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lesse Nomad/AT Studio

사진작업을 하지 않는 불안감

작은천국 2014. 5. 13. 06:30

사진 작업을 하지 않는 불안감

 

 

 

내가 가장 짜릿하다고 생각하는 모험은 카메라를 둘러메고 미지의 거리를 기웃거리는 일이 아니다.

사진이란 것이 외부의 물리적 현상 기록이나 미적 가치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그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실세계는 나를 포함한 어떤 사람에게는 진부하고 공허하며 싫증나는 세계일 수 있다.

그곳에는 아무런 독창성도 없다고 본다.

 내게 진정 가치있는 것은 내 자신의 안쪽을 찾아나서는 작업이다.

내게 사진 행위는 나 자신의 고유성을 찾는 내면의 탐구 여행이다.

 

 -구본창- 

 

 

몇 년 동안 주제를 가지고 하던 '아버지' 사진 작업을 이런저런 이유로 잠깐 중지했다.


작업을 잠시 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작정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개인전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하나, 둘 벽이 점점 더 크고 높게 나타나기 시작했고

높은 벽을 감당하지 못해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 사진을 보고도 명확히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를 이끌어 내는데

나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으로 엉켜서 언제가부터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져 버렸다.

 

내가 찍은 사진들이 내 사진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으니

도대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지 오리무중이었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서  '내가 이 작업을 왜 해야 하나'? 로 시작 된 질문은
처음 이 사진작업에 의미를 부여했던 모든 것들이 의문투성이로 다가왔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쌓여만 가고 작업은 전혀 진척이 없고
이 상황에 여러가지 닥친 현안들은 나에게 도피처를 제공했다.

결국, 진행하던 전시를 잠깐 멈추고 미루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게 불과 한 달이 조금 못 된 상황이다.


뭘 해도 머리 속에는 몇 년동안 '사진 과 '작업'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는데
전시를 접고 나니 사진은 아예 삶에서 밀려났다.


처음에는 너무 홀가분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 마냥 작업에 손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나 하는
알 수 없는 불안이 언젠가부터 그 자리를 대체했다.


특히 내 작업과 비슷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작품을 발견할 때면
그 불안은 더 커져만 간다.

 

 

사진작가 앤드류 화이트(Andrew Whyte)는 레고 그래퍼(Legographer)라는 이름의 그의 파트너와

1년간 영국을 돌며 담은 사진집  'The Legographer'을 선보였다.

 

1년간 하루에 한장 씩 총 365장의 사진이 담겨 있는데

레고 그래퍼와 함께한 여행은 그 어떤 여행보다 즐거웠고,

지금까지 바라보던 세상과는 또 다른 보다 넒은 시각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었다.


아! 나는 왜 저런 생각을 못했을까?

 총 365장의 사진. 그야말로 레고 그래퍼가 바라보는 1년 365일의 기록!!!

더불어 내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프레임이 전하는 메세지가 너무 잘 보이고 읽히기까지 한다. 

 

 

 

한동안 무작정 눌러대는 셔트에 불안감을 가지던 때가 있었다.

무언가를 찍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제대로 찍고 있기나 한 건지...
차라리 작업을 하고 있을 때는 막막하기는 해도 적어도 불안함은 없었는데
그참.... 

 

 

눈에 보이지 않는 느낌이 있는데 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에서 오는 밑도 끝도 없는 불안감은

무엇이든지 명쾌하고 명확하지 않으면, 즉 100% 이해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성격도 한 몫을 거들고 있다.

 

실질적으로 내가 사진을 찍고 찍어 놓은 사진을 가지고 더 이상 작업을 하지 않고 있으니

모든 것들이 너무 선명하게  다가온다.

 

박진영의 자서전에서 발견한 조세현 작가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인물표현의 구성을 유심하게 들여다 봤다.

 

똑같은 구성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한 파트를 구성하려

아버지의 다양한 표정을 찍어 두었는데 작가들의 생각은 조금씩 차이가 있어도

다들 비슷하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명의 효과가 때론 피사체의 감정을 극대화 시키기도 한다.

 

어짜피 스튜디오 작업도 한 번은 해야하는데 일단 참고해두고~

 

 

'워낭소리 그 후'를 찍으신 사진작가 지영빈 선생님의 사진과 글은 

작업을 처음 시작했을때 굉장히 집중해서 봤던 사진집인데 

작업이 종반에 와 있는 지금 다시 보니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각도의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작업 초반에 가졌던 고민은 작업이 종반에 와 있는 지금에도

선생님과 같은 맥락에서 고민이 여전하다. 

 

'어르신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기다림과의 싸움이었다.

며칠을 찍었는데도 거의 같은 사진 뿐이었다.

똑같은 일상, 똑같은 동선에서 어르신의 변호를 담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업에 대한 자신감이 없을때면

'이런 사진이 과연 작품이 되는건가? 라는 바보 같은 질문으로 스스로에게 비수를 꽂는다.

 

 그런데 지난 달 코엑스의 사진기자재전에 갔다가

온통 요즘 액자는 어떤 식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인화는 어떤 방식이 새로 나온 건지 이것만 실컷 보고 왔다.

전시는 언제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디스플레이 생각하고 액자를 고민하고 있는게 스스로도 좀 웃기긴 했다.

 

나에게 '사진'은 정말 우연히 다가왔다.

 

대학교 시절 전공필수는 모두 팀프로젝트를 동반하고 있었고

교양과목 한 과목을 놓고 고민하던 중 친구들이 '사진' 과목이 있는데 시험도 없고

전기, 후기 사진만 찍어서 제출하면 된다는 말에 솔깃해서 사진에 '사'자도 몰랐고

카메라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덜컥 교양과목으로 수강신청을 했다.

 

그리고 난 뒤 사진 첫 수업시간부터 그야말로 그냥 사진만 찍어서 내면 된다는 그런 사진수업이 아니었다.

 '사진' 학과가 없는 학교에서 사진수업의 특성상 전부 예술대학 3,4 학년 학생들이

점수를 따기 위해 날로 먹는 수업이라고 할 만큼 타 학부학생들에게 교양은 교양이 아니었고

경영학과에서 게다가 1학년이 이 수업을 듣는 내가 좀 의외인 상황이 돼 있었다.

 

이쯤되니 사진수업을 듣자고 유혹했던 친구들은 나에게 말도 없이 하나둘 수강신청을 취소해버렸고

결국  나는 낙동강 오리알에 누구하나 아는 사람없는 강의실에 앉아

첫 날부터 셔트 스피드가 어쩌고 촛점이 어쩌고 그야말로 외계어로 말하는 교수님의 얘기도 모자라

이론 공부는 첫 시간만 하고 끝나버렸다.

 

그리고 선을 찍어라, 면을 찍어라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사진 이론보다는

사진적 시각과 감각을 키우는 교수님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다.

 

이론 공부는 거의 독학하다시피해가면서 한 학기를 보내는

마지막 레포트는  자유주제로 자신이 찍고 싶은 사진을 제출하라고 했다.

 

무엇을 주제로 잡을까 고민을 거듭하다가

'나에게로 떠난 여행' 을 주제로 잡았고

강화로 여행을 가서 본 풍경 사진을 제출하며

온통 추상명사로 나열된 것을 교수님이 이해못할까봐

친절히 표지에다가 전체 컨셉에 대한 설명까지 적어서 제출을 했다.

 

이후 교수님이  '사진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는 한 마디에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이 사진 수업은 내 인생의 결정적이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수업이 됐다.

 

최근에 사진 강의를 진행했다.

그때 학생들에게 사진의 직접적인 표현과 간접적인 표현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전달이 잘 될 것 같아서 사진을 찾다보니

어떤 분의 홈페이지에서 청와대와 백악관에서 찍은 사진의 차이에 대해 올려 놓은 것을 발견했다.

 

이 비교 사진을 보는 순간, 그동안 내 작업이 왜 그렇게 진도가 안나가고 안 풀린 것인지 바로 알수 있었다.

 

 

 

나는 사진을 통해 사람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간접적인 방식에 대해,

무엇보다 그것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건 어쩌면 본능적인 것이다.

내가  사진을 알지 못하고 전혀 배운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생애 처음으로 찍은 자유주제의 제목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는 직접적인 방식보다 간접적인 표현방식에 더 편안함을 느끼고

그게 내가 잘 할 수 있는 작업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껏 찍어왔던 아버지의 사진 작업은 너무 정직했고

그 정직함은 머리속으로 계산된 정직함이었다.

 

 

최근 유트브에서 보게 된 포토저널리스트 김희중 씨는

<사진은 마음이 통하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애정을 가지고 순수하게되면 감정이 통한다.

성공 방정식 = 일 * 노력 두배 + 열정 + 사랑 - 욕심이다.

중요한 것은 (마이너스) 욕심!!  결과가 맘에 있으면 결국 남을 해치게 된다.> 고 말했다.

 

참 뼈아프게 들리는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알게 모르게 쌓아왔던 욕심들을 비롯해

아직 내 자신의 스타일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확하게 보여줘야 되는

나와 다른 스타일의 여행 사진은 혼란과 혼돈을 결국 부추기는 결과였다.

 

그나마 포토그래퍼 김중만씨의 인터뷰는 참 위안이 되었다.

 

<생각처럼 안나온다. 사진이란 것은 자기가 생각한것 처럼 나오면 사진이 아니다.

사진이 생각처럼 안 나오기 때문에 사진이 어려운 것이다.>

 

언젠가는 이런 영역들이 자유자재로 넘나들겠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모자란 내 자신의 현주소이다.

 

 

 

18942

 

이런 상황에 대해 선생님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 모든 혼란과 혼돈의 상황에 대한 선생님의 칼 같은 조언은

 

"에너지 분배를 잘 해야되는데 에너지 분배가 안 이루어 진 것이다.

정신이 온통 책 작업에 쏠리면서 사진 작업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사진 작업을 까먹을 수는 없고 하니 무의식중에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다.

 

혼돈과 혼란이 서로 맞물리면서 풀어지고 그러다가 다시 또 혼돈이 찾아오고 

언제나 늘 달팽이가 나선형을 그리듯이 혼란과 혼돈 속에서 흘러 가게 되어 있다.

불안해 하지 마라. 생명구조의 기본선은 나선형이다.

그래도 홀가분함보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내면의 발전은 놀랍다.

조바심 내지말고 차분히 기다리다보면 다시 작업을 하고 싶다는 감정이 올라올 것이다.

그때 다시 작업은 시작하면 된다." 고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셨다.

 

잠시 휴지기,

그러나 마냥 휴지기는 아닌 상황 속에 안정구역 안에 들어 앉아 있는 것이라 생각하자.!! 

 

 

 

또 하나의 방법은 의식적으로 고요속으로 침잠하는 것이다.

소란에서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라.

문을 닫고 소리를 없애라.

잡담을 금지하는 도서관이나 사우나의 숙면 구역 등에 있는 안정의 효과를 아는가?

혼자서 조용히 보내는 시간들은 치유와 해독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이로 인해 더욱 더 명료해진다.

고요함 속에 열망이 자라나고 많은 위대한 작품들은 고요함속에서 성장한다.

어쩌면 당신은 고요함 속에서 잃어버린 재능을 다시 발견할지도 모른다.

당신도 이런 안정 구역을 만들어라.

- 어떤 책 속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