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 난초와 지초의 그윽한 향기 가득한 난지도
상암에 살고 있는지도 벌써 10년이다.
처음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는 월드컵이 막 끝난 시점으로
그때만해도 공원을 조성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터라 울창한 초록의 숲이라기보다는
덤성덤성 땅을 가리는 정도 였는데
세월이 지난 지금은 땅이 전혀 보이지 않는 초록의 숲이자 생태의 숲 공간으로 탈바꿈하였고
인공적으로 심었던 식물들과 더불어 자연적으로 새로운 식물들이 자리를 잡아
다양한 식물의 종을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 있어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같지 않은 정취로 인해 즐거움이 배가 되고 있는 곳이다.
이름마저도 너무 예쁜 난지도[ 蘭芝島 ]는 '난지(蘭芝)', 즉 난초와 지초(芝草)를 아우르는 말로
처음에 이곳에 이사를 왔을 땐 당췌 어디에 난초가 있다는 말인가 살짝 의심을 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강을 따라 (그때는 난지한강공원이 조성되기 전으로) 가양대교쪽으로 인적 드문길을 따라
한참을 거슬로 올라가니 아이리스, 창포꽃이 정말 한가득이었고
일요일 아침마다 꽃길을 따라 걷는 황홀함은 혼자만의 비밀의 숲을 걷는 기분이었다.
원래 아이리스꽃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자연그대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곳,
난지도에 반해 버렸다.
그러나 그 즐거움도 오래가지 못해 난지 한강공원으로 개발이 되면서 한강 코 앞까지 자리를 잡고 있던
창포꽃은 모두들 안쪽으로 이전되었고 현재는 '갈대바람길'로 이름붙여진 이곳에 억새군락이 자라고 있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인공적인 손길을 배제하고 자연 환경그대로 조성이 되어 있는 곳이라 가을이면 아쉬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곳이다.
< 2004년 5월 한강의 모습>
실은,,,, 전시회 준비를 하는 두 달 동안 내내
이 멋진 난지도 산책을 한번도 하지 못해 갑갑증을 몹시도 느꼈었더랬다.
초 봄부터 앞다투어 수 많은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시간을 달리하며 피어나는데
이미 봄 꽃들은 지고 없고 이젠 여름을 알리는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문득,,, '아,,, 지금쯤 아이리스가 피기 시작하겠구나' 싶었고
모처럼 여유를 가진 하루, 한강 난지공원의 아이리스군락을 보기위해 산책을 나섰다.
어느새 월드컵 경기장 주변으로 넝쿨장미들이 빛을 발하는 계절이 되었다.
정말 올해는 시간이 빨리 흐르고 있는 듯하다.
평화의 공원에서 난지천한강공원까지 걸어서 족히 한 시간을 걸어 가야하는지라
가끔 걷기도 하지만 집으로 오는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기때문에 대부분 공공자전거를 이용하는 편이다.
오호호 항상 그렇지만 한번에 한강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개양귀비가 잔뜩 피어 얼굴을 내밀고 있어서 발걸음을 멈추고
새로 식재된 꽃들에도 눈을 맞추고
이건 또 뭐니? 뭔가 또 새로운 조형물이 생긴 곳에서도 발길을 멈춘다.
웬 생뚱맞은 튜울립인가 했더니... 가을에 코스모스가 식재되어 한들거리는 이곳에
봄에는 이렇게 튜율립이 식재되어 오가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었나보다.
튜울립이 지고 나면 개양비귀가 꽃 피울 준비를 서두르고 있으니
머지않아 한들한들한 개양비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완연한 녹색의 싱그러움 아~~ 이젠 정말 여름인가 보다
이 연못 주위로 이 길 건너에도 보시다시피 창포꽃이 한창이다...
겨우내 지나다니면서도 눈길을 받지 못했던 조형물이 눈에 띈다
오호호호 아이비를 비롯해 사이사이에도 꽃들이 만발하게 피어 조형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또 하나의 예술작품인양 느껴지게 한다.
이러다 난지한강공원까지 가기도 전에 해 떨어지겠다
서둘러 한강 연결브릿지로 고고씽~~ 엄청난 자전거의 물결이다 ~
산딸기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산딸나무가 또 나를 붙잡는다. 에구에구
으아~~~ 이건 또 뭐니... 보라색과 흰색의 꽃 닭개비가 꽃 피울 준비를 서두르고 있고
탐스러운 부처꽃도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이고 노루오줌의 빨강색은 더욱 붉어지고 있다.
아~~ 어쩜 좋아.... 그러나 오늘은 난초를 봐야한다는거...
워워워~~ 이러시면 안됩니다.
한강과 달리 월드컵공원은 잔디밭에 들어가면 안되는 곳이며 자신의 집인양 이부자리를 옮겨놓은 듯한 ...
보기 좋지는 않네요.. 이분들 공원산책하며 두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도 꼭 끌어안고 주무시고 계시더라는...
어쨋거나 열심히 패달을 밟아 탁 트인 한강에 도착하니 연을 날리던 아저씨는 연을 내리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계신다~~
자, 첫번째 난초 군락에 도착했다~~
평화의 공원 연결 브릿지를 지나 잔디마당을 지나면 도착하는 정수원에 가득핀 창포꽃들이다.
으~~~ 실은 계절적으로 조금 늦은 감이 있는 듯하다.
군데군데 이미 난초가 지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뭐 그게 대순가? 난초를 보기에는 이 정도도 훌륭하다.
그야 말로 난지천국이 따로없다.
오호호호 난초의 잎은 지고 나면 이렇게 돌돌돌 말려 개구리 모양이 되는구나~
조금 더 발걸음을 옮겨 난지 캠핑장에 도착했다.
난지 캠핑장앞은 생태수로로 조성이 되어있어 이곳에서도 수생식물들 관찰이 가능하다.
이쪽은 온통 노란색의 난초들이 ~
이곳에서 약 10분정도 가양대교쪽으로 더 올라가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창포원이 있다.
혹여 뱀이 나오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아닌 걱정을 하면서 혼자 맨발로도 걷기도 하는 곳이다.
찔레꽃의 어린순을 '싱아' 라고 하는데
박완서님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등장하는 찔레꽃이다.
이미 싱아는 다 자랐다 ㅠㅠ
난초와 지초를 아우르는 난지도는 바로 이곳이 아닐까?
지금이야 '아이리스'하면 김태희 이병헌이 나온 드라마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나의 학창시절에 '아이리스'라는 순정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약간은 환상을 가지고 있는 꽃이기도하다.
오죽하면 직접 그린 창포꽃 유화도 있다 크흐흐흐
벌들은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꽃가루를 옮기느라 분주하다
꽃잎이 떨어지는 다른 꽃들과 달리 습기가 줄어들면서 돌돌돌돌 말리는 붓꽃
그런데 이곳 난지는 언제부터 난지라 불렸는지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만
홍제천과 한강이 만나 퇴적물이 쌓였던 곳이기에
예로부터 철따라 온갖 난초와 꽃들이 만발해 꽃섬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하며
문헌적으로도 김정호의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나 <수선전도(首善全圖)>에는
꽃이 피어있는 섬이라는 의미의 '중초도(中草島)'로 기록되어 있으며
실제로 구한말까지는 이 명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으로 유추해 보아도 상당히 아름다운 곳이라 미루어 짐작이 되는 곳이다.
특히 난(蘭)과 지(芝)는 모두 은근한 향기를 지닌 식물로,
'난지'란 흔히 지극히 아름다운 것을 비유할 때 쓰는 지초(芝草)나 난초와 같이
그윽한 향기가 나는 두 사람간의 절친하고 고상한 사귐을 '지란지교 (芝蘭之交)'라 표현하기도하니
이름에서부터 은은한 향기가 아련한 추억이 배여있는 난지도라고 할 수 있겠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난지로 꽃내음 맡으며 산책을 가자고 할 친구들이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다만, 친구들이 가까이에 살기는 하는데 나와 움직이는 시간대가 안 맞아서
다들 밤 산책은 기피하는 것이 서운할 뿐이고.. ㅎㅎ
학창시절에 유안진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너무 좋아해서
에세이 전체를 손글씨로 적어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었고
좋아하는 구절만 지금으로 따지면 캘리그라피처럼 글씨를 무늬로 만들어서 선물하기도 하고
코팅해 책갈피로도 만들어서 선물하기도 했었다...
그러고보니 '난지'는 여러모로 참 나와는 인연이 있는 식물인듯하다.
어쩌면 내가 난지에 살고 있는 이유일런지도..
유안진님의 지란지교가 궁금하신 분들은 더 보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 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고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도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다.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 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 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만약 내가 한 두곳, 한 두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겨질 자신이 돼 있을 걸
우정이라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 같아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 자리서 탄로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바랄뿐이다.
나는 떄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는 나는 얼음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눈 속 침대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도 있고 아첨같은 양보는 싫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라낟.
우리는 명성과 권세, 제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게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지 못하더라도 곤란을 벗어나려고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지 않을 것이다. 오해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베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진 않다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함이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치늣이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하늘의 흰구름을 바라보다,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면 그도 그럴떄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론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수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푸진 않게 가지는 멋보다는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떄는 여왕처럼 품의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 돈을 벌기위해 하기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않고 살기를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 두사람을 사랑한다고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지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쓴다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과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 한 묶음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져도 그는 날 주책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게다.
나 또한 그의 눈에 눈꼽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추가루가 끼었다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이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의 손이 비로 작고 여리나 서로 버티어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리라.
그러다가 어느날이 홀연이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풍경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 더 고운 풍경으로 돋아난 지란의 그윽한 향기
다시금 지란지교를 꿈꾸어 본다.
더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난지의 풍경이 마음으로 스며든다.
날씨가 맑았다면 붉은 저녁노을이 장관인 난지한강공원
저녁 어스럼 난지의 그윽한 향기를 담아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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