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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전라도] 청학동, 삼성궁,하동토지세트장,지리산화엄사

작은천국 2007. 2. 7. 00:02
여행지
청학동, 삼성궁,하동드라마토지세트장, 지리산 화엄사
여행기간
2006.3.26 (여행사랑정모)
나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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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 스토리

청학동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 있는 마을,

인구 100명(1990)이다. 도인촌( )이라고도 한다. 지리산 삼신봉( : 1,284m)의 동쪽 기슭 해발고도 800m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천석( )이 아름답고 청학이 서식하는 승경( )의 하나로 꼽혀왔으며, 주민 전체가 갱정유도( )를 신봉한다.
일명 일심교( )라고도 하는 이 신흥종교의 정식 이름은 '시운기화유불선동서학합일대도대명 다경대길유도갱정교화일심( 西 )'이다. 집단생활을 하는 이들의 가옥은 한국 전래의 초가집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의생활도 전통적인 한복차림을 고수하고 있다.
미성년 남녀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게 땋아 늘어뜨리며, 성인 남자는 갓을 쓰고 도포( )를 입는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마을 서당에 보내는 것도 특이하다. 마을 사람들은 농업 외에 약초·산나물 채취와 양봉·가축 사육 등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삼성궁 : 청학동 도인촌이 있는 골짜기 서쪽 능선 너머 해발 850m에 있다. 정식이름은 지리산청학선원 삼성궁으로, 묵계 출신 강민주(한풀선사)가 1983년부터 33만㎡의 터에 고조선 시대의 소도(蘇塗)를 복원하였다. 궁의 이름은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궁이라는 뜻으로 지어졌다. 도인촌과 달리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한풀선사를 중심으로 수행자들이 선도(禪道)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하는 도장(道場)이다.
수행자들은 새벽에 일어나 삼법수행을 하고 해맞이 경배를 드린 뒤 선식으로 아침을 먹고 활쏘기·검술 등 전통무예와 선무를 익히며, 오후에는 솟대를 세우거나 밭을 일구고, 저녁에는 법문을 공부한다. 한풀선사와 수행자들이 이곳이 소도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쌓고 있는 솟대는 1000개가 넘는다. 한반도와 만주를 상징하여 조성한 연못, 한낮에도 햇빛 한점 들지 않는 토굴, 전시관, 전통찻집 아사달, 천궁, 숙소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맷돌·절구통·다듬잇돌 등으로 꾸며진 길과 담장과 함께 짜임새 있게 가꾸어져 있다.
관광을 하려는 탐방객이 궁 입구에 있는 징을 세 번 치면 안에서 수행자가 나와 맞이한다. 탐방객 가운데 한 사람은 고구려식 도복으로 갈아입어야 안내를 받을 수 있다. 1년에 한 번 가을 단풍철이 되면 일반인에게 개방해 개천대제라는 행사를 여는데, 이때 한풀선사와 수행자들이 닦은 무예를 구경할 수 있다.

 

하동 드라마 토지 세트장 : 지리산 거대한 능선이 남으로 가지를 친 남부능선의 대미에 해당되는 성제봉 아래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진다.미점리 아미산 아래에서 동정호까지의 넓은 들판, 만석지기 부자를 서넛은 낼만 한 악양 '무딤이들'이 그것이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악양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 몸에 받은 땅이다. 평사리가 위치한 지명인 악양은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중국에 있는 지명을 따와서 평사리 강변 모래밭을 금당이라 하고 모래밭 안에 있는 호수를 동정호라 했다.
악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 중에 소상팔경이 있으며, 평사리들에 위치한 동정호와 악양의 소상팔경은 이곳 사람들의 자랑거리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득 담긴 풍경을 자아낸다.
또한 형제봉 중턱 300m에 위치한 사적 제151호 고소성은 신라시대 축성한 것으로 섬진강과 동정호를 발 아래 두고 천년의 발자취를 말해준다.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우리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이곳 평사리에 소설속의 최참판댁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되었으며, 조선후기 우리민족의 생활모습을 담은 초가집, 유물등 드라마 토지의 셋트장도 조성되어 있다.
매년 가을이면 전국문인들의 문학축제인 토지문학제가 이곳에서 개최되어 문학마을로써 자리매김될 전망이며 또한 소설속의 두 주인공을 캐릭터로 개발하여 관광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지리산 화엄사 :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마산면(馬山面) 황전리(黃田里)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로, 통일신라시대 화엄종의 본거지였다. 신라 경덕왕 때 연기(緣起)가 창건하였다. 신라 말 도선(道詵)에 의하여 크게 확장되었고 고려 광종 때 홍경선사(洪慶禪師)가 퇴락한 건물을 중수하였다. 인종은 정인왕사(定仁王師)로 하여금 중수하도록 하였으며, 숙종 때 조형왕사(祖衡王師)가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24년(세종 6)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으로 승격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1630년(인조 8) 각성(覺性)이 중건하기 시작하여 36년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완공되었고 1702년 (숙종 28) 성능(性能)이 장륙전을 중건하였다. 숙종은 이를 각황전(覺皇殿)이라 사액하고 화엄사를 선교양종대가람(禪敎兩宗大伽藍)이라 하였다. 이후 대규모의 중수는 없었다. 가람배치는 대웅전과 누문을 잇는 중심축과 각황전과 석등을 연결하는 동서축이 서로 직각을 이루며, 대웅전 앞에는 동서 5층석탑이 비대칭으로 서 있는 독특한 형식이다. 또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다른 절과는 달리 각황전을 중심으로 하여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불(主佛)로 모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들은 각성이 중건한 17세기 이후의 것으로, 각황전(국보 67)을 비롯하여 대웅전(보물 299)·영산전·나한전·원통전·명부전 등이 있다. 화엄종의 중심사찰로서 창건 이후 많은 고승들이 머무르면서 화엄사상을 펼쳤으며 각황전앞석등(국보 12), 사사자3층석탑(국보 35), 동(東) 5층석탑(보물 132), 서 5층석탑(보물 133), 석경, 원통전앞사자탑(보물 300) 등 문화재·유물이 전한다. 신라 경덕왕 때는 81개나 되는 부속암자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구층암(九層庵)·금정암(金井庵)·지장암(地藏庵) 등만 남아 있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4호.

 하동관련 위의 모든 자료는 하동군청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정보를 얻을수 있다

 http://www.hadong.go.kr

이제는 너무 현대화 되어 버린 청학동의 쓸쓸한 모습
삼성궁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연못                        돌을 쌓아 거대한 탑을 만들어 놓았다
저 북을 세번치면 안에서 사람이 나오고 컴컴한 토굴을 통해 들어가면 삼성궁이 보인다
이 모든것것들을 연장없이 직접 쌓아 만들어 올렸단다.
하동의 토지촬영장
지리산 화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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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은 이젠 너무나도 현대화 되어버려 옛것을 거의 잃어버린 느낌이 물씬 풍기고 있다. 단지 옷을 옛식으로 입고 멀리를 땋는다고 해도 이젠 그 옛날의 청학동은 아닌것 같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여행 최대의 수확은 '삼성궁'이다. 이런곳이 있는 줄도 몰랐고 별 기대없이 어두컴컴한 동굴을 지나 눈앞에 펼쳐진 관경은 그야말로 신천지라고 표현해도 될만큼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 곳이 설립된 배경과 유지하고 있는 모든 내용이 우리나라 건국의 단군과 관련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이나 감동적이었고 더구나 이곳의 모든 자연조형물하나, 돌하나도 함부로 하지 않고 자연그대로 두는 선조들의 지혜를 눈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봄에는 이곳에 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연출할듯하다. 박경리의 토지의 소설이 글로써 존재하는것이아니라 세상밖으로 뛰쳐나온 듯한 느낌이 들 만큼 하나하나에 소설의 이미지가 베여있는 토지세트장.. 그리고 비오는 지리산으로 올라서 내려올때 들렀던 화엄사에 고즈늑하게 피어있던 매화의 자태가 화엄사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