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kking/나는 걷는다

[걷기여행] 백사실계곡, 찬란한 봄이 시작되다.

작은천국 2014. 4. 15. 06:30

[걷기여행] 백사실계곡, 찬란한 봄이 시작되다.

 

 

 

백사실계곡은 서울에서 꼭 가봐야 할 장소 중 단연 으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사실 계곡의 나무에는 연초록의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찬란한 봄의 잔치가 시작되었다.

 

겨우내 우중충했던 시간은 강렬한 색감으로 화사하게 유혹을 하지만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이 화려함이 가진 화무십일홍은 허무하기만 하다.

 

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내가 1년 중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연초록의 계절이다.

초록색으로 녹음이 짙어지기 전 짧은 연초록의 봄이 주는 황홀함은

느껴본 사람만이 아는 감각일 터.

 

언제나 느끼지만 서울이라는 도시에 백사실계곡이 남아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아직 조금 이른 듯하지만 찬란한 봄이 시작되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백사실 계곡이었다.

 

  

 

지난 가을부터 거의 두문불출하다시피하면서 모든 인간관계를 '바쁨' 이라는

단어로 '다음에', '나중에' 로 미루고 있었다.

그런 시간이 너무 길다보니 오늘이 내일이 되고, 내일은 다시 모레가 되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약속 부도수표'를 남발하고 있는 중이다.

 

마침 오늘 도서관도 휴무고 일본 취재 휴우증이 가시지 않아 빈둥거리고 있던 중

백사실 계곡 입구에 살고 있는 지인이 '얼굴 좀 보자'는 말에 백사실 계곡으로 산책을 나섰다.

 

 

 

백사실계곡에서 시작해 팔각정을 찍고 다시 백사실 계곡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잡았다.

 

1박2일을 통해 백사실계곡이 알려지기 전에는 나름의 숨은 명소였는데 

방송을 한 번 타고나니 명소로 알려진 것 까지는 좋은데 고즈늑함이 사라져서 조금 아쉽긴 한 곳이다.  

 

벚꽃이 떠나고 나니 복사꽃 분홍색의 화사함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어디선가 미세하게 코끝을 찌르는 향기로운 냄새~~

우와~~ 벌써 라일락이...  

 

봄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벚꽃은 곳곳에 흔적을 남기며 엔딩씬을 준비하고 있다.

 

완연한 연초록이라고 하기엔 아직은 2% 부족!!

대략은 4월 말에서 5월 첫째 주 정도가 연초록이 가장 아름다울 시기인데

올해는 아마도 그 시기도 빨라지지 않을까 싶다.

 

백사실계곡 입구에는 노오란 개나리가 여전하다.

 

같은 서울이지만 확실히 이곳의 평균기온은 다른 곳보다 낮은 편이라

계절이 늦게 찾아오고 계절이 늦게 지나가는 곳이다.  

 

그래도 봄은 봄!!  앙상하게 마른 나무가지에 어느 새 이파리들이  한움큼씩 자라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연초록의 나무들을 쓰다듬는 바람이

내 얼굴에도 연초록색 붓칠을 하고 있는 것 마냥 싱그럽게 느껴지는 봄이다.

 

걷기에 좋도록 길은 잘 정비가 되어 있다.  

 

모든 것은 자연그대로의 손길이 닿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백사실 계곡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아니 흔들리지만  그 깊은 심지는

사람들이 덮어놓은 돌 마저도 뿌리의 힘으로 들어 올리고 있는 중이다.

가로수들을 덮고 있는 보도블럭들이 나무뿌리로 인해 밀려 날때는 나무들이 힘겨워보였는데

백사실 계곡의 나무들은 같은 조건임에도 용쓰는 것이 아니라 여유가 느껴져서 피식 웃음이 돋았다.

 

이 계곡이 백사실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은

우리시대 친구의 표본으로 삼고 있는 조선시대의 학자인 오성과 한음 중 '오성' 이었던

이항복의 호가 '백사(白沙) 인 것에서 유래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 이항복의 별장터가 남아 있는데 연못과 육각정의 초석과 사랑채의 돌계단과 초석이 잘 남아 있다.

 

이 연못에 장마철이면 물이 가득 차 멋진 광경이 연출된다고 하던데

비가 올때마다 지인은 나에게 연못에 물이 찼다고 보러오라고 꼬박 꼬박 전화를 해주건만

아쉽게도 아직도 그 멋진 장관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내가 살고 있는 상암도 늘 좋다고 느끼지만 백사실 계곡에 오면 바로 꼬리 내려주신다.

이런 계곡에 돋자리 펴고 계곡에 물 담그는 주민들앞에서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까? ㅎㅎ 

 

도심에는 자취를 감춘 벚꽃 대신 산벚꽃이 절정이다.

 

백사실 계곡을 지나 부암동으로 방향을 잡았다.  

 

흰 눈꽃이 핀 것 같은 조팝나무는 봄을 만끽하게 하고 있다.

 

얼마걷지 않아 백석동천이 새겨진 바위를 만났다.

이 길이 정비되기 전에는 정말 허름한 바위에 잡풀이 우거져있는데 정비가 되고 나니

유적지를 제대로 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백석동천은 조선시대의 별서가 있던 곳으로 '백석'은 '북악산'을 뜻하고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의미한다.

따라서 '백악의 아름다운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 이라는 뜻이겠다.

 

한적한 곳에 자연경관과 건축물이 어우러져 있었을 조선시대는 상상으로 만나본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길, 제멋대로 휘어진 가지마다 꽃이 핀 벗나무가 보란듯이 서 있다.

반듯하지 않아도 저 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자리를 잡으며

한껏 모양새를 뽐내고 있는 자연이 가진 스스로의 위대함은 늘 감동이다.

 

풀만 먹었던 점심에 출출함이 몰려오는 오후 4시. 카페에 들러주셨다.

 

지나 다닐때는 몰랐는데 안쪽으로 테라스가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주문한 팬케익 대령이요~~~

 

운치를 느끼며 맛을 음미하기에는 너무 시장해서 앉은자리에서 게 눈 감추듯이 뚝딱!!

다 먹고 나니 팬케잌이 맛있었다는게 뒤늦게 생각났다. ㅎㅎㅎ

집에 당근도 많은데 당근팬케잌 만들어 먹어야지~~~

 

어느 정도 출출함도 가시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우와아아아~~ 금낭화가 고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산 모퉁이에 이르면 청와대 뒷길로 넘어오는 성곽길이 한 눈에 보이고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산모퉁이 카페를 지나게된다.

 

이 길을 걸었던 이유는 공간291이라는 사진갤러리가 있다고 지인이 추천해서 같이 걷게 되었다.

 

사진가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전시가 진행되고 사진관련 다양한 책들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수요일 새로운 전시 오픈으로 한창 디스플레이에 바쁜 상황이었다.

공간은 매우 독특했고 늘 그렇듯 이런 작업실 하나 있으면 좋겠다며 침만 질질 흘리고 돌아섰다.

 

다시 팔각정으로 하는 길, 아델라 베일리에서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자며 기분이 동했다.

 

오호~~~ 2층 테라스에 올라오니 이런 경치가!!!!

교토 봄꽃 여행을 이렇게 느긋하게 경치구경도 하고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쉬기도 하며

쉬엄쉬엄 돌아다닐 생각이었건만 죽자고 사진만 찍고 다녀 힘들었던 보상을 오늘 산책에서 만끽한다.

 

커피 한 모금 느긋하게 마셔주고 동네 주민만 다니느다는 개나리 길을 걸어 팔각정으로 향하는 길.

 

가지를 꺾으면 노란색의 물이 애기 똥 냄새가 난다고 해서 이름 붙은

애기똥풀이 요란한 이름 버금가는 채도 높은 노랑으로 기분을 돋구워준다.

돌 틈사이 자라고 있는 애기 똥풀에 시선 한 번 더 맞춰주고

 

팔각정으로 분주한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서부터는 북악산 산책길이 이어진다.

 

팔각정을 향해~

 

내 눈에만 보인거니 행운의 'V" !!!

자연이 곳곳에 숨겨놓은 다빈치 코드를 찾는 재미도 솔솔한 산책이다.

 

그리고 곧이어 도착한 팔각정의 전망대.

 

몇 년전에 북한산 만만하게 보고 청바지 입고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까지 겁도 없이 갔다가 찌릿찌릿했던 경험이.

그런데 실상은 그때 북학산 입구에서 양미리 구이 못 먹고 온 것이 더 아쉬웠다는 ^^

 

쉬엄쉬엄, 놀며가며, 오랫만에 만난 지인과 밀린 이야기로 회푸를 푸는 사이

어느 새 찬란한 봄을 만끽했던 하루의 봄이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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