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kking/산티아고 가는 길

[까미노/산티아고 가는길] 특별한 날짜를 기억하게 만드는 산티아고 가는 길

작은천국 2011. 11. 3. 12:22

특별한 추억은 특별한 날짜를 기억하게 만든다.

 

 

늘 이맘때가 되면 산티아고를 걷고 있던 산티아고의 어느 날 하루,

그  기억 중 한 자락을 어쩔 수 없이 붙들고 있게 되는 것 같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의 거리만큼인 까미노 데 프란세스 800km 도보여행은

그저 걷기만 했던 여행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산티아고를 다녀오고 나서 그 길을 같이 걸었던 사람은 물론이지만

비록 다른 시기에 그 길을 걸었다고 하더라도 

 '까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 가는 길)'를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얼굴 한번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자신의 추억과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어느 곳을 여행했다고 한들,

이렇게까지 끈끈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을까?

 

아마도 그건,

누구나 그 길을 걷는 동안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게 보냈던 시간들에 대한 동지의식 같은게 아닐까 싶다.

산티아고로 인해 인연이 닿게된 페북 친구의 말처럼

산티아고로 향해 떠났던 모든 이들이 가졌던 공통분모로 작용하고 있는

일상에서 켜켜히 켜켜히 쌓아두고 미련을 떨치지 못해 버릴것 버리자고 떠났던 산티아고였기에 ...

 

 

 

대전대에서 여행관련으로 특강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니 거의 새벽 한 시

다음 날 오전11시부터 회의..

12월 전시회를 앞두고 강행군중이다.

 

회의가 끝나고 잠시 비는 시간을 틈타 오랫만에 서점에서 책 한권을 골라 들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불성설이다.

눈만돌리면 오색찬란한 단풍이 어른어른 거리는데 이런 날씨에 책을 보라는 건 고문이지 않을까? ㅎ

 

내 배낭은 벌써 산티아고를 3번째 다녀온 나보다 더한 녀석이다.

배낭도 찾아야겠고 토탈미술관의 전시도 봐야겠고 모처럼 시간을 내 본다.

 

평창동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부암동 초입 은행잎들이 옷을 갈아 입고 있는 중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드로잉작가 '댄 퍼잡스키'의 전시회를 보러 토탈미술관으로 향하는 길..

아직까지 전시회날짜가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어영부영하다가 아무래도 놓칠 듯하여 시간을 쪼갰다.

 

  버스정류장에서 곧장 미술관을 가도 되는데 늘 그렇듯이 산책을 즐기는 언니와 나는

가을이 한창인 평창동 마실길을 느긋하게 걸었다.

 

따사로운 봄볓이 한창일 때 걸어 보았던 길인지라 가을에 오니 새롭다.

 

특히나 북한산 자락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인지 단풍 색깔이 더욱 고운 듯하다.

 

어~~ 여기에 민들레 영토가 있었나? 언제 생겼지?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니 언제가 한번은 오게 될 듯하다.

 

댄 퍼잡스키의 드로잉을 보고 난 뒤 보성언니의 한 마디

'도루묵여사의 촌철살인'이라고 해서 배꼽을 쥐고 웃었다. 

 

어찌보면 참 개구진 아이가 그린 그림같기도 한데 확실히 그의 그림엔

묘한 페이소스가 묻어 있었다.

 

'꿈' 위에 올라섰지만 진정 제대로 꿈을 밟고 서 있는 것일까? 

저 사람이 흘리고 있는 건 땀일까? 눈물일까?

 

전시장  유리벽의 공간을 이용해 그렸을 그의 퍼포먼스가 있었던 오픈식에 참석하지 못했던게 조금 아쉬워진다.

 

 

산티아고를 다녀오고 나서 전시회를 2번이나 하고 나니 진이 빠지기도 했고

요즘은 다른 일때문에 너무 바쁘다보니 오히려 산티아고에 대한 생각은 덜하고 지내는 나와 달리,

산티아고를 같이 걸었던 보성언니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은 뒤늦게 산티아고를 추억하고 있는 듯하다.

 

보성언니네는 산티아고에서 찍은 사진으로 화이트보드판에 도배를 해 한켠에 아예 걸어 두셨다..

허구헌날 내 사진만 보다 남들이 찍은 놓은 사진을 보니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산티아고에 푹 빠졌다.

 

어.... 이게 뭐야... 언니 내 사진 언제 찍었어?

뭐... 니가 어디에 있는데...

 

여기.. 여기.. 내가 이런 사진도 찍었나?

야... 이게 너였어... 난 스페인 앤 줄 알았다...ㅎㅎ

 

 

2009년 10월 31일... 대한민국이 노래로 기억하는 시월의 마지막 날은 서양에서는 할로윈 데이로 분주한  날이다.

약 25km를 걸어 아스트로가에 도착을 했고 다른 날 보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에 괜히 고무되어

아스트로가 이곳 저곳을 서성이다가 무언가를 하고 있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났다.

 

쟤네들 뭐하는 거지?  할로윈데이를 즐기고 있는 아이들을 눈 앞에서 보니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어~~~ 얘네들은 시월의 마지막날 이러고 노는구나...

이 날의 특별했던 경험은 해마다 10월 31일이면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는 노래가사처럼

이젠 노랫말로 기억하는 시월의 마지막이 아니라

스페인의 아스트로가를 기억하고 마음은 항상 스페인에 머물고 있을 듯하다.

 

 

2009년 11월 1일 아스트로가의 불타는 아침 하늘..

서쪽에 위치한 스페인이라 멋진 일출 보는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10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맞이하는 11월의 첫 날은 이런 아침이 맞이하고 있었다.  

 

2011년 11월 2일 보성언니네 집에서 보는 불타는 노을... 

상암에서 보는 노을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아~~ 좋구나.. 

 

아픈 다리 질질 이끌고 알베르게에 도착해 와인을 사러 나갔다가

노을이 너무 이뻐서 지수랑노을을 쫗아  미친듯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었던 날이 스쳐간다.

 

별 것아닌 10월 31일 아스트로가의 사진 한 장,,

나는 어느새 산티아고로 돌아가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구마에 배까지 언니가 챙겨주는 바람에

짐이 너무 많아 배낭에 모든 걸 집어 넣고 메어보니 얼추 10kg이 넘는 듯하다.

아이고 무거워라... 이걸 메고 내가 약40일을 걸었다니 다시 생각해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무척이나 오랫만에 배낭을 매어보니

몸에 착 달라붙는게 아직까지 그 기운이 남아 있는 듯하다.

 

마음같아서는 이대로 집까지 걸어가고 싶었으나 배낭매고 버스타는 것에 만족했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정말 2015년에 다시 산티아고를 가느냐 마느냐하고 있다.

 

언니는 아마도 2017년에 갈 것이 확실해 보이고

모르긴 몰라도 나경이가 2015년에 갈 확률이 커 보인다.

 

지수와 나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한 번은 그 길을 다시 걷게 되지 않을까?' 라며

아직까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이제 곧 있으면 11월 11일 전국민이 과자로 기억하는 데이가 찾아온다.

 

그러나 우리에게 11월 11일은 내 생일만큼이나 두고 두고 기억하고 있는 완전히 특별한 날이다. 

바로 2009년 11월 11일에 800km의 마지막 여정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날~~

 

산티아고 대성당의 보타푸메이로가 하늘 높이 날으며 내뿜어 내던 자욱한 연기속에

 

눈물 콧물 흘리며

내 자신에 대한 믿음과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던 그 날의 벅찬 감정을 기억할 것이다.

 

케이트 아줌마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하던 나를 보고 혀를 끌끌 차던 보성언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도 못할 스페인어로로 강독하던 신부님 말씀이 이어지자

나에게 주책이라던 언니,, 결국 이 언니가 하도 울어서 옆에 있는 스페인 아줌마 그 옆에 있던 그 아줌마 남편

또 그 옆에 있던 사람, 앞에 앉은 사람, 그 옆에 앉은 사람... 등등

결국 죄다 현지인들에 둘러쌓여 앉았던 우리 자리는 눈물바다가 되었고

서로 휴지에 손수건 나눠가며 눈물딱으랴 핑핑대며 코를 풀어대는 통에

울다가 웃다가... 다시 또 울다가 웃다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이 추억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해마다 11월 11일이면...

 

 

'고통없이 영광도 없다'는 단순한 진리속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를 찾아

나는 날마다 나의 길  '산티아고'를 열심히 걸어 가고 있는 중이다.

 

너무 정신없이 바쁘고 지치는 요즘,,

 

그 누구의 속도가 아니라 내 속도대로 천천히.. 천천히...

그리고 항상 즐겁고 명랑하게...

 

산티아고에서 받았던 메세지를 나즈막히 떠올려본다.

 

다가오는 11월 11일 산티아고 급벙개 이벤트라도 해볼까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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