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천국 2008. 11. 14. 22:45

 

2005년 10월 7일

 

어릴적부터 들어온, 어른들이 늘 하시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세월이 빨리 갈 줄은 정말 몰랐다.
적어도 그동안 그려온 그림들이 창고에 가득 쌓여 지나간 세월의
부피를 눈으로 가늠할 수 있는것이 다행인 걸까?
아니다. 때로 나는 이 세월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진다.'

내게 있어 그림을 그리는 일은 눈 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는
시간들을 붙잡기 위한 소박한 밥상이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새 사라진 세월들을
저 가득 쌓인 그림들과 바꿨다는 생각이 아주 가끔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성장한 자식들을 바라보는
보모의 마음처럼..
하지만 때로 나는 그 그림들의 무게에 짓눌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내게 가장 부러운 사람은 가벼운 cd 몇 십장으로
영원히 남은 베토벤과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이다.
그들은 살아생전 무덤처럼 고독하였으나 사후로는
단 한순간도 잊히지 않았다

오래전의 일이다.
당시 뉴욕에 머물던 나는 지금은 작고하신 모 화가의
전람회에 갔었다. 내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분이라
타지에서 만나니 참 반가웠다.
그날밤 술을 거나하게 드신 선생님은 처량한 눈길을
달에게 보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나 다음에 태어나면 화가는 안 될거다" 그래서 내가
"그럼 무엇이 되고 싶으세요?"했다
"사업가나 되엇 돈이나 왕창 벌란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목소리엔 화가로
평생 살아온 삶이 누추했다는 기분이 배어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왕창 돈을 버셨다면 화가나 될걸 그랬다 하실걸요?"
내 말에 선생님은 "그럴까?" 하시며 쓸쓸하게 웃으셨다.
그렇게 쓸쓸한 뒷모습으로 남은 선생님은 몇 달 뒤
서울에서 돌아가셨다

그 무슨일을 업으로 삼고 제아무리 배불리 먹고
살았다 한들 쓸쓸하지 않으랴?

유한한 삶 앞에서 우리는 모두 쓸쓸하다.

어느 날 젊은 그대도 백발이 성성하리니

오늘은 내일의 젊음이라 그저 열심히 살아갈 밖에...
나의 세월이나 다름없이 덧없이 흘렀을 당신의 세월도
조금쯤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래도 견딜만한 2005년 무더위에 황주리

출처 : 세월(부제:너 요새연애하니?)
황주리 산문집 이레출판사 2005년

 



인간은 무엇을 하고 살던 제아무리 배불리 먹고 살던
누구나 다 쓸쓸한 존재인것 같다..
때로는 삶의 무게에 치여 죽을것만 같아도
지나고 나면 그 순간마저도 '좀 더 열심히 살걸'하고
후회하는것이 쓸쓸한 인생인 듯하다
요즈음은 긴 긴 시간동안 우리의 부모님은 이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셨을까? 의문이 든다...
지금보다 더 고단했던 삶이었던 것이 분명한데
이제 겨우 30하고 몇 년 밖에 안 넘기고도
가끔은 때때로 삶이 지겨워지는데
어떻게 70평생을 꿋꿋이 너무나도 훌륭히 살아오셨을까?
과연 나는 나의 부모님 나이가 되면
훌륭한 삶이었다고 반추할수 있을까?
삶의 무게가 켜켜히 가는 세월에 얹혀
오늘은 내일의 젊음이라 그저 열심히만 살면
쓸쓸하지 않을까?
세월의 무게 앞에 쓰러질것만 같은 요즘이다...