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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날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작은천국 2016. 3. 21. 06:30

봄 날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오랜만에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중 서울관, 덕수궁관과 달리 과천에 있다 보니

다른 현대미술관에 비해 발걸음이 더딘 곳이었다.

 

하루 날을 잡아 모든 전시를 훑어야 하는 탓에

  느긋하게 즐기겠다는 마음은 과천 현대미술관의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밀린 숙제 앞에 무용지물이었다.

 

게다가 벚꽃이 피거나 낙엽이 질 때면

미술관 가는 길은 정말 환상적인 곳으로 변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절정의 봄, 절정의 가을 과천 현대미술관은 늘 1순위였지만

한번도 그 시기를 딱딱 맞춰 본 적은 없었다. 

 

올해는 벚꽃 필 때 딱 맞춰 과천 현대미술관을 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아주 특별한 전시가 있어 조금 이른 봄, 과천 현대 미술관을 다녀왔다.

 

 

과천 현대미술관 30주년 퍼포먼스, 김구림의 현상에서 흔적으로

 

올해는 꼬옥 벚꽃 필 때 천천히 미술관 가는 길을 만끽해보리라 다짐을 하고 있던 차,

특별한 전시 덕분에 조금 일찍 미술관을 다녀왔다.

 

메마른 겨울에 보던 소나무는 차가웠는데

봄이 오니 소나무의 푸름이 따스하다.

 

올해로 개관한지 30주년을 맞이한 과천 현대미술관은 특별한 전시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중 하나로 과천관 야외 조각공원에서는 매우 특별한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김구림의 <현상에서 흔적으로 - 불과 잔디에 의한 이벤트> (1970년)를

45년만에 과천관 앞마당에서 재연됐다. 

 

<현상에서 흔적으로 - 불과 잔디에 의한 이벤트>

1970년 4월 11일 한강 살곶다리 부근에서 잔디를 불로 태워 삼각형의 흔적을 남긴

김구림 작가의 대표적인 대지 미술로 평가받고 있다.

 

그날처럼 삼각형을 만든 다음, 인위적으로 불을 내고 그 불이 흔적을 남기는 아방가르드 미술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렬했고 삶과 죽음의 묘한 경계에 서 있는 기분마저 느끼게 했다.

 

타닥 타닥 타닥 -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도 불은 은근히 타올라 약 45분 정도 만에 삼각형 4개를 전부 태웠다.

 

불이 타들어 가는 소리에 기분이 묘했고

불이 타면서 내뿜는 흰 연기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살아 숨 쉬는 이 생이 꿈틀거리는 느낌은 징그러울 정도로 강렬했다. 

 

그 흔적들은 하루도 똑같지 않은 모습으로 1년 내내 살아갈 것이니

과천관 30주년의 의미가 더해진 기막힌 퍼포먼스는 정말 많은 의미로 다가왔다.

 

김구림의 <현상에서 흔적으로 - 불과 잔디에 의한 이벤트>는 더 자세한 포스팅으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외국인 최초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르토메우스 마리 리바스 씨

 

 

 

 

지난 12월 국립 현대미술관은 첫 외국인 관장이 탄생했다.

세계에서도 점점 한국 현대미술이 주목을 받는 이때 외국인 관장의 탄생은

짧은 생각으로 어쩌면 예견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싶으면서도

한국인 혼혈도 아니고 순수 외국인이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취임했다는 사실은

놀랄만하면서도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상당했다.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김구림 작가의 퍼포먼스에서

마리 관장은 퍼포먼스 현장에 모인 많은 사람에게 "참여자 중심의 미술관이 되겠다."는

취지를 담은 간단한 인사를 했는데 그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사실, 선글라스를 낀 사람이 내 옆을 왔다 갔다 할 때만 해도

그 사람이 이번에 취임한 현대미술관의 마리 관장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얼굴을 몰라도 우리나라 관료의 행차는 알려주지 않아도 '높은 사람'인 줄 알게 되는데

누가 수행원인지 모를 정도로 수행원의 수도 적은 것은 물론이고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적인 권위가 없어 더 눈치를 못 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퍼포먼스가 끝나고도 그런 모습은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야기 중인데 몇몇 사람들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

흔쾌히 사진까지 찍어주는 모습은 정말 의외였다.

 

마리 관장과 관련된 인터뷰 기사를 살펴보니

 화랑에서 심부름을 시작으로 관장이 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미술관을 관람객 위주로 바꾸고 소통하는 미술관으로 변화시킨 전략은

스페인 여행할 때 미술관에서 문화적 충격으로 느꼈을 만큼 인상적이었기에

인사말에서 '관람객 위주의 미술관'을 언급한 것은 나에게는 그리 의외의 말은 아니었다.   

 

올해는 과천 현대미술관이 개관 3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로

국립현대미술관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관장이 취임했기에

국립현대미술관도 상당한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30년 동안 그야말로 밑바닥에서부터 최고가 되기까지 그의 모든 경험이

국립 현대미술관을 어떻게 변모시킬지 기대하게 된다.

 

 

 

스페인 미술관 여행 -  빌바오 구겐하임, 마드리드 소피아 미술관, 파라도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마리 관장의 인터뷰를 개인적으로 주목했던 이유는 스페인을 여행하는 동안

 몇 개의 미술관을 관람했었고 그때 보았던 미술관, 미술관 관람객 등 

모든 것인 나에겐 다소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회사 생활에 충실했던 그때 나에게 미술관 관람은

연례적인 행사였고 유명한 전시 정도나 기웃거리며

남들에게 보여 주는 자랑거리의 감상에 지나지 않았다.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 여행 중에 빌바오의 구겐하임을 굳이 찾았던 이유도

무의식적으로는 그런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스페인에서도 완전히 북쪽에 있는 빌바오는

구겐하임이라는 미술관이 죽어가던 도시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곳으로 유명하다. 

 

빌바오 구겐하임 전경

.

 

 

도시 전체를 약 30분이면 통과하는 빌바오 트램을 타고 구겐하임 미술관 역에 하차한 다음

약 3km 정도를 네르비온 강을 따라 걸어가면 강 옆으로 거대한 구겐하임이 보인다. 

 

미술관까지 걷는 길은 한쪽에는 트램이 조용히 지나다니고 

반대편으로 미술관까지 다양한 조각품이 설치되어 있다.

구겐하임에 이르는 길이 야외 미술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3km 정도 걷는 것은 미술관까지 가는 설렘의 길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비정형의 구겐하임을 만난 순간 흥분지수는 최고조에 달했고

눈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빌바오에 서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구겐하임 전시실의 풍경이었다.

유치원 정도의 학생들이 2층 유화실 바닥에 자유롭게 앉아서

선생님의 설명을 미동도 없어 듣고 있었다.

 

우리나라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해설사들은 설명하라 애들 진정시키랴

어수선하기만 했던 흔한 풍경 대신 유치원생이면서도 놀랍도록 진지하고 차분한 모습이라니 -

 

예술 작품 하나를 두고 선생님의 질문에 묻고 대답하는 진지한 모습은

'니 들이 뭘 알아' 라고 감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에 가까웠다.

 

다른 관람객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선생님과 학생들은 목소리를 낮춰 조용조용했고

한참 동안 작품 설명을 끝내고 애들은 각자 가지고 온 스케치북을 펼쳤고

자신의 느낌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과연 우리나라 유치원생들은, 초등 혹은 중등의 미술교육은 어떤지 괜히 심각해져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네르비온 강을 따라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구겐하임과 강 건너 구겐하임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빌바오 시민들의 유유자적한 모습>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로 대표되는 스페인의 두 도시.

여행자의 성격에 따라 이 두 도시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린다.

 

나 역시 개인적인 취향은 바르셀로나였고 그에 비해 훨씬 메마르게 느낀 마드리드였지만

마드리드에 애정을 가지게 된 건 순전히 미술관 때문이었다.

 

마드리드에는 여러 미술관이 있지만 소피아 미술관과 파라도 미술관이 유명하다.

세계 3대 미술관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파라도 미술관이야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지만

소피아 미술관에 대한 정보는 그때 별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드리드 여행 중 하루는 마드리드 미술관 투어로 일정을 계획했고

지하철역에서 소피아 미술관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파라도 가는 김에 소피아 미술관을 먼저 보기로 했다.

 

지금도 얕은 지식으로 미술은 '내가 아는 만큼'에 지나지 않지만

그때는 미술에 대해 '미'자도 모르고 남들이 좋다 하니 좋은가 보다였던 시절이었기에 

소피아 미술관에 대한 큰 기대도, 큰 볼거리도 기대하지 않은 채 미술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곳에 게르니카 진품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교과서 어느 한구석에서 자그마한 이미지로 희미한 기억만 남았던 게르니카를

실물로 보니 그 압도적인 크기에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가로 약 7.7m의 게로니카를 직접 본 순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천천히 그림 하나하나 눈으로 따라 그리면서 느껴지던 게르니카의 참상을

표현한 예술의 힘은 교과서의 작은 도판으로는 절대로 느낄 수 없었다. 

 

게르니카가 탄생하기까지 전 과정과

피카소의 예술작품이 아카이브 형식으로 구성된 소피아 미술관의 전시는

내가 비로소 미술이, 예술이 어떤 것인지 눈으로 확인했던 순간이었다. 

 

지금은 이 그림을 사진으로 찍을 수 없다고 했는데 그때는 사진촬영이 가능했던 것도 행운이겠다.

 

그저 한 바퀴 휙 둘러보고 가려던 소피아 미술관에서 3시간을 넘게 머물렀고 다시 프라도 미술관으로 향했다.

소피아 미술관에서 프라도 미술관까지 이르는 길 양쪽으로 다양한 설치미술이 있어

소피아 미술관의 또 다른 전시가 프라도 미술관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술관 후문을 거쳐 정문을 향하는 길에는 

스페인 화가의 자존심 고야와 벨라스께스 등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프라도 미술관.

 

작품 구경은 자처하고라도 전시실 구경만으로도 반나절은 너끈히 지나갈 만큼

어마어마한 크기의 파라도 미술관의 규모에 놀라기도 했지만

더 놀란 것은 미술관의 풍경이었다.

 

관람료 14유로라는 다소 비싼 입장료는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스페인 사람들에게도 예외는 아니겠다.

그런데 이게 웬일.

프라도 미술관은 오후 6시부터 8시까지는 누구나 무료로 입장이 가능했다.

 

무료입장을 위해 사람들은 미리 줄을 서기 시작하는데 이 줄은 미술관 주위를 굽이굽이 돌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관광객도 많이 있겠지만 평범한 소시민인 스페인 사람의 예술 사랑도 놀라웠다. 

 

프라도 미술관 주변으로 사람들이 여유롭게 늘어져 있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그래도 지금은 그나마 많이 나아졌지만 2009년 가을에 본 미술관 주위의 모습은 나에겐 문화적 충격이었다.

 

예술 전공자도 아니고 예술의 영역은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그때,

평범하고 평범한 내 눈에 비친스페인의 미술관 풍경은

 내 일생일대의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프라도 미술관과 그 일대의 풍경에 반해 다음 날 원래 가려고 생각했던 세고비아를 가야할지를 심하게 고민했지만

 과감하게 세고비아를 포기하고 하루 종일 프라도 미술관에서 보냈을 정도였으니 말해 무엇하랴.

 

다시 봄 날의 과천 현대미술관. 

스페인 여행 후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특히 스페인의 미술관 투어는 예술을, 미술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고

그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 현대미술관 등을 통해

내 인생의 또 하나의 요소를 만들어 가고 있다. 

 

대부분 전시 개막이 오후 5시였던 것과 달리 오후 1시에 시작했던 김구림 작가의 퍼포먼스.

덕분에 오랜만에 과천 현대미술관의 봄날을 만끽했다.

 

잔디가 초록 옷을 갈아입기 전임에도 노랑은 빛을 발하고

 

섬 전체가 미술관인 니오시마 섬을 언젠가 한 번은 가 보고 싶게 만드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과천관 중앙홀은 3층까지 오르막의 골목길을 걷는 듯한 기분으로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을 360도로 천천히 바라 보며 

 한 발에 모니터 하나를 매칭시키며 걷는 즐거움은 남다르다.

 

 

적당한 오르막은

적당히 느리고

적당히 숨이 차다.  

 

전시실을 급하게 옮겨 다니던 발걸음은 절로 느긋하다. 

어랏! 이 공간이 이런 모습이었나? 

 

늘 보던 공간이 빛이 달라지고, 계절이 달라지니 다른 느낌으로 훅- 다가온다.

 

그렇게 느긋하게

<과천관 30년 특별전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김태수><최현칠, 동행 함께 날다> 를 보고

작년에 보았던 <육명심의 사진전>까지 즐겼다.

 

맛있는 밥을 맛있게 먹은 포만감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을 나서는데

왼쪽으로 작품 하나가 느닷없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 저건 또 뭐야.

 

나름 과천관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미술관 안의 전시실 외에는

야외 마당의 조각들 몇 개를 제외하고 눈여겨 본 것이 없었네 - 

 

 

그래서 잠깐 야외 전시실로 발길을 옮기니

어딘선가 기괴하고 기묘한 소리가 들린다.

 

어머 이 작품이 원래 소리가 나는 거였나 봐 @.@

 

멀리서만 바라보던 설치 작품이었는데 소리가 나는 작품이었을 줄이야.

 

밀린 숙제하듯 종종걸음으로 다녔던 현대미술관의 전시실과 달리

전시실 주변 풍경은 또 하나의 작품이자 또 하나의 풍경이었다. 

 

오래 보아야 예쁜 것이 꽃만 아니듯

스페인 미술관에서 스페인 사람이 예술을 일상으로 즐기는 것처럼

우리에게 문화와 예술이 일상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깃들고

나 역시 올해 그런 한 해가 되기를 생각해본다.

 

봄 볕 따뜻한 국립현대미술관이 나를 간지럽히네 -

 

 

<국립 현대미술관 과천관 가는 법>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 4번출구에서 미술관 셔틀버스를 이용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