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nkook's Diary/Photo Essay

[사진일기] 꽃 한 송이 피었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

작은천국 2017. 11. 19. 08:00

[사진일기] 꽃 한 송이 피었다고 이 온 것은 아니다.




 꽃이 피었다. 

 다시 꽃이 피었다. 

카틀레아에 다시 꽃이 피었다. 


이 계절에 서양난인 카틀레아에 

꽃이 필 거라곤 생각도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일화독방 불시춘백화제방 춘만원"

(一花獨放不是春 百花齊放春滿園)


‘꽃 한 송이 피었다고 봄이 온 것이 아니라,

갖 꽃이 만발해야 비로소 봄이 왔다'


분명 엄청 반가운 일인데 다른 계절과 달리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건 아무래도 계절 탓일게다.




카틀레아를 구매했던 첫 해를 빼고 지난 6년 동안 한 번도 꽃이 피지 않아

아무래도 집에서는 키우기 힘든 서양난인가보다 생각했다.

 해마다 두, 세잎은 세 순을 키워내길래

꽃은 피지 않았지만 열심히 물만 줄뿐.


그러다 올해 5월 카틀레아에 꽃이 피었다.

하.. 6년, 6년 만에 꽃이 피니  

 헤어진 연인이 돌아온 것처럼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참고로 카틀레아는 서양란 중 꽃이 가장 아름다워 꽃중에 꽃이라고 불린다.

꽃은 어떤 종과 교배를 했느냐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시기를 달리하며 꽃을 피워낸다.

내 화분의 경우에는 어떤 종과 교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처음에 구입했을 때는 4월에 꽃이 핀 걸 구매를 했었기에

봄에 꽃이 피는 종류인 줄 알고 있었다.


그랬는데 처음 구매했을 때와 달리 7월 중순에 꽃이 피길래

또 여름에 피는 종류인가 보다 했다.


카틀레아는 꽃이 좀 오래 가는 편이라 여름 동안 꽃을 보고 있었다.

꽃이 지고 난 뒤 얼마 있지 않아 새순이 올라오길래

그동안 물주기와 환기는 잘 하고 있나보다고만 생각했다.

(새순 올라오면 그동안 관리를 잘했다는 칭찬같이 느껴져서 뿌듯해진다.)

그런데 이게 웬일 새순 사이에 10월 중순인데도

꽃대가 올라오고 있는게 아닌가...

아... 이 상황이 뭐지 싶었다.

넌 대체 어느 계절에서 왔니?


날씨가 더웠던 여름에는 꽃봉오리가 보이고 불과 열 흘만에 개화를 했는데

기온이 계속 내려 가고 있어서인지 성장이 굉장히 드뎠다.


이러다 행여 꽃을 못 피우는 게 아닌가 싶어 해를 따라 계속 이동시켰고

기온이 확 떨어지는 저녁에는 거실에 들여놓기를 여러 날.

20여 일 만에 꽃이 필 정도의 봉오리로 자랐다. 


그리고 5일이 더 지나니 이제 색깔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물을 줄 때가 되긴 했는데 꽃이 피려고 하고 있으니 고민고민하다 물을 줬다.


요 며칠 날씨가 영하권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다른 화분들은

 화분들이 너무 커서 혼자 이동하기가 힘들어 아직 방안으로 들이지 못했는데

카틀레아만은 애처로워서 계속 거실로 옮겨 놓고 있었다.


다른 계절에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이 계절에 꽃 피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게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 본지 거의 27일 만에

 입사귀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꽃이 피었다.!!!!!!!



확실히 여름과 달리 이파리 하나 피워내는 데도

용을 쓰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니

꽃을 바라볼수록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자연이란 게 참 신기하다.

좀 더 투명한 색이었던 여름과 달리

일조량이 줄어드는 계절에 핀 꽃이 색이 좀 더 짙고

크기도 조금 더 작은 것 같다.



꽃 한 송이를 두고 괜스리 심각해진 하루.


 카틀레아를 시작으로

철쭉도  (얘는 일 년에 꽃을 세 번은 피는 것 같다.) 빨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이미 한 달전부터 꽃망울이 올라와 있는 천리향도 얼마 있지 않으면 꽃이 필 것 같다.


잘 자라고 있던 식물들도

한 번 방심하면 회복불능이 되니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늘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물을 많이 줘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되고  

너무 자주 줘도 안 되고 너무 드디게 줘도 안 되고

꼭 사람과 밀당하는 기분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전화기 하나 주고

동물이 무슨 말하는지 통화하고 싶다고 하던데

나는 식물한테 전화기 하나 주고

목 말라요 지금 물 주세요 할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


꽃 한송이가 피었다고 봄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게 뭐 대수랴.

마음이 허전해지는 계절에 꽃을 피워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 시작인데 우리 함께 겨울을 잘 견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