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o Yong Pil/YPC Article

[영화] 그사랑 한이 되어

작은천국 2007. 3. 6. 16:49

  

[ ▼ 내용출처 : 엠파스 블로그  - 소림사 십대제자 - ]

 

 

영화-그 사랑 한이 되어 (1980)의 신문광고
1981년 신문광고 | 2006/08/29 (화) 01:38
그 사랑 한이 되어 (1980)


1981년 2월 5일 목요일 중앙극장 개봉
시간 --- 97분
국민학생 관람불가
요금 --- 일반 - 1500원, 중.고생 - 1200원


대한민국
제작사 --- 태창필림
제작 --- 김태수
기획 --- 임원식
감독 --- 이형표
각본 --- 김강윤, 윤석훈
촬영 --- 전조명
조명 --- 손달호
편집 --- 현동춘
음악 --- 조용필
미술 --- 노인택



출연 ---
조용필
유지인
박근형
이한나
서정일



줄거리 ---
용필은 친구 동협을 찾아 악단 화니킷트를 구성하고 우연히 만난 혜련이 화니킷트의
스폰서가 된다. 혜련은 용필의 실력을 인정하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갖은 시련과 고난을
겪고 용필은 인정을 받아 다른 가수의 레코드에 노래 한곡을 취입한다. 그때 혜련의
시한부 인생을 재촉하는 심장병은 날로 악화된다. 혜련은 레코드판을 다량으로 구입하여
다방 DJ들에게 나누어 주며 음악을 들려달라고 부탁한다. 용필은 가수로서 정상에
오르지만 혜련은 자취를 감춘다. 용필이 리사이틀을 하던 날 용필의 무수한 사연이
노래로 승화되고 혜련은 쓰러지는 몸을 이끌고 극장으로 달린다.
 
 
 


 

    

 

    [ 사진출처 : 유지인 다음카페 ]

 

 

 

  [ 사진출처 : 유지인 다음카페 ]

 

 

 

[사진출처 : 유지인 다음 카페 ]

 

 

 

[사진출처 : 조용필 팬클럽 미지의 세계]

 

 

 

[사진출처 : 조용필 팬클럽 미지의 세계 ]

 

 

 

[사진출처 : 조용필 팬클럽 미지의 세계 ]

 

 

 

슈퍼스타 조용필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영화 '그 사랑 한이 되어 '의 한 장면

당시에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던 여배우 유지인과의 키스거부사건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아썬

바로 그 영화이다

  

1980년 당시에 조용필의 인기도 하늘을 찔렀지만, 유지인의 인기 또한 가히 폭발적이었다

둘이서 같이 영화를 찍는다는 거 자체가 큰 화제였다

 

조용필은 81년 이 영화 '그 사랑 한이 되어'로 한국연극영화대상에서 주제가 작곡상을 수상했다.

 

 

 

▼ 글출처 : 네이브 블로그 http://bolg.naver.com/clubmisi/90009405103

 

 " 그 사랑 한이 되어는 조용필씨가 3천만원 받고 출연한 영화"

 

1980년도의 가요계 수퍼스타  조용필씨가 가요아닌 영화계에서도 신년 벽두붜 선풍을 일으키고 있어 또 한번의 화제가 되었던 그때.....

조용필씨는 80년도 말에 이미 영화 " 그 사랑 한이되어"에 음악까지 합쳐 3천만원의 출연료를 받아 화제가 되더니 그 다음부터 (조용필을 잡아라) 라는 말이 쉴새없이 나돌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진것은 조용필씨의 높은 가창력과 대중적인 인가 뒷받침되고 있으나 첫 울연 영화인 " 그 사랑..."에서 조용필씨의 연기능력이 의뢰로 뛰어 났었다.

조용필씨는 영화에 임하는 열의가 대단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처음 시도되는 연기 생활이고 보니 기성연기인들보다 몇십배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런 노력이 열실히 영화 종사자들에게 보여 그의 인기는 계속 유지되면서 연기인으로서의 자질도 인정 받게 되었다. 조용필씨는 "뮤지컬" 영화보다 청춘물 영화에 기용하여도 손색 없다는 것이......

 

" 그 사랑 한이 되어 "에서 그의 연기는 탁월한 편은 아니였다. 노련한 유지인씨가 조용필씨의 미숙한 면을 많이 리더한 것이고 보면 조용필씨의 이력과 결부해 흥행면에서도 별다른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만 해도 대중 가요가 히트만 되면 의례히 그 노래의 인기도에 편승하여 영화화한 예는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히트된 노래만큼 영화도 흥행면에서 성공 하였는가가 문제였다.

 

조용필씨는 신년 벽두부터 작년과 똑같은 대우로 영화출연 교섭이 쇄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용필씨는 무척 망설였다는 이야기가 tv 방송출연때 말하였다.

왜냐? 영화에서 자신의 인기가 떨어졌을 경우 가수로서의 이력도 치명적 타격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영화출연 교섭에 신중을 기하는 것 같다.

 

한편 조용필씨의 '촛불'을 주제로한 영화도 김 모감독의 연출로 영화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단발머리"도 영화화 하자고 조용필씨에게 말하였다고 그때 당시 톱 뉴스였다.

 

조용필씨도 신년벽두부터 영화가에서 자신의 새로운 영화 붐이 일고 있다는 것은 정말 모르겠다면서도 정작 출연교섭이 쇄도하자 싫지않은 얼굴로 연신 싱글벙글하였다. 조용필씨는 그떄 영화배우로서의 출연료는 1천만원대의 기성배우들을 능가한 3천만원씩에 출연교섭이 들어왔으니 조용필씨의 인기도는

그때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조용필씨의 영화계 진출로 인해 기성영화 배우들은 못마땅한 눈치들이였다.

아무리 가수로서 인기가 치솟고 있지만 타분야까지 침범하여 가수의 인기를 지속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겠느냐라고 한편에서 는 말하였다.

그러나 조용필씨의 연기가 얼마나 충실한가에 달린것 같다.

그때 80년대는 무명 코메디언인 이주일씨가 영화계를 들썩하게 만들어놓더니 81년 벽두부터 코메디언 아닌 가수가 또 한번 영화를 온통 들썩들썩하게 만들어 놓고 있었다....

 

조용필에게는 영화사상 유례없는 3천만원이란 엄청난 출연료로 출연하여 달라는 영화사 요청에

조용필씨는 처음에 얼떨떨 하였으나 자신의 인기가 그만큼 뛰어 올랐다는 증거이니 하고 3천만원의

출연료에  출연한것을 승락하고 조용필씨는 그 댓가로 열심히 연기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조용필씨에게도 애로가 있었다. 노래하는 가수이기에 노래에는 자신이 있었으나 연기에는 별로 자신이 서지 못했다.그러나 옆에서 같이 출연한 유지인씨의 도움이 무척 컷다.

조용필씨의 미숙한 연기를 노련한 유지인씨가 잘 리드하여 주어 조용필씨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그 만큼 유지인씨의 도움이 컷었다. 그러나 유지인씨의 도움도 한두번이지 매번 그럴수는 없었다.

조용필씨는 음악아닌 새로운 연기세계에 뛰어들어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에

조용필씨의 자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조용필씨는 열심히 노력하였다. 노래하는 시간을 빼놓고 밤에는 연기연습에 몰두하는 시간이 조용필씨에게는 더욱 많았다. 조용필씨는 쉬지않고 노력하였다.

 

차츰 연기에 대한 새로운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노래에는 노래에 대한 세계가 따로 있지만 연기에는 연기세계때로 새로운 멋과 맛이 함유된 것을 조용필씨는 발견하여 자신의 새로운 연기세계로 치닫기 시작하였다. 조용필씨는 촬영에 임할때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고 새로운 용기로 한씬, 한커트에 정력 투구하였다.

 

영화는 완성되었다. 드디어 팬들의 심판대에 서게 될 날도 얼마남지 않았다.

많은 팬들이 영화를 보고 조용필씨를 어떻게 평을 할런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그러나 조용필씨는 자부하였다. 노력은 하였다고

그러나 처음 출연한 영화이니 만큼 미숙한 면이 더욱 많을 것이라고 하였다.

조용필씨는 팬들의 심판이 무척 두려우나 자신을 아끼는 팬들이기에 귀엽게 보아 주실거라는 것이였다. 처음 시도한 연기세계에 자신이 부합하는 시간이 너무도 짧은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하면서도 팬들의 심판은 자신을 기성연기인이 아닌 신인이기에 신인으로써 점수를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만큼 조용필씨는 노력하였다는 증거이다. 신인으로서 점수는 얼마나 나올런지 미지수이지만 조용필씨의 집념과 노력의 결실이 맺어진 작품이라고 조용필씨는 자부하고 있었다.

81년 구정을 기해 상영된 그이 새로운 연기세계의 점수가 얼마나 나올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