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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울려퍼진 3.1절 대한독립만세!!

작은천국 2014. 3. 3. 06:00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울려퍼진 3.1절 대한독립만세!!

 

 

 제95주년 3.1절을 맞이하여 서대문 형무소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일제에 항거했던 95년전의 그날로 돌아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선조들처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앞에서 독립문까지 3.1 독립만세 운동 재현 퍼포먼스가 열렸다.


집에서 종로 방향의 버스가 항상 서대문 형무소를 거쳐 가기에

3.1절을 맞이하여 서대문형무소도 가보고 싶던 차,

마침 취재가 있어 다녀오게 됐다.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서대문형무소로 삼삼오오 발길을 향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행사를 앞두고 12옥사 메인 무대에서는 서대문역사 어린이 합창단이

낭랑한 목소리로 3.1절의 노래를 불렀고 마음은 뭉클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한 사람이 태극기를 흔들자 여기저기서는 태극기가 펄렁이기 시작했고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 재현이 이루어지자 다같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시민들.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의 얼굴 표정은 마치 그날로 되돌아 간듯 사뭇진지했고 결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서대문형무소를 지나 독립문까지 3.1독립만세 운동 재현 퍼포먼스가 펼쳐졌고

 

수 많은 사람들이 대형 태극기 뒤를 따르며 쉴세없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분위기는 절청으로 치달았다.

 

 

일제의 서슬 퍼런 총, 칼 앞에 오로지 태극기와 맨손으로 평화운동으로 저항했던 3.1절의 숭고한 정신이

지루한 내용의 역사 책으로 만나는 몇 줄 안되는 죽은 문장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현장에서 전해지는 감동은 놀라웠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측에서는 3.1절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유관순열사, 김구 선생, 일본군 순사등으로

직접 분장한 극단의 배우들이 현장을 누비고 다니며 마치 그날로 돌아간 착각을 일으켰다.

이날 순사역을 맡았던 배우는 '나쁜 놈' 이라고 욕을 엄청 먹고 있었지만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그날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모습이 흐뭇하다고 했다.

 

서대문 형무소 곳곳에는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었는데 시민들은 태극기를 사진에 담기도 하고

 

독립운동가 추모헌화와 분향도 실시해 숙연한 마음을 갖게했다.

 

 

특히 다양한 체험행사가 열렸는데 부스마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며 인기를 모았다.

 

 

 

행사용 대형 태극기를 판매했는데 준비한 수량이 일찌감치 동이 나 버려 사람들은 발길을 돌려야했다.

나도 태극기를 사고 싶었으나 취재때문에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좀 늦게갔더니 이미 매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어 이후 서대문 형무소로 변경되어

1945년 해방이 될 떄까지 국권을 찾기 위해 싸운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 처형된 역사의 산 현장이다.

 

해방이후 서울구치로 이용되면서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들이 수감되는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진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며 '독립'과 민주'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고 있다.

 

현재는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위해 추진위원회가 발족되어 그 첫발을 뗐다.

 

오후가 되니 많은 분들이 자녀들과 함께 3.1절을 맞이해

곳곳은 한참을 기다려 줄을 서야 할 만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은 사람들의 인파는 점점 늘어났다.

 

기념관 전시내부는  식민 권력과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수 많은 희생이 따랐던 역사의 현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끔찍한 고문장면도 재현해 놓아 우리 아이들에게

그들이 저질렀던 만행이 어떤 것인지  섬뜩하리만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옥사의 내부는 관람객들로 발 딛을 틈이 없었다.

 

 

옥고를 치뤄냈던 그날의 아픔이 이곳에 서면 늘 저릿저릿하게 느껴지는 건 지나친 개인 감상은 아닐 것이다.

 

처음에 서대문형무소를 왔을 때 아무 시설물이 없이 보존만 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기억해야할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활동, 유품 등

그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이해를 돕고 있다. 

 

사형장 입구에는 새끼줄에 끼어 놓은 다양한 추모글이 바람에 펄럭인다.

 

사형장 입구의 통곡의 미루나무는 참 을씨년스럽다.

1923년 사형장 건립당시 식재되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애국지사들이 마지막으로 이

이 나무를 붙잡고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원통함을 눈물로 토해내며

통곡했다고 해서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이름 지어졌단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이 사형장 안쪽에 같은 시기 식재된 미루나무가 있는데

너무 억울한 한이 많이 서려 잘 자라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으니

그 한맺힌 서릿발이 어느 정도 였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온갖 모진 고문에 온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사형장에 끌려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 원통하다며 오로지 조국의 독립만을 생각했던  선열들.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기 위해  수 많은 피와 눈물이 서린 역사의 현장 서대문 형무소.

서대문 형무소에 걸린 대형 태극기가 오늘따라 더욱 뭉클하게 느껴진다.

 

 

 

여전히 일본은 망발을 서슴치않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3.1절을 삼점일절이라고 읽는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아이들을 탓하기전에 우리의 역사 의식이 어떤지 먼저 되돌아 볼 일이다.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따끔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