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o Yong Pil/YPC Article

임진모가 만난사람

작은천국 2009. 6. 18. 23:55
[임진모가 만난 사람] 조용필-딱 ‘가수 조용필’로 불러주시면 흡족합니다.
 
우리 대중 음악의 가장 찬란하고 거대한 이름인 조용필이 또다시 ''절대 강자''임을 웅변하는 대형 콘서트에 나선다. 오는 8월30일 서울 잠실운동장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펼쳐질 활동 35주년 기념 라이브 콘서트(문의 02) 522-9933). 이 공연을 놓고 절대 강자 운운하는 것은 다름 아닌 ''35''라는 숫자 때문이다.

대부분의 베테랑 스타 공연은 20주년, 30주년 등 10년 단위로 열린다. 사반세기인 25주년을 제외하고 5자 단위의 해를 공연 타이틀로 내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위험하다. 하지만 고유명사 아닌 ''보통명사''라는 슈퍼스타 조용필이기에 35는 단숨에 안전한 숫자로 변모한다.

조용필은 "''80년대 후반부터 늘 5년 단위로 공연을 해왔다. 마침 또 올해가 가수로 활동한지 35년이 된 해이기도 해서 전혀 (숫자에) 구애됨이 없이 기념콘서트를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The History''로 붙인 이 공연에 소회가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는 "처음 데뷔할 때는 35주년 공연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더구나 공연장소가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이고 현재 예매도 잘되고 있다. 어느덧 35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점에, 또 현재 팬들이 보여주는 반응에 나도 놀라고 있다"며 그 모든게 팬들 때문에 가능하다는 정중한 감사의 변을 잊지 않았다.

사실 내심 긴장되고 곤혹스러운 인터뷰였다. 신문의 사회면 박스기사와 9시 TV 뉴스로 보도되면서 커다란 충격파를 몰았던 것이 말해주듯 조용필은 올해 1월 아내(안진현씨)를 잃는 ''자신 인생의 최대 슬픔''을 겪었다. 주변사람이나 언론으로 접한 팬들이나 안타까워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얼굴은 상처(喪妻)의 비통으로 뒤덮였다.
조심스레 그 얘기를 꺼냈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몇 개월간을 실의의 나날로 보냈다. 지금도 당시의 일이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아직도 멍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 표정에는 쓸쓸함이 가득했다. 35주년 기념공연과 맞춰 발매되는 새 앨범 준비의 분주함은 그나마 그에게 분위기 전환의 에너지를 가져다주었다. 조용필은 이번 공연이 ''나의 활력을 되찾는 장''이 될 것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피곤한 모습임에도 그는 공연과 신보 얘기에 최선을 다했다. 무대 세트와 규모를 화이트보드로 보여주며 설명해주었고, 새 앨범에 들어갈 가녹음된 곡도 들려주었다. 대화에 임하는 성의는 과연 한 분야의 일인자다운 풍모와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다.

표정이 피곤해 보이네요. 공연 준비 때문에 그렇죠?

공연 무대를 만드는데도 정신이 없지만 신보 작업을 하느라 그래요. 그저께와 어제 연일 새벽까지 작업하느라 상당히 피곤하네요. 오늘도 밤 새워야 합니다. 그래도 녹음은 8월13일이면 끝나고 앨범 출시는 공연 전인 25일에 맞추려고 합니다.

조용필씨 공연은 늘 다른 가수들은 상상할 수 없는 매머드 세트와 화려한 장치로서 장관을 연출하기로 유명합니다. 공연을 본 관객들마다 너무나 웅대해서 깜짝 놀라곤 하는데요, 이번 35주년 공연은 또 무엇을 새롭게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우선 애니메이션이 3분가량 상영됩니다.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이 구성해주었는데요, 어린 소녀가 레코드판을 구입하는 것으로 시작해 자전거를 타며 흘러가는 35년의 성장과정을 스케치한 내용이에요. 팬의 입장을 통해 저의 35년 음악 역사를 그려본 거지요. 무대 세트는 2층으로 만들어서 저와 기타 주자들이 리프트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겁니다. 1층에는 60인조 오케스트라가 자리하구요. 세트 길이는 본무대 30미터를 포함해 100미터가 되고, 그 뒤는 빌딩을 세우고 숲을 꾸밉니다. 본무대는 날개가 되어 중간에 벌어지도록 만들었어요. 스피커도 260대가 놓여져 어떤 좌석의 관객들도 소리가 잘 들릴 거예요. 일부 관람석이 무대와 먼 듯해서 걱정했는데 막상 밤에 가서 보니 그리 멀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에요. 관객들의 시청각 만족지수를 최대한 높이려고 합니다.

공연 무대는 마치 받은 개런티를 다 쏟아 붓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얼핏 돈이 남을 것 같지가 않은데요, 그렇게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생각해봐요. 제 힘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바로 오랜 세월 동안 저를 지지해준 팬들로부터죠.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저, 조용필이 있었겠습니까? 당연히 멋진 무대로 그들에게 보답해야지요. 이번 공연도 그렇고 매번 공연으로 돈을 벌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물론 공연도 분명 흥행이니까 이익이 발생되어야하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래야지, 애초 돈을 벌려고 기획해선 되지가 않아요.

이번 무대 세트에 얼마나 들어갑니까?

구체적 액수는 밝힐 수 없지만 스폰서에게 받은 개런티를 거의 세트 꾸미는데 투입한다고 보면 돼요. 남 보기에는 수십억 쓰는 것 같다고 하지만 우린 오랫동안 구축된 ''팀''이 있어요. 무대디자인, 조명, 음향, 장비 등등 오랜 경험으로 경비절감의 효과를 거둡니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굉장히 많은 돈이 들겠지요. 생각보다는 엄청난 예산은 아닙니다(하지만 이번 공연의 입장료만 20억원 상당이고 조용필씨가 많은 이익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투입 자본이 대략 입장료에 가까운 돈임을 가늠할 수 있다).

그간 주로 실내 공연을 해오셨는데 왜 야외 올림픽 주 경기장으로 장소를 정한 건가요? 그리고 공연이 하루라는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35년 축하 무대의 성격이라 실내를 벗어난 큰 무대를 생각한 거죠. 원래는 상암경기장을 고려했는데 그곳은 ''무대 짓기''가 힘들어서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정했어요. 하루 공연은 제가 생각해도 짧은데 이틀만 해도 관객이 10만이 들어차야 합니다. 10만이란 숫자는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하지가 않지요. 그간 실내공연에 익숙하신 관객들 입장에서는 야외공연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구요. (야외가) 어려운 점이 있어요. 하지만 현재 예매상태가 좋아요. 곧 매진될 겁니다.

보도를 보니까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대단하던데요.

일본 관객만 4천명이 예상되는데 2천명은 이미 예약했구요. 2천명은 현재 한국행 남은 비행기 좌석표가 없어서 곤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국내 주재 외국기자들, 각국의 대사들과 외교관도 많이 표를 사갔습니다.

학생들에게는 500명에 한해서 특별 할인을 실시하는데요, 학생층에게 혜택을 주는 이유는 뭔가요?

제 공연이 조금 비싼 편이잖아요. 그동안 학생들이 쉽게 볼 수가 없었던 게 사실이죠. 그래서 신세대들이 많이 참여하는 공연이 되도록 하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또 학생들에게 ''이런 공연은 봐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 정도 공연을 할 수 있다. 외국 팝가수만 큰 공연하느냐''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이 참에 공연문화를 이슈로 만들고자 하는 생각이 작용했습니다.

최근 국내 음악계가 ''음반에서 공연으로'' 무게 중심이 바람직하게 이동되고 있는 데는 10년 이상 이 분야에 열과 성을 다한 조용필의 역할이 지대하다. 그는 슈퍼스타덤에 걸 맞는 대형 무대를 정기적으로 또 전국적으로 펼쳐오면서 공연에 소극적인 중년들을 콘서트로 끌어들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따라서 ''장르의 통합을 일궈낸 단 한명의 거장'' ''최초의 밀리언셀러 아티스트'' ''오빠부대의 원조'' ''20세기 최고의 가수'' 등 기존의 영예로운 수식에 ''공연문화의 거봉''이라는 새로운 작위를 포함시켜야 마땅하다. 음반에 이어 라이브 영토마저 정복한 것이다. 35주년 공연 바로 직후에도 5개 도시 순회공연이라는 숨 가쁜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으며, 연말에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9일간 정기 공연을 갖고 또다시 대전 대구 부산을 잇는 전국순회공연에 돌입한다.

음반은 현재 구매시장 자체가 고사상태이므로 그는 판매량 측면에서 새 앨범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조용필의 위상에 부합하는 실험적인 ''하이 퀄리티'' 음악을 만들어내 가요의 질적 혁신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신보는 어떤 스타일의 음악인가요?

(가녹음된 2곡을 들려주며) 어떤 스타일인지 알겠지요? 록에 오페라를 가미한 형태로 ''가요이지만 비가요적인'' 느낌이라고 할까. 듣기에 무리가 없겠지만 굉장히 웅장한 편곡이 될 겁니다. 공연도 그렇지만 음반 역시 제가 할 일은 새로운 지평의 개척 아닐까요? 우리 음악은 천편일률적이고 관습적 패턴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지요. 한번 기대해주십시오.

근래에는 음반에 자작곡이 적은 편입니다. 이번 작품도 주로 남의 곡으로 구성합니까?

지금 들려준 2곡도 제가 썼어요. 5곡 정도 내 곡이 들어가니까 전보다는 많은 편이죠. 다른 사람의 곡으로는 위대한 탄생의 이태윤, 오석준, 김희갑 양인자 커플의 것이 수록됩니다. 현재 수록곡 선곡과 편집에 열심입니다.

조용필씨는 록 밴드 출신이라 과거부터 팝 앨범도 많이 청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장한 앨범은 얼마나 되며 현재 주로 듣는 팝 가수는 누구인지 말씀해주시지요.

앨범은 전에 LP를 많이 모았는데 다 없어지고 지금은 CD 좀 있는 편이죠. 초창기에는 비틀즈, 벤처스, 마빈 게이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영 미 록 앨범을 들었지요. 지금은 핑크 플로이드, AC/DC, 폴리스와 스팅, 퀸 등을 다시 듣고 있는데, 전 관심을 가지면 한 아티스트의 전곡, 전 CD를 다 구입해서 청취하는 스타일이예요. 메탈리카도 이번 새 앨범을 포함해서 다 구해 들었어요. ''연구대상''으로 판단되면 다 들어보는 거죠. 참, 근래는 뮤지컬 앨범에도 관심이 많아요.

만약 ''조용필 뮤지컬''이 만들어지면 흥미롭겠는데요. 아바 음악을 토대로 한 뮤지컬 [맘마미아]에는 아바 곡 32곡이 들어갔는데 조용필 히트 레퍼토리는 어림잡아도 50곡에 달하니까 뮤지컬 구성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렇잖아도 5년을 목표로 이런 저런 구상 중이에요. 스토리 대본이 완벽하다면 도전하고자 합니다. [맘마미아]는 런던에서 상연 첫날 봤죠. 뮤지컬은 제 음악 작업의 최종 목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68년 서울 경동고를 졸업한 바로 그해 그룹 애드킨스를 결성한 이래 ''70년대 후반 가요계를 정복하고 나서 절대 스타덤을 질주한지 어느덧 35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 나이 쉰 넷으로 젊은 가수들과 경쟁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에게 붙여진 ''국민가수''란 타이틀은 현재도 유효하다.
하지만 본인은 국민가수란 용어에 전체주의 냄새가 풍겨 부담스럽다고 했다. "내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은 다 불필요한 것들이죠. ''슈퍼스타''니 ''작은 거인''이니 ''가왕''이니 다 싫어요. 딱 ''가수 조용필'' 다섯 글자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이번 공연에서 그는 2시간 넘게 무려 35곡을 부르고 연주한다. 35주년 활동이 빚어낸 명곡들을 망라하지만 여차하면 새 앨범에 수록된 2곡도 공개할 계획이다. 현장에서는 "미리 밝힐 수 없는 매우 파격적인 장면이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상처의 아픔 속에서도 부조금 사절, 유산의 전액 사회 환원, 미영주권 거부 등으로 신세대들에게까지 강한 인상을 남긴 그가 이제 아픔을 딛고 일어나 본연의 ''음악적 감동''을 전하고자 한다. 고독한 러너의 행진이 축적해낸, 살아있는 신화의 포효와 절대 강자의 광채가 다시금 꿈틀거리며 솟아올라 잠실벌을 수놓을 것이다.

oimusic 2003년 07월호 임진모
 
뮤직마스터 님께서 올려주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