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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특별한 고향풍경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과 병영성

작은천국 2015. 10. 9. 06:30

[한글날] 특별한 고향풍경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과 병영성

 

 

오늘은 제569돌 한글날이다.

전국 각지에서는 '한글'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질 예정이다.

그중에서 울산시의 2015 한글문화예술제는 전국에서 유일한 한글축제로

한글관련 행사 중 규모 면에서는 단연코 전국에서 으뜸이다.

그건 바로 국어학자인 외솔 최현배 선생의 고향이 울산이기 때문이다.

 

외솔 최현배 선생을 기리기 위한 외솔기념관은

고향 집에서 5분거리에 있다. 

 

고향집에서 병영성곽을 따라 산책하다 가끔 들러보는 외솔기념관이 있는데 
마침 동생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해서 추석 연휴 때 다녀왔다.

 

외솔 기념관으로 가던 길에 가장 눈에 확 띄건 다름 아닌

한글날 즈음에 열리는 2015 한글문화예술제 홍보 배너였다.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한글과 관련한 주제로 그린 그림을 홍보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디어가 이루 놀랄 수 없을 정도로 기발했다.

 

그 어떤 디자이너가 디자인하더라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됐다.

 

정말 100점 만점에 100점 주고 싶었다. !!!

 

외솔 기념관 입구

이곳은 외갓집의 뒤편으로 최현배 선생은 매우 소박하고 검소한 분으로 엄마는 기억하고 계시는데

그리 크지 않은 박물관은 아담하고 소담스러웠다.

 

총 2개의 전시실에서 외솔 최현배 선생과 관련된 전시물들을 만날 수 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은 주시경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일제 강점기에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지킨 독립 운동가이자,

한글 보급과 기계화, 정보화를 위해 평생을 받친 한글학자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외솔 최현배'라는 이름이 생소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우리가 지금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 가로쓰기가 최현배 선생에 의해 확립됐다.

무엇보다 순우리말인 겨레를 비롯해 반올림, 암술, 수술,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등은 물론이고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던 벤또 등을 도시락으로 다듬은 사람이 바로 외솔 최현배 선생이다.

 

 

외솔 선생은 갑오경장이 있던 1894년에 울산광역시 중구 동동에서 태어났으며

일신학교(지금의 병영초등학교)에서 신식교육을 받은 후 서울로 상경해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

 

전시관을 둘러보던 중 예전에 예사로 보았던 사진 한 장에 눈에 띄었다.

 

그건 바로 옛일신학교의 전경으로 바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인 지금의 병영초등학교 사진이다.

물론 지금은 학교는 모두 새로 지어졌지만, 동생도 사진을 보자마자 저 건물이 기억이 난다며

학교 다닐때 낡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오래된 건물인지는 몰랐다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

 

전시장 내부의 모습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은 특히 일제강점기에도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국어의 문법 체계를 집대성한 한국어 문법책인 '우리말본'을 비롯해 '한글 첫걸음' 등

각종 국어 교재 50여 권을 편찬한 것은 혁혁한 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제강점기 오랫동안 강제로 일본어를 써야 했기에 해방 후 우리 말과 우리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우리말 교본이 필요했으리라.

 

또한, 선생이 다녔고 내가 다녔던 병영 초등학교에서도 3.1 만세운동이 벌어졌는데

인근에는 삼일사와 충혼비가 세워졌다.

이 충혼비의 비문을 바로 최현배 선생이 작성하셨고 그 친필원고가 전시돼 있다.

 

 

 

이번에 가장 유심히 새로 보게 된 최현배 선생의 1960년대 타자기 외솔 101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시간 당 가장 빠른 문자를 생산해내는 것도 한글이 우수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글 자판의 배열이 더 주효했다.

 

우리가 쓰는 모든 자판의 배열을 통일 시킨 것도 바로 최현배 선생이다.

한글의 기계화에 깊은 관심이 있던 최현배 선생은 우리말에 쓰이는 글자와 낱말의 사용빈도를 조사해

통계자료로 만들었고 이 사용빈도를 근거로 한글 자판을 배치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외솔이 태어난 고향이자 내 고향인 울산의 병영은 작은 곳이지만 오랜 역사를 자기고 있는 매우 뜻깊은 고장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달랑 5분 거리에 친척들 중 90% 이상이 모두 초등학교 동문이 하나 이상할 것 없을 정도다.

 

외솔이 졸업한 병영초등학교는 요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유한양행의 유일한 박사도 이곳 출신이다.

 

개교 100주년을 맞이해 외솔관이 새로 지어졌고 학교 운동장은 모두 인조잔디로 탈바꿈했고

무엇보다 도시가 커지면서 달랑 1개뿐인 초등학교는 주위로 4개 정도가 더 생겨 이제 이곳도 학생이 많지 않다고 한다.

 

울산에서는 1919년 4월 4일 일제에 항거해 지역 청년과 학생들이 병영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올리는 것을 신호로

독립만세 운동을 벌이게 됐는데 그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열린다.

 

그리고 여름 방학이 있던 8월 15일을 즈음하여 항상 열렸던 동대항 축구대회는 연례행사 중 하나로

즐길 거리 놀 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 정말 큰 잔치이자 큰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다만, 아쉽게도 지금은 여름 축구는 마을 규모가 너무 커지기도 했고 원주민과 외지인들이 섞이다 보니

옛날 지역사회만큼 교류도 없고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지금은 진행되지 않고 있어 조금 아쉽다.

 

무엇보다 이번 추억에 가장 반가웠던 것은 12월 말 완공을 목표로 

외솔기념관 사업과 어울려 병영성 복원이 진행 중이란 점이다.

현재 북문지에서 남문지까지는 복원이 된 상태고 북문지에서 서문지까지 복원이 진행 중이다.

 

또한, 외솔탐방길은 외솔기념관을 중심으로 약 1km에 조성되는데 이 길에는 한글을 형상화한 벤치 및

조형물과 더불어 자음과 모음을 형상화한 보도블록이 설치될 예정이라고 한다.

<사진 = 울산시 중구>

 

추석 연휴기간에 아침, 저녁으로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산책 삼아 병영성을 걸었다.

이미 복원이 완료된 병영성의 북문지다.  

 

병영성은 외구 침임을 막기 위해 태종(1417년)에 축성했으며 고종(1894년)까지 있었던 영성이다. 

울산은 선사시대에 벽화가 남아 있을 정도고 삼한 때는 철의 주요 생산지였으며

물자도 풍부하고 환경이 좋아서 늘 왜구의 침략의 시달렸던 곳이었다.

 

서문지 방향은 추석 때만 해도 복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북문지의 병영성곽 모습  

 

성곽이 있는 곳이 워낙 지대가 높다 보니 이곳에 서면

최근에 개통한 울산대교를 비롯해 현대중공업이 있는 미포의 바다가 훤히 보인다.  

예전에 우리 집만 이층집이었을 때는 집 옥상에서도 미포 바다가 보였는데

 집 주변으로도 아파트도 있고 고층빌라도 있어 지금은 언감생심이다.

 

성곽에 서면 울산공항이 바로 발 아래로 보인다. 

 

비행기가 출. 도착하는 시간에는 머리 위가 비행기가 날아가기도^^

 KTX가 생기고 난 뒤부터  옛날에 비해 비행편수도 비행기 크기도 확 줄었다.

 

 

 안개가 밀려오던 날은 오랜만에 새벽 산책을 나섰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아침 운동 중이었고

 

 

지표면까지 내려 와 있는 안개는 황홀 그 자체였고

 

도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오렌지빛 여명은 환상이었다.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무룡산 너머로 동해의 정자 바다에서 시작된 일출이 뒤늦게 떠올랐다.

무룡산은 울산 대부분 학교의 교가에 등장하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복원 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서문지 성곽이다.

 

 

이쪽에서는 울산 시내가 훤하게 내려다 보인다.

고향 집은 서문지에서 약 80m 떨어져 있으니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잔디가 완전히 자리를 잡을 12월 그리고 그 이후까지

병영 성곽길과 외솔 탐방길이 전부 완성되면 정말 멋진 산책길이 될 듯하다.

 

 

우리말을 쓰지 못했던 일제강점기 35년.

아직 우리말에 남은 일본의 잔재를 생각하면 때론 두렵기까지하다.

이 잔재를 모두 걷어내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더 걸려야 할지 알 수 없다.

 

 한글날은 그저 공휴일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들은 한글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까지 바쳐야 했다.

 

한글 때문에.  

 

그렇게 목숨까지 걸고 지켜낸 한글이지 않은가.

요즘 청소년들의 한글을 제대로 못 쓴다고 나무라기엔

나조차 한글을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인지 가슴이 뜨끔하다.

 

요즘 다시 시작한 국어공부

게으름 피지 말고 열심히 노력할지어다.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

주소 :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 12길15(052-290-4828)

관람시간  09: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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