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lesse Nomad/AT Studio

[산티아고 가는 길, 그 후 4] 조금씩 가다보면 어느새..

작은천국 2011. 5. 1. 02:51

[전시작업 노트4] 조금씩 가다보면 어느새..

 

2011년 4월 30일, 이제 전시까지 D-22일,

마음과 머리로 걷고 있는 두 번째 산티아고 가는 길은 생각보다 꽤 힘들다.

 

매일 아침 눈뜨자 마자 생각나는데로 아무거나 적고 있는 모닝페이지도 양이 제법 늘었다.

산티아고 원고를 따로 적고 있었는데

24시간 모든 일상의 생각이 산티아고 전시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감당이 안되서

결국은 모닝페이지와 산티아고 원고를 같이 적기 시작하니

진척이 없던 원고작업도 슬슬 진도가 나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거의 두 달동안 24시간 가상의 공간 '산티아고'에 갇혀있다보니

이젠 슬슬 몸이 탈이 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심리적으로 산티아고를 걷고 있을 때의 심정변화를 그대로 느끼고 있는 기현강까지 더해지고

고질적인 목 결림, 어깨결림을 못견뎌 며칠전부터 한의원에서 침맞고, 부황뜨고, 물리치료받고, 운동치료받고...

한 마디로 죽을 맛이다.

 

오늘처럼 이렇게 비오는 날은 뜨끈한 방안에서 꼼짝도 않고 뒹굴거리면서 누워

김치부침개나 해먹으면 딱 좋겠구만...

'전시때까지는 아픈것도 사치'라는 심작가의 말대로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일 주일 동안 작업한 내용을 들고 선생님 댁으로 나서는 길...

장대비가 들이 부어주신다.  

 

에구 에구,,, 아 진짜 드러누워서 꼼짝도 하기 싫은 날씨..

 

다른 동네보다 확실히 체감온도가 낮은 구기동은 이제서야 개나리가 지고 있다.

 

노란꽃 사뿐히 즈려밟고 가려했건만 눈에 밟혔다.

선생님과 방문하기로 한 약속시간보다 늦었건만.. 본능적으로... 죄송합니다~

다행히 비가 조금 잦아들기를 기다려 이리보고 저리보고

또 코를 땅에 박아주셨다. 

꽃은 좋아라 해도 꽃지는 건 지저분해서 싫어했는데

유난히 노란 꽃길이 이뻐 보인다.

 

우리 동네에는 완전히 안녕을 고하고 사라진 벚꽃이 후두두둑~

 

으~~~ 이쁘다. 이쁘다.  투명한 꽃잎이 비에 젖어 반짝반짝 빛이 난다.

 

오호 개나리가 떨어지면 프로펠러처럼 요렇게 사뿐히 내려앉는 거구나~

 

다시 굵은 빗방울이 후두두둑!

개나리와 함께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의 크라운을 담아보려고 했는데

DSLR이 아닌 G7관계로 0.3" ~ 1/250초까지 수 십장을 찍었건만 결국 한장도 못 건졌다 

아차!!!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후다다닥 선생님 댁으로 고고씽~~ 

 

본격적인 전시작업 돌입 진지모드이건만,,,꼴이 말이 아니다

앞태, 뒷태 전부 꾀죄죄죄,

생전 잘 붓지 않는 얼굴까지 부어주셨다... 

어깨도 안 좋은데 어제 또 카메라 들고 사정없이 MBC 방송 찍어 주셨다 ㅠ

 

어쨋거나 저쨋거나 무려 5시간이 넘게 사진 셀렉팅 작업!! 하면서도 입은 쉴세없이 재잘재잘,,

이상하게 성혜하고 선생님만 만나면 어찌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지...

오늘 얘기들어주시느라 귀 꽤 아프셨을테다.

 

몇 달 만에 다시 보는 산티아고에서 찍은 사진들,,,

걷는게 너무 힘들어 구도고 뭐고 생각할 것없이 보이는대로 찍은 사진들,

대략 이 천 장도에 달한다.

오늘 이중 반 이상은 휴지통으로 버려지셨다.

 

아마도 이런 과정을 몇 번 더 거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만들어 낼 예정이다. 

그래도 본격적인 사진셀렉팅 작업이 시작되니 정말 전시가 코 앞인것 같고

이제서야 전시가 피부로 슬슬 실감나기 시작한다.

원고 작업때문에 무지막지하게 받고 있던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것 같기도 하고,,

그것보다는 작업을 해나가면 해 나갈수록 점점 더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편안해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게 어쩌면 더 정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러다가 분명히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건지, 진도가 나가고 있는건지 정말 모르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하고

또 다시 엎어질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하긴 두 달동안 이 소리를 얼마나 했댔으면 이제 성혜는 아예 이 얘기 할때마다

녹음 해두고 나중에 전시 끝나면 카운팅을 하겠다니 참.. 할말없다.

 

선생님은 예상했던 진도대로 착착 잘 나간다고 무한 응원을 해주시니

이젠 아예 앞도 뒤도 안보고 눈 딱 감고 고고씽!!

뒤를 돌아보지 말지어다...

 

어쨋든,,, 눈 빠지도록 1차, 작업 완료!!

앞으로 이 틀 동안 또 눈빠지게 작업 완료된 사진 보고 또 보고

2차 셀렉팅 작업 준비, 지도 초안, 또 다른 MAP 을 만들어야하니

이제 정말 여유 부릴 시간이 없긴 하다.

 

밤 11시가 다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 가는 길..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하던 비는 다시 오기 시작한다.

뿌연 창문, 뿌연 시야, 이건 뭐 딱 내 마음이네

 

집에 도착하니 다행히 내리던 비는 멈추었다.

촉촉하고 촉촉한 비를 따라 싱그러운 풀내음이 코 끝에 확~~와 닿는다.

음~~ 굿 스멜 ^^ 

날씨가 조금만 더 따뜻해지면 이젠 늦은 밤 풀벌레 소리들어가며 한강까지 산책도 가능하리라~~

내가 상암을 못 벗어나는 이유 중 스무 가지도 넘는 것 중에 하나다 ^^ 크흐흐흐

 

아파트 단지 안에 며칠 전까지 벚꽃이 달려있었는데 어느새 이파리들이 내 손바닥 만큼 훌쩍 자라있다.

이야~~ 언제 이렇게 변했지? 오늘 밤만 벌써 감탄사를 몇 번이나 ... 히힝^^

비 냄새에, 바람 냄새에, 풀 냄새에 취하는 밤이다. 

 

이런이런... 일요일까지 AT Studio 원고 작업 두 개,

월요일까지 '신디셔먼' 자료 찾아야 하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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