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like traveling/Jeju

[제주] 폭설 내린 한라산의 겨울이 그립습니다.

작은천국 2012. 6. 18. 07:30

폭설내린 한라산의 겨울이 그립습니다.

 

모든 상황이 선물이다. - 신현림-

 

 

 

지난 2월 어수선한 마음을 부여잡고 약 2주간 제주에서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아무 할 일없이 보내는 일상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있었지만

일상을 벗어나면  '시간' 이 느리게 간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새로운 기운으로 차곡차곡 마음을 채우고 있던 날들..

 

 


이 글은 2012년 6월 18일 다음 베스트 글에 선정되었습니다.  

 

제주에는 가는 겨울의 마지막을 아쉬워하기라도 하듯이 이틀 내내 눈이 내리고 있었고

갑자기 한라산을 가보고 싶어졌다.

 

아직 시작도 안한 여름 계절은 이미 한여름 더위로 인해 지치는 요즘

문득, 폭설이 내리던 한겨울의 한라산 풍경이 그립다.

 

올 겨울에는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을 그리워하겠지..

 

오늘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난 또 무엇을 그리워하게 될까?

 

인간이 동경해야 할 그리움은 

영원이 만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인 것인가?

 

제주에서 시간을 보낼 때 한라산을 가보겠다 염두에 두긴 했지만

실지로 가게 될지 어떨지 확신을 할 수 없어서

아이젠을 빼고 나머지 등산 장비들은 챙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틀 동안 그칠 생각을 않고 서귀포에 위치하고 있는 대평리에 눈이 내리고 있으니

'한라산은 폭설이 왔겠다' 번쩍 무언가를 스치고 지나갔고

그렇게 예정에도 없이 눈 뜨자마자 이른 아침을 먹고 한라산 성판악으로 향했다. 

 

장비도 없으니 어짜피 정상까지 갈 생각은 없었고 다만 눈구경이나 하자고 나선 한라산이었다.

 

성판악이 위치하고 있는 5.18 도로 곳곳은 통제되고 버스만 통행이 가능한 상태였지만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핀란드 숲속 어디쯤이라고 해도 믿을 분위기였기에

제주 현지인들이 대다수였던 버스안도 감탄사 연발이었다.

 

성판악에 하차~

 

 폭설이 내렸는데도 한라산 등반을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모였다.

어쩌면 폭설을 기다린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진달래밭을 12시이전에 통과하지 못하면 거리상의 이유로 정상인 백록담을 갈 수 없는 성판악 코스이다.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고 운 좋으면 백록담을 가던지 아니면 진달래밭까지만 가던지

그도 저도 아니면 가는데 까지 가다가 돌아오고... '

 

어짜피 오늘 등산의 목적은 정상은 아니었다.  아니 굳이 정상을 가야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눈구경이나 하자고 나선 길이니..

 

그런데 입구에서 걷기 시작하자마자 눈보라가 휘날린다.

 

눈보라 휘날리니 고개도 못 들고 전진 전진 전진...

 

십 분도 안되어 온 몸에는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 스틱은 그렇다 치더라도

 판초라도 입고 올 걸 그랬나 싶었지만 어쩌랴...

 

그런데 사람들이 참 전투적이다. 

 가야할 목적지가 분명한 사람과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산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달랐다.

 

정상을 가야하는 사람들은 입구에서부터 신발끈을 조이고 파이팅을 외치며

빠른 걸음, 바쁜 걸음으로 고개 한번 들지 않고 앞을 향해 전진 중이다.

 

어짜피 정상을 갈 생각이 없으니 그리 바쁘게 서두를 일도 죽기 살기로 산을 걸어야 할 이유도 없다.

 

산을 대하는 태도도 이럴진데 삶을 대하는 태도 또한 이렇지 않을까?

목적지를 정하고 앞만 보고 가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대로

여유를 부리며 가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대로...

 

어짜피 자신이 설정한 삶의 방향과 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것.

사람이 생긴 모양이 다르듯이 각자 자신이 서 있는 삶의 위치, 역할, 방향성이 다를 뿐 ...

 

나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삶의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그렇게 한라산은 말없이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아~~ 그런데 눈이 너무 심하게 많이 오는 구나

 

그러다 어느 순간 눈이 멈추었다. 야호~~

 

길 잡이 역할을 해주는 선은 원래는 허리까지 오는 위치라고 한다.

그런데 허리선보다 더  높이 눈이 쌓여 땅에서 저 만큼 멀어진 곳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니 상상이 잘 안 된다.

 

그러다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어두컴컴해진 하늘~

 

사방팔방 눈~~ 눈~~~ 눈~~~

입으로는 시도때도없이 눈이 들어오지만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정신없이 연신 감탄사 연발이다.

 

 

온통 눈꽃이 피어 휘어지게 내려앉은 나무가지

 

 이런 건 아무래도 사진보다 영상이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정상까지 가는 건 무조건 통제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니

정상을 못 갈것 같으면 한라산 등반이 의미가 없다며 한 시간도 안돼 하산을 하는 분들도 계셨다. ㅠㅠㅠ

 

어쨋거나  출발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날씨도, 사람들도,, 참 묘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모두 진달래밭까지만 가는 사람들만 남아서 다시 걷기가 시작되었다.

 

해발 900m 표지석은 곧 눈에 파묻힐 예정이다.

 

여기가 어느 세상이뇨~~~

 

사람들이 지날 수 없는 길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모두 새하얗게 지워졌다. 

 

 

어쨋거나  산에서는 안전이 최우선.. 꼭 등산로로만 다녀야 한다.

 

사람들이 밟고 다닌 길은 다져지고 다져지고 또 다져지고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중간 정도쯤에 환상적인 눈꽃이 펼쳐지고 있는 곳에서 사람들이 모두 쉬어간다.

 

 

수종의 위치가 달라진 걸로 보아하니 경계점을 넘은 듯하다.

 

가지마다에 쌓인 눈은 수십개의 곰 발바닥을 연출하고 있는 중~

 

연신 사진찍는 분주한 손길~

 

그러나 춥긴 엄청 추웠다. 사진을 찍기위해 장갑을 살짝 벗으면 채 5분을 넘기지 못하고

손끝은 아려오고 젖은 몸은 추위에 부들부들~~

 

 

전나무(?) 숲길을 따라 걷는 길이 이어진다.

 

간이 휴게소에 도착했는데 이곳이 진달래밭 대피소인줄 알았다.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 앞이 안 보일정도로 폭설이 내리고 있는 중이다.

 

스틱도 없고 방수가 되는 등산복도 아니고 스패치도 없는 상태에 판초도 없으니

 사람들이 진달래능선까지 가는게 힘들어 보인다며 훈수를 두시니

은근히 오기가 나서 아이젠 하나 믿고 진달래밭 까지 가보기로 했다.

 

 

이미 진달래밭 능선까지 갔다오신 분들은 한가롭게 눈썰매도 타면서 하산을 하고 있는 중이다.

 

눈꽃에 취해 사진찍느라 너무 시간을 지체했기에  진달래밭까지 서둘렀다.

 

백록담까지는 못 간다하더라도 한라산 정상의 모습은 보지 않을까 기대를 했건만

 

온통 눈보라 눈보라  눈보라~~

 

진달래밭 대피소는 이글루가 되어 있었다.

 

출발할때 이랬던 얼굴은 진달래대피소에 오는 동안

눈꽃 뒤집어쓴 마귀할멈이 되었다.

 

 

김밥과 초코바등을 간단하게 준비하긴 했지만 사진을 찍느라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었다 뺏다 하는 통에

초코바는 잃어버렸고 배낭 앞에 삶은 달걀은 얼어서 입에 대지도 못하는 상태로 변해있었다.

 

다행히 풀세트로 준비하고 등산을 오신 현지분에게 라면 얻어먹고

초코바 얻어먹고 ... 옷 얻어 입고.. 하여튼..민폐 제대로 끼쳐드렸다. ㅠㅠ

 

하산을 걱정을 해야할만큼 많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어

진달래대피소도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능선이라 바람을 가리는 나무들이 없으니 인정사정 볼것없이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이 숱한 발자국을 내며 올라왔을 길은

눈보라 한 번 휘몰아치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나마 주황색의 줄 표식이 없다면 자칫하다간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다시 원시림같은 눈 풍경을 만나면 숲에 들어서니

 

좀 전의 눈보라가 웬말이냐 싶게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눈이 제대로 내린 한라산 등반은 처음이고

 

일출을 보기위해 한 겨울 태백산 등산을 해 보았지만

확실히 한라산의 겨울풍경은 자연이 빚어 놓은 예술품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었다.

 

 

초록이 완연할때는 사람오름 전망대를 올라도 좋겠다 싶었다.

 

가지 마다마다 휘여지게 쌓인 눈

 

간간이 내리던 눈발은

 

다시 굵어지고 휘몰아 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어느새 잠잠해지고

 

그렇게 눈발이 휘날리던 처음의 대피소는 눈이 그치고 나니 스머프 집이 되었다.

 

기온은 매우 낮은데 나무들이 포근히 감싸안아 바람을 막아주고 있어서 그런지 별로 춥게 느껴지진 않는다.

손을 내 놓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

 

 

내 생에 언제 또 이런 눈을 볼까 싶어 하산하는 걸음 걸음이 아쉬운 순간이다.

 

 

평탄한 평지를 잠시 걸으니

 

어느새 출발점 성판악으로 돌아왔다.

 

눈보라 휘 몰아치던 한라산이었건만 입구에는 눈구름이 걷히고 파란하늘이 얼굴을 내 밀고 있었다.

 

 

모처럼 만의 등산,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사정없이 눈을 맞으며 걸었더니

온 몸은 추위와 피로로 녹초가 되었지만 기분은 몽롱하기만 했다.

 

저녁 서귀포로 돌아오니 출발할때와 달리 내내 맑은 날씨였다며 한라산에 눈이 왔었냐며 궁금해하셨다.

 

그럼요~~~ 정말 엄청난 눈이 내렸답니다.  거짓말 처럼...

 

눈 그친 뒤 푸른 하늘,,

그곳에 내리던 백설기 같았던 눈 들,

가보지 않았더라면 믿기 힘들었을 그림같은 풍경,,

 

삶의 모든 상황이 선물이었음이니...

 

더운 오늘도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