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Country/India

[인도여행] 마날리(Manali),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

작은천국 2011. 8. 10. 09:50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마날리(Manali)

 

히말라야 산맥을 병풍으로 가지고 있는 마날리(Manail)는

인도의 신 마누(Manu)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을 만큼 인도 신화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마날리(Manali)라는 이름에서 벌써 올드스러움이 물씬 풍기는데

그 의미는 "마누의 집"이라고 한다.

 

마누는 힌두 신화에 따르면 물로 대홍수로 모든 것이 잠겼을 때 이곳에 내려와 인류 역사를

새롭게 시작한 존재로 성경에 노아가 있다면 인도에는 마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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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자세히 마누(Manu)의 신화를 살펴보면

아주 오래전 인도 평원에 살던 마누라는 사람이 말하는 물고기를 잡게되었는데

그 물고기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죽이지 말라고 마누에게 빌었고

마누는 결국 물고기를 키웠고 더 이상 키울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강에 놓아주었다.

물고기는 마누를 떠나며 곧 세상에 홍수가 닥칠 예정이니 큰 배를 만들어

동물의 새끼와 식물의 종자를 보존하라는 이야기를 전하는데

배가 완정될 즈음 진짜 홍수가 발생했고 마누가 만든 배는 약 40일간 방황하다가

지금의 마날리 산 중턱에 정박하게 되었고 그때 살아 남은 동물들과 식물들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게되었기에 현 인류의 선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다른 신화에서는 조화의 신 '비슈누'가 물고기로 변한 신이라고 한다고도 한다.

 

따라서 마날리 주변에는 많은 힌두사원이 있어 인도의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도시이기도 하다.

 

(내용참조 ; 세계일보 전명윤의 아시아문화기행 '인도 마날리 꽃과 설산의 아찔한 유혹')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080828002386&subctg1=&subctg2=

 

올드 마날리의 집들을 통과하면 마날리 이름의 유래가 된 마누의 사원을 볼 수 있지만

델리에서 마날리까지 예정시간보다 5시간이나 더 초과되었고

해발 고도 2,000m 가 넘는 도시라 고산증 적응이 필요해 휴식을 취하는 통에

올드 마날리의 마누사원을 볼 시간적 여유는 없는 것이 다소 아쉬웠다.

 

그래서 뉴마날리의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힌두사원과 바쉬쉿 온천을 둘러보러 아침 일찍 산책을 나섰다.

 

바쉬쉿 온천의 모습

 

인도 최고의 휴양 도시답게 이른 아침부터 관광 상품을 파는 가게들은 분주하기만 하다. 

 

전화가 안되는 지역의 마날리이기 때문에 (로밍폰은 아예 사용이 되지 않는 오지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및 국제전화를 이용하기위해서는 인터넷 카페를 이용해야 한다.

딱히 걸 때도 받을 때도 없는 전화지만 처음에는 전화가 안되니 너무 불안하고 불편했는데

지내다보니 점점 전화가 없던 아날로그 세상이 더욱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쉬쉿은 인도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관광지라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뜨거운 물이 쏟아지는 유황온천이기때문에

 마날리의 주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목욕을 하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바쉬쉿의 온천이 함께 있는 힌두사원은

오랫동안 수행한 힌두의 성자 바시스트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이 성자를 기념하기위해 지어진 사원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사원안에 온천이 위치하고 있는데 입장료는 없고 성금함이 있는데 돈을 내고 싶은 사람만 성의껏 내면 된다.

 

 

 

 

 

 

사원외부를 장식하고 있는 정교하게 조각된 목조 조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른 아침 사원의 풍경

 

이곳의 주민들은 여기에서 하루의 시작을 하는 것이 의무처럼 느껴진다. 

 

사원의 내부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지만 경건함과 고요함이 맴돈다.

 

 

돌 위에 손을 문지르고 탑 돌이를 하듯 돌아 나가는 모습에서

이들이 가진 종교적인 신념이 주는 경건감에 절로 숙연해진다.

 

 

 

힌두사원안에 온천이 위치하고 있어 이른 아침 사원참배와 온천욕을 겸하고 있다.

오전에는 물이 깨끗하지만 오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는 곳이라 물이 지저분하니

혹 이용을 하고 싶다면 오전에 일찍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론 남탕과 여탕은 철저히 구분되어 있다.

 

온천욕을 끝낸 아이들

 

아이 부끄러워라~~

 

나에겐 참으로 낯선광경의 모습이 다가온다.

 무엇으로 하여금 이 사람이 이른 새벽부터 불편한 몸을 혼자 이끌고 이곳으로 와서 목욕을 하게 만드는걸까?

 

힌두교에서는 화장한 재를 강물에 띄우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러나 인생 최고의 행복으로 치는 이런 풍습에도 화장을 하지 않는 네 부류의 인간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장애인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살아서 천대와 구박을 받았기 때문에

굳이 화장을 하지 않아도 윤회의 업을 소멸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사상으로 인해 장애의 몸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운명이라 생각하며 묵묵히 받아들이고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윤회 사상'이 우리가 볼 때는 답답하게 보인다 싶어도  

어쩌면 이것이 인도를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힘이 아닐까 싶었다.

 

사원의 마당에는 큰 놋쇠 그릇이 보이는데 무엇에 사용하는 물건인지 궁금했지만

너무 경건한 분위기라 물어보기가 마땅찮아 궁금증만 남겼다.

 

 바쉬쉿 온천의 맞은편으로 또 다른 사원이 위치하고 있다.

빨간 건물뒤는 돌로 쌓아 만든 것은 힌두교의 석적사원이다.

시카라의 형태를 보면 북부의 사원인지 남부의 사원인지 구분이 가능한데

남부의 힌두사원이 위로 갈수록 피라미드 식으로 감소하는 중층형이라면

북부의 힌두사원의 시카라는 보는데로  포탄의 모양을 하고 있다.

 

빨간 벽돌 뒤로 보이는 건물이 어디서 눈에 익숙하다 싶어 기억을 더듬어보니

일전 마날리로 올때 독특한 건축물로 궁금증을 가졌던 바로 그 건물이었다.

 

바쉬쉿의 골목 위쪽으로 노천온천의 남탕이 있는데 

다들 속옷을 입고 있는 줄 알고 사진을 찍으러 바짝 다가가다 화들짝 놀라 바로 돌아섰다.

 

밑에서는 온천물을 이용해 간단히 세수와 양치를 하는 사람들과 빨래를 하는 사람들로 왁자지끌한 분위기다.

 

이런 곳에 가게도 빠질 순없 다.

 

무얼보고 계십니까? 자뭇 궁금했지만 ...

 

힌두사원와 바쉬쉿을 보고 그냥 돌아가기가 아쉬워 길 끝에 있다는 폭포까지 산책을 나섰다.

길 강아지들도 엄청 돌아다니는데 웬만하면 만지지 않는 것이 좋다.

 

오호~~ 여기에도 한국 음식을 파는 오원이라는 곳이 있다는게 반갑기만 하다.

 

손에 갈아 입을 옷을 들고 이른 아침부터 바쉬쉿을 향해 가는 형제들

 

마을 한 구석에도 힌두사원이 있을 만큼 힌두적 신화로 가득한 마날리인듯하다.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사람을 이곳에서 만날 줄이야 지구촌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듯 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에서 먹은 음식을 줄줄이 ~

한국을 거쳐간 사람들에겐 한국은 음식의 나라로 기억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은데

음식이 좋다기보다는 음식을 함께 나누면서 마음을 나누고 정을 쌓는 문화에 더 반한것이 아닐런지

 

히말라야를 병풍으로 가지고 있는 탓에 겨울이면 무척이나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

지붕이 강원도 지방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박공지붕'이라고 부른단다.

 

손으로 일일이 돌계단을 쌓아올린 마날리의 전통가옥의 돌계단이 경이롭기만 느껴진다.

 

 

 

폭포 가는 길은 흡사 지리산 산골마을 어디쯤을 걷는 기분이 들 만큼

무척이나 정겹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길이다.

 

 사진을 찍으라며 유난히 친근하게 말을 걸던 할아버지

 

요가의 한 동작을 취하기도 하셨는데 결국 이러고서는 마지막엔 돈을 달라고 하셨다.

마침  마당을 쓸고 계시던 할머니가 '저 양반이 또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듯이

막 뭐라고 잔소리를 하시니 할아버지가 꼼짝도 못하시는 폼이 영낙없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닮은 지라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몹시도 힘들었다.

자고로 전 세계적으로 남자는 젊으나 늙으나 부인 앞에서는 작아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꽃을 좋아하는 마날리의 사람들

집 마당의 능소화가 여름의 정취를 살포시 느끼게한다

 

히말라의 만년설이 녹아 내려오고 있는 비아스 강

 

전통가옥은 1층은 소가 2층은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실은 고향의 냄새가 폴폴~~

 

강을 옆에 끼고 있는 탓에 마날리의 대표적인 음식은 송어라는 것을 한국에 돌아오서 나서야 알았다.

에이... 아쉬워라... 마날리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아서 오원에서 밥을 먹을 기회가 없었다.

 

옹기종기 정겨운 모습의 삼형제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어디가니? "   "바쉬쉿가요~~"

 

또 다른 아이들이 길을 따라 올라온다

"어디가니? "   "바쉬쉿가요~~" 

눈 뜨자 마자 목욕준비를 해서 바쉬쉿을 향해 가는 아이들,,

보시다시피 종교가 곧 삶인 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린시절부터 아니 태생적으로 삶과 종교가 일치가 되는 문화이다.

그러니 종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다시 길을 걸어 모퉁이를 도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말들이 떼를 지어 내려온다.

 

참 옛스러운 인도 마날리의 정겨운 풍경이다.

 

 

폭포를 향해 계속 걸어가 본다.

 

앙증맞은 벽화가 낡은 담벼락에 생기를 부여하고 있는 중이다.

 

마날리는 어쩜 이렇게 한국의 자연환경과 많이 닮아있을까 싶을 만큼

눈에 익은 식물들과  

 

눈에 익은 풍경들로 인해 마음이 절로 푸근해 지는 곳인 듯하다.

길가에 널려있는 소똥마저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하하 !! 정말 오랫만에 보는 감자꽃이구나~~

 

지리산 혹은 강원도 태백의 어느 한줄기에 있는 듯한 착각에 계속 빠져들게 만든 마날리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시절의 걷던 동네 시골길을 어슬렁 거리는 기분을 떨치기 힘들었지만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어 마음과 달리 현실은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고 있었다.

 

저 멀리 언덕에 보이는 집을 돌아 약 500m만 더 가면 폭포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쪽으로 나 있는 계곡엔 폭포는 아니어도 사정없이 돌틈사이로 물이 흘러내려 오고 있어

폭포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다시 돌담길이 이어지고

 

멀리서 보이던 집에 도착하고 보니 카페였다.

 

카페와 민박을 같이 운영하고 있어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구분이 좀 안가긴 했다.

 

아무래도 비가 점점 많이 오고 여기에서 폭포까지 가파른 길이 이어지고 있기에

길이 많이 미끄러워 폭포를 보는 것은 접어야 했다.

 

처음엔 짜이를 먹고 가라고 했고 이후엔 저녁엔 음악이 흐르고 파티도 한다며 우리를 붙잡았으나

계속된 일정이 있어서 어짜피 다시 못 올곳이었지만 매정하게 일언지하에 거절하기엔 

사람들의 환대가 너무 좋아 살짝 말고리를 흘리며 돌아서야했다.

 

아쉬운 안녕을 고하며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이 집앞에서 야구를 하며 놀고 있었다.

어릴적, 동네 밭에서 고무공과 나무막대기를 들고 야구를 하던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된 장비 하나 없었지만 어쩌다 우연히 나무막대기에 공이 제대로 맞아 떨어지면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쾌감은 밤에 자면서도 꿈을 꾸었을 정도로 재미있는 놀이 중 하나였었다.

지금의 아이들은 몸으로 뛰고 땀을 흘리는 놀이보다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 게임놀이로 대체가 되었기에  

우리가 가진 소중한 추억과 기억이 이들에겐 없다는 것이 때론 쓸쓸하지만

그들에겐 그들만의 세상이 존재하고 이미 우리들의 세상은 지나간 세상이 되었다는 것,,

그렇게 시간은 서서히 조금씩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동네주민들도 만나고

 

좀전 말들에게 먼저 자리를 내어준 길을 따라 다시 마날리 쪽으로 내려간다.

 

폭포까지의 산책을 끝나고 돌아오니 거리에는 일요일이라 그런지 더욱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온 가족들이 목욕을 끝내고 거리 곳곳에 즐비한 가게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있는 중이다.

 

이발소.. 그리고  여행자들을 위한 세탁 서비스를 해주는 곳도 보인다.  

 

폭포로 출발할 때 보았던 개는 어느새 여기까지 내려와서 엎드려 있는 중이다.

 

산책을 끝내고 난 뒤 아침을 먹고 마날리 시내에 있는 티베트 사원을 보러 나섰다.

 

사원의 입구

 

사원의 입구에는 기념품 가계들이 즐비한데 티베트 사원앞에 있어서인지 기념품들은 전부 티벳관련물품들이었다.

라다크의 레 지역보다 마날리가 물가가 싼 편이라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마날리에서 준비를 해 가는 것이 좋다.

 

티벳트 사원의 오색찬란한  룽다

히말라야를 넘어 라다크 지방으로 들어서면 인도라기보다는 티벳트라 불러도 좋을 만큼

티벳문화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니 티벳관련은 라다크편에서 자세히 소개하겠다.

 

 

 

 

 

티벳트사원의 지붕은 노란색으로 장식하고 있는 탓에 멀리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원 한 쪽으론 접시꽃이 만발해 계절의 정취를 더해간다.

 

또 다시 갑자기 내린 소나기~~ 아이는 비 맞는게 싫단다.

 

관광객들, 참배객들이 뒤엉켜 티베트 사원은 늘 분주한 곳인듯했다.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가족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여행을 온 듯했다.

사원앞에서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어 사진을 찍는데

저 아저씨는 왜 나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거니? ㅎ

 

소낙비라고 하기엔 너무 억수같은 비가 내려 시내구경은 여기서 멈추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몬순시기도 아닌데 비가 너무 자주 온다며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살짝 걱정을 하셨지만

더 큰 걱정은.. 이 날 새벽2시 레로 가는 지프를 타면서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을

이때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고 이 비로 인해 정말 죽을 고생을 해야했음이니

다음 주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히말라야 고갯길에서 만나볼 수 있겠다.

 

2011.6.26  마음은 여전히 인도 마날리에 머물고 있는 중 

 

간밤에 세차게 내리던 비에 온 신경이 곤두서는 것도 잠시

 15시간의 지프여행의 피로감은 이내 깊은 잠으로 빠져 들게 만들었다.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뜨게 만드는 자연속에 들어 앉은 평온함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을 살짝 달뜨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바쉬쉿 온천까지 가는 길에 만나는 평화로운 풍경들,

그 풍경속에 마날리의 아침은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고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자연이 주는 후레쉬한 아침 풍경까지 마날리의 모든 것은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단 하루, 단지 하루만 이곳에 머문다는 것이 계속 아쉬움으로 남는다.

 

눈뜨자 마자 바쉬쉿으로 향하는 아이들

모든 일상이 종교에서 시작하는 경건함은 장애인을 만나는 순간 숭고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향해 기도와 기원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현세의 삶, 내세의 삶...

내세의 삶이 현세로 이어지고 다시 또 내세로 이어진다고 믿고 있는 그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든 그들이 원하는 바 대로 이루어질 그들의 모습이기에

짧게 머무는 이방인의 눈에 비친 아침은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신화속의 마을에서 '경건함'으로 시작하는 그들이 존경스럽기만 했다.

 

 나의 인도는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까지 갈것인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바쉬쉿에서 나의 신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 해답은 오직 나에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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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은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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