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o Yong Pil/YPC history

제13집 < THE DREAM > 제3부 넌 버릴수도 지울수도 없는 꿈이야

작은천국 2007. 5. 17. 22:39
 
(“ ”안은 별도의 설명이 없더라도 자료에 근거한 조용필의 사실적인 언어를 편집 없이 그대로 옮긴 것이다. 3부에서는 91년부터 93년의 자료만을 참고하였으나 글의 진행상 일일이 출처를 기록하지는 않는다)

91년 4월 13집 공식발매를 앞두고 조용필은 콘서트가 아닌 행사를 통해 대중 곁으로 등장한다.
감색계열의 슈트에 무색렌즈 안경을 착용한 조용필은 무대가 아닌 잠실야구장 그라운드 홈플레이트 뒤쪽에 위치한 스탠더드 마이크 앞에 서있다. LG트윈스야구단 요청으로 91년도 프로야구 개막전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기 위한 자리였다.  4월 5일 식목일 공휴일이었던 이날은 개막전이 주는 특성상 잠실야구장의 관중석은 삼만여 이상의 많은 관중들이 자리했고 그의 바로 앞에는 수많은 취재진들이 슈퍼스타의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며 치열한 취재경쟁을 하고 있었다.

당시 시점에서도 82년부터 시작한 일본에서의 콘서트는 많을 때는 연간 백번, 평균 40번 이상을 해왔기에 일본콘서트 경력만 하더라도 400번 이상이 되고 국내 콘서트까지 합하면 1,000번을 족히 넘는 이력을 지닌 슈퍼스타 이전에 라이브에 있어서도 베테랑 뮤지션이었다. 비음이 얕게 깔린 꾸밈없는 음색과 창법으로 무반주로 열창하던 애국가는 후렴부분에서 가사를 틀리게 하는 실수를 하고 만다. ‘길이 보전하세’ 부분에서 ‘우리나라 만세’로 한 것이다. 즉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만세’ 이후 ‘대한사람 대한으로 우리나라 만세’가 이어져 뭔가 반복되는 느낌은, 조용필은 물론 관중들과 생중계를 시청하던 시청자들은 즉각적으로 혼동에 빠지는 상황이 되었다. 조용필은 대중들 앞에서 어리둥절해하고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는데 당시의 이 모습은 전무후무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혼동할 수도 있는 일이고 대외적인 국제행사도, 더구나 심각한 자리의 행사도 아닌지라 애국심을 들먹일 만큼 큰 비난의 이유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당시 순간만큼은 ‘국민가수’는 족쇄가 돼버렸다. 시기적으로 80년대 민주화운동 일선에 있던 이들이 각광 받을 만큼 민주화시대 초입이었다.

국민들과 언론에 포화를 받은 조용필은 “대중들 앞에서 수많은 공연을 해봤지만 노래도중 집중적인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당황했기 때문이다”라고 해명했다.
이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후 조용필 공연에선 항상 공연 시작 전 공연 중 카메라 사용 자제해달라는 안내멘트가 강조되었고, 심지어는 ‘공연 중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면 조용필씨는 당장 공연을 중단한다고 합니다.’ 라는 당돌한 여성의 멘트도 있었을 정도다.

반복되지만 13집 음반은 개인적으로 혹은 내면적으로 그리고 대중음악환경도 가장 치열했던 시기와 환경에서 액땜까지 하며 1991년 4월 20일 발매되었다.
음반사는 ‘서울음반’이었는데 동아기획(음반사)의 양보와 협조에 의해 유재하 유작앨범이 된 1집을 발매하면서 유명해진 음반사였다. 이 영향 탓인지 조용필음반 제작하는 기회가 주워졌고 이는 한국대중음악사에 또 하나의 명반작업에 참여한 영광의 이력으로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사실 13집 발매당시 구매자들은 낯설어했던 기억이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한국대중음악 사운드가 아니었고, 창법과 음색이 이전의 조용필의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질적으로 향상된 부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로 했다.
돌이켜 보건데 91년도에 10대 후반에서 20대 연령대의 젊음을 보낸 남자들에게는 ‘꿈’은 아주 근사하고 멋있는 노래로 파고들었다. (필자 체험에 바탕을 두다보니 특정지어 구분해서 미안한 일이다)
기억을 더 살려보면 1990년도부터 부산에서 일기 시작한 노래방 붐은 1991년에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것은 대중음악을 듣고 감상하는데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물론 가수들이 직접 사용하는 MR테이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감흥에 취할 수 있는 멜로디를 지닌 노래방 반주음악을 놓고 근사하게 생각되었던 조명까지 이고 조용필 탁음의 멋을 체험하기 위해, 가슴을 아리게 하는 도입부부터 너무 심각해진다. 마치 모든 인생사 고민과 애환을 다 지녀야 했고, 그런 후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  젊은이들은 더 이상 노래를 하지 못한다. 난데없이 목울대를 치고 올라오는 것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모창 과정에서 성대가 꼬인 탓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가슴으로 느끼지만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여 형언 할 수 없었던 노래 때문이라는 것은 몰랐을 법하다.

당시의 느낌을 감히 이제는 형언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하고 싶다. 그래도 그동안 다양하게 대중음악을 감상해 왔기 때문이 아니라, 15년 넘게 꾸준히 들어왔던 음반 중 하나가 조용필의 13집 앨범이기 때문이다.

조용필의 내면이 표출된 음악여정으로 계속해서 가보자.
“화려한 도시 생활이 나를 지치게 했다. 수많은 팬들의 환호와 갈채 뒤에 언습 하던 고독이 두려웠다. 사랑과 추억을 잃어버리고 지난날의 반쪽인생. 이젠 아름다운 고향의 향기를 맛보며 옛꿈을 꾸며 인생을 즐기고 싶다. 반쪽자리 인생을 꿈으로 보상받고 싶다”
91년 1월 잡지 인터뷰 내용이지만 어쩌면 발매를 앞둔 13집 음반에 대해 조용필이 직접 말했던 프롤로그인 셈이다.

필자는 1부 2부에서 화려한 도시생활에서 포기할 수 없었던 조용필의 꿈을 쫒았었기에 3부에서는 버릴 수 없었던 꿈을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조용필의 ‘사랑과 추억’ 을 찾아 볼 것이다.
눈앞에 보이거나 갈망하는 것은 꿈이 아니라 욕망일 것이다. 즉 즉각적으로 욕망이 해소된 것을 두고 꿈을 이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젊음이 있다면 사랑 역시 어느 누구나 꿈꾸며 인연이 되면 자연스럽게 형성 되는 일이다. 허나 특별한 삶을 살아야 했던 조용필에겐 젊은 시절의 사랑조차 버릴 수밖에 없는 욕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지울 수 없는 꿈’은 대중 친화적인 곡도 아니고 조용필 특유의 폐부를 찌르는 애절함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아프지만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감정을 완전히 숨기고(절제하고) 속삭이듯이 혹은 중얼거리는 것 같은 창법은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센 긴 밤에서 흘려야 하는 눈물처럼 표출되는 애절함 보다는 가슴속으로 뭉겨 눌러야 할 것을 요구하여 아리게 한다. 그렇다고 이 노래를 두고 클래식분위기라고 단정하기에도 둔중한 느낌이 너무나 크다.
도입부의 선율 속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차가워지게 하며, 기괴한 아이의 웃음소리는 오싹하게 하면서도 오페라 오프닝처럼 웅장한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효과음을 내기 위해서나 리듬을 구성하기 위해 많은 장비와 악기가 투입되었을 것 같은데도 정작 보컬부분에선 이펙트조차 사용을 절제하여 담백하고 진솔한 창법을 담는다.

허나 ‘어두운 숲에서 혼자 헤매는 작은새 꿈처럼 멀리있는 불빛’ 부터 청자들은 마치 숲속에서 길 잃은 것만큼이나 먹먹하게 하는 느낌마저 들게 하는 보컬과 대면하게 된다.
냉철하게 보면 이 곡은 통속적이던 대중음악의 수준을 모두 버렸다. 과거 사랑의 아픔과 이별 혹은 추억을 담은 대중음악들은 말초적 자극을 주는 수준의 사랑타령의 노래들로 간주되어 간혹 수준이하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제는 잃어버린 시간 너와 함께 흩어진 지난날의 꿈들’과 ‘하지만 난 아직도 널 사랑해’에서 자극이 아닌 아릿함을 안겨주는 창법들도 조용필의 또 하나의 개척을 이룬 음악으로 보이게 한다.

‘넌 버릴수도 지울수도 없는 꿈이야’에서 오버랩 되지 않으면서도 코끝이 알싸해지게 하는 창법으로 인해 가슴속으로 어필되는 부분은 가히 절정이다.
결국 조용필의 인생에서 선택해야 할 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예술적인 욕구이지 외면에서 생겨나는 반강제적 요청을 선택 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자제력을 담아 표현하고 있는 부분으로 전달되고 있다.

‘오빠’ 혹은 ‘와와’소리에 현혹되지 않았고, 뮤지션의 길에서는 음악 외적인 모든 것들은 버릴 수밖에 없다.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의 뜨거운 반응을 외면하거나 욕망을 버리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예상 할 수 있기에 그의 자아의식과 절제를 헤아리게 하여 명반속의 한 음악으로 더욱 부각되어 다가온다. 청자들 역시 버릴 것은 버리고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이 곡에서만큼은 ‘대중적인 히트’ 역시 속물적인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조용필의 내면으로 더 들어가 보자.
“가장 무서운 대상은 신인입니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 새 물결에 의해 앞선 이들은 밀려나는 것이지요. 저는 오래전부터 40대 때의 새 음악을 그려보며 마음을 다져 놓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구요. 안 그러면 허전하고 얼마나 슬프겠어요. 이제 ‘오빠’하는 환호성은 새 나이와 함께 전설 속으로 들어가겠지요!
그 대신 제 노래를 듣고 오싹하리만큼 전율하며 함께 공감한 후 뜨겁게 보내주는 그런 박수를 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조용필의 이런 처세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조용필의 예상과 다르게 나타났다.
결국은 ‘영원한 오빠’가 되어 ‘오빠’소리는 전설 속으로 묻히지도 못하고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처세와 노력만이 조용필의 몫이고 결과는 대중들의 것임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3집 음반은 10곡 전곡이 사운드적인 부분과 멜로디라인은 당시 최고수준의 음악이다. 또한 창법 역시 미세하거나 확연하게 곡마다 다르게 하여 비음의 수준을 높게 구사했다.
프로모션곡인 ‘꿈’은 크게 히트했고, 이후 ‘아이마미’ ‘장미꽃 불을켜요’가 대중적으로 알려졌고 ‘꿈의 요정’ 역시 대중적으로도 낯선 음악이 아니었다. 또한 당시 라디오프로를 열심히 들었다면 ‘어제밤 꿈속에서’는 꽤나 심야프로 전파를 통해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당시의 여고생들 혹은 그 이상의 여성들이 신청해준 탓일 것이다.

대중음악 관련 자료들에 관심을 두고 꾸준히 스크랩도 해왔는데 ‘어제밤 꿈속에서’는 아이러니한 기사가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라 다시 확인해보니 [국내 대곡 시대가 열렸다]는 스포츠서울의 91년 4월 25일자 기사였다.
기사 내용을 축약해보면 최근 5분에서 10분까지 소요되는 대곡(?)이 등장했다. 조용필의 ‘어제밤 꿈속에서’를 비롯하여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등이다. 특히 조용필은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이어 5분 이상이 소요되는 대곡을 발표한 것이다. 이는 ‘한 타입만 강조하던 가요들과 달리 가요패턴의 실질적 변화로 보인다.’ 는 평론도 담고 있다.

5분 10초라는 시간을 전혀 못 느끼고 지나가게 하는 대곡이 아닌 명곡(名曲)으로 들어가서 뛰어나게 잘된 악곡을 느껴보자.

13집에서 조용필은 전곡 작곡을 넘어 세곡을 작사도 한다. 문학작품에서나 느낄 수 있는 문구들로 구성된 ‘꿈’ 쾌활한 감수성을 느끼게 하는 소소한 이야기의 ‘아이마미’가 있고 ‘어제밤 꿈속에서’는 이별의 그리움에서 오는 아픔을 아리게 그린다. 이 곡의 창법에 있어선 감정을 절제했다기보다는 고급스럽게 승화했다는 표현을 하게 된다.

조용필은 과거 득음시절 ‘한오백년’을 익히기 위해 창을 배운 적이 있는데 이때 비성이 자리했다. 80년대 노래들도 비음이 강약의 차이로 들어있다. 이때 비음이 강해지면 소위 쥐어짜는 창법을 구사하여 폐부를 찌르는 감정을 만들어냈다. 90년대 들어선 조용필은 모든 것이 과하면 거북할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한 것이다.

“요즘은 노래할 때 감정을 굉장히 절제합니다. 일일이 들을 수 있는 노래는 감정을 누르고 눌러 내면에서 우러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음 때문입니다. 감정은 안에 숨기는 것. 표현하고자 하는 걸 오히려 꽁꽁 짜서 가슴속에 안고 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절대음감에 완전히 몰입돼 버려요”

악기구성에서 색소폰이 추가는 애틋함을 불러온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너무나도 아쉬운 슬픈 이별이’

회상으로 시작되는 부분에서 감정을 최대한 눌러 질감 좋은 포근한 창법을 구사하여 청자들에게 시시콜콜함이 아닌 진지하게 감상 해볼 것을 요구한다.
바이브레이션 부분도 드러나는 과함 없이 세밀하게 구사하였고, 가슴을 후벼내는 아픔조차 아련하게 구사하는 방법을 택해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 역시 청자들의 몫으로 남겨놓고 있다.
포근한 질감의 음색과 리드미컬한 고음영역의 창법을 접하고 왜 조용필은 재즈음악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면 불가능한 장르는 아니라는 해답도 찾을 수 있다.

‘파도에 밀려 떠났을까 바람에 밀려 떠났을까’
‘내가 싫어서 떠났을까 아직도 미련이 남았네’
후렴구에서 가사대신 너무나 매력적인 스캣창법을 통해 내밀 되어 있는 것들이 표현되어 가슴속으로 알알한 것들이 후비고 밀려오게 한다.

노래방 가서 조용필 곡을 선곡하여 부르게 되면 해운대 비치 콘서트 실황영상을 접할 수 있는데 아마 ‘장미꽃 불을켜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 곡에서도 조용필은 끊임없는 장르의 변종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입부부터 라틴퍼커션과 금관악기를 주체로 한 브라스밴드가 충돌하며 표현력이 풍부해지고 화려해진다. 이 화려함의 리듬은 지속적으로 절정을 향해 치닫지만 정작 보컬의 멜로디라인은 이를 완전히 수용하지만은 않는다.
라틴풍의 장르라고 할 수는 있어도 라틴음악을 거부하는 부분이다. 살사댄스라도 요구하는 도입부 부분이 지나자 멜로디라인은 순간적으로 놀랍게도 한국적인 정서를 물씬 담는다.

‘사랑의 꿈을 꾸고 있는 그대’
보컬은 한 템포정도 감정을 누르고 있는 부분이 확연하다.

‘밤이면 별들과 얘기를 해요’
화려한 삼바축제 대신에 저녁노을이 보이는 산 밑에라도 모여 밤하늘의 별들과 얘기를 하고 싶은 욕구를 표현한다.

멜로디는 모든 시대, 모든 민족에게서 볼 수 있는 근원적인 음악현상이다. 문화적 편식이 심해 쏠림현상이 일어나는 우리나라 역시 고유의 멜로디 영역을 지니고 있다. 조용필은 이를 절대 무시하지 않았기에 다소 낯선 장르를 도입했어도 대중들과의 교감을 이뤘다.

사실 요즘의 댄스음악도 결코 서구적인 사운드에 뒤처지지 않는 노래들은 많다. 미국진출을 시도했던 비의 노래도 작법 적으로만 볼 때 빌보드음악 수준에 근접한다.
그런데 왜 대중들은 댄스음악에서 공허감을 느끼고, 비의 미국진출의 근본이 무엇인지 혼동하게 할 만큼 그의 노래는 국내에선 공유를 못하고 있을까?
음악 외적인 것에도 치중 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지 않는 한 전혀 교감 할 수 없는 음악들이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이 아무리 뛰어나도 대중적인 교감이 불가하다면 명반이 결코 될 수 없다. 13집의 가장 특출한 부분은 뛰어난 서구적인 사운드에 밀리지 않고 절충시킨 한국적인 멜로디가 존재하기에 음악성과 대중성을 갖춘 음반이 되었고 15년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대중들에게 정적인 교감을 시도하는 음반으로 존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추가되는 조용필의 언어에서 소름끼칠 만큼의 공감대를 느낄 수 있다.
-요즘 젊은 후배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무엇입니까?
“너무 단발성인 것 같습니다. 외국 곡에만 의존하고 모방하다보니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그런 음악을 좋아한다지만 그들 역시 깊은 감동을 못 받으니 조금만 새로운 얼굴이 나오면 이쪽저쪽으로 쏴 몰립니다.
우리음악은 역시 정적인 멜로디가 중요합니다. 서양음악은 리듬을 앞세우지요.
동서양의 정서적 차이에서 비롯된 이런 특징을 무시한 채 리듬만 갖고 음악을 하려다보니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바나나처럼 되는 것이지요.”

조용필은 겸손을 조금만 관대하게 처세하여 가황의 위치에서 후배가수들 혹은 역류하는 대중음악 주류를 향해 따끔한 지적이 종종 있었으면 한다. 현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발언할 수 있는 유일한 적자이다.

여하튼 바나나는 원숭이들에게나 줘 버리고 토마토 같은 음악을 계속 음미해보자.

후렴구를 연결하기 위해 전환되는 부분인 ‘그대의 아름다운 눈’ 부분부터는 이미 육체는 댄스리듬에 빠지게 되지만 보컬라인 멜로디에선 어느 정도 가슴으로 진정시켜주는 느낌을 선사하는데 이 부분이 한국적인 정서교감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라틴퍼커션은 계속해서 화려한 리듬을 이뤄가지만 건반의 가세가 평범하게 들릴 수 없게 한다.

이펙트 효과도 특출한 후렴구에서는 질투성이 들어있는 얄미운 느낌의 비음도 선사한다.
‘장미꽃 불을켜요. 어두워진 가슴마다 사랑의 꿈을 나눠줘요.
언제나

사랑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그려주는 이 곡은, 여러 가지 악기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부분들이 사랑의 야릇하고 이상한 감정과도 잘 조화되어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때로는 시골의 기억이 있다면 시골의 포근한 밤하늘을 아니면 학창시절의 MT라도 그리워지게 한다. 라틴풍의 음악을 했다는 실험적인 업적은, 대중들과 정서 교감을 추구한 흔적이 있기에 더욱 뛰어나게 보이는 것이다

 

글출처 : 팬클럽 위대한탄생 게시판 ms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