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어느날... 밀양역에서 ktx 환승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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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보라 수수꽃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 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이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 님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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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평역(沙平驛)
가끔 멀리 떨어진 외딴 기차역에 서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어렸을때부터 멀미를 너무 심하게 해서
다른 교통수단보다 기차가 훨씬 더 맘 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외딴 기차역은 왠지 모를 그리움이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 내 살던 동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곳에
기차역이 있었다
그때는 그 기차역이 얼마나 크고 위대해 보였는지 모른다.
엄마가 한 달에 몇 번 되지 않는 큰 장(요즘 시내)에 가실때
기차를 타고 가셨으며 식구들끼리 여행 몇 번 가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그 기차역에서 설레이면서 기차를 기다렸으니
나에게는 정말 위대한 기차역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고 내가 자란뒤 그 위대한 기차역이 간이역이 었다는 사실과
이제는 그렇게 설레이면서까지 기차를 타지 않는다는 것,
무엇보다 도 설레임가득한 그 간이 기차역이
세월이 흐르면서 더 이상은, 더이상은 필요치 않다는 것이
우리가 살 아파트가 필요하다는것이
때로는 씁쓸할 뿐이다..
막차를 기다리는 가난한 손님들..
삶의 애환이, 그리움이, 기다림이 ,막차의 침묵속에
먼 기적처럼 묻혀져 가는 부표같은 사평역...
그래서 때론 그 사평역에 서 있고 싶다.
2005년 6월 11일
안개낀 새벽녘..... 그런 사평역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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