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lesse Nomad/Interesting movie

[영화] 울다가 웃다가 '그대를 사랑합니다'

작은천국 2011. 5. 3. 08:30

[영화] 울다가 웃다가 '그대를 사랑합니다'

 

 

뭔 영화제목이 '그대를 사랑한다'고 대놓고 말하니

실은 그닥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강풀의 원작 만화가 워낙 유명하기도 했고 

눈물이 거의 없는 나의 세대의 남자들이

유일하게 책, 그것도 만화책을 보면서 울었다고 말하던 '그대를 사랑합니다' 였기에  

호기심 반, 기대반에 보게되었다.

 

 

 

 

 

등장하는 인물들도 젊은 배우라곤 하나도 없는 중년의 배우가 이끌어갈 '그대를 사랑합니다'에

(기껏해야 이순재의 손자로 나오는 송지효정도 밖에 없다)

대한 기대는 애초부터 그렇게 높지 않았다.

다만, 워낙 관록있는 주연 배우들이라 손해볼 것은 없다 싶었지만 만화 원작을 보지 않은 나로서는

영화제목이 주는 상투적임과 진부함이 있을 중년의 로맨스라는 소재는 그리 구미에 당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건 순전이 기우였다.  

자고로 우리 아버지 말씀이 울다가 웃으면 '*구멍에 털 난다'고 하셨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일어서면서 나는 털 달린 짐승이 될까 적잖이 걱정을 해야할 만큼

3초에 한 번씩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야했다.

억지로 신파조의 눈물을 짜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한 줄거리와 배우들의 완성도 높은 연기는 최고였다고 하겠다.

 

평생 자신의 뒷발치에서 따라오면서 '같이 좀 가자'고 외치는 부인의 발걸음 한 번 맞추어 준 없이

 입만 열면 까칠하고 눈만 마주치면 버럭대는 만석역의 이순재,

부인이 생전에 그렇게 먹고 싶다는 우유를 위암 말기로 죽음을 앞둔 그제서야 사다주는 무심한 남편이었던

그가 부인과 사별하고 그 죗값을 치르듯 새벽 우유배달을 하며 그 우유로 인해

젊은 사람들과 다름 없는 번갯불 같은 사랑이 찾아온다.

 

깡촌의 산골에서 태어나 너무나도 힘들었던 시절 사랑 하나만 믿고 남자 따라 야반도주로 고향을 떠나왔지만

힘든 도시 생활에 그 사랑도 오래가지 못해고 그녀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남자도 떠났고 설상가상으로 돈이 없어 제 품안에서 자식을 떠나보내야 할 수 밖에 없었던

말 못할 고통을 평생의 한 으로 품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주민등록증도,

이름도 없이 평생을 파지를 주어가며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그녀에게도

처음으로 '이쁜' 이란 이름을 불러주는 남자가 생겼다.

노 년의 두 남녀가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사랑을 시작하는 노년의 사랑,

사춘기 시절의  사랑과 똑같은 수순을 밟는다.

 

무뚝뚝하기로 둘 째가라면 서러워 할 남자가겨우 첫 만남의 약속시간과  장소를 알리기위해

 밤 새워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며 편지를 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여자는 약속 시간을 놓치고 그녀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남자는

이렇게 약속시간과 장소를 그림편지를 보내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70년 만에 가슴 뛰는 사랑을 만난 남자와 달리

너무나 가슴 벅찬 사랑과 행복이 두려워 그 사랑을 그냥 간직하고 싶은 여자이다.

 

 

 

또 다른 노년의 한 쌍 ,

평생을 택시기사로 열심히 살았던 송재호는 너무나 가정적인 남편으로

치매에 걸린 아내 김수미를 헌신적으로 돌보며 아내와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남편으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은 그녀,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오빠 뭐했어, 이야기 좀 해 줘'로 매일같이 하루 종일 있었던 이야기를

자상하게 들려주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혼자만의 가상의 공간에서 살고 있는 그녀이다.

 

 

두 남녀가 부부로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남, 녀는 부모가 되었다.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며 자녀를 장성시키고

그 자녀들은 다시 자신의 짝을 찾아 둥지를 떠났고

결국, 둘 만 남겨진 부모는 오랜 세월을 지나 다시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노년의 이 둘은 이제 그 사랑을 스스로 끝내려고 한다.

 

이렇듯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시작하는 사랑과 끝내려는 사랑을 통해

진정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관객들에게 울다가 웃으며,

다시 웃다가 우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묻고 있다.

 

그러기에 어쩌면 다소 진부해 질 수도 혹은 다소 무거워 질 수도 있는 에피소드들의

장면 장면에서 넘치지도 더하지도 않으면서 끊임없는 웃음과 진지사이를 오가며

아슬아슬한 감정선을 넘나드는 이 순재의 연기는 

70의 나이가 주는 삶의 역사까지 더해져 관객을 쥐락펴락하며

 왜 그가 최고의 배우인지 유감없이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특히, 무엇보다 늙고 초라해 명색이 배우라는 것과 거리가 먼 채로

과감히 노메이크업으로 대사도 몇 마디 없는 치매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 낸 김수미의 연기는

정말 최고로 꼽지 않을 수 없었다.

 특유의 코맹맹한 소리에서 느껴지는 소름돋는 섹시함과 

해맑게 웃고 있는 배우의 이토록 아름다운 얼굴은

젊은 배우 그 누구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대를 사랑한다'는 이 영화는 이제 사랑을 시작하는 노년과

사랑을 끝내려는 노년을 적절히 대비시켜 웃음과 눈물이 번갈아 터지도록 만들며

삶에 있어 '사랑' 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대명제를 생각해 보도록 만들고 있었다.

더불어 생의 막바지에 있는 노년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많은 생각과 깊은 공감을 하게 한 영화였다.

 

또한 영화의 제목과는 다르게 영화 내용의 곳곳에는

대한민국이 접어들고 있는 노령화 시대에 대한 문제들(치매, 죽음 등)을

사랑이란 주제와 연결시켜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무거운 주제들을 무겁지도, 가볍지 않으면서도

담담하게 그러나 중량함있게 가슴속으로 파고 들게 만드는 이 영화는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원작의 힘도 크겠지만  

결정적으로 감독의 연출력과 편집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연출력은 정말 요즘에도 이런 촌스러운 영상을 사용하나 싶을 정도로 

대놓고 합성한 장면임을 티를 내주고 있는데 

오히려 이런 부분들이 원작이 가진 만화적 느낌을 그대로 살리며

무거운 소재가 주는 칙칙함을 산뜻함으로 바꾸는 효과만점의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 카메라가 점점 줌 아웃으로 빠져나와

산뜻한 연초록으로 가득찬 봄 날의 따뜻한 풍경을 통해  

사랑도, 삶도, 죽음도 그저 담담하게 자연의 일부로 표현하고 있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 마지막까지 눈물이 쉴 새없이 끊임없이 멈추지 않으면서도

가슴 한 구석만은 '그대를 사랑한다'는 따뜻함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10점 만점에 9.5이상을 주는 것이 이유가 있었던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다.  

 

영화 내내 흐르는 루시드 폴, 옥상달빛의 노래도 영화와 너무 잘 어울리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2011년 전주 국제영화제에서도 이 영화를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주제곡  옥상달빛의 '들꽃처럼'

 

 CGV 무비패널 2기 정해경

이 글은 CGV 리뷰보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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