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kking/나는 걷는다

[제주올레] 봄 마중하러 갔던 제주올레 9코스

작은천국 2013. 3. 12. 07:30

봄 마중 하러갔던 제주올레 9코스

 

 

대평포구 ~화순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제주올레 9코스는

총 8.2km로 올레구간 중 다소 짧은 코스에 속하는 편이다.

 

대평포구에서 박수기정 위에 올라서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볼레낭길을 걷는동안

어느새 눈앞으로 마주치는 산방산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하나 넘는다.

 

 온화한 햇살이 곳곳에 드리운 그 길에는 봄이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봄 마중 하러 갔던 제주올레 9코스다.

 

 

 대평리는 제주 올레 8코스와 9코스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정방향으로 걸으면 화순까지 올레 9코스가 되고

역방향으로 걸으면 중문해수욕장을 지나 월평에 이르는 8코스를 걸을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대평리는 지난 2009년 공공미술프로젝트로 진행된 미술작품들이

한적한 바다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는 곳이라 색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살짝 가우디풍을 느끼게 하는 리사이클링 작품으로 만들어진 설치미술이 돋보이는 곳이다.  

 

 너무 소박하게 작은 포구지만 방파제는 공공설치 미술덕분에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보말이 많이 잡히는 대평포구인지라 이곳은 국물이 진국인 보말수제비를 맛 볼 수 있고

포구에는 보말 껍데기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놓아 굳이 올레길을 걷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평포구에 잠시 머물다 가도 좋은 곳이기도 하다.

 

멀리서 방파제를 바라보면 설치 미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더 확실하게 볼 수 있다.

 

공식지명인 대평리는  꼭 외국 지명같은 느낌을 받는 '난드르'라고도 불리는데

평평하게 길게 뻗은 지형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평포구의 명물은 뭐니뭐니해도 이 박수기정이다.

'박수기정'은 박수물이 나오는 높은 벼랑이란 뜻으로 박수는 해안절벽에 솟는 물을 바가지로 마신다는 뜻이란다.

백중날이 되면 박수기정 절벽 중간쯤에서 물이 쏟아지는 것을 맞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를 굳이 붙이지 않더라도 바다 한쪽으로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절벽앞에 서면

 무언가 '쿵' 하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아우라에 압도되는 듯하다.

 

또한 대평포구의 일몰은 제주에서도 손 꼽힐만큼 단연코 의뜸으로 쳐도 좋을 듯하다.

장선우 영화감독도 몇 년전 대평리에 터를 잡고  물고기카페를 운영하고 있을만큼 매력이 넘치는 대평포구이다.

 

대평포구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 '돌담에 꽃 머무는 집' 게스트하우스에

여정을 풀고 2주 동안 대평포구를 바라보며 머물렀다.

 

올레 9코스를 걷기위해 숙소를 나서는 길,

마당에는 수선화가 곱게 피어 배웅을 한다.

 

 

번잡한 것이 싫어 다른 사람들이 출발을 하고도 한참이나 후에 혼자 걷기가 시작되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변하는 바다색깔은 곱기만 하고

 

날씨는 더 없이 화창하다. 

 

제주의 봄은 유채꽃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박수기정 아래 자리한 별장 오른쪽길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된다.

평평한 지형을 가진 덕분에 대평리에는 마늘 작황이 대부분이다.

 

얼마걷지 않아 숲길이 시작되었다.

이 길은 '몰질' 이라고 부르는데 옛날에 말이 다니던 길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 박수기정 위에서 키우던 말을 대평포구로 옮기기위해 만들어진 길이라고 한다.

 

바다에서 채 5분여 걷지도 않았는데 파도의 소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원시의 아득함이 느껴지는 숲길이 신기하기만 하다.

이 길이 워낙 한적하기도 하지만 화순까지는 계속 숲이 우거진 길이라

오후 3시 이후에 걷기를 시작하는 건 안전을 위해서 금지하고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들리는 건 오로지 내 발자국 소리뿐... 인줄 알았더니

어디선가 또로로롱.. 꺄웃꺄웃.. 까까까까.. 맑은 새 소리가 들린다.

 

무슨 종류의 새 인지 모르겠으나 작고 귀엽고 어여쁜 새가 들려주는 노래소리를 방해하지 않고 한참을 듣고 있었다.

 

 

한참을 새소리를 듣고 난 후, 다시 걷는 길..문득하니 생각이 떠올랐다.

 

가야할 목적지가 분명했고 언제까지 걷기를 끝내야한다는 목표가 명확했던 산티아고 도보여행에서는 

걷느라... 아니 무조건 앞만 보고 걸어야 했던지라 아무것에도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런 목적도, 목표없이 하릴없이 걸어가는 제주의 올레길

이 길의 여유를 한껏 만끽한다.

 

가다보면 끝이보이고, 가다보면 도착하겠지...

 

일상에서 느끼던 조바심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리 가라프지 않은 길임에도 생각이 모았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는 동안 어느새 박수기정에 올라서서

탁 트인 바다를 만난다.

아~~ 눈 부셔라~~~!!!

 

평평한 지형이라고 해서 난드로로 불리는 대평리, 그리고 대평포구..

내가 머물렀던 게스트 하우스와 저 멀리로 보이는 중문해수욕장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군산오름과 정상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는 한라산이 보일만큼

날씨는 화창하다 못해 쾌청하다.

 

곳곳에 길잡이가 되어 주고 있는 올레표식~

 

박수기정의 윗부분은 소나무가 한가득이다.

 

고개들어 하늘을 보니 소 나무 두 그루가 희안하게 얽혀있다.

 

하지만 평평하다고 얕잡아 보면 큰일이다.

바로 밑은 천길 낭떠러지요 색감만은 참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서슬프런 바다가 기다리고 있으니

되도록이면 절벽에 가까이 가는 것은 좋지 않을 듯하다.

 

보시다시피 곳곳에는 추락취험의 안전줄이 쳐져있다.

 

박수기정 위를 걷는 길은 '볼레낭길'로 이름붙여져 있는데

볼레낭은 보리수 나무의 제주 방언이란다.

하지만 보리수 나무는 생각보다 눈에 많이 띄지는 않는다.

 

바다와 나란히 걷는 길을 지나면

 

다시 호젓한 산길이 이어지고 조선시대 왜적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사용했던

봉수대의 흔적을 만난다. 이 봉수대는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방산아래에 있는 봉수대와 교신했다고 한다.

 

파란화살표를 길잡이 삼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걷는 길이다.

 

 

얼마를 걸었을까 눈 앞에 거짓말 처럼 산방산이 쑥 하고 나타났다.

 

언덕에서 보이는 바다이다.

 

 

길은 언덕 아래로 이어진다.

 

언덕을 내려서는 것도 잠시 다시 산 허리로 올라가기를 반복한다.

길은 그다지 험하지 않지만 평지에서 걷는 것보다는 확실이 시간이 좀 더 걸리는 듯하다.

 

따뜻한 봄 햇살이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 나무들이 푸른 잎사귀가 되기까지는 이른 봄인가 싶다가도

 

곳곳에 활짝 핀 동백이 봄이 온 것을 대변하는 것 마냥

빠알갛게 수줍은 얼굴을 내밀고 있으니 그저 반갑다.

 

산방산이 점점 더 가깝게 다가온다.

 

산 허리를 걷는 길에 뭔가가 눈에 띈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 일본은 제주도를 결사항전의 군사기지로 삼았고

미군 상륙의 가능성이 많은 곳에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연합군 공격에 대응하기위해

해안특공기지를 설치해 포대 및 토치카 벙커를 설치했는데

바로 이 월라봉 동굴진지가 화순항으로 상륙하는 미군을 저지하기위해 구축한 군사시설이란다.

역사의 아픈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니 가슴이 한 구석이 시큰하다.

베를린 필 하모닉도 나치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모든 자료들을 공개하고 있는 이 마당에 일본이 보이고 있는 작금의 행태에 격분하지 않을 수 없는 듯하다.

 

다시 나서는 길은 조금전에 걸었던 풍경과 확연히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몇 시간만에 모처럼 자신의 키 높이 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앞서가는 사람을 뒤쫗아 간다.

 

다시 산길을 벗어 아래로 내려가는 길...

깊은 숲 사이사이로 드리운 햇살에 산든산들 불어오는 바람은 포근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에 마음은 점점 더 푸근해진다.

 

혼자 걷는 발걸음에 지친 기색 하나없이 똑같이 걸어가는 사람...

저 사람이 메고 있는 배낭의 무게는 얼마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바지런한 농부는 겨우내 얼었던 땅들을 이미 손질해 씨부릴 준비를 마친 듯하다.

 

이 빈 곳은 무엇으로 채워질까 상상력을 아무리 발휘해 보아도 잘 모르겠다.

 

에구에구 기름진 땅에 자라고 있는 한송이 노오란 유채꽃...이쁘다.

 

이쯤에서 안덕계곡으로 들어가는 길과 화력발전소를 끼고 동하동 마을로 가는 단축코스로 나뉘었다.

 

이 나무 너머로 안덕계곡이 위치하고 있다.

안덕계곡은 온갖 종류의 희귀식물이 자라는 난대림의 보고라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안덕계곡을 들어갈까 살짝 고민도 했지만

늦게 시작한 걷기에 숲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한탓에 허기를 못이겨 결국 동네로 바로 나가기로 했다.

 

동네로 향하는 길 발걸음은 바빠진다.

 

황개천 표지판을 만나니 마을이 가까워진 듯 하다.

 

이름이 참 특이하다 싶은 황개천은 가끔 누런 물개가 나타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는데

진짜 이런 곳에 물개가 나타날까 싶은 의심이 살짝 들었다. ^^ 

 

마을에 접어드니 이 일대에서 출토된 선사유적공원이 있어 신기했다.

 

제주올레 9코스의 종점 화순항까지는 0.85km ..

어쩌면 올레길 중 가장 짧은 코스가 아닐까 싶지만 산을 하나 넘어야 하니

시간상으로 보면 그리 짧은 것만은 아니다.

더군다나 무턱대고 앞만 보고 걷기에는 바다가 붙잡고

산이 붙잡고, 나무가 붙잡고, 새가 붙잡는 길이다.

게다가 곳곳은 따뜻한 햇살이 비추며 봄 맞이를 하고 있으니

한 걸음 그리 서두를게 무엇이냐 싶었더랬다.

 

아이고 배고파... 맛집이고 뭐고 없었다. 일단 눈에 띄는 곳으로 후다다닥... 들어갔다.

 

 

바당올레 정식을 시켰던 성찬이 나왔다.

다 좋은데 혼자 먹어야 하는 맛있는 밥상...

이럴때 제일 억울하다.

 

한껏 봄이 깃들었던 제주 올레 9코스.. 다시 걷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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