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lesse Nomad/Interesting movie

[힐링무비] 와일드, 영화 한 편이 건네는 작은 위로

작은천국 2015. 1. 28. 06:30

[힐링무비] 와일드, 영화 한 편이 건네는 작은 위로

 

 

 

영화 와일드는 해외 영화 매체와 평론가들이 최고로 꼽은 2014년 국내 미개봉 영화 중 한 편이다.

그 와일드가 2015년 1월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개봉을 했다.

 

약 3개월 동안  9개의 사막과 황무지 4,285km를 텐트와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야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THE PACIFIC CREST TRAIL))을 경험한

 '세릴 스트레이드'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 한 와일드는

오는 1월에 열리는 제72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고

2015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후보로도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을만큼

높은 완성도와 작품성을 입증하고 있는 영화다.

 

이런 저런 것을 다 떠나서 와일드는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

혹은 삶에서 튕겨진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없는 작은 위로였다.

 

 

이 글은 2015년 1월 28일 다음 메인에 선정되었습니다.

드문드문하는 포스팅인데 감사합니다. ^^

 

 

 

이 영화는 트레일에 관한 영화다.

이미 산티아도 도보순례길을 다녀온 나로써는 늘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일수 밖에 없는 영화다.

그래서 누구보다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기 힘든 주제인 동시에

누구보다 주관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트레일이 소재가 되는, 특히 다큐멘터리적인 성격을 가진 영화가

기억에는 그리 성공을 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산티아고 도보 순례길'을 다룬 몇 편의 영화가 있지만 지극한 애정으로

아무리 후한 점수를 주려고 해도 도저히 줄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 2009년 내가 산티아고 도보 순례 중에 산티아고 도보순례길을 다룬

영화 'THE WAY'가 마틴 쉰 감독, 주연으로 촬영되고 있었고

개봉 후(우리나라에는 개봉이 안됐다)  외국인 친구에게

영화를 구해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만하면 더 이상 설명은 필요없겠다.

 

어쩌면, 영화의 기승전결의 이야기가 선명하지도 않거니와

'힘든 일을 겪은 주인공이 길을 다 걷고 나면 희망을 얻는다'는

길이 가진 아름다움 +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 혹은 상황들이 가진  

뻔한 평면적인 구조와 서사적인 구조는 영화적인 설득력이 아무래도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트레일을 다룬 '영화'보다는 차라리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로 만들어진 것들이

오히려 훨씬 더 감동적이고 깊은 울림이 개인적으로는 더 컸었다.

 

 

그녀가 걸었던 PCT는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에 걸쳐 있으며

모하비 사막, 투올럼니 초원, 후드 산과 레이니어 산의 화산지대, 크레이터 호수의 숲 등등

인간의 영역이 침범할 수 없는 야생의 공간 속을 걷는 여정으로

워낙 험한 길이라 수 많은 사람이 도전하지만 약 2백명이 채 안되는 사람만이

완주를 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자가 혼자서 이 길을 걷는다는 건 정말 희귀할 정도라고 영화는 설명하고 있다.

 

게다가 도보여행자 숙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야영장비와 식량을 전부 본인이 둘러매고

길을 걸어야 하며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거친 지형을 수 백 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만날 지 알 수 없는 100% 위험에 노출된 상황을 감수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혼자의 몸일 경우 만에 하나 발생하는 사태에 대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곳도 없으며

무엇보다 여자 혼자라면 외딴 곳에서 건장한 남자와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물론 산티아고도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을 지나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마을에 난 길을 따라 걷는 길로 도보여행자 전용으로 마련된 숙소가 있고

수 km당 마을이 존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길, PCT였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트레일을 대하는 자세는 다르지 않다.

 

이것저것 필요없는 짐을 다 넣고 배낭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일어나지도 못하고 뒤로 쓰러지고

배낭과 걷기에 익숙해지기까지 배낭에 쓸린 영광의 상처는 몸 구석구석에 새겨진다.

 

2초에 한 번씩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육체적인 고통이 한 번 쓸고 지나간 뒤 자신이 감당해내야 하는 무게와 걷기에 익숙해지면

비로소 눌러두고 있었던 과거의 아픈 상처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나며

직접적으로 마주서야 하는 더 아픈 고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엄마의 죽음으로 난 완전히 파멸되었다."  

 

<줄거리>

가난한 삶, 폭력적인 아빠, 부모의 이혼으로 불우했던 유년 시절을 지나
 엄마와 함께 행복한 인생을 맞이하려는 찰나,
 유일한 삶의 희망이자 온몸을 다해 의지했던 엄마가 갑작스럽게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엄마의 죽음 이후 인생을 포기한 셰릴 스트레이드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파괴해가고…
 그녀는 지난날의 슬픔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수 천 킬로미터의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극한의 공간 PCT를 걷기로 결심한다.
 엄마가 자랑스러워했던 딸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힘든 삶에 그나마 조금의 버팀목이 되었던 엄마의 죽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마약으로, 섹스로 시궁창에 내던지는 방법을 택했던 그녀 ...

 

"이 여행으로 모든게 치유될거예요. "  

 

 

여주인공 리즈 위더스푼. 그녀는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인 셰릴과 99%의 싱크로율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외모를 비롯한 문신 하나 까지 ..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셰릴이 온 몸으로 겪어낸 그녀의 삶의 모습이

진짜 리즈 위더스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굴곡진 인생을 표현하고 있다.

 

4,285km의 거친 여정을 견디며 삶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은

일반화되어 그녀의 도보 여행을 보는 것 만으로도 일상에서 지친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다.

 

이쯤되면 골든 글로브이든 아카데미가됐던 여우주연상 수상도 가능할 듯하다.  

 

 

"일출과 일몰은 언제나 반복되니까

내가 원하면 언제나 그걸 즐길 수 있어."  

 

 

가난하고 남루한 삶이지만 자식들에게 지금 있는 그대로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알려 주고자 했던 엄마 바비역의 로라 던.

 

작년에 감동적으로 본 '안녕 헤이즐'에서도 엄마 역으로 나왔던 로라 던.

이쯤되면 김혜자씨에 버금가는 국민엄마라고 부르고 싶었을만큼

등장하는 씬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씬스틸러였다. !!

 

무엇보다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다분히 신파적인 다큐멘터리적인 뻔한 내용을

과거와 현재의 교차씬으로 풀고 있다는 점과 심리적으로 치유되어 가는 과정에 

동양적인 정신세계(어쩌면 인디언의 정신세계 일수도) 의 세계로 풀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단순히 길을 걷는 것 뿐일 수도 있으나

그 길이 가진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설득력은 아무리 달변가라고 하더라도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이 존재하고 있음을 몸으로 겪어 본 나로써는

헐리우드에서 이런 식의 방식으로 영화를 다룬 것이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녀가 길을 걸으며 느끼는 감정선들이 날선 채로 살아 움직이며

 육체적, 정신적인 것들이 함께 뒤엉켜 들쭉 날쭉

나도 모르게 그녀의 감정이 내 감정인것인 듯 들락날락 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겪고 있는 심리적인 변화가 고스란히 담긴 PCT 트레일에 남긴 방명록에 적은 글들

 

몸이 그댈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

나는 발걸음이 느립니다. 그렇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습니다.

내 모습 그대로 받아줄래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허나 내겐 지켜야 할 약속과 잠들기 전 가야 할 길이 있다.

 예상한 일에도 완벽한 대비는 불가능하다.

당신의 계획이 무엇인지 내게 말해줘요.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인생으로 무엇을 할 작정인가요? 

 

온통 힘들고 고달픈 메세지만 가득차 있는 요즘 현실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듯한 고통과 외로움을 견디고 있다면

내가 그랬듯 삶을 잠시 멈추고 감히 길을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 대신 그녀가 걷는 PCT 트레일을 함께 따라 걸으며

그녀가 먼저 써내려 간 감당하기 힘들었던 굴곡진 인생사를 표준 사전인것 마냥

펼쳐보았던 와일드는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 감당하기 힘든 고비에 처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살아 있는 위로였다.

 

 

또한 상처난 마음에 새살을 돋아내게 만드는  PCT 의 풍경은 절대적인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더불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있는 음악은 세 번째 주인공이자 좋은 영화 음악의 예로 길이 남을 듯 하다.

영화가 모두 끝나고 허밍으로 불려지던 사이먼&가펑클의 'El Condor Pasa'의 진한 여운은

내가 PCT를 걷고 있는 사람마냥 조여오는 긴장감에 완주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진정코 힐링음악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는데 사람들이 누구하나 자리를 뜨는 사람없이

진지하게 영화음악을 듣는 모습도 처음이었던 듯 하다.

 

 

 힘든 고통과 여정을 견디며  모든 상처를 극복해 낼 수 있게 만드는 위대한 자연의 풍경. 

누구도 온전히 가질 수 없기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대자연이 보내는 따스한 위로와 위안.

 

 

 현실에 지쳐 있는 당신에게 상처난 마음을 위로하며 다독여줄 영화가 될 듯하다.

 

 

 

나의 산티아고와는 전혀 달랐지만 나의 산티아고의 기운을 되살려 준 영화 와일드.

지친 기분을 한 번에 복돋아 준 단비같은 영화로 오랫동안 기억될 듯하다.

 

나중에 DVD로 소장하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