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lesse Nomad/Interesting culture

[전시] 예스퍼 유스트 욕망의 풍경, 보는 그대로 느껴라.

작은천국 2014. 4. 30. 12:35

[전시] 예스퍼 유스트 욕망의 풍경, 보는 그대로 느껴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예스퍼 유스트 :  욕망의 풍경>

 

 

 

최근 주목받고 있는 차세대 비디오 아티스트인 덴마크 출신의 예스퍼 유스트는

지난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덴마트 대표작사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할 만큼 예스퍼 유스트는 국내 관객들에게는 덜 알려진 작가다.

 

그런데 이런 점은 오히려 그의 작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아이러니를 제공한다.

작가가 말하고하자는 '욕망'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어떤 메세지를 전하려고 하는지, 궁극적으로 왜 이런 방식의 작업을 선택하고 있는지 등등  

작가에 대한 정보없음은 작가가 아닌 작가의 작품과 내가 만나는 시간을 통해 흠뻑 젖을 수 있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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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퍼 유스트 : 욕망의 풍경>  개막전이 있던 4월 18일은 세월호 참사의 무거운 분위기속에

작가인 예스퍼 유스터와 헤르닝미술관 큐레이터인 마이클 크리스토퍼슨과 함께

간단한 설명을 곁들여 전시를 함께 보는 것으로 조촐하게 진행이 됐다.

 

 

예스퍼 유스트의 가장 최신작인 <What a Feeling> 

 

약 13분여의 영상은 큐레이터의 설명에 따르면

'캡션도 붙이지 못할 정도로 작가의 가장 최신작임과 동시에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선보이는 작품" 이다.

 

공연이 끝난 무대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조명을 활용해 공연이 끝난 공간을 비추고 있다.

텅빈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그 텅빈 공간에 조금전까지 공연장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

공연의 열기가 묘하게도 어우러지고 있으며 공연이 아직 끝나지 않은 연장선상에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작품을 보고 난뒤 본격적인 작품이 이어지는 갤러리 안으로 들어서게 되면

순간 '헉' 이게 뭐야 하는 당황스러움이 찾아온다.

 

작가 자신도 이 작업은 자신의 작업에서 다른 쪽으로 확장된 다소 독립적인 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는지라 본 전시물들이 아닌 입구에 걸려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스퍼 유스터의 전시공간인 6홀에 발을 디디면 이런 영상이 관객을 압도! 한다.

아니, 압도 당할 수 밖에 없다. 그건 낯섬이고 불편함이다.

 

<이름 없는 장관 This Nameless Spectacle>

 

 

양쪽 벽면에 분할된 영상 사이에 관객이 존재하고

쉴세없이 두 영상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줄거리를 연관성을 찾아내는 과정은

편하게 영화관에 앉아서 평면에 뿌려지고 있는 영상을 바라보던 것을 태생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갖게한다.

 

게다가 16:9의 비율을 가로로 최대한 늘려 다소 과장된 느낌도 든다.  

 

독립된 듯하면서도 독립되지 않은 두 이야기는 한쪽에는 남자가, 다른 한쪽에는 여자가 등장하고 있다.

장애를 가진듯한 중년여성과 젊은 남성, 그리고 등장하는 풍경과 사물들은

철저하게 '대비' 시키며 관객들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

 

배우도, 음악도 모든 것은 곧 터질듯한 풍선처럼 긴장감이 넘쳐나는데

햇빛이 부서지는 풍경에 간간히 들리는 새소리는 참 고요하고도 평화스러워 그런 극도의 긴장감을 방해하기도 한다.

 

특히 여자 주인공은 유명한 트랜스젠더 연기자인 마리-프랑스 가르시아 라고 한다.

 

작가의 숨은 의도를 또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어 계단을 따라 다음 전시실이 이어진다.  이 계단을 활용한 점도 참 좋았던 것 같다.

 

 

<라노 Llano>

 

그리고 특별 제작된 미디어 박스에서는

<주거지에서의 여정> <눈물로 모두 끝날 것이다> <사랑할 무언가> <어느 멋진 로맨스>

<환희와 천국> <고독한 빌라> <아무도 섬이 아니다. I, II>를 볼 수 있다.

 

특별 제작된 미디어 박스는 꼭 오래된 TV 상자를 들여다 보는

복고풍의 느낌을 자아내기도 하고 비디오 방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상자안에 모니터가 들어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작품을 혼자 독점하고 있는 묘한 쾌감마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익숙한 것에서 오는 심리적 편안함은 영상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다시 또 심란해진다.

뭔가 알것도 같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이번 전시의 제목인 <이것은 욕망의 풍경이다. This is Landscape of Desire> 가

무려 높이 8M의 세로 스크린에 뿌려지고 있다.

 

가로 프레임이 아닌 세로프레임은 또 다른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이 영상에도 여전히 두 가지의 '대비'는 그대로 이어지지만 여전히 알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모호함은

끝내 우리에게 어떠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낯섬과 불편함이 묘하게 부딛치며 긴장감을 유발시키며 다소 전시가 어렵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동안 말을 아끼고 있는 큐레이터 마이클씨는 자발적으로 마이크를 들고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서적인 여정에 관한 것이다. 욕망은 끊임없이 달려가지만

저 멀리에 같은 간격으로 위치하고 있는 지평선으로 인간은 그 욕망에 도달할 수 없다.' 고 했다.

 

그리고 작가인 예스퍼 유스터는

"자기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하면 관객의 해석을 제안한다. 해석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 고 말했다.

 

결국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저하고 있는 메세지가 있지만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받아들이고

또 거기에 따라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오히려 작품이 가진 생명력이란 취지였다.

 

작품은 작가 손을 떠나면 더 이상 작가와는 상관없이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면 미지의 세계로 남게되는 현대예술은

필수적으로 관객들에게 어렵게 다가갈 수 밖에 없다.

 

특히 한국관객들은 이런 점에서  작가 혹은 큐레이터가 설명하는 방식대로 작품 감상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작가의 의도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굳이 작가의도만으로 작품을 따라가기보다

자신의 경험치로 작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작품감상태도야 말로

진정 현대예술을 대하는 태도여야하지 않을까 하는 평소 생각이 닿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개인적으로는 가장 의미있게 본 크롬의 사이렌들..

조명이 너무 어두워 사진은 패스했다.

 

 

이 영상의 배경이 되고 있는 몰락한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 그리고 미시건 시어트는

올해 초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살아 남는다'에 등장하고 있는 배경이었던지라 무척 흥미로웠다.

 

현대 산업자본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산업의 도시 디트로이트가

자본이 사라지고 난 뒤 회색도시로 변화한 것에 대해 수 많은 작가들은 비슷한 정서로 공감하고 있는 것 또한 놀라웠다.

 

나중에 이 영상을 본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이 영화를 떠올리는 것은 그런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영화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살아 남는다>

 

이 전시와 연계해 작가와의 대화와 테레민 연주가 있었다.

예스퍼 유스트의 작품을 보는 내내 영상도 그렇지만 사실 나는 음악에 더 끌렸다.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아직 우리에게 낯선 예스퍼 유스트가 왜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지,

작가와 작품을 조금은 더 폭 넓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가와도 연인인 도릿 크라이슬러는 모든 전시 영상의 음악을 담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이먼과 가펑클 등 세계 유명한 아티스들과 협연공연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테레민은 러시아에서 개발된 신비의 악기로 직접적인 신체접촉 없이

 연주가 가능한 두 고주파 발진기의 간섭에 의해 생기는 소리를 이용한 신디사이저 악기라고 한다.

 

샤이델릭한 소리의 절정판인데 묘하게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테레민이다.

 

 

신체접촉없이 파장만으로 소리를 다스려야하는 테레민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고난도의 연주기법을 가진 묘한 악기였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베사메 무쵸~

 

 

이 전시를 모두 보고 드는 생각은 과연 미디어아트와 영화와의 경계는 어디까지일지가 무척 궁금해졌다.

작가도 개인적으로는 미디어 아트와 영화와의 경계선상에 위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예스퍼 유스트의 전시가 열리는 6관 맞은편에는 쉬린 네사트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참 묘하지 않은가? 같은 공간에서 남성이 여성, 여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전시가 같이 이뤄지고 있다.

전혀 다른 방식의 작업이지만 뭔지 모르게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두 전시를 비교해보면서 보는 것도 좋겠다.

 

작가의 작업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보고나면 무수히 마음속으로 많은 질문이 던져진다.

그리고 그 답은 없다.

당신이 마음속에 감춰놓은 깊은 욕망을 찾아내야 할 뿐....

 

<예스퍼 유스터 : 욕망의 풍경>

전시 날자 : 2014.4.19~8.3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관 제 5전시실

 

 

 

Posted by 작은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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