건물이다.

 

원래는 금각사를 모델로 삼은 곳이기에 은각으로 장식할 예정이었으나

그 시절에는 건물 전체를 장식할 만큼 은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뿐더러

 결정적으로 오닌의 난으로 은각만 남기고 모두 불에 타버렸고

이후 다시 복구되면서 그냥 그대로 남게 됐다.

 

화려한 금각과  다소 수수한 은각은 완전히 대비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은각사는 은각만의 매력으로 중무장하고 있으며

우리가 일본 문화로 정의하는 대부분의 것들의 출발이 바로 이곳 은각사라고 봐도 좋겠다. 

 

속세의 금빛만으로 비교할 수 없는 정신문화가 녹아 들어 있는 곳이기에

금빛이 아니어도 매력이 넘치는 은각과 은각사였다. 

 

 

그러보고니 금각사와 달리 은각사는 교토를 갈때마다 빠지지 않고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다.

 

금각사로 향하는 길은 한 군데 밖에 없는 것과 달리

은각사의 방향은 여러 곳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봄, 여름과 달리 교토의 길에 익숙해지고 나니 가을에는 다른 길로 가보고 싶어졌다.

 

마침 철학의 길에서 한 골목 위쪽으로 위치하고 있는 단풍명소인

호넨인(法然院)을 가보고 싶어 호넨인을 구경하고 난 다음 

호넨인에서 은각사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은각사로 향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철학의 길을 따라 가다 은각사로 들어가기에

골목길에는 관광객들은 아무도 없었고 호젓한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니

은각사 바로 코 밑에 도착했다.  

 

 

시끌벅적한 상점가 거리가 아닌 호젓한 골목길로 들어선 은각사는

지금 생각해보니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은각사의 정문 역시 선종의 정문을 부르는 이름인 총문으로 불린다.

카리스마 넘치는 금각사 입구와 달리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와 닿는 은각사이다.  

 

 은각사 중문까지 이르는 약 50m의 참도는

키 높이를 훌쩍 넘기는 생나무 울타리로 꾸며져 있는데

이 역시 은각사를 더욱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장치인 듯 하다. 

 

 참고로 은각사는 오전에 가면 노출차가 심해서 좋은 사진을 얻기 힘드니

사진이 목적이라면 오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참도를 지나면 매표소가 위치하고 그 옆으로 중문이 있다.

이 중문을 통과하면 은각사 경내로 연결된다.

역시 한글 안내판이 ^^

 

금각사와 마찬가지로 입장권이 부적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보배가 있는 관문이란 이름을 가진 보처관(寶處關)을 지나면 모래정원과 본당이 펼쳐진다.

일본 절에서 이런 모양의 창을 종종 보게 되는데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선종사원 건축양식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금각이 아무런 준비없이 훅! 하고 나타나는 것과 달리

 

은각은 상상력을 키울 시간적인 여유를 주고 있다. ^^  

 

 

 

보처관을 지나면 정면으로 정전이 보이고 모래정원인 은사탄이 

정전앞에 바다처럼 펼쳐져있는데 이 모래 정원이야 말로 은각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단아한 은각사의 건물들과 달리 은사탄은 무척 화려한 느낌을 받게된다.

옛날에는 기하학적인 직선과 동심원으로 좀 더 단순한 모양이었다고 하나  

은각사를 재건하면서 에도시대에 은사탄과 향월대가 추가되어 

처음과 달리 화려한 느낌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모래정원의 한쪽에는 180cm 높이의 원추형의모래산인  향월대가 위치한다.

모래정원에 비치는 달빛을 감상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후지산을 상징한다고. 

 

 

방장에서 앉아 은사탄과 향월대 넘어 사선으로 들어오는 은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넋을 놓고 모래정원을 바라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파도가 일렁이는 착시현상마저 감도는 하얀모래와  

 검은 옻칠의 은각의 단아한 모습이 어우러지는 모양은

천하제일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평가받는 이유를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빼꼼히 열린 방장의 문틈으로 히끄무레 보이는 맹장지 그림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라고 하는데 그저 상상을 덧칠할 뿐. 

선 사상이 오롯이 담긴 방장의 현판,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으로 위안삼는다.

 

 

금각사가 지천회유식의 정원을 한 바퀴 돌면서 관람하게 되는데 

은각사는 물이 있는 정원대신  방장 앞에 펼쳐져 있는 모래정원을 따라 천천히 돌면서 관람을 하도록 되어 있다.

 

 

모래정원, 즉, 가레산스이 정원으로 내로라 하는 료안지도 있고

이런 종류의 모래정원을 교토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데 은각사의 모래정원은 유독 눈이 부셨다.

 

그렇게 방장앞에 앉아 눈부신 모래정원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몹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빛에 비치는 이 모래 정원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면서

왜 달빛이 비치는 밤에는 개방을 하지 않고 숨겨놓는 건지 몹시도 서운해졌다.

 

 

모래 정원을 따라 발길을 옮기다가 서운한 마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파도가 내 발 앞까지 밀며 따라오는 모양새에 아!!!~~~  감탄이 절로 쏟아졌다.

 

 

모래정원을 지나면 중앙에는 연못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서 방장과 방장 옆으로 나란히 위치한 동구당 건물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방장도 동구당도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

 

국보인 동구당의 북쪽에 위치한 다다미 4장만 크기의 동인재는

 이 절을 만든 요시마사가 문인과 예인들을 불러

문예를 즐기며 히가시야마 문화를 일궈낸 장소로 알려져 있다.

 

 

 특히 동인재는 일본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코노마 (서화와 꽃꽃이를 장식하는 공간)와

치가이다나(장식품을 놓기 위한 선반) 이 있는 집의 원형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내부 공간은 개방하고 있지않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점 역시 아쉽다.

 

도코노마가 궁금한 분들을 위해 기온에서 방문했던 마차야의 사진을 첨부한다.

일본 가정집에는 방바닥보다 조금 높은 단에 꽂꽂이를 해 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구조의 시초가 바로 은각사의 동인재이다.

 

가을이 되면 은각사는 울긋 불긋 멋진 단풍으로 사람마음을 또 한번 사로잡는다. 

 

연못 속에 내려 앉은 가을이 어른거린다~

 

정원 건너편에서 왼쪽 방향으로는 은각을 훨씬 가깝게 볼 수 있다.

 

 금각이 불에 타 재건된 것과 달리 은각은 처음 지어졌을 때 그 모양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유일하게 현존하는 무로마치 시대 건축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금각과 가장 큰 차이점은 금각이 3층 구조인것과 달리 은각은 2층의 구조다.

 

눈치챘겠지만 금각에 있던 1층의 귀족주의 양식이 사라진 양식을 은각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초기 귀족문화가 우세했던 것과 달리 선종문화가 점점 우세해졌고

5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다져진 무가사회는 무가의 생활패턴에 따라

 침전조의 건축이 아닌 서원조의 건축으로 이동했음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서원조 건축은 니조조를 보면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금각사와 마찬가지로 꼭대기에는 봉황 한 마리가 ~

 

정원을 한바퀴를 돌고 나면 계단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게 되는데

이 역시 금각사 구조가 똑같다.

 

어떤 사람들은 언덕을 올라가봐야 뭐 그리 볼게 있겠냐며 

곧장 은각쪽으로 향한 길을 따라 출구로 나가 버리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면 은각사를 반만 보고 가는 것이다.

 

그러니 꼭! 꼭! 계단을 따라 올라갈 것을 추천한다.

 

 온통 단풍이 든 은각사의 가을 풍경은 봄, 여름에는 느낄 수 없는 정취가 느껴지니 참 좋았다.

물론 금각사도 단풍나무가 많아서 가을정취가 남다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언덕에 서면 이렇게 발 아래로 천천히 은각사의 전체적인 풍경을 다시 한 번 조망하게 된다.

이러니 언덕을 오르지 않는다면 은각사는 반 만 본 것이다.

 

숲 안에 있으면 숲의 모양이 알 수 없다고 하더니

한 발자욱 떨어져서 바라보는 은각사의 모습은 또 하나의 절경이다.

그리고 저 멀리 교토의 풍경이 아스라히 펼쳐지는 것 또한 볼거리다.

 

 

금각사는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장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조성했는데  

은각사는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장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금각사를 모델로

은퇴 후 자신이 살 저택으로 평생을 공을 들여 조성한 곳이었다.

 

너무 어린나이에 권력을 물려 받은 요시마사는 외척의 드센 간섭을 받아야했고

막부는 혼란을 거듭하며 정쟁만을 일삼는 것에 환멸을 느낀 요시마사는

정치보다는 문화에 심취했고 예술가들을 적극 지원하면서 히가시야마 문화가 꽃피게 된다.

 

 요시마사의 정치적 무관심이 가져온 현실도피로 인해 막부정치는 더욱 혼란이 거듭됐고

설상가상 후계문제로 인해 결국 막부는 동군과 서군으로 나눠 피의 전쟁인 '오닌의 난'이 벌어지게 된다.

 

 약 10년 동안 오닌의 난으로 인해 교토는 불바다가 됐고, 

이때 모든 문화재들이 대부분 불에 타 없어졌으며

쇼군은 완전히 권력에서 멀어지고 무로마치 막부는 이름만 유지할뿐

일본의 중세사회는 대혼란기인 전국구시대(센카쿠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이처럼 이런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요시마사이다. 

 

결국 대혼란기로 인해 경제는 궁핍해졌고 이때문에

은각을 입히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고 옷칠의 상태로 미완으로 남았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이 미완을 두고  '부족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와비사비(わびさび)’라는 설명을 덧붙인다고 하니 꿈보다 해몽이라고 해야할까? 싶었다.

 

교토를 불바다로 만든 그를 두고 일본 역사학자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있다지만

히가시야마 문화만큼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이 시절의 사상과 문화가 일본 문화의 정수로 여겨지고 있음이니

역사는 어찌보면 공평한 것이리라... 

 

무엇보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건 지나간 역사가 항상 증명하고 있음이다.

 

 

아무런 사전 지식없이 외관만 살펴보게되면

할아버지 뻘인 금각사와 손자 뻘인 은각사는

무척이나 닮은 듯하지만 내용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절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교토의 매력이다.!!

 

이러니 금각사에서 누차 언급했다시피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는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와 동일선상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정히 시간이 없다면 별 수 없겠지만

가능하다면 두 군데 모두를 둘러보고

각각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직접 느껴보는 것도

교토를 재미있게 여행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은각사가 철학의 길에 위치하고 있다보니  철학의 길을 계절마다 걸으며 

은각사에서 시작하게 되면 난젠지까지 걸었고 난젠지에서 시작하게되면 은각사까지 걸었다.

 

금빛이 아니면 어떤가...

평화로운 산책로를 따라 걷다 만나게 되는 은각사의 소박함은

그 한적함을 품은 채 금각보다 더한 화려함으로 빛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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