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lesse Nomad/Interesting movie

[영화리뷰]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홍상수는 여전했다.

작은천국 2013. 3. 20. 07:30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홍상수는 여전했다.

 

 

 

홍상수 감독의 14번째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2013년 제6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도 진출한 영화다.

 

그것 때문은 아니었는데 우연이 지인과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둘이서 필이 통해서 오랜만에 조조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고 나니 역시.... 

 

뭘 해도 홍상수스러운,

 '참 일관성 있다.'로 결론이 났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었다.

 

여전히 홍상수스러움이 주는 낯섦은 무려 14번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지만

그의 영화를 처음 보았던 '돼지가 우물에 보았던 날' 을 시작으로

'오! 수정', '강원도의힘' 그리고 최근작 '다른나라에서' 까지

(아쉽게도 북촌방향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이상하게 의도한 건 아닌데 생각해보니 홍상수의 영화는 대부분 봤던 것 같다. 

 

그의 영화에 필모그래피가 쌓이는 시간 동안 언어적으로 딱히 정의할 수 없지만

이제는 보통명사로 불러도 좋을 '홍상수'가 가진 그 무엇을 어렴풋이나마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내가 변하는 건지,

세월이 나를 변하게 하는 건지,

 

참 일관성 있는 홍상수스러움이 싫지 않았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었다.

 

이 글은 2013년 3월 20일 문화 부분 베스트에 선정되었습니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줄거리

 

대학생 해원(정은채)은 학교 선생인 성준(이선균)과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

내일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는 엄마(김자옥)와 만나고 우울해진 해원은 오랜만에 성준을 다시 만난다.

그날 식당에서 우연히 같은 과 학생들을 마주치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가 알려지게 된다.

해원은 더 불안해지고, 성준은 둘이서 어디론가 도망을 가자는 극단적인 제안을 한다...
해원은 자주 꿈을 꾼다. 그녀의 꿈은 그녀의 깨어있는 삶과 비교가 될 것인데,

그 중 어느 것도 그녀의 삶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출처 : 다음 영화검색

 

 

사실, 홍상수 영화의 큰 특징은 영화의 큰 줄거리를 가진 뼈대가 있기는 하지만

그 상황만 작용할 뿐 스토리가 가진 내용은 크게 없는 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객은 그런 류의 홍상수스러움이 낯섦으로 다가온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오리무중..

관객이 '멍' 하는 순간 영화는 갑자기 끝난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역시 마찬가지다.

내일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는 엄마와 마지막으로 서촌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우울해진 마음에 비밀스런 관계를 정리하고 있던 성준을 다시 만나지만

 

식당에서 우연히 같은 과 학생을 만나게 되고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늘 그렇듯이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사회적인 지위와 위치에 상관없이 언제나 찌질하다.

 

영화의 제목만 바뀌었다뿐이지 참 한결같게도 정말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각도로 찌찔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코미디 영화도 아닌데 극장 안은 시쳇말로 10초에 한 번씩 빵빵 터졌다.

하지만 정작 지인과 나는 관객들이 웃는 게 참 신기하다고 되레 웃었다.

 

특히 한 여성관객은 정말 코미디 영화 보러 온 것 마냥 큰 리액션으로 웃어대는데

그 웃음소리에 따라 웃기도 했었다.

 

어쟀거나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성적이 나쁘지 않다는 건

왠지 고무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전매특허 배우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홍상수의 이전 영화 '하하하'의 두 주인공 예지원, 유준상까지 이들의 롤모델(?)로 등장시키며

하하하의 연장선상 에서 다른 듯, 그러나 묘하게 닮아 있는 두 커플의 이야기를 오버랩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의 황홀한 음악에 귀를 사로잡히지만

이내 남자 주인공의 찌찔함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배경음악에서는

관객들은 어쩔 수 없이 배꼽을 쥐며 웃음으로 화답하게 된다.  

 

석양은 아름답고 깃발은 펄럭이며

사랑 때문에 주인공은 눈물, 콧물 짜며 울어대는 배경음악에

MP3도 아니고 스마트 폰도 아니고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은

절묘하다 못해 탁월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남한산성씬에서 명대사로 손꼽히는 대사

"깃발이 펄럭이니 바람이 부는 것을 알려주잖아요" 

 

영화에서 해원은 꿈을 꾼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이 언제 꿈이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현실을 벗어난 꿈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간접적으로 드러낼 뿐이다.

 

누구의 딸도 아니라는 제목이 의미하듯이 해원 자체가 혼란스럽고

현실에서의 혼란은 가상공간인 꿈에서나마 솔직한 듯하지만 여전히 일정 부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걸 보고 있는 관객은 더 혼란스러울 뿐이다. 

 

게다가 꿈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해원이 가진 욕망의 허영기,

어쩌면 모든 여자가 가진 최대의 허영기를 반영하고 있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해원이 가장 바라고 있는, 혹은 그 무언가를 인물로 표현한 건 아닐까 싶었다.

 

서촌 사직동, 그 가게 앞에서 책을 보고 있는 해원에게

"내고 싶은 만큼만 내면 됩니다." 에 등장하는 명대사

 

" 제가 드러나잖아요" 

 

책 한 권의 가격에 자신이 내고 싶은 가격만큼만 내는 것에도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싫은 해원.

 

그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첫 장면 등장에 여자보다 이쁘다는 대사에 빵 터지게 만든 류덕환,

 

실은 이 배우가 류덕환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역배우의 이미지가 강하게 있었고

지금은 성인 연기자가 되었지만 미소년적인 분위기가 잔상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등장인물이 올라가는데 도대체 류덕환은 어디에 등장했냐고 물었을 정도였으니..

 

아! 그리고 다시 떠올린 류덕환의 모습에 정말 빵 터졌다.

 

살짝은 마초적인 느낌을 자아내며 현실에 등장하고 있는 서촌의 청년은

꿈에서 등장하고 있는 서촌의 아저씨와 정확히 대비시킨 캐릭터의 류덕환은 놀라웠다.

 

직접 출연을 요청했다고 하는데 <사직동, 그 가게> 앞에서 촬영중인 배우들과 홍상수 감독이다.  

 

실은 영화에 5분 정도 늦었는데 영화 상영 전에 일절 상업광고가 없어서

그만 전반 5분을 놓쳤는데 제인 버킨의 특별출연 장면은 아쉽게도 놓쳤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일기를 따라 재구성된 삼 일간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리고 웃음이 터졌던 관객의 반응은 이번 영화에서도 똑같았다.  

 

'이게 뭐야... 앞도 없고 뒤도 없고...'

개인적으로는 가장 최근에 본 '다른 나라에서'보다는 훨씬 좋게 와 닿았다.

 

그전에는 줄거리에서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억지로 줄거리를 따라가 보기도 하고

그 인물이 되어 보겠다 온 신경을 집중하고 보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상수스러움이 주는 답답함과 애매모호함은

풀리지 않은 수수께기지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풀릴 것 같아서 끙끙거리고

해답을 찾으려고 십분 노력하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이상하게 홍상수 영화를 보면 해답도 결론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답을 찾고 싶어지는 오기가 생기는 것은 유독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처음부터 힘을 빼고 만났던 해원은

이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홍상수스러움이 좀 새삼스럽고 새롭게 느껴졌다.

 

모든 장치를 전부 걷어내고 인물들의 관계만 놓고 정의해 볼 때,

사회가 만들어 놓은 보이지 않는 기본 법칙이 사라진다면,

이들의 관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맺고 있는 인간관계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홍상수 감독이 인터뷰에서

 "어떤 사물을 기존의 법칙에 가둘 필요가 없다. 새로운 눈으로 그걸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의미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해원이 가진 깊은 우울과 불안은 모든 상황을 배제하고 인물만 놓고 본다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을만큼  적나라하고 솔직하다.

심지어 찌찔함으로 중무장하고 있는 인물들마저도 미워할 수가 없다.

 

어쩌면 해원이 그랬던 것처럼 내 안에, 혹은 우리 안에

누구에게라도 감추고 싶은, 들키고 싶지 않은 찌질함과 불안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책값을 지급하면 자신이 들킨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존재하는 많은 것들로 대표되는 바람이

깃발을 통해 그 존재를 인식시키고 있지 않은가?

 

영화 협찬이라곤 단 2개밖에 없고

촬영장소라곤 서촌과 남한산성 단 두 군데였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었다.

 

자주 가던 사직동, 그 가게가 반가웠고

봄이 오는 이맘때 갔었던 남한산성이 반가워 가보고 싶게 만들던 영화다.

 

사직동 그 가게가 궁금하다면  http://blog.daum.net/chnagk/11264526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누구의 딸도 아니고 해원도 아니었던 것처럼

영화내내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남한산성의 분위기가 제목을 대변하고 있는 것 마냥

침울했고 무언가 뚜렷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홍상수의 영화는 이제는 너무 똑같아서 진부해서 싫다고도 했지만

그의 영화는 알게 모르게 인물들이 조금씩 진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영화는 모호했고 역시나 인물의 예고 없는 과감한 클로즈업은

십 수년동안 그의 영화를 보면서 적응이 될 만한데도 불구하고 늘 당황스럽지만

(심지어는 인물이 클로즈업이 될 때 나도 모르게 내 몸이 뒤로 쑥 빠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홍상수스러움이 모처럼 좋게 느껴졌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었다.

 

이 영화 보고나니 보지 못했던 <북촌방향>의 북촌은 어떻게 그렸을까 몹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