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kking/산티아고 가는 길

[산티아고가는길 24] 헤어짐이 가슴 아픈 날

작은천국 2010. 1. 8. 20:26

 

 

 헤어짐이 가슴 아픈 날

    2009. 10. 30 (금)  레온 (Leon) - 트리비고 델 까미노(Trobigo del camino ) - 라 버진 델 까미노(la virgen del camino)

                        - 바르바데르 델 라 버진(valverde de la vergin) 산 미구엘 델 까미노 (san miguel del camino) 26.1Km 

 

레온에서의 아침은 부르고스의 아침과 마찬가지로 부산스럽다.

어제 어떤 녀석이 생일이라고 밖에서 밤새도록 떠들어대는 통에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서 잔 모든 분들이 잠을 설쳤다.

아침 7시 40분에 제공되는 식사를 하기위해 전부식당으로 모였는데 일섭이가 안 보이는 것이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남, 녀의 공간분리가 되어 있었는데 일섭이가 오늘 인사도 없이 그냥 간건 아닌지, 혹은 애가 어디 아픈게 아닌지...

무엇보다.. ㅋㅋ 나의 mp3 충전을 맡겼는데 그냥 갔으면 큰일이다싶어 식당에서 후다다닥 남자들 방으로 100m 질주...

일섭이가 못 일어나고 있었다... 에휴~~~ 술도 안 먹었은애가.... 얘도 피곤했던거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오니 내 옆자리에 앉은 프랑스아줌마가 무슨 일인지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일섭이가 들어오면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치면서 맞이하자고 했다..

프랑스인의 쾌활함은 어디서든 숨길수가 없는 듯하다.

하여튼 일섭이는 졸지에 부시시한 얼굴로 박수세례를 받아야했고 우리 모두는 전부 한바탕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ㅎㅎ

일정이 지체된 일섭이와 오늘 21.8km만 가겠다는 우리와 달리 은수는 먼저 가고 있는 친구 맥을 따라잡아야한다며 33km정도를 가겠다고했다

힘들었던 메세타의 강력한 메세지를 보여주기 위해 구원투수로 등장했던 은수와 일섭이와 함께

(아마 이  두 명이 없었다면 나는 마지막 혹은 그 전날 버스를 탔을 것이고 메세타의 메세지는 받지 못했을것이다)

헤어짐을 기념하며 우리가 잠을 잤던 알베르게 Benedictines 에서 출발하기전 한 컷 

다들 메세타가 끝났기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표정이 어찌나 밝은지..

 

어제 레온 대성당을 갔던 길 그대로 도시를 빠져나간다...

(아마 이때부터 굳이 저녁에 마을구경을 나서지 않았던듯하다. 어짜피 마을구경을 한다해도 이렇게 그 마을에서 봐야할 곳을 그대로 지나야하기때문에)

도시를 지나면서 특이한 표식이 눈에 띄었다.

점자로 표시된 카미노마크.... 시각장애인이 마크를 볼 수도 없을텐데.....

그리고 시각장애인이 이 길을 걸으려면 반드시 누군가 동행해야할텐데 점자표시로 된 카미노마크가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러나 비록 보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도 엄연히 사람속에 살고 있는 존재임을 잊지않고 사소한 것까지도 세심하게 배려한다는 것이 부럽게 만들었다.

한국은 경제대국 10위에 올라섰지만 이런점에서 아직 선진국으로 불리기에는 갈길이 먼것같아 씁쓸했다. 

언젠가 우리도 이렇게 될 날이 있겠지.. 다만 좀 빨리 왔으면..  

  

산티아고까지 330km ...너무 멀게만 느껴지던 물리적인 거리가 조금씩 현실로 다가온다.

어제 메세타에서 보았던 강력한 메세지.. 과거를 벗어나 오늘부터 미래를 향한 새로운 길을 걷는 시작이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어제 파김치가 되어도 관람을 갔던  산 이시드로 성당도 다시 지나간다.

 

원래 레온에서 하루예정으로 오비에도를 다녀올 예정이었다. (레온에서 오비에도까지 기차로 약2시간 이내, 빌바오처럼 북부에 있다)

오비에도는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우리나라로 비교하자면 경주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 산티아고길을 걷다보니 온통 지나가는 마을이 문화유산이란 생각이기때문에(산티아고 길 자체가 문화유산이다) 굳이 이 길에서 벗어나 다른 곳의 문화유산을 본 다 한들

비슷한 스페인의 문화일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이 길에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특히 로그로뇨에서 빌바오를 갔을 때 마음은 산티아고 길에 두고 왔음을 느꼈기에..

 

태양을 받아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던 파라도르

'파로도르'는 오래된 고성이나 성당건물을 국가가 매입해 국립호텔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보성언니와 은수는 벌써 사라지고 없고 일섭이, 지수와 함께 사진찍기 놀이..

 

파라도르 앞에 있는 십자가 상에 신발까지 벗고 기대쉬고 있는 페레그레노(순례자)의 동상...

우리의 모습도 이런것이라.. 숙연해진다... 저녁에 봤다면 아마 두배는 피곤감이 가중되었을것같은 느낌 팍팍!!

 

순례자 상 옆에 기대어 다들 피곤에 지친 포즈를 흉내내며 사진도 찍고.

 

파라도르르 지나 이 강을 건너면 드디어 레온을 빠져나간다...

 레온의 도심 위로 쏟아오른 태양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시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도 레온인줄 알고 정말 레온이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레온의 위성도시격인 trobagio del camnino 이다.

도로 가로동이 재미있다... 이 길은 이렇게 빨간색으로 이 길을 지나 다른 도로에는  파란색으로 가로등이 서 있다. 

개미와 베짱이에 나오는 베짱이 같기도 하고 아뭏든 재미있는 디자인이었다. 

 

도심에 있던 카미노 마크  

 

두시간만에 7.3km 에 있는 버진 델 카미노에 도착했다.

 

이 곳 버진 델 까미노에서 길이 두 군데로 나뉘어 25km를 지나 하스피탈데오르비고에서 다시 합쳐진다.

붉은 색으로 굵게 표시된 오른쪽길이 정통 까미노길인 '산마르틴'이고 점선으로 표시된 왼쪽길이 '마자리프'길로 우회하는 길이다.

정통까미노 길을 도로를 따라 걷는 다소 지루한 길이며 마자리프길은 숲길을 걷는 길이지만 정통 까미노 길이 아니다보니 숙소해결이 어려울수 있다.

생장에서는 정통 까미노길만 안내하고 있고 돌아갈 의사가 전혀 없는 우리는 당연히 정통까미노길로 가기로했다.

나쁜넘의 시키들.... 그렇다고 마자리프길을 이렇게 스프레이로 지울것까지야.. ㅠ

 

갈길이 바쁜 은수와 보성언니는 이미 보이지도 않는다.. 일단 급피곤해진 관계로 (커피 먹어줘야되는 시간은 배꼽이 먼저아는 것같다. ㅋ) 커피를 마시고 가기로 했다.

순례길 커피는 당연 카페 콘 레체 아니면 솔로 카페(에스프레소)였건만 카푸치노가 있어서 카푸치노를 시켰다.

층층이 이쁜 색깔의 카푸치노... 

 

게다가 설탕에는 이렇게 마을이름이 새겨진 이쁜 설탕봉지가... ㅎㅎ 귀여운 순례자 형상의 그림까지.. 센스만점이다

다만 잘못해서 일섭이가 커피를 쏟았는데 다시 커피를 주겠다고 해서 그냥 서비스 하는 건 줄 알고 좋아라 했더니 돈 받아서 왕 실망했다.. ㅎㅎㅎㅎ

 

근처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곳이었지만.. 여하튼 까미노길에 있는 마을에는 이렇게 순례자와 관련된 조형물이 있다.

별것 아닌 이런 조형물도 순례자인 우리는 보고 또 봐도  반갑기만 하다

 

오후 12시 30분 valverde de la vergindp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길 건너 보이는 돌담집이 이곳의 알베르게이다.

 

일정이 빠듯하다고 오늘 최대한 많이 가겠다고 했던 일섭이가 계속 우리와 속도를 맞추고 있는것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저러다 오늘 해질때까지 걸어야되는 건 아닌지... 우리가 자꾸 일섭이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심을 먹고 은섭이가 속도를 내어서 걷겠다며 '고마웠다 건강해라 까미노 무사히 마치라'는 인사를 하고 메일을 주고 받고 안녕을 고하며

일섭이가 휙~~~ 돌아섰다..... 멀어져 가는 일섭이의 뒷모습...

갑자기 울컥하는 것이.... 코 끝이 찡해온다.

녀석.....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야 겠다싶어 얼릉 한 장 찍었다....

 

일섭이도 돌아서면서  울컥해서 울었다(?) 고 했고 먼저간 보성언니와 은수를 지나면서 또 울컥했다고 했다

보성언니는 울었다며...ㅎㅎㅎ

 

짧다면 너무 짧은 이틀동안 일섭이와 이렇게까지 정이 들다니...

우리 모두는 이렇게 헤어짐이 하루종일 가슴아팠던 날이었다

'정'이란 시간이 길고 짧음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단 하루를 만나고도 평생 그리움을 간직하고 살 수 있다는 걸  ...

아마도...

 

헤어짐이 정말로 가슴아픈 날이다....

언제나 무엇이던가와 헤어진 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특히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같은 추억을 공유한 것이라면 더욱더....

모든 헤어짐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일섭이를 보내고 오늘 묵을 예정지인 villadangos del paramo에 도착하니 오후 세 시..

지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피곤하긴 하지만 4.3km에 있는 산 마르틴까지 가도 될듯하여 내친김에 더 가기로 했다.

 

 길은 도로를 끊임없이 따라 걷는 길이라 생각보다 지루했지만 지수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생각보다 덜 피곤한듯했다. 

 

옆으론 수확을 하지 않고 그냥 둔 말라비틀어진 옥수수밭이 펼쳐지고 있다.

 

아침 날씨와 다르게 온통 검은 구름이 뒤덮기 시작한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 오후 4시경 산 미구엘 델 카미노에 도착~~

 

어느 알베르게를 갈까 고민하다가 마을에 들어오자 마자 입구에 사설 알베르게가 있어 시설을 보고 결정하기위해 들어가서 확인하니

6인실, 4인실, 2인실로 구분이 되어있고 시설도 전반적으로 매우 깨끗했다. 6인실에 3유로..

앗사~~~ 뜨거운 물 펑펑... 게다가 오늘 사람도 거의 없다. 나와 지수, 점심때 같은 곳에서 밥을 먹었던 오스트리아 부부 이렇게 4명...

참... 소박하지 않은가?  그저 깨끗한 잠자리, 뜨거운 물이면 모든 것이 횡재한 기분이 드는 까미노... 

산티아고가는 길.... 이 길에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알베르게에서 6유로에 저녁을 해결하기로 하고 내일 간식을 위해 수퍼로 가던중 공립알베르게를 만났다.

이건 도대체 뭥미????

그리고 우리 알베르게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사립 알베르게 간판이 붙어 있어 그 곳은 어떤가 또 기웃거리며 들어갔다.

(웃긴건 이 사립 알베르게 광고간판이 우리가 묵었던 알베르게 문 입구에 떡하니... 상도덕을 무시한 처사라고 지우와 분개를 했다 ㅋㅋ)

마침 알베르게에서 어떤 사람이 나오더니 한국사람2명이 있다고 해서 얼굴이라도 보려고 갔는데...

크하하하..... 보성언니와 은수가 있는게 아닌가?

다들 얼굴을 보자마자 서로들 왜 여기있냐며 박장대소를 했다. 

전 마을에서 묵는다는 우리를 위해 보성언니와 은수는 다음에 어디에서 만나자고 메세지를 남겼다고 했다.

게다가 언니들이 묵고 있는 두번쨰 위치에 있는 알베르게는 뜨거운 물도 안나오고 부엌을 사용하려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켤때마다 동전을 넣어야하고 시간제한이 있다고 했다

가격도 5유로라고.. 또 상당히 지저분했다.. ㅋㅋㅋ 이럴때 또 횡재한 기분... ㅋㅋㅋ

은수왈... 첫번쨰 알베르게는 캠핑장을 새로 리모델링 한 곳이어서 안들어 갔다고 했다.

올 해 2010년 성야곱의 해를 대비해 허름한 곳은 모두 리모델링을 했고 알베르게가 부족한 마을은 이 곳처럼 알베르게를 새로 짓기도 했다

나중에 공용 알베르게 묵은 사람들 이야기도 그닥... 그냥 그랬다고한다.

여러분~~~ 이 곳에서 숙박을 하실분들 우리가 묵었던 첫번째 알베르게 무조건 들어가세요...

 

 

같이 묵었던 오스트리아 부부와 알베르게 호스피탈로 부부...그리고 우리들...

저녁은 맛있었고 이렇게 생각지도 않게 이 곳에서 다시 만나니 기쁨 두배....

아저씨는 뒤쪽으로 전기가 안들어와 계속 고치고 있는 중이고 아줌마는 아저씨가 제대로 일을 못한다며 다다다다 해 대는 통에 유쾌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사실... 칠 순이 넘은 그 나이에도 우리 아버지는 아직도 엄마에게 때때로 잔소리를 들으신다.

두 분이서 맨날 별 것 아닌것 가지고 토닥토닥 싸우는게 일상이라 이젠 그만 좀 하시라고 하면 헉 ~그냥 대화하는 거라고 하신다.. ㅎㅎ

뭔 넘의 대화를.. ㅋㅋ경상도는 경상도인듯하다. 그런 부모님을 볼 때 마다 늘 웃음보가 터지지만 때때론 정말 전쟁치는 것 같다는 생각도...

이 부부를 보니 너무나 닮은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것 같아 유쾌했다.

 

 단품요리로 믹스앤살라다(종합샐러드)를 먹었는데 대박이었다... 엄청나게 큰 접시에 담겨 나온 샐러드~~~~ 

 

되도록이면 그날의 감정을 놓치지 않기위해 일기를 빼놓지 않고 기록하기위해 애를 썼는데

그럼에도 10시만 되면 불을 끄는 통에 밥먹고 눕기 바빴던 날도 있었던지라 며칠은 밀려쓰기도 했다.

 

이날 나의 일기...

그런데... 얼마나 피곤했던지 일기를 쓰면서 몇 번을 졸았는지 모르겠다.

침 안 흘린것만도 다행이구나..ㅎㅎㅎ

무슨 글씨인지 나도 못 알아보겠다.

나중에 외국인들이 내 일기장을 보고 한글이 이쁘다고 뒤적이길래 필체가 좋은 날의 글씨와 이날의 글씨를 보여주니

다들 배꼽을 쥐고 웃었다.. ㅎㅎㅎ

그러면서 다들 자기네 일기장을 꺼내서 우리도 그런 날이 있었다며 서로 무슨 글인지도 모르면서 깔깔거리고 웃었다...

 이 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들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동지의식은 이런 사소한 점에서부터 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고 있었다.

큰 헤어짐을 준비할 마음의 준비도 없이 오늘 처럼 헤어지게 되는 그 날이 불쑥 찾아올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산티아고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