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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매화축제] 남도 봄꽃 여행 1번지

작은천국 2016. 3. 26. 06:30

[광양 매화축제] 남도 봄꽃 여행1번지

 

 

제1의 봄꽃, 광양 매화축제

 매화가 피기 시작하면 겨울은 끝난 것이다.

 

섬진강 굽이굽이마다 하얀색의 매화는

양지바른 곳에 눈처럼 피어

봄의 계절에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라 한다.

 

매화가 피고, 산수유가 피고, 벚꽃이 피고

그렇게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며 

상춘객을 홀리는 섬진강의 봄은 요란스럽다.


 섬진강의 봄 중에서도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 

그리고 광양 매화축제.

남도 봄꽃 여행 1번지로 충분하지 말입니다.

 

'이맘때는 무조건 광양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광양으로 가는 길은 평일임에도 교통체증의 연속이었다.

하동 화개장터에서 광양 매화축제가 열리는 다압면 매화마을까지

평소라면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축제 기간에는 2시간 정도는 예상해야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광양 매화축제를 찾고 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화개장터에서 매화 축제장까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약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아- 꽃구경 시작도 전에 한숨부터 나왔다.

차 막힘에도 내내 섬진강을 보며 달리는 길이라 그나마 위로가 됐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심 매화 축제를 찾은 것을 후회했겠다.

 

올해로 19회를 맞이한 광양 매화 축제.

해마다 조금씩 반경이 넓어진다 싶었는데 백운산 온 산자락이 모두 매화 축제장이었다.

군데군데 3개의 전망대가 있고 '사랑으로, 낭만으로, 소망으로, 추억으로, 우정으로' 라고 

이름 붙은 산책길도 5개나 될 만큼 광양 매화축제는 상당한 규모였다.  

 

봄이 되면 가장 먼저 피는 꽃인 매화답게

3월 18일에 시작된 광양 매화축제는

청매실 농원을 기준으로 왼쪽 산자락은 이미 매화가 지기 시작했고

오른쪽은 이제 꽃이 피어 화사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사실, 광양 매화축제는 이곳에 있는 청매실 농원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매실 농원의 대표인 홍쌍리 씨가 고인이 된 시아버지 김오천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척박한 야산에 매화나무를 심고 매화 종자를 개량하는 등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온 산이 매화나무로 뒤덮여 봄이면 그윽한 매화 향이 가득한 지금의 광양 매화마을이 됐다.

 

 홍쌍리 씨는 정부지정 명인 14호 명실공히 매실에 관해서는 최고 전문가라고 할 수 있으며

한 사람이 평생을 받쳐 일궈낸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해마다 봄이면 많은 사람이 천국을 누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청매실 농원의 항아리는 장관으로

광양 매화축제의 또 하나의 풍경이 되고 있다.

 

 

 매실, 된장, 고추장이 담긴 항아리들이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온화한 섬진강의 태양과 바람으로 익어가고 또 익어간다.

 

이곳에서는 매실로 만든 다양한 제품이 생산되는데

매실을 고추장에 박아 만든 장아찌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제품으로

이번에도 빠지지 않고 구매했다.

 

'우정으로'라는 이름이 붙은 쪽은 이미 산수유가 지고 있고

청매실 농원 쪽이 만개했기에 주행사장에서 직선코스로 이어지는

'사랑으로' 길을 따라 청매실 농원으로 올라간 다음, 3번째 전망대, 영화촬영지를 거쳐

짧게 한 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정했다.

 

 

청매실 농원에는 청매화, 홍매화, 백매화의 세 종류의 매화꽃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사실, 홍매화를 제외하곤 내 눈에는 청매나 백매나 잘 구별하지 못 한다.

 

그저 새하얀 매화꽃이 고고하고

 

역광을 받으면 가지마다 눈꽃이 핀 것처럼 황홀하다.

 

'사랑으로' 산책로는 마지막 즈음에는 산 중턱까지 계단을 따라 오르게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청매실 농원의 풍경.

 

옛날에는 농원 전체가 야산 같은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여러 개의 산책로도 조성되어 있지만

왠지, 왠지, 왠지,

내가 광양 매화축제를 찾았던 그 옛날, 

그때 느꼈던 그 분위기는 이젠 찾아볼 수 없다. 

 

 

매실 농원 뒤로 대숲을 지난다.

순백의 매화와 초록색의 대나무.

지조로 말하자면 둘째라면 둘라 서러워할 소재들.

매화도 대나무도 전혀 닮지 않았는데 이 둘이 이렇게 닮았을 줄이야.

 

전망대 3을 향해 다시 걷는다.

 

햇살을 정면으로 받는 매화가 도화지처럼 새하얗다.

 

영화 촬영지를 감싸고 매화가 피어

순백의 눈이 내린 것 같은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광양 매화마을 제1의 풍경이 바로 이곳에서 본 풍경이구나.

 

발 아래 섬진강이 저 멀리 보이고

 

헉헉 몰아쉬었던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내려간다.

 

한국 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서편제를 찍었던 영화촬영지를 비롯해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의 명대사를 남긴 다모 등등

이곳의 독특한 풍경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가 숱하게 촬영됐다.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고 2 전망대로 가는 길에 조그마한 연못을 하나 만났다.

 

갑자기 매화 향이 코끝을 찌른다.

 

아- 그렇지. 매화가 향기가 있었지.

 

조금 전까지 그렇게 매화를 보고 다녔는데 그땐 왜 매화 향을 느끼지 못했을까.

 

의아했다.

 

그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너무나도 진한 매화 향은 코끝이 아릴 정도였고

진한 향은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있었고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뭔가 은은하고

뭔가 아찔하고

뭔가, 뭔가, 뭔가,

딱 그만큼인 매화 향.

 

봄은 나른하고

매화 향은 향기롭기보다 어지럽다.

 

이 기분이 도대체 뭘까?

 

그리고 조금 더 안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아름다운 홍매 한 그루가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불쑥 들어온다.

 

가는 겨울을 아쉬워 할까 겨울 지나 제일 먼저 피어나는 매화는 

온통 흰 눈이 내린 것 같은 풍경으로 서운한 맘을 달래고 있다 생각했는데

홍매 한 그루가 이젠 겨울을 잊으라 한다.

 

추운 겨울 눈 속에 가장 일찍 피는 매화를 두고

옛날 문인들은 맑은 마음이라고도 했고, 고결함이라고도 했고,

지조와 절개라고도 하며 앞다투어 시(詩)를 읊고 그림을 그렸다.

 

또한 매화의 향기를 빗대어

'매화는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한 번 맡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은은한 향기'라고도 했다.

 

그렇게 가지가지마다 봄이 달렸다고 극찬을 보냈던

겨울과 봄 사이 제1의 봄이라는 매화.

 

 

과거 문인들이 가장 이른 봄에 핀 매화에 큰 애정을 쏟았던 것처럼

현재 우리도 그렇게 봄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매화가 피었으니 봄이다!

 

 

 

 

 

바람 한 번에 매화가 후드득 속절없이 떨어진다.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도 바람 앞에 꽃이 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오늘 꽃이 피었다고 쓰지만

내일 꽃이 진다고 어찌 그대를 잊겠는가.

 

 

 

개인의 매실 농원이었던 예전에는(지금도 여전하지만)  그야말로 산에 매화가 피어 있어

행여나 매화나무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꽃 구경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사람이 많아 앞에서 부비적거리기라도 하면 하얀 먼지가 벌떼처럼 일었다.

 

광양 매화마을은 그때에 비해 엄청나게 넓어졌고 매화나무도 훨씬 많아졌다.

곳곳에는 산책로를 만들어 놓아 꽃 구경이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다.

 

모든 것은 참 많이 변했다.

이곳에 변하지 않은 건 딱 하나.

청매실농원뿐이었다.

그곳의 장맛이 변하지 않은 것도 참 다행이었다.

 

축제장 입구에서부터 다양한 천막들이 즐비하고

온 축제마다 찾아다니는 장사치들이 시끌벅적하다.

지방 어느 축제를 가나 이런 모습은 한결같고 늘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해마다 봄이면 광양 매화마을의 사진이 없는 것이 늘 아쉬웠기에

작은 연못에서 홍매화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차 막히고 소란스럽기 그지없는 광양 매화축제는

여행이 아닌 단순히 사진자료만을 남기는 것에 그쳤을 것이다.

 

짧은 시간 강렬하게 만난 홍매화 한 그루 때문에

그 모든 것은 전부 괜찮아졌다.

 

가지마다 이토록 황홀한 봄이 달려 있지 않은가.

 

매화마을을 다 돌아보고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노래가 들렸다.

수와진은 더는 두 명이 아니었고 혼자서 노래를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심장병 어린이를 위해 가슴으로 파초를 부른다. 

근사한 무대도, 화려한 조명도, 수많은 관객도 없었지만

전혀 초라하지 않았다.

 

모금함에 얼마간의 돈을 넣고 돌아서는데

노래를 잠시 멈추고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다시 노래가 이어진다.

그 노래에서 고결하면서도 그윽한 매화 향이 났다.

 

참 따뜻한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