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lesse Nomad/Interesting culture

전도연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작은천국 2007. 5. 28. 10:04

 

전도연, 칸 영화제 '최고의 여인'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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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프랑스 칸 국제 영화제에서 전도연 씨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세계 3대 영화제로 치면 지난 1987년에 강수연 씨가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에 두 번째인데,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보통 큰상이 아닙니다.



칸 현지에서 조정 특파원입니다.

<기자>



우리 시간으로 오늘(28일) 새벽 프랑스 칸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뽑혔습니다.

지난 1987년 강수연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탄 이후 20년 만입니다.

또 칸 60년 역사상 동양계 여배우로는 2004년 홍콩의 장만위 이후 두번째입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노배우 알랭들롱이 트로피를 건네 수상의 의미를 더했습니다.

[전도연/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 : 저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일을 이창동 감독님이 가능하게 하셨어요. 감사하고요. 송강호 씨, 강호 오빠 때문에 '신애'라는 인물이 비로소 완전해진 것 같아 너무 감사하고.]



전도연은 이창동 감독의 복귀작 '밀양'에서 아들을 유괴당한 뒤 극한의 고통을 극복해 가는 여인의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배우의 연기력을 중요시하는 영국인 심사위원장 스티븐 프리머스도 힘 있는 연기에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지난 24일 공식 시사회가 열린 뒤 평론가와 현지 언론들은 전도연의 연기에 찬사를 보내며 여우주연상 수상을 점쳤습니다.

이번 전도연의 수상은 본선에 오른 영화의 주연 상당수가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빛났습니다. 조정 mjjcho@sbs.co.kr

 

전도연 칸 여우주연상 수상 쾌거, 한국여배우 최초 [뉴스엔 홍정원 기자]

전도연이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으로 제6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실버 컬러의 드레스를 입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뽐낸 전도연은 27일(현지시간) 오후 7시 30분(한국시간 28일 오전 2시 30분) 열린 프랑스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영화 ‘밀양’은 칸영화제 초반부터 많은 주목을 받아 왔으며 영화가 상영된 뒤에도 영화제 데일리(daily)와 평단,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미국 유력지인 뉴욕타임스는 26일 이미 보도를 통해 “‘밀양’이 여우주연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라며 “전도연은 이번 영화제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고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하다”고 연기력을 극찬했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밀양’은 2002년 ‘취화선’(감독 임권택,감독상), 2004년 ‘올드보이’(감독 박찬욱. 심사위원대상)에 이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세번째로 수상한 한국영화가 됐다.




‘밀양’은 전도연의 혼을 쏟은 내면연기와 송강호의 코믹한 멜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남편을 여읜 피아노 원장 신애(전도연)가 아들과 함께 경남 밀양으로 내려와 카센터 사장 종찬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아들 마저 잃은 신애는 기독교에 귀의하지만 뜻밖의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밀양’은 단편소설 ‘벌레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으로 인간과 신, 구원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국내에서는 24일 개봉해 헌재 상영 중이다.

홍정원 man@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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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연 수상소감 "아!아! 너무감사... 강호 오빠 덕분"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전형화 기자]

ⓒ사진=임성균 기자




"아... 아...!"

전도연이 상기어린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로 세계 영화계에 일성을 토하는 순간 박수가 터져나왔다.

가슴을 졸이며 영광의 순간을 지켜보는 충무로 관계자들도 감격에 겨웠다.

이 같은 감격에 더한 것은 전도연의 바로 그 수상 소감이었다.

제6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전도연이 상대역인 송강호에게 영광을 돌렸다.

전도연은 27일 오후 7시(현지시간) 프랑스 칸 팔레 데 페스티벌 광장의 뤼미에르극장에서 열린 제60회 칸 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무대에 올라 "아, 아"라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은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전도연은 "칸 국제영화제측에 감사를 드린다"고 소감을 밝힌 뒤 상대역인 송강호에게 공을 돌리며 "강호 오빠 덕분에 신애라는 캐릭터가 완전해진 것 같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전도연은 "이 같은 영광을 준 칸 국제영화제와 심사위원 여러분께 너무 감사드린다"며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이에 이창동 감독과 송강호 등 '밀양' 팀은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으로 호명되자 벌떡 일어나 박수갈채로 수상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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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은 어떤 영화?



영화배우 전도연을 '칸의 여왕'으로 등극시킨 영화'밀양'은 남편과 아이까지 모든 것을 잃은 신애가 삶의 고통으로 만신창이가 된 뒤부터 희망에 접근해 가는 이야기다.

사랑을 잃고 상처받은 신애(전도연)는 새 삶을 위해 밀양을 찾는다. 피아노교습소를 운영하며 희망에 담금질을 시작한다. 그러나 얼마 안돼 유일한 희망이 ㄴ아들을 잃으면서 삶의 의미마저 완전히 빛을 잃는다.

신애는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슬픔에 소리내 울지도 숨 쉬지도 못하면서 슬픔과 고통으로 뒤범범된 삶을 연명한다. 그러다 기독교를 접하며 신을 통해 '왜 사는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는 듯하다. 그러나 이역시 종국의 희망은 아니었다.

 

영화는 끝없이 확대되는 인간 내면의 고통과 아픔, 슬픔속에서, 눈물겹게 끄집어 내는 한 줄기 '희망'을 툭하고 내더진다. '희망'은 살아있기때문에 살아가는, 처절한 현실속의 사람들이 극복하는 힘이다.

 

그것이 딱이 어떤것이라고 규정하거나, 어떻게 해야 끌어안을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이 감독은 영화에서처럼 '삶의 의미'와 '희망''구원'에 관한 정의는 관객의 몫이라고 규정한다.

 

"인간에 관한 영화"라며 "어떤 메시지를 전할 것이 아니라, 관객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 피가 돌고,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며 경이롭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살랑거리는 나뭇잎 사이를 가로지르는 따사로운 햇살이나, 살을 애는 듯 사막에 내리 쬐는 햇볕은 모두 '태양의 볕'이다. 영화가 담은 것은 후자에 가깝다. 허나 사막에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지만 반드시 나타난다는 희망, 즉 '오아시스'가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

 

절망하는 여인 옆에서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을 전달하는 카센터 사장(송강호)은 첫번째 '오아시스'인 셈이다. 우리내 삶에 경중을 가릴 수 없는 아픔과 유쾌함이 공존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것은 전도연의 연기이다. 극중 신애가 유괴범의 전화를 바독 부들부들 떨고, 교회 안에서 슬프밍 폭발해 기침을 삼키며, 신을 마주하듯 땅바닥에 누워 하늘을 향해 외마디를 던지는 모습 등은 오래도록 각인되는 장면들이다. 희망을 잃은 한 여인의 아픔을 바라보며 관객도 그대로 탈진할 지경이다.

 

칸 시사회 후 한 홍콩 여기자가 "신애를 연기하면서 그 시기에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고 의문을 던질 정도였다 " 덕분에 남편에게 더욱 의지하게 됐다"는 것이 전도연의 수줍은 고백이다. 하지만 '밀양'은 배우가 된 이래 처음으로 감정연기가 안 돼 먼저 촬영 중단을 요청했던 선례를 남긴 힘든 여정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이 영화가 칸에 공개 됐을 떄, 작품성에 대한 의견은 다양했다 "수작이다" "그저그랬다"는 평과 함꼐 "인간의 아픔을 노래한 영화""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여정을 그린 작품"이란 식의 다양한 시각이 공존했다. 과정이야 어쨋든 '밀양'은 한국영화를 대표, 60돌을 맞은 칸에 이름을 올리는 영예를 안았다.

 

문지연기자 cinedl@newsis.com

 

전도연 "칸 수상, 인생에 큰 비중으로 남을 것"
[연합뉴스 2007-05-28 09:00]
칸영화제여우주연상수상 전도연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기자회견

(칸<프랑스>=연합뉴스) 홍성록 기자 = "칸 여우주연상 수상은 제 인생에 큰 비중으로 남을 겁니다."

제60회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칸의 여인'이 된 전도연(34)이 시상식 직후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대극장 내 기자회견장에서 각국 기자들과 만났다.

전도연은 22편의 장편 경쟁부문 초청작 중 한 편인 이창동 감독의 '밀양(Secret Sunshine)'에서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두고 용서라는 화두에 직면한 피아노 과외교사 신애를 실감나게 연기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밀양'이 현지 시사를 통해 공개되자 현지는 물론 각국 언론들도 전도연의 여우주연상 수상 가능성을 연일 보도했고 평단에서도 그의 연기에 대해 "힘 있고 믿을 만한 연기"라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 3대 영화제(칸ㆍ베를린ㆍ베니스) 중 첫손에 꼽히는 칸에서 해외 영화제 진출 경험이 없는 아시아 여배우가 수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래서 이번 전도연의 수상은 어떤 여우주연상보다 값지다.

전도연도 이에 대해 크게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 "부담스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사실은 계속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고 고백했다.

전도연은 "이는 나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일이었는데 나를 보는 주변의 시선조차 부담스러워 숨고만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상을 받은 뒤 그런 시선이 응원의 눈빛과 축하의 메시지가 돼 감사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최고의 여배우지만 해외 영화제 참여 경험이 없는 그에게 주위의 기대는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 전도연은 시상식 전 일부 언론에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사실상 확정된 것처럼 보도하자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수상을 하고 나니 이제 전도연에게도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일까. 그는 "세계적인 영화제인 칸에서 해외 영화제를 처음 경험하게 돼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이 자리 자체도 영광스럽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칸에 입성하면서도 큰 욕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과한 상들을 많이 받아서 사실상 개인적으로는 욕심이 없었습니다. 사실 이창동 감독님을 통해 칸에 올지도 몰랐고요. 수상과 관계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면 된다고 생각했고 감독님도 그렇게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칸의 여우주연상은 그에게도 큰 의미일 듯.

전도연은 "한국에서도 저를 배우로 인정해 주고 좋은 상도 많이 줬지만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배우로서 제 인생에 큰 비중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결혼한 것과 관련 "결혼이 전도연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라고 묻자 "가장 큰 선물 중에 하나"라며 밝게 웃었다.

전도연은 기자회견을 하기 전 포토타임 시간에도 연방 얼굴에서 행복한 웃음을 감추지 않았으며, 시상식에서 수상자로 호명됐을 때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기도 했다.

전도연은 수상 소감으로 "믿기지 않는다"고 말문을 연 뒤 "작품에서 열연한 여배우들이 많이 있다고 들었는데 제가 그 여배우들을 대신해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그 자격과 영광을 주신 칸과 심사위원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고 밝혔다.

sunglok@yna.co.kr

 

 

 

전도연 칸 수상 영광, 송강호도 있었다
[스타뉴스 2007-05-28 07:32]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윤여수 기자]
ⓒ사진=홍기원 기자

"송강호 선배! 강호 오빠 덕분에 신애라는 캐릭터가 완전해진 것 같다."

28일(한국시간)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밀양'으로 당당히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톱스타 전도연의 수상 소감이다.

떨리는 목소리와 상기된 표정으로 연출자 이창동 감독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전도연은 송강호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아…! 아…!"라며 기쁨의 탄식을 내쉬었다.

객석에서 이 가슴 벅찬 순간을 지켜본 송강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며 동료에게 아름다운 박수를 보냈다.

전도연은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쾌거가 있기까지 한 켠에서 자신의 연기를 더욱 더 돋보이게 해준 사람 가운데 송강호가 있었다고 말하는 듯 보였다.

영화 '밀양'에서 송강호는 자신이 '치고 빠져야 하는 순간'이 무엇인지, 또 어느 지점인지를 알았다.

영화 '밀양'

어이없는 남편의 배신과 죽음, 인생 단 하나의 희망으로 부여잡고 싶었던 아이마저 무참히 잃어야했던 극중 신애의 애끊는 절망과 고통을 연기하는 전도연의 모습은 송강호의 사실적인 연기와 어우러지며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전도연의 격하게 흔들리는 어깨와, 삼키려야 삼켜지지 않고 토하려야 토할 수 없는 극단의 절망으로 아픈 가슴을, 송강호는 매우 자연스럽게 하지만 감정 속으로 깊이 부러 들어가지 않는 모습으로 그 곁을 지킨다.

전도연은 결국 송강호와 '멋진 앙상블'을 그려냈고 이창동 감독의 연출력은 두 배우의 깊고, 때로는 옅지만 순간순간 먹먹한 '펀치'를 날리며 관객들의 가슴을 후벼팔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도연은 이창동 감독과 송강호에게 더 없는 고마움의 찬사를 수상 소감으로 전했을 터이다.

전도연은 지난 1일 '밀양'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송강호는 오래 전부터 함께 하고 싶었던 배우였다. 그러나 그 동안 기회가 없었다. 내가 그의 팬이기도 하지만 다시 한 번 존경하게 됐다."

그리고 "그 연기의 힘과 배우의 힘이 궁금해졌다"고 덧붙였다.

혼신의 연기로 온전히 여우주연상 수상의 영광을 안아도 충분한 전도연. 그의 영예로운 여우주연상에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 역시 그러할 것이다.

영화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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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d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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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전도연, 칸 수상까지 가슴 졸인 1년간의 파노라마
[스타뉴스 2007-05-28 06:04]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윤여수 기자]
ⓒ사진=홍기원 기자

톱스타 전도연이 칸의 태양을 녹여냈다.

전도연이 28일 오전 2시30분(이하 현지시간) 막을 내린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그토록 꿈에 그리던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 자신, "아, 아!"라고 상기어린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로 감동했지만 그러기까지 전도연은 지난 1년 동안 가득한 기대감과 긴장감을 애써 감출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도연에게 '밀양'은 여러 모로 특별한 의미를 주는 영화인 듯하다.

지난해 9월 중순 '밀양' 크랭크인을 하기까지 사실 전도연은 망설이고 망설였다.

"영화로 담겨진 것보다 당초 시나리오가 워낙 강렬했고 나 역시 자신감이 없었다."

감독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고 극중 주인공의 감정과 삶의 절망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욕심이 생겨났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모두 10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단 한 번도 촬영을 멈춘 적이 없었던 그는 끝내 '밀양'을 촬영하며 너무도 힘겨워 잠시 작업을 중단했다. "입술을 깨물어 피를 머금는" 아픔을 감당하면서도 아이를 무참하게 잃은 어미의 심정을 표현해낼 길 없는 배우로서 안타까움과 스스로 자책한 배우로서 미력함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영화 '밀양'

그 같은 과정을 디뎌내는 과정에 "든든하고 나를 지켜주는 벽" 같은 지금의 남편 강시규씨를 만났다.

그로부터 위안을 받고 동료배우 송강호로부터 힘을 얻었으며 연출자 이창동 감독의 묵묵한 지휘 아래 전도연은 힘겨운 촬영 과정을 넘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3월11일 비공개였지만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 전도연은 한 편의 영화 작업을 힘겹게 끝내고 난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신혼의 달콤함에 잠시 빠져 있었다.

4월 중순. 드디어 프랑스 칸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김기덕 감독의 '숨'과 함께 자신의 영화 '밀양'이 제60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경사가 찾아왔다.

그리고 지난 1일 서울 종로 서울극장. '밀양'의 첫 시사회가 열렸다.

2시간이 조금 넘는 상영시간 끝에 박수소리가 터져나왔고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선 이창동 감독의 진지한 설명을 덧붙인 답변과 함께 전도연, 송강호의 상기됐지만 유쾌한 말이 객석의 웃음과 진지함을 이끌어냈다.

이달 중순 이후 전도연은 숱한 국내 언론 매체와 인터뷰를 통한 홍보에 전력을 다했다. 전도연의 혼신을 다한 연기에 국내 언론과 평단은 물론 해외 언론의 호평이 전해져오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칸을 향한 첫 걸음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22일 전도연은 배우 송강호 부부와 함께 칸으로 향했다. 23일 언론 시사와 24일 경쟁부문 공식 시사 및 기자회견에 참석한 전도연에게 숱한 해외 언론들이 찬사를 보냈다.

칸에서 영화제 현장을 지킨 취재진이나 외신을 타고 전해져오는 소식을 전하는 국내 언론 매체나 전도연의 수상에 조금씩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밀양'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리기 시작했다. 최고의 점수와 평가를 주는 매체와 평론가들이 있었고 그와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평균 수준 정도의 평가를 내린 축도 있었다.

ⓒ사진=홍기원 기자

영화제 폐막일인 27일이 다가오면서 전도연의 여우주연상 가능성은 더욱 높아갔다.

현지 시간으로 26일 밤. 영화제에 참가한 한국영화 관계자들 사이에 풍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황금종려상은 아닌 것 같다"는.

날이 밝은 뒤 27일 오전에는 "각본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가운데 하나는 받지 않겠느냐", "아시아권 영화에 상을 줄 것 같은데 무슨 상일까?" 하는 갖은 소문과 추측이 현지 한국영화 관계자들 사이에 퍼졌다.

이날 오전 현지의 '밀양' 관계자들에게 칸 영화제측의 언질이 왔다. 하지만 "폐막식에 참석하라"는 수준이었을 뿐, 구체적인 수상 여부 등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마침내 시상식을 겸한 폐막식.

전도연은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고 나서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시상자인 세계적인 배우 알랭 들롱의 입술이 자신의 손등에 와닿았지만 모든 것이 꿈만 같았을 터이다.

그리고 전도연은 감격의 상을 품에 안았다.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내질렀고 객석에선 박수갈채가 터졌다.

"아…! 아…!"

전도연을 그렇게 '최고의 날'을 맞았다. 그의 뇌리 속에서는 지난 1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아니 지난 17년의 연기 생활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을 것이다.

 

<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전도연 연보>

 

▲1973년 2월 11일 출생. 북가좌초등학교ㆍ연희여자중학교ㆍ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컴퓨터정보처리과

▲1990년 : CF '존슨 앤 존슨' 모델로 데뷔

▲1993년 : MBC TV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 출연

▲1994년 : MBC '종합병원', SBS '사랑의 향기' 출연

▲1995년 : KBS '젊은이의 양지' 출연

▲1996년 : MBC '별은 내 가슴에', KBS '사랑할 때까지' '프로젝트' 출연

▲1997년 : SBS '달팽이', 영화 '접속' 출연. 대종상ㆍ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수상

▲1998년 : MBC '간직한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 영화 '약속' 출연. 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연상 수상.

▲1999년 : SBS '러브스토리-기억의 주인 편', 영화 '내 마음의 풍금' '해피 엔드' 출연.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ㆍ백상예술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 수상

▲2000년 : 대종상ㆍ영화평론가협회상ㆍ춘사영화제 여우주연상ㆍ청룡영화제 최고인기상 수상

▲2001년 :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출연. 백상예술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 수상

▲2002년 :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 SBS '별을 쏘다' 출연.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수상. SBS 연기대상 10대스타상ㆍ여자최우수상 수상

▲2003년 :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출연

▲2004년 : 영화 '인어공주' 출연. 대한민국영화대상ㆍ디렉터스컷 여우주연상 수상

▲2005년 : 영화 '너는 내 운명' 출연. 춘사나운규영화예술제ㆍ대한민국영화대상ㆍ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ㆍ여성영화인축제 연기자상 수상

▲2005년 : SBS '프라하의 연인' 출연. SBS 연기대상 대상ㆍ10대스타상 수상

▲2006년 : 대종상 여우주연상ㆍ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여자배우상 수상

▲2007년 : 영화 '밀양' 출연.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서울=연합뉴스)

 

칸을 사로잡은 전도연…그녀는 누구인가
[쿠키뉴스 2007-05-28 03:49]    

[쿠키연예] 27일(현지시간) 폐막된 칸국제영화제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한 전도연(34). 장편 경쟁부문 초청작 ‘밀양’ 자체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지만 이 영화를 이끈 그의 연기력은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극찬받았다.

"고통받은 온순한 영혼을 표현해낸 전도연의 연기가 압권, 이같은 명 연기가 올해 칸을 빛내고 있는 그녀를 격렬하고 두려움 없는 여배우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다."(뉴욕타임스), "압도적인 절망감과 주위의 무관심을 극복하려는 한 젊은 어머니의 초상을 완벽하게 그려냈다."(로이터)

‘밀양’에서 전도연은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 아들을 데리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오는 피아노 교사 신애 역할을 맡았다. 첫 장면부터 절망스러워 보이는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곧 아들을 잃게 되고 또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종교에서도 좌절을 경험하면서 점점 더 심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여자다.

이 영화는 기획단계부터 이창동 전 문화부장관과 송강호, 전도연이 만났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그 가운데 2005년 ‘너는 내 운명’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전도연이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됐던 게 사실. 또 촬영 당시 미혼이었고 자녀를 두지 않은 그가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심정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전도연은 이런 우려들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대단한 흡인력으로 영화에 팽팽한 긴장감을 주입했다. 그의 연기는 결국 “전도연이 아니고서는 신애를 표현할 배우가 없었을 것”이라는 평을 이끌어냈다.

전도연의 힘은 그가 모든 영화에서 이같은 호연을 보였다는 점에 있다. 이번 칸영화제에서 버라이어티지가 ‘해피엔드’와 ‘피도 눈물도 없이’를 거론하며 “카멜레온같은 배우”라고 표현했듯이 출연작마다 새로운 면모와 몰입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1997년 장윤현 감독의 ‘접속’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당시 나이에 걸맞은 평범한 역할로 스크린에 발을 들였지만 다음해 조직폭력배를 사랑하는 당찬 의사 역의 ‘약속’과 열 일곱 시골 처녀 역의 ‘내 마음의 풍금’이 연달아 주목을 받으면서 팔색조 연기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대담한 노출도 불사한 ‘해피 엔드’로 배역을 가리지 않는 배우라는 평가와 함께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2003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는 정숙한 조선시대 여인으로 거듭났다. 2005년 ‘너는 내 운명’에서는 사랑에 목숨거는 다방 레지로 분하며 한국 최고 여배우 자리를 확고히 다졌다.

“저에게 ‘밀양’은 전도연이라는 배우한테 앞으로 더 보여줄 무언가가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이라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가 자주 했던 말이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듯한 그 순간 이처럼 다음 단계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 그에 대한 신뢰를 더욱 높이고 있다.

‘밀양’까지 총 10편을 찍은 그가 한국 최고 여배우를 넘어 국제 스타로 발둗움한 것은 이같은 열정과 저력 때문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칸의 여인' 전도연은 누구인가>
[연합뉴스 2007-05-28 05:44]
제60회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 전도연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 한국 최고의 연기력을 갖춘 여배우라는 평을 듣고 있는 전도연(33)이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도 그 연기력을 인정받게 됐다.

칸 현지에서 '밀양' 시사회가 열린 이후부터 세계 언론과 영화인들로부터 어떠한 논란도 없이 '여우주연상감'이라는 평을 이끌어냈던 전도연이 마침내 '칸의 여인'으로 선택되며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1990년 한 화장품 회사의 모델로 선정되며 연예계에 데뷔했던 전도연은 주로 TV 드라마에서 활동하면서 '귀여운 막내 여동생'의 이미지를 가졌다. '우리들의 천국' '종합병원' '별은 내 가슴에' '젊은이의 양지' 등이 그의 초기 드라마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의 연기 인생에 전환점이 된 작품은 한석규와 공연했던 장윤현 감독의 1997년작 '접속'. 컴퓨터가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 도구이자 소통방식으로 자리한 점을 소재로 삼아 그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멜로의 감성을 실은 작품이었다.

드라마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그의 배우로서의 가능성이 단 한순간에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전도연은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 여러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그럼에도 큰 스크린을 채우기에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며 미심쩍은 반응을 보였던 이들에게 전도연은 박신양과 주연을 맡았던 멜로 영화 '약속'(1998년)을 흥행에 잇달아 성공시켜 보이며 더 이상 의심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어 이병헌과 공연한 '내 마음의 풍금'(1999년)에서 전도연은 전작들과 달리 순박한 시골처녀를 연기하며 연기의 폭이 넓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비치는 그의 행보는 멈춰지지 않았다.

곧바로 선보인 '해피엔드'(1999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년), '피도 눈물도 없이'(2002년)에서 그는 여느 여배우와는 달리 파격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며 연기의 폭과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배우로 누구나 인정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한석규, 최민식, 설경구, 이병헌, 정재영 등 당대 최고의 남자배우와 파트너를 이뤘음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

배역을 가리지 않고 좋은 작품에 출연하는 그의 가치관은 배용준, 이미숙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배역을 맡았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년)에서 더욱 선명히 드러났다. 자칫 두 주연에 가릴 수 있는 배역이었으나 전도연이 연기함으로써 숙부인 역은 두 배역과 똑같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는 평을 받았다.

1인2역을 연기했던 '인어공주'(2004년)에 이어 선보인 박진표 감독의 '너는 내 운명'(2005년)은 전도연의 가치를 새삼 드러낸 영화. 에이즈에 걸린 다방 레지가 그처럼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관객은 전도연의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폭발적인 연기력을 통해 받아들였다.

'너는 내 운명'에서 전도연을 봤던 수많은 영화인들은 "더 이상 전도연이 보여줄 수 있는 게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만큼 지금까지 전도연의 필모그래피에는 다채로운 색깔,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한 연기의 폭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도연은 '밀양'을 통해 영화인들의 불안(?)을 보기 좋게 날려버렸다. 박진표 감독이 "내가 전도연을 빼먹을 만큼 빼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고 말할 만큼 곧바로 선택한 '밀양'에서 그는 엄청난 고통에 맞닥뜨린 한 여자의 불안정한 삶을 완벽하게 연기해냈다.

'밀양'은 전도연이 영화배우로 접어든지 만 10년, 10번째로 선보이는 작품.

'밀양'으로 그는 배우로서, 또한 여자로서 아주 중요한 것을 이뤄냈다. '밀양' 촬영 도중 남편 강시규 씨를 만나 3월11일 백년가약을 맺은 것.

'밀양'은 배우이자 새색시 전도연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남게 됐다.

 

<'밀양'의 이창동 감독은 누구인가>
[연합뉴스 2007-05-28 05:40]
영화 '밀양'의 이창동 감독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 27일 폐막된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전도연(34)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이창동(李滄東ㆍ53) 감독은 참여정부의 첫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2003년 2월, 현역 영화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이 감독이 문화부 장관에 전격 발탁되자 관가와 문화예술계는 물론 일반 국민도 놀라움과 신선한 충격을 감추지 못했으며, 장관 취임 이후에도 기존의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 장관과는 차별화되는 파격적 행보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04년 6월 장관직에서 물러나 영화계에 복귀한 그는 2002년 '오아시스' 이후 4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네 번째 작품 '밀양'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으면서 '역시 이창동'이라는 찬사가 나오게 만들었다.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 감독은 영화감독 이전에 교사와 소설가 경력을 지니고 있다. 경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교사 시절인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부문에 소설 '전리'가 당선돼 등단했다.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운명에 관하여' '녹천에는 똥이 많다'로 각각 이상문학상 우수상과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는 등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가 영화계로 진출한 것은 1993년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각본과 조감독을 맡으면서부터. 1995년에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각본을 써 그해 백상예술대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어 1996년 영화배우 문성근, 명계남 씨 등과 함께 영화사 이스트필름을 설립한 그는 창립작 '초록물고기'의 메가폰을 잡으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도시화와 근대화의 어두운 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영화는 그해 백상예술대상 작품상ㆍ신인감독상ㆍ각본상과 영화평론가상 작품상, 대종상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 국내 주요 영화제를 휩쓸었으며 캐나다 밴쿠버 영화제에서 용호상을 받는 등 20여 개의 해외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1999년 발표한 두 번째 영화 '박하사탕'은 군사독재 시대의 어두운 면을 들춰낸 작품으로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고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다. 국내에서는 '박사모'(박하사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자발적 영화 팬클럽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 감독은 2002년 발표한 세 번째 영화 '오아시스'로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문소리)을 수상함으로써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자리잡았다.

그가 2003년 2월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자 문화예술계에서는 문화예술인 출신 장관의 탄생을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영화감독으로서 절정기를 맞고 있는 이 감독이 자칫 무미건조한 관료생활로 인해 그 동안 닦아온 예술적 감각이 무뎌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오아시스' 이후 4년 만에, 그리고 문화부 장관 퇴임 후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작품인 '밀양'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음으로써 이 같은 우려를 말끔히 털어내고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부인은 MBC TV 인기 드라마 '고백'과 특집극 '눈먼 새의 노래' 등을 집필한 방송작가 이란 씨다.

passion@yna.co.kr

 

 

 

'밀양' 전도연에 칸 여우주연상 안겨준 이창동은?
[스타뉴스 2007-05-28 04:00]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윤여수 기자]
ⓒ사진=홍기원 기자

지난 2002년 여름 서울 종로 당시 씨네하우스 옆 카페.

영화 '오아시스'의 주연배우 설경구와 문소리 그리고 연출자 이창동 감독이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창동 감독은 변태다."

설경구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고 기자들은 의아함과 호기심과 놀라움으로 그의 부연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이미 그 3년 전 '박하사탕'으로 이 감독과 호흡을 맞춘 설경구는 "그와 함께 작업한다는 건 정말 힘겨운 일이다.그렇지만 그걸 알면서도 혼자 즐기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랬다. 이창동 감독은 그 만큼 완벽함을 요구했던 듯하다. 한 장면 한 장면 공을 들이지 않는 감독이 있을까마는, 이창동 감독의 집요함과 고집스러움은 더했음을 설경구는 경험으로 말했다.

이창동 감독이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자신의 4번째 연출작 '밀양'으로 주연배우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사실 이창동은 감독 이전에 소설가였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의 소설로 국내 굵직한 문학상을 받은 그의 문장은 일상적이지만 또 일상적이지 않은 소시민들의 허무하고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전했다.

ⓒ사진=홍기원 기자

그리고 1993년 동료 작가 임철우의 소설을 바탕으로 박광수 감독이 연출한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조감독으로 참여하면서 충무로에 발을 디뎠다. 1954년생인 그의 나이 마흔이 다된 때였다.

이후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각본을 쓰고 2년 뒤 '초록물고기'로 감독 데뷔했다.

소설을 통해 깊은 아픔과 어두운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혹은 굴복하려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는 영화로써 좀 더 적극적인 형태로 발언하려 한 듯 보인다.

데뷔작 '초록물고기'에서 이 감독은 얼떨결에 조직의 한 몸이 되어 들어간 주인공 막둥이(한석규)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지금 이 시대 가파른 산업화의 이면을 들여다보았다.

'박하사탕'에서는 현대사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낸 사내(설경구)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 속에 내던져진 개인의 삶에 관해 이야기했고 2002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품에 안긴 '오아시스'로는 지체장애를 가진 여자(문소리)와 세상이 애써 외면하려는 남자(설경구)의 순수한 사랑을 그려냈다.

한때 교사로 일하기도 한 그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며 '노사모' 멤버로 활동했고 이후 2003년 2월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돼 2004년 6월까지 일했다.

 

 

<밀양의 이창동감독 연보>

 

▲1954년 = 대구 출생

▲80년 = 경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81~87년 =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83년 = '전리'가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부문에 당선돼 등단

▲87년 = '운명에 관하여'로 이상문학상 추천 우수상 수상

▲92년 = '녹천에는 똥이 많다'로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

▲93년 = '그 섬에 가고 싶다'(감독 박광수) 시나리오작가 겸 조감독으로 영화계 입문

▲95년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감독 박광수) 조감독 겸 시나리오작가. 백상예술대상 각본상 수상

▲96년 = 명계남ㆍ문성근ㆍ여균동 등과 함께 이스트필름 설립

▲97년 = '초록물고기'로 영화감독 데뷔.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ㆍ감독상, 백상예술대상 작품상ㆍ신인감독상ㆍ각본상, 영화평론가상 최우수작품상ㆍ신인감독상, 대종상 심사위원특별상ㆍ각본상, 밴쿠버 영화제 용호상 수상

▲98년 = 스크린쿼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정책대변인

▲2000년 = '박하사탕' 감독. 대종상 최우수작품상ㆍ감독상ㆍ신인남우상(설경구),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설경구)ㆍ각본상, 영화평론가상 최우수작품상ㆍ감독상ㆍ각본상ㆍ신인남우상(설경구),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 칸 영화제 감독주간 초청

▲2001~2002년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

▲2002년 = 스크린쿼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

▲2002년 = '오아시스' 감독. 베니스영화제 감독상ㆍ신인배우상(문소리) 수상, 보관문화훈장 수훈

▲2003~2004년 = 문화관광부 장관

▲2006년 = 프랑스 레종 도뇌르 훈장 수훈

▲2007년 = '밀양' 감독.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전도연) 수상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