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like traveling/Gyeongsang

[하동] 지리산 쌍계사로 떠났던 고즈늑한 겨울여행

작은천국 2012. 1. 30. 07:30

지리산 쌍계사로 떠났던 고즈늑한 겨울여행

 

 

지리산은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 등 5개의 시. 군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대표하는 산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된 이후 지리산은 문수보살의 도량이라 하여 많은 사찰이 생겨났는데

나중에는 그 숫자가 수백 개에 이를만큼 불교의 요람이 된 곳이었다고 하는데

그러한 역사적 배경 덕분에 지리산 곳곳에는 유서깊은 고찰들과 더불어 불교문화재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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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전라도를 대표하는 화엄사가 있다면

경상도를 대표하는 쌍계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리산은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한 멋은 부족하지만 중후하고 인자한 모습을 지닌 산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엄마의 품처럼 포근히 품어주던 그 곳엔 쌍계사가 자리잡고

속세에 지친 객을 반기며 품어주고 있었다.

 

입구에서 매표소를 지나면  쌍계사로 이르는 약 100m의 길은

하늘 향해 키를 높이며 자라고 있는 숲 터널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길이다.

 

터벅 터벅 다소 가파른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속세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쌍계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고 있는 약 2.5km 의 도보길은

지리산 10경 및 하동 8경 중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불일폭포로 이어지며

이야기가 있는 문화 생태 탐방로인 박경리 토지길 제 2코스이다.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쌍계사 입구에 도착했다.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년 (서기 722년)

대비, 삼법 두 화상께서 선종의 대조이신 혜능스님의 정상(머리)를 모시고 당나라에서 돌아온 뒤 

꿈에서  '눈 쌓인 계곡 가운데 칡꽃이 피어있는 곳 에 정상을 봉안하라'는 계시를 받고 찾아 다니던 중,

 지리산 자락에서 호랑이의 안내를 받고 이 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이 후 정강왕은 이웃 고을에 옥천사가 있고 산문 밖에는 두 시내가 만난다 하여

쌍계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다소 소박하고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총 31개의 도량으로 이루어진 쌍계사는 자세히 보면 두 공간이 분할되어 있는데

 

이는 중창이후 진감국사에 의해 중창된 금당영역(청학루22, 팔상전23, 금당27)

벽암각성스님에 의해 (일주문2, 팔영루6, 대웅전8) 중창된 대웅전 영역으로 나뉘어졌는데 

터가 좁다는 입지적인 한계때문에 독특한 가람구성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 및 내용출처 : 쌍계사 홈페이지  http://www.ssanggyesa.net/>

 

절의 입구에 세우는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

 

일주문 - 금강문- 천왕문이 일직선상으로 들어오는 가람의 배치는

그 독특함으로 인해 한 눈을 사로잡는다.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두번째 통과의례 금강문을 지난다.

 

불교를 수호하고 악을 벌하는 천신인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는 금강문

표면적으로 보이는 선함과 달리 악을 벌하는 역사답게

발 끝으로 사람(?)을 짓발고 있는 모습은 소스라칠만큼의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다른 여타의 절에서는 보지 못했던 형상이라 심히 궁금했는데

인터넷 검색으로는 도저히 찾지 못했고 나중에 여유있을 때 도서관에 들러 자료를 한 번 찾아봐야할 듯하다.

 

금강문에서 약 45도 높이로 고개를 치켜들고 보아야하는 천왕문은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부처님께 의지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하는 스님과 선량한 사람을 돕는 4명의 수호신이 지키고 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으로 이어지는 옆으로 '옥천'인 냇물이 흐르고 있는데

냇물이 지나가든 다리를 물 흘러가는 모양을 헤지치 않고

개천이 지나가는 모양을 본 따

다리도 자연의 일부처럼 사선으로 만들어 놓은 점이 눈에 띈다.

 

인간의 편리함에 맞추어 바꾸지 않고 생긴 그대로의 자연을 품고있는 쌍계사는

지리산이 품고 있는 넉넉함을 그대로 빼다 닮은 듯하다.  

 

 

특히 이 옥천은  '쌍계'로 이름을 바꾸게 된 원인이 된 냇물로 

한 겨울 가뭄으로 인해 냇물이 고인물로 위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무엇엔가 홀린 듯 순식간에 세 개의 문을 통과해 불교의 세계의 출발점에 발을 걸치고 

저 멀리 등지고 지나온 속세를 내려다 보니 

고작 문 세개를 지나온 것 뿐인데 기분이 묘하다.

 

천왕문을 지나니 거대한 9층 석탑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고산스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삼과와 산내 국사암 후불 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이과와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를 모셨다고 한다.

 

웅장함의 9층석탑보다 탑 주위를 두르고 있는 연꽃무늬가 더 마음을 끈다.  

 

 

가람의 정면으로 곧장 우리나라 불교음악의 발상지인 팔영루로 이어진다. 

불교음악인 범패의 창시자인 진감선사가 섬진강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여덟음률로 된 범패인 

어산(漁山)을 작곡했다고 하여 팔영루라는 이름을 부쳤다고 한다.

 

2층의 누각의 1층 한켠에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팔영루를 지나면 정면으로는 대웅전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 곳에서 왼쪽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불일폭포의 등산길이 이어진다.

 

 

쌍계사를 여정으로 잡고 난 뒤 근처의 돌아볼 만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현지인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불일폭포를 가지 않으면 쌍계사는 반 도 못 본 거라며 적극 추천을 하셔서

대웅전을 뒤로하고 먼저 불일폭포로 향했다.   

 

출발할 때 흐린 안개가 내리고 있던 쌍계사와 달리

지리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불일폭포에 이르는 동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 폭포아래 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로 살짝 쳐서 청학봉, 백학봉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불일 폭포는

작년 여름 1박2일에서 폭포특집으로

엄태웅씨가 다녀간 곳으로 방송 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곳이기도하다.

 

 쌍계사의 동쪽 삼신봉과 형제봉 중간 지점, 산중턱 3km에 자리잡고 있으며

길이는 무려 60m 단연 지리산의 최고이고 남한에서 두 번째로 높은 폭포로

강원도 인제의 대승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2대 폭포로 꼽히는 절경 중에 절경인 불일폭포이다.

 

또한 사방이 막혀있고 폭포아래에서 보면 하늘은 동그랗게 보기때문에

최치원이 말한 '항아리속 별천지'를 여기서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겨울이라서 폭포 아래까지 내려갈 수가 없어서  동그란 하늘은 볼 수 없었지만

하동사람들이 그렇게 '꼭 가봐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했던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정말 불일폭포를 보지 않고서는 하동을 다녀왔다는 말은 더 이상 하지 못할 것 같다. 

 

더 많은 내용과 글은 링크한 불일폭포를 누르시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chnagk/11264274

 

 신비의 세계에 잠깐 머물다 온 것 마냥 묘한 기분을 느꼈던 불일폭포에서

다시 쌍계사로 돌아오니 거짓말처럼 눈 대신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즈넉한 비가 내리고 있는 풍경은  온 세상을 깨울 5개의 소리들이 어렴풋이 들리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추적 추적 비가내리고 있는  쌍계사를 둘러 본다.

 

대웅전앞으로 스님의 수행공간이자 공부를 하는 공간인 적묵당과 설선당이 마주보고 있다.

 

 

그리고 정면으로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이다.

 

 생각보다 불일폭포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터

성급한 발걸음으로 대웅전 계단을 옮기는 빠쁜 걸음, 

 조용히 걸으라는 문구에 여유를 되찾는다.

 

대웅전에 올라서니 신라시대 문장가 최치원이 썼다는 진감선사대공탑기(국보 47호)가 희한안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다. 

최치원의 뛰어난 문장실력으로 인해 한국의 4대 금석비문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다는 이 비석은

그 내용보다도 비스듬이 앉은 자리 모양새 때문에 더 눈길이 가던 국보였다.

 

연우가 내리는 것에 아랑곳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쌍계사는 여러 문화재 외에도 차와 인연이 깊은 곳인데

쌍계사 입구에는 차 시배지 기념비가 있다.

 

신라 선덕여왕때 당나라에서 처음 들여온 차는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고

이후 쌍계사와 화개부근체 차밭을 조성 보급했다고 전해 지고 있다.

 

담벼락을 타고 자리를 잡은 차 나무에 깊고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처마끼리 연결되어진 나한전을 따라 걸으면 비로자나불을 모신 화엄전이 보인다.

산스크리트어로 '태양' 이란 뜻을 가진 화엄전은

불교의 이상향인 진리의 빛이 가득한 세계라는 한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곳이란다.  

 

 

 몇 개의 전각을 더 둘러보고 돌아서는 길 

 금강계단으로 조성된 곳에 기원을 비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리 간절히도 소원을 비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속세의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나 또한 마음으로 안녕을 빌어본다.  

 

 경내 이곳 저곳을 걷다가 마주친 소박한 마애불

이미 자신의 도의 경지에 이른 스님보다는 금방이라도 꿇은 무릎이 아프다고 벌떡 일어나

개구진 웃음을 흘릴 것 같은 동자승의 느낌이 정겹게 다가선다.   

 

 겨울비는 그칠 줄 모르고 추적추적 계속 내리고 있는 중이다. 

 

잠시 쌍계사에 머무는 동안 어렴풋이 느꼈던 사바의 세계

 

가을은 이미 저만치 떠나 버리고 고즈즉한 겨울여행으로 찾았던 그 곳은 

가지 마다 서린 빗방울이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2012년 맑게 웃으며 좋은 말, 좋은 생각으로 향기롭게

겨울 자락을 붙들고 다음 겨울을 기다린다.

 

기억으로는 분명히 2005년도에 쌍계사를 다녀 왔었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동하면 십리벚꽃길과 쌍계사가 아니던가? 

 

그래서 여수 EXPO 여행지로 하동이 선택되었을 때

오랫만에 겨울의 쌍계사는 어떤 모습일까 싶어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데 쌍계사는 모든 것이 처음 본 것 마냥 낯설고 생소한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불일폭포가 아예 기억에도 없는 것인지

분명히 봄비가 내리고 매화가  피던 계절에 찾았던 쌍계사였고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찍었던 사진도 있는데

쌍계사를 아무리 헤집고 다녀도 이 사진을 어디에서 찍었느지 알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너무 궁금해 기록을 찾아보니...

아뿔사.... 화개장터를 구경하고 쌍계사 벚꽃길을 차로 달려 돌아보고 난 뒤

바로 구례로 넘어가 화엄사에서 찍은 사진이었던 것이다.

 

근데 왜 나는 쌍계사를 갔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을까?

 

덕분에 기억속의 매화를 찾겠다고 겨울비를 맞으며

쌍계사 구석구석 그 어느 때 보다 열심히 돌아봤으니 

화엄의 매화덕분에 제대로 쌍계사를 기억하게 될 듯하다.  

 

쌍계사에서 추억에 있던 매화나무는 못 찾고 해우소 앞 바위에 자리를 잡은 동백나무를 만났다. 

땅도 아니고 바위에 자리잡은 동백나무의 경이로운 생명력..

 

내 서 있는 곳 그 곳이 땅인지 바위인지 뭐에 그리 중요하겠는가?

숨쉬고 살아 꽃 피우면 그만인 것을 ..

 

고즈늑한 겨울 여행의 끝에 꽃 피울 봄을 붙잡고 돌아왔다.

 

 

<쌍계사 찾아 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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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은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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