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o Yong Pil/YPC history

조용필 그는 왜 가왕이 되었나?

작은천국 2008. 1. 26.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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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3월 21일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조용필은
말 수 없고 수줍음 많은 소년이었다.
 
그러나 비틀즈의 음악과 형이 가지고 있던 기타와 하모니카는
조용필에게 음악의 열정을 불타게 만들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오랜 무명 시절을 보냈으나 대마초 파동은
그의 발목을 잡았고, 또 다시 3년 간 암흑의 시기를 보내게 되지만...
 
그것만으로 조용필의 음악의지를 꺾기는 불가능했다.
음악의 끊을 끝까지 붙잡고 있던 조용필은
음악을 하기 위해 밀항까지 시도했으며
피를 토하는 득음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더더욱 음악의 열정을 불태웠다.
 
그리고 드디어.........

 

 

활동 정지가 풀린 조용필...
1980년 그는 슈퍼스타이자 국민가수로 가요계에 복귀했다.
그는 7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가수왕을 수상했고
수많은 기록을 쏟아냈으며 그의 활동은 일본으로 이어졌다. 

 

 

 

 

8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평정한 조용필에게
남은 숙제는 슈퍼스타에서 뮤지션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조용필은 87년 모든 방송사의 상을 거부한채
콘써트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시대는 바뀌었고, 변진섭 박남정에 이어
서태지로 이어지는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했고,

 

 
새로운 10대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스타들을 찾아
뿔뿔히 흩어졌다.

 

 
80년대 '가왕' 조용필은 90년대 들어 고비를 맞는다.
그의 음반은 더 이상 가요계를 주도하지 못했고
TV에서 사라진 조용필에 대한 매스컴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의 아픔도 있었고,
 

 

 
다시 TV에 출연하며 인기몰이에 나서야 한다는
팬들의 아우성도 있었지만...

 

 
가수 조용필은 겉으로 보이는 상업적인 인기에 더이상 연연하지 않은채
끊임없이 무대에 섰으며 콘써트와 뮤지컬에 열중했다.

 

 
조용필, 그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한국 가요의 역사다
조용필의 고집과 열정은 대중과 언론의 의식을 바꿔놓았다.

 

 
1999년 조용필은 가요 사상 최초로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섰으며

 

 
KBS 가요대상, 20세기 최고 가수상에 선정됐으며
광복 50주년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가수부문 1위를 차지한다.

 

 
조용필 앞에 후배들은 고개를 숙이며 존경을 표했고,

 

 
4만 5천여 객석이 가득 메운 잠실 주경기장에서
역사적인 35주년 기념 콘써트를 했다.
매정하게 몰아치는 비바람에도 관객들의 조용필에 대한 사랑과
조용필의 음악을 막을 순 없었다. 
 

 

 
여전히 발표하는 앨범마다 새로운 시도와 음악적 열정을 불태우는
조용필에게 '역대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58세의 나이,
조용필은 여전히 음악 열정을 불태운다.
2008년 대망의 40주년을 맞게 되는 그는
19집 앨범과 초대형 공연을 기획하며
또 다른 전설을 준비하고 있다.

 

조용필
 
그의 전설은 아직 진행중이다.
조용필과 함께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내린 축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