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Country/Japan

[일본] 일본이라고 다 작은 것이 아니었던 동대사(東大寺)

작은천국 2008. 8. 6. 16:50
여행지
[일본] 첫째날 :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나라로 [법륭사 , 동대사(사슴공원) ]
여행기간
20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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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대사 나라시대(奈良時代)에 세워졌다. 동대사란 절 이름은 ‘나라 동쪽의 관대사(官大寺)’란 뜻으로 지었다. 일종의 국립 가람으로 당시 일본으로서는 중요한 정부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일본 인구 5백만 명이던 시절 동원된 인력만도 2백만이 넘었다. 대역사였던 셈이다.여기서 ‘나라시대’는 710년부터 794년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직전까지를 말하는데 백제·신라와 깊은 관계가 있을 때였다. 동대사는 743년 착공된다. 불교가 백제에서 일본으로 전래한 것이 552년인데 거의 2백년이 지난 때의 일이다. 이미 신라에서는 676년 부석사가, 715년에는 불국사에 다보탑과 석가탑이 그리고 720년에는 황룡사 9층탑이 각각 건립되었다.
그즈음 일본에 세워졌던 절은 667년의 관세음사(觀世音寺)가 최초이고 741년에 세워진 국분사(國分寺)가 두 번째 쯤 되고 있었다. 동대사는 그후 최초·최대의 절이 되는 것이다.
이 절 짓기에 백제계의 행기와 양변 스님이 앞장섰고 백제·신라계의 건축가들이 그들을 뒷받침 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이 절을 중국인의 도움을 받아 일본 정부가 세운 것이라고 호도하고 있다. 어떤 자료에도 백제·신라계의 주도로 세워졌다라고는 적혀 있지 않다. 동대사의 비밀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동대사에 대해 좀더 알아보려고 검색하던 중 의미있는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꼭 읽어보기를 권유한다.    관련기사 : 동대사에 가면 일본이 아직 무섭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82950 )

 

▼ 법륭사에 출발해 교통정체로 한시간이 훨씬 넘게 걸려 도착한 동대사 입구..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이 다녀가면 간판에 이렇게 한국어로..

    대중교통을 이용할경우 이 지하보도를 따라가면 바로 동대사 입구에 도착하는듯 하다

▼ 동대사 입구

▼ 이 동대사는 사슴공원으로도 유명하다. 일본 오사카 패키지 상품을 검색하면 나라에서

    빠지지않고 사슴공원이 등장한다. 동대사 전체에 이런 사슴이 방목되고 있다.

▼ 날씨가 너무 더워 사슴도 지쳤다

▼ 입구에 있는 사슴들은 사슴 먹이를 주어도 거부했다.. 이윤즉,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다녀가

   먹이를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입장종료시간을 얼마남기지 않고 도착한 우리일행이 주는

   먹이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는....

▼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동대사

▼ 남대문, 이 문을 통하면 바로 대불전을 만나게된다.   문위에는 '대화엄사(大華嚴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고 입장종료시간이 다되어 그리 꼼꼼히 볼 여유가 없어 지나쳤다. 동대사는 통일신라의 원효와 의상의 화엄사상을 열심히 받아들이고 그것에 감동하여 지었다고 했는데, 절 이름을 통해서 이를 짐작할 수 있는 듯하다.  중국 송나라 건축양식이다.

▼ 입장종료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는데도 엄청난 인파들이다.. 사실 이 한장의 사진을 찍는것도

   힘들었다. 너무 사람이 많아서.. 겨우겨우 어떻게 이 사진 한장만 찍었다..

   얼핏보면 하나의 문처럼 보이지만 우뚝 솟아있는것이 대불전이고 그 밑에 보이는 것이 남대문

   이다. 이때만 해도 대불전의 크기에 대해 상상조차 하지 않았건만.

▼ 관광지 답게 온갖 먹거리들이... 뻥튀기 비슷한것도 있다..

▼ 그나저나 이곳에 왜 이리 사슴이 많은건지.. 사슴의 용도는 어디에 쓰이는지.. 궁금하다

 위의 기사에서 보니 '석가모니 부처가 해탈한 뒤 처음 설법한 곳이 녹야원(사슴공원)이었다니, 그것에 착안하여 사슴을 방목한 게 아닐까 여겨진다.' 로 짐작하고 있다.

▼ 남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대불전.... 그 엄청난 크기에 입이 떡 벌어진다..

▼  사람들이 너무 작아 보인다..                   ▼ 대불전옆으로 나선형의 모양의 회랑이 둘러져있다
▼ 특이한 조형물.. 무엇에 쓰는 용도일까?         ▼ 대불전 처마위로 튀어나와있는 곳을 보니..

▼ 이것이 대불전의 본존으로  비로자나불( )로 앉은 키 16m, 얼굴 길이가 5m나 되어

  속칭 나라 대불( )이라고 한다. 대불전의 크기가 엄청난데  그 큰 건물 중앙을 다 차지하고

  있다. 사진으로 봐선 이 대불이 그렇게 커 보이지 않지만 손바닥 위에만 사람 16명이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오랜 수행으로 무궁무진한 공덕을 쌓고 나타난 부처로 화엄사상의

  유행과 함께 나타난 대승불교의 부처님 중 하나로 수행과 공부를 통해서 해탈한 부처로 아미타불

  도 여기에 해당한다. 일본에 화엄사상이 전달될 때, 지은 절이니 비로자나불 안치된 것은 당연한

  것인듯하다.

▼ 불상 앞으로 연꽃이 있는데 이 또한 크기도 대단하다.
▼ 동대사의 원래 모습을 재현한 목조 모형

▼ 원래는 양쪽에 탑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 감옥에 있던 재소자가 만든 동대사 모형

                                                                   이걸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대불전에 은근한 햇살이 비추니 기분이 묘하다

▼ 대불전 기둥에 이렇게 구멍이 나 있는데 이 구멍을 통과하면 무병장수를 이룬다는 속설이

    있어 어른이고 아이고 할것없이 이곳을 통과한단다...

▼ 사람들은 살면서 누군가를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것같다
▼ 간절함이 가득하게 적혀 매달려 있는 소원들.. 모두 원하는데로 이루어지소서..

▼ 빈주루존자는 아픈 곳을 낫게 해준다고 믿는데, ▼ 대불전 오른쪽의 회랑모습 

    특히 자신이 아픈 부위와 같은 곳을 문지르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 안을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동대사의 대불전이 새삼스러워 보인다.

    원래는 우리나라의 통일신라 양식이던것이 보수하는 과정에서 대불전의 중앙장식이 생기는 등

   일본식으로 바꾼 흔적이라고 한다.

▼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동대사 전체를 내려다 볼수 있고해 너무 더웠지만 올라가보기로했다
▼ 이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이런 건축물이 또 나타나고 옆계단을 또 올라갔다. 에구에구
▼ 그렇게 땀을 솟아내고 이 곳에 올랐다.
▼ 금박바탕에 뭔가 쓰여진것도 있고               ▼ 수탉이 현판으로 붙었다.. 궁금하다.
▼ 부드러운 석양이 우리를 맞이한다              ▼ 저멀리 대불전이 보인다.
▼ 꼭대기에서 바라본 오른쪽의 모습과 왼쪽의 모습
▼ 경사진 건물과 건물사이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 계단을 내려가면서 문득 옆을 보다가 찍은 사진...    그림자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웬지 너무 쓸쓸한 기분이 든다. 그림자가 한껏 깊어지고 나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내 그림자의 길이는 얼마정도일런지..

▼ 내려갈때는 다른 길로 가보기로 했다.. 소박한 골목길이 이어지고 있다.
▼ 아직까지도 엄청난 사람들이.... 아~~~ 일보의 연휴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듯하다

▼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길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 속에선 언제나 삶의 명제를 찾게된다

   가야할길과 가지않을 길 사이에서 더 이상 헤매이지 않는 현명한 지혜와 좀 돌아가고 힘들게

   가더라도 묵묵히 그저 그 길의 끝에서 웃게될 나 자신을 언제나 상상해 본다...

   이젠 서울에선 일부러 찾아다녀야 골목길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좀 서글프다... 

▼ 문이 잠겨진 대문앞. 구조물이 독특하다...

    사진을 찍느라 지체되어 늦게도착한 나에게 수수께기같은 질문을 던지고 일행들이 한없이

   즐거워한다... (몇몇은 이걸 못 열어 낑낑댔다고 한다...) 이런 바보같은 것들.. 나를 뭘로 보고..

   ㅋㅋ 가만히 보아하니 불룩솟아 있는 저 사람모양이 해답인듯하여 가볍게 뽑아 올리니 문이

   저절로 열린다.. 역시 영화를 많이 본 보람이 있다.. 물론 낑낑대고 못 열었던 사람은 어떻게

   알았냐고 감탄을 마지않는다. 척 보면 압니다.~~안다구요..

▼ 동대사 뒷편의 모습
▼ 석양이 동대사를 비추고 있다.

 

♣ 준비되지 않은채로 떠났던 일본여행. 오늘 하루동안 일본의 '나라'라는 도시를 다녔다.

   늘 ' 나라' 라는 지명이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었기에 어쩌면 더 친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라를 지키고 일어선 문명의 근본이 백제와 고구려와 통일신라의 숨결이 묻어 있어

   더 친근하게 느낀 것은 아닐까 싶다.. 아무 사전지식없이 찾아간 법륭사와 동대사를 둘러보면서

   웬지 낯설지만 낯설지않은 느낌을 한껏 받고 왔는데 역시 그 밑바탕에 깔린 정서는 한국과

   닿아 있기에 본능적으로 느끼는 기분이 아니었는가 싶다. 사진작업을 하면서 찾아본 위의 기사를

   읽으면서 '대화엄사' 라고 적힌 현판이 '동대사'로 바뀌는 과정을 통해 일본의 지식인들사이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있으리라 가히 짐작할만하고 과거사를 인정하기보다 늘 언제나 처음부터

   자신들의 것인양 새로운 창조를 해내는 일본을 보면 더 이상 뭐라 언급할 가치 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라에서 머무는 동안 더 없이 훌륭한  세계문화유산을  2군데나 보고도 

   마냥 감탄사만을 연발 할 수 없었던 이 찜찜함.....특별이 내가 반일본의 감정이 있는것은

   아니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납득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몇 가지 중의 하나이기에

  그리 편한 기분이 들지 않는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란 생각으로 위안을 삼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