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lesse Nomad/AT Studio

사진이 삶에 미치는 영향

작은천국 2013. 12. 30. 06:30

사진이 삶에 미치는 영향

 

 

사진이 처음 발명됐을 때,

사진은 기록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화가들이 사용하던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광학장치와

화학기술로 만들어진 '사진'이란 매체가 당시의 회화를 대체하는 수단이었던 것이

오늘날 이렇게 빠른 시간에 현대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것은

'사진'을 발명해 낸 다게르도, 최초의 사진을 찍은 니엡스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책에서는 '사진의 발명은 단지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몽시대로 진화하고 있던 20세기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태어난 그 무엇' 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진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동의를 하는 바이긴 하다.

 

 

20세기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예술인 사진은 그 감상법에 있어서

"예술은 의미가 정해진 무엇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따라가는 과정" 이라고 하는

 현대예술 감상법을 철저하게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이렇게 혹은 저렇게 자신만의 시각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전시를 기획하지만

작품에 벽에 걸리는 순간, 나와는 상관없이 작품 스스로가 생명력을 가지고 독자들의 시선에서 작품을 만나게 된다.

 

단순히 기록의 차원이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보이지 않는 기운을 만나게 되는 사진작업은

결국은 내 존재에 대한 최종적인 물음으로 항상 되돌아 오는 듯 하다.

 

 나를 가르치는 보이지 않는 손인 사진 작업은

항상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부단히 껍질이 까지는 고통을 수반하는 과정을 겪으며

나는 이제서야 조금씩 내 안의 세상에 눈을 뜨고 있는 것 같다. 

 

올 한해 동안에는 지지부진하던 '사진작업'을 위해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다.

아버지가 건강이 악화되면서 생사를 넘나들던 지난 몇 년 동안 이 세상에 스친 가장 큰 인연이 물음표로 다가왔고

문득 아버지 일상을 사진으로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무감처럼 2010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아버지 건강이 이전과는 달리 좋아지시면서 사진찍기도 잠시 멈추었다가

지난 2012년 초에 전시를 계획하면서 문득 아버지 사진으로 전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아버기가 아프시던 1년을 보내면서 내가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을 엮어서 전시를 했다.

 

단체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족자로 만든 이 사진에 참 많이 공감을 해 주셨고

관객들 각자가 가진 정서에 대한 깊이 있는 감정이입은 작가인 내가 적잖이 당황할만큼의 반응이셨다. 

 

 

전시기간 동안 많은 분들이 개인전에서 다시 사진을 만나고 싶다는 얘기는

두 번째 개인전을 해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있었을뿐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지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던 나에게 결정적인  촉매제 역할을 하긴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부딛치는 여러가지 일들과 전시작업을 병행하는 것은

집중력에서도 작업의 진도에서도 진척이 나지 않아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와중에 계절이 바뀔때 마다 연레행사처럼 아버지의 건강은 오락가고 하고 있어

아버지의 건강이 언제까지 허락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을 했다.

 

고민끝에 2013년 한 해 동안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으로 보내기로 결정을 하고

꼭 해야되는 일을 제외하고 모든 일을 과감하게 정리를 했고

2월부터 본격적으로 전시 작업노트를 적는 것으로 마음 정리를 끝냄과 동시에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작업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평범한 일상을 기록한 사진이 과연 '작품'이 될 수 있을까와 더불어

이걸로 과연 전시가 가능할까 하는 나 조차도 납득이 안되는 원초적인 불안감은 일년 내내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다.

 

이렇게 내가 안개속을 걷고 오리무중이라는 이야기는 셀렉팅 수업을 하는 내내 달고 살았고

 

나와 달리 일상적인 사진에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타인은 비슷한 사진 속에서도

한 눈에 보기에도 선명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찾아내는 것에서

내 작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찍기만 하고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사진들은 셀렉팅을 통해서 더하기 빼기를 거치는 동안

한 달에 한 두번은 부족한 사진들을 꾸준히 찍어나갔다.

 

그동안 아버지를 찍었던 사진들은 그야말로 개인적인 기록이 목적이었다면

2013년의 작업 사진들은 철저히 전시를 위해 찍은 사진들이긴 했지만

원칙적으로는 이전에 찍었던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인위적인 연출은 하지 않고

아버지가 가진 일상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똑 같은 사진을 놓고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내는 셀렉트수업은

한 번 시작하면 족히 3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골라놓은 사진을 보면 숨길 수 없는 그 사람의 내면이 드러난다는 것도 놀라웠다.

 

 사진은 참 신기한 매체이다.

사진을 보면 사진을 찍는 사람의 내면이, 심지어는 그 사진을 찍을 때 감정이 담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본인이 직접 사진을 찍지 않아도 자신이 마음가는 사진을 셀렉팅을 한 것만 봐도

그 사람을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긴했지만

아버지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셀렉팅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오리무중의 상태이긴 하지만 지난 전시에서  비교버전으로 미리보기를 해봤다.

 

컴퓨터 모니터 색상에서 사진을 보던 것과 인화했을 때 내가 원하던 색감이 나오지 않는  점과 

콘트라스가 어느 정도 일때 가장 내 마음에 이상적인 사진이 될지가 숙제로 던져졌다.

 

주제가 사랑이어서 그래도 나름은 '사랑' 에 어울리는 사진을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분들에 비해서 워낙 사진이 좀 튀는 편(?)이라 상대적으로 주목을 많이 받았다.

 

질문도 많이 받긴 했는데 위 사진들은 개인전에서 그대로 보여줄 것이 아니라서

두리뭉수리하게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로 밖에 대답할 수 없어서 조금 미안하긴 했다. ^^

 

개인전에서 어떤 컨셉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지금도 여전히 고민중이고

이런 상황에서 과연 전시가 가능할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나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들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평생을 살 맞대고 살아온 가족이라 우리는 한 인간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순전히 착각이었다.

 

사진은 주의깊은 관찰에서 시작한다. 

아버지가 현관에 들어오실 때 신발장을 짚으며 신발을 거꾸로 벗는 것이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습관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아버지가 때로는 지팡이에 의존을 해야되는 상황이라 신발을 벗을 때 

단지 몸이 좀 불편해서 신발장을 짚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현관문을 밀고 들어올 때 부터 연속샷으로 사진을 찍다가 문득 물었다.

 

그랬는데... 맙소사!!!

 

아버지는 신발을  뒤로 가지런하게  벗어 놓으면 두 번 손이 가지않고  정리정돈이 된다는 이유였다.

현관은 그 집의 얼굴이라며 언제나 현관은 정리 정돈이 된 상태로 깔끔해야된다는

철학을 가지고 계시는 아버지의 평소 생각이 그대로 행동에 반영된 것이었다. 

 

나중에 가족들에게 아버지가 이런 이유로 현관에 들어올 때 거꾸로 들어오는 것이었다는

나의 설명에 식구들은 다들 놀랐고 심지어 여동생은 아버지가 현관을 거꾸로 들어오는 것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과연 내가 한 사람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가족이란 이름으로 참 무심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변화는 무엇보다 '아버지'시다.

 

끊임없이 시도때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댄지도 벌써 3년..

이제 아버지는 카메라 앞에서 매우 자연스러워지셨다.

 

사실 파인더를 통해 말없이 사진을 찍는 것도 곤혹스러운 상황인지라

작업을 할때 이렇게 저렇게 아버지에게 말을 많이 시키는 편인데

태어나서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말이 많은 분인줄을 미처 몰랐다.

 

입이 무겁기로 유명한 경상도 싸나이는 술 한 잔을 걸치지 않으면

'아버지' 란 어깨 위에 놓인 짐때문에 자신을 개방하는 것에 매우 엄격하다.

그랬던 아버지가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셔서 그게 언제쯤인지 기억도 없는 이야기가

문득 문득 떠오르시는지 사진 작업만 하면 거리낌없이 별의별 얘기를 다 들려주신다.

 

아마 평생 살면서 했던 이야기보다 사진작업을 하는 동안 나눴던 이야기가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진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뤄진다는 것도 놀랍다.

 

무엇보다, 본인이 내 작업에 모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당신 삶의 존재감'을 부여하고 있는 듯하다.

 

이 사진을 찍었던 10월 중순, 대만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셔서 몸을 가누지를 못하셨다.

'사진을 찍어야하는데 모델이 아프면 안된다'는 협박아닌 협박에

거짓말처럼 3일만에 병상에서 일어나셨고 다음 날은 텃밭에 나갈만큼 차도를 보이셨다.

약속대로 나는 텃밭에서 아버지를 찍었다.

 

이 작업이 전시로 이어지든 이어지지 않든

이만하면 내가 사진을 해야 하는 이유와 작업을 하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2013년 사진을 통해 일련의 작업을 거치는 동안

내 안에서 무수한 감정들이 일어났다 스러지기를 반복하고 있고

처음 계획했던 생각들은 수도 없이 바뀌며 오락가락 하고 있는 중이다.

 

 

작업을 하는 내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전시를 하려고 하지?', '왜 이 작업을 해야하지?' ' 이 작업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왜 사진을 찍고 싶은 거지?' , '이 혼란의 정체는 과연 뭘까?', '

 

이 작업이 어떤 식으로, 어떻게 보여줄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고 여전히 갈팡질팡이라

올해 안에 전시가 가능할지 좀 갑갑한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과 들끓는 감정을 느끼며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내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해답은 아마 죽을때 까지 찾아야 하는 그 무엇이고

나는 '사진'을 통해 그 무엇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나는 점점 더 제대로 된 인간이 되어 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