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40년 음악인생 눈빛만 봐도... 숨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그는 아직도 '오빠' 내년이면 40년째를 맞는 조용필(57)의 음악인생을 되짚어 보면 결코 짧지만은 않은 세월이다. 긴 세월 잊어버릴만도 한데 잊지 않고 그의 노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노래에는 그의 삶이 담겨있고, 그 노래에 담긴 삶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여전하다. 굳이 그를 만나보고 만져보지 않아도 되지만 문득 만나기라도 한다면 그와 함께 한 지난 시간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의 노래 속에서 우리의 지나간 청춘을 기억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1980년 구성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조용필의 음악인생= 음악인 조용필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39년 세월 동안 워낙 많은 노래를 불러서다. 조용필은 자신의 음악을 '우리 것과 외국 것을 합친 음악'이라고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그의 음악의 출발은 분명 '록'에 있다. 조용필은 1969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이브 핑거스'란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미8군 무대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가요를 하지 않을 때는 항상 외국 록을 불렀는데 특히 흑인음악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 시절은 그의 특유의 창법과 호소력을 다듬는 시기였다. 1970년에는 이남이와 드러머 김대환과 함께 김트리오로 활동했다. 전형적인 트로트를 록 스타일을 가미해 부르기 시작했고 그를 첫번째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돌아와요 부산항에'도 이때 나왔다. 이어 1980년 작가 배명숙이 작사한 드라마 주제곡 '창 밖의 여자'가 히트하면서 본격적인 '조용필의 시대'가 열렸다. 1980년대는 조용필의 최고 전성시대였다. 그는 트로트에서 발라드, 록, 민요를 아우르며 한국 대중음악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음악평론가 강헌씨는 "조용필이 가왕(歌王)인 것은 그가 언제나 정상에 있어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에겐 오랜 무명의 시간이 있었고, 정상에 선 뒤에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무대 뒤로 밀려나야 했지만 그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조용필의 일상은 노래로 시작해 노래로 끝이 난다. 그는 부르는 것 자체를 어느 순간에도 언제나 좋아한다. 이같은 노래를 향한 그만의 강한 집념, 이것이 조용필의 음악인생이다.
2007년 6월2일 창원공연을 앞두고 지방신문에는 연일 오빠 관련 기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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