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o Yong Pil/YPC Article

2004년 예술의 전당 매거진 12월호

작은천국 2009. 1. 17. 21:57

 

 

 

Special Theme 조용필 2004-지울 수 없는 꿈

조용필, 그의 음악세계와 꿈

이 땅의 열가지 빼어난 곳 중 하나라는 서울의 북한산은 강화도나 문산쯤 멀리 떨어져서 봐야 그 위용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김포, 구파발, 구의동. 이렇게 길을 따라 가까이 다가서면 설수록 오히려 북한산의 그 빼어난 산세는 제대로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떤 산이든 그 깊이와 멋은 산의 품에 안겨야 제대로 알 수 있다. 필자는 방송 구성작가로 19년을 보냈다. 수도 없이 많은 쇼와 공연을 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공연에는 늘 조용필이 있었다.
경찰 공식 집계로 15만이었다는 MBC 특집 부산 해운대 공연, 그 자리에도 필자가 있었고, 25주년 세종문화회관 공연에도 있었다. 88 올림픽 공원의 30주년 공연도 그렇고 10년만에 방송나들이였던, 지난 8월 속초에서 있었던 대한민국 음악축제 ‘나는 조용필이다’의 공연에도 있었다. 늘 그 공연의 구성작가라는 이름으로.
산에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 산을 제대로 보지 못하듯, 조용필이라는 우리 대중음악계의 거대한 산의 모습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필자가 가까이 했던 그 산의 계곡과 능선과 정상의 얘기들 몇 가지 써 내려간다.

지난 8월 ‘나는 조용필이다’ 공연을 앞두고, 조용필과 북한산에 올랐다. 보슬비가 내리는 새벽 5시30분 진관사 입구 주차장에 모였다. 조용필이 선두에 서고, 십여 명의 YPC스태프, 그리고 공연관계자들이 뒤 따랐다. 중간에 두 명이 낙오를 했다. 하지만 조용필은 계속 선두를 지키며 진관사 계곡을 거쳐, 비봉을 올라 사모바위까지 갔다. 건강을 위해 산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건강을 위한다면 그렇게 비가 오는 날에 산행을 삼가해야 한다.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 산행을 하는 회사나 모임이 많다. 팀워크를 위한 산행이라면 그런 날씨는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왜 그런 날 조용필은 두 명이나 중간에 낙오할 정도의 상황에서도 산행을 강행했을까? 자신의 건강 때문도 아니고, 팀워크를 다져 감동적인 공연을 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산에 가기로 했잖아.”
1992년 MBC 음악이 있는 곳에를 구성할 때다. 조용필 특집 콘서트를 준비했다. 십년도 넘은 일이지만 이 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라이브로 부르기 시작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당시 담당 PD였던 MBC 예능국 안우정 부장과 필자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꼭 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PD나 작가가 조용필의 왕 팬으로 꼭 그 곡을 라이브로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당시 여동생이 살림을 맡아서 했던 조용필의 방배동 빌라에 들렀다. 늦은 저녁식사를 챙겨 반주삼아 시작한 술에 발동이 걸렸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해야 할 여러 가지 이유를 둘러댔다. 그러나 대답은 단호했다. “그 대사를 외워서 매끈하게 낭송하는 건 쉽지 않아.”
식당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침실로 옮겨가며 새벽 2시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마지 막에는 오랜 세월 손 때 묻은 ‘팬더’ 기타까지 등장했고, 새로운 코드진행을 들려준다며 연주를 했다. 취기도 돌고,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었다는 생각에 다시 시도를 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이 시대 모두를 위한 시다. 시낭송 외워서 하는 거 봤는가. 보고 낭송해도 결례가 아니다.”
시낭송은 보고 해도 결례가 아니라는 말에 그는 결국 좋다고 했다. 그리고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연주했다. 정말 아끼는 곡이라고 했다. 조용필은 주당으로 소문이 나있지만, 필자는 그가 술에 취한 걸 본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음악에 취해 있었다.

199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조용필 25주년 기념 빅 콘서트를 끝냈다. 대기실에 한 인물이 머뭇거리며 들어왔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었던 서태지였고, 그 자리가 그와의 첫 대면이었다. 조용필은 인사차 찾아온 서태지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 잘하더라. 열심히 해. 참 좋더라.”
서태지에게 이렇게 말했던 조용필이지만 필자는 그가 열심히 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조용필 팬들이 이 글을 읽겠지만, 그래서 엄청난 항의를 받는 한이 있어도 필자는 이 말을 취소하지 않겠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그건 사실이고, 진실이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산다. 하지만 물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공기 속에서 살지만 공기를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조용필은 음악 속에서 산다. 그의 생활에서 음악을 빼면 남는 게 없다. 음악을 떠나선 그가 살 곳이 아무 곳도 없다.
지금 살고 있는 방배동 서래마을 근처 한 빌라의 거실. 그가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다. 그래서 푹신한 의자세트가 준비돼있다. 하지만 그가 늘 앉는 자리는 그 푹신한 응접세트가 아니다. 그 응접세트 아래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멀티미디어용의 대형 노트북. 그가 발표한 노래 전곡이 들어있고, 새로 만든 음악으로 가득 차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 음악을 불러내 늘 혼자 다듬고 있다. 이것이 그의 생활의 거의 대부분이다.

지난 8월 속초에서 있었던 대한민국 음악축제 중의 메인 공연이었던 나는 조용필이다는 태풍 때문에 하루 연기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태풍 탓이 아니었다. 필자는 전적으로 조용필의 의지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지난 해, 35주년 공연을 정말 제대로 준비했다. 전 세계 어느 뮤지션의 공연과 비교해도 손색없

 

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비 때문에 보여줄 것을 제대로 못 보여 주고, 들려 줄 것을 제대로 못들 준, 미완의 공연이 되었다.
방송을 잘 아는 조용필이다. 꽉 짜여진 여러 가지 공연일정들 속에, 메인 공연으로 준비됐던 나는 조용필이다를 연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한민국 음악축제 전체 일정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MBC 공연 관계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된 공연을 하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공연을 준비했는데, 또 실망하게 할 순 없다.” 간곡한 조용필의 설득으로 MBC 예능국 관계자들이 연기에 동의했다. 한국 방송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다음 날, 대본정리를 하러 숙소로 간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잠 한잠도 못잤어. 어제 그냥 간 팬들이 자꾸 맘에 걸려서 말이야. 오늘 정말 제대로 하자.”
조용필은 지난 36년 동안, 음악의 거의 모든 장르를 펼쳐 보였다. 그러니 딱히 그의 음악세계란 것을 구분 짓는 게 무의미하다. 그는 아바의 뮤지컬 「맘마미아」가 영국에서 초연될 때 작정하고 첫 공연을 볼 정도로 뮤지컬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으로 뮤지컬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꿈이란 걸 오래 전부터 말해왔다.
그러나 10년을 넘게 준비하고 있는 뮤지컬 또한 그의 꿈은 아닌 것 같다. 그의 음악과 꿈. 그것은 그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아름다운 세상, 행복한 세상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다.
글 : 박경덕(구성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